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59)
460화 검객의 귀환 (1)
쐐애애액
검은 공간을 갈색 매가 가로질렀다.
‘이쪽일텐데.’
근력이나 민첩 같은 수호의 스탯은 일반적인 사람의 수백 배를 상회한다.
상태창에 나타나지 않는 민감도나 방향감각 등도 마찬가지라, 방위를 찾는 데 있어 그는 짐승의 그것보다 더 정확했다.
기존에 있었던 공간을 호주라 특정짓고, 일본이 있을 법한 방향을 향해 한참을 날아가는 중이다.
단조로운 명암의 흑색 세상이지만 그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라서, 어떤 것은 바다고 어떤 것은 땅으로 이뤄져 있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우거진 수림도 있었으며 뾰족한 바위산도 있었다.
죽어버린 듯한 그 세상을 훑어보며 나아가다 보니 수호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죽은 행성을 보고 지구를 걱정했는데…….’
침식된 행성은 수호에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지구도 수호성을 제외하고 모두 침식되어 봤으니까.
‘쿠로는 어땠을까?’
끝내 자신의 고향을 지켜내지 못한 야수왕.
루나에 발을 디디고부터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끝내 실패하면 어떤 기분일까?
죽은 이를 보고 나의 죽음을 두려워하다가, 이젠 죽은 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스멀스멀 피어나는 생각에 크게 놀랐다.
“박수호 많이 약해졌네!”
실소가 새어나왔다.
실패를 가정한 생각 따위는 필요없다.
실패, 좌절 따위는 생각해 보지 않은 삶이다.
그런 것들을 염두에 뒀다면 천 년을 버티지도 못했을 것이고, 지구로 돌아오기도 전에 자살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반드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 확고한 생각이 없었다면 그 긴 외로움을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아, 그래선가?”
수호는 지금 수십의 마석을 흡수했다.
모두가 박수호지만 모두가 같은 삶을 산 것은 아닌 기억.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룡대전을 일으킨, 오천 년 넘게 산 녀석이다.
그놈의 마석을 흡수함으로써 수호는 진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엄청난 힘을 얻어버렸다.
힘의 중첩.
마석에 담긴 경험과 힘은 분명 탐이 나는 것이지만, 부작용이 있다면 함께 담긴 기억이다.
그 마석으로 인해 본래의 자아가 위협받을 정도로 성격이 조금 변했는데, 드래곤만 보면 지나치게 살심이 들고 난폭해진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 외에도 수십 개의 마석을 흡수해 뒤섞인 자아 속에서 본신의 자아가 중심을 잡으니, 다른 이가 보기에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수준의 변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득 그 대수롭지 않은 부작용 중 하나가 일어난 듯하니 자조 섞인 말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실패자의 DNA인가.”
마석은 신의 죽음의 결정체다.
그 안에 담긴 힘이니 기억이니를 떠나서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계에서 죽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죽음엔 단 한 가지 이유만이 존재한다.
강하면 살고, 약하면 죽는다.
수호에게 있어 이 명제는 수천 년을 살아오며 축적한 하나의 진리다.
야수보다 약해 잡아먹힐 수도, 자연재해를 이기지 못해 휩쓸려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내면의 나약함으로 인해 결국 육체보다 정신이 마모되어 지치고 좌절하여 자살을 택할 수도 있다.
죽음.
생전의 뜻을 이루고 죽음을 택한 이가 몇이나 될까?
수호의 기억 속 자아들 중에 그것은 오직 하나다.
‘신룡대전.’
신계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아 강한 힘을 가졌으며, 미드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리는 바람에 신룡대전을 겪은 기억.
긴 세월 동안의 전쟁을 겪고, 본인의 존재가 게이트의 존속과 연관된 것을 알고 제 목숨을 끊어 게이트를 닫은 자.
그 외의 모든 자아는 약해서 죽은 자들이다.
죽음.
달리 말해 실패한 자들.
그중에서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가진 힘도 보잘것없고, 내면도 약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죽음의 기억이다.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했고, 도전보다 회피를 택한 이들.
가진 힘은 보잘것없었고, 기억도 별 볼 일 없었으나 죽음으로 내몬 그들의 부정적 사고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수호에게 영향을 미쳤다.
“골라 먹을 걸 그랬네.”
커다란 댐에 난 작은 균열과 다를 바 없어 하찮다고 여길 수도 없다. 자칫 방치했다가 큰일을 치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골라봐야 똑같나.”
수호는 고개를 털었다.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것 자체가 수호가 변했다는 증거다. 언제나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선택의 후회를 하다니.
“후우.”
수호는 괜한 답답함에 고도를 더 높였다.
쐐애애액.
그간 마석의 흡수로 중첩된 힘에 취했었는데, 작은 계기로 기억의 중첩이 가진 부작용이 크게 다가왔다.
지금 수호는 수호가 아니다.
마석의 수만큼이나 많은 자아가 뒤섞였고, 그것들을 인지하고 있기에 문제가 없다 여겼건만, 스며든 그들의 기억은 분명 수호를 변화시켜 놓았다.
예전의 그였다면 마석을 골라 먹든, 아예 먹지 않든, 일단 행동을 했다면 그 이후의 후회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정하면 행하고,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며, 당면한 문제에 뒤를 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본질이 되는 수호의 자아가 마석으로 흡수한 자아들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준다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달랐다.
‘실패한 것들.’
수십의 자아가 모두 덤벼 봐야 본신의 수호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
그들은 죽었고, 수호는 살아있다.
죽은 그들이 이름 대신 블랙맨이라 불리는 이유였고, 지금의 수호가 수호라 불리는 이유다.
뜻이 꺾이지 않는 한, 수호는 실패하지 않았다.
죽음 따위가 두려워 한발 뒤로 물러날 수는 없다.
흡수한 마석의 부작용으로 수호의 심리에 후회와 주저함을 퍼트려버렸지만, 그것을 인지했으니 이제 이겨내면 될 일이다.
수호는 높아진 고도만큼이나 넓어진 시야로 주변을 훑었다.
온통 검은 이 세상은 커다란 행성의 시체.
“여기가 문제야. 나가야겠어.”
장재식만 찾으면 당장 이곳부터 벗어나야겠다.
죽은 행성은 한없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우는 게 싫은데, 죽은 시체 위에 앉아 웃고 있는 것도 우습다.
별수 있나. 여길 벗어나야지.
“찾았다.”
수호의 시야에 작은 녹색의 점이 들어왔다.
지구와 이곳은 대륙의 모양이 달라 일본에 일어난 침식공간이 바다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녹음의 푸른 땅이다.
쐐애애액.
갈색 매가 내리꽂히듯 고도를 낮추었다.
녹색의 점을 향해 쏘아진 갈색의 다트 같았다.
‘음?’
점점 커지는 녹색의 원 안에, 두 발을 딛고 선 인영이 보였다.
‘재식이?’
살아있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심장이 요동쳤다.
부동심이라 칭해도 될 수호의 평소를 생각하면 이상하리만치 기꺼운 감정 변화였다.
‘어?’
녹음의 공간에 딛고 선 인영을 자세히 보니 낯설다.
두 발을 딛고 자세를 낮춘 채 나뭇가지를 들고서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발도술과 다를 바 없는 자세다.
낯선 것은 녀석의 자세가 아니라 얼굴이다.
‘털?’
체형은 인간의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머리는 개와 닮았다.
아니, 개다.
파팟!
돌연 날카로운 기색이 방향을 틀어 선회했다.
“!@#!@?”
“뭐?”
처음 들어보는 언어에 수호는 깜짝 놀라 변신을 풀곤, 검은 공간에 착지했다.
풀밭에 서 있는 개 인간.
검은 공간에 서 있는 인간.
둘 사이의 기묘한 대치는 개 인간의 귀가 쫑긋해지며 끝났다.
“흡? 형님?”
“재식이 맞아?”
“맞소! 나 재식이오!”
“……?”
수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개같이 생겼는데?”
“맞소. 그것은 이 몸이 개돌족 검객 낙송이라 그렇소.”
“…….”
수호는 스스로 장재식이라 칭하는 개머리 검객 낙송을 보며 표정 관리를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미친놈인데.”
“아, 그럴 수 있소. 이해하오.”
“말투는 또 왜 그렇냐?”
“이거 나도 곤란하오. 그래도 용케 한국말 하는 게 어디요?”
“아까 한 말은 뭐야?”
“!@#!@# 이거 말이오?”
“그래. 그거.”
“개돌족 언어요.”
“…….”
수호는 조금 미심쩍어하며 업적상점을 찾아보았다.
– 언어의 알약(개돌어) 4500p
루나 행성의 개돌족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듣고,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파팟.
수호가 언어의 알약을 꺼내 먹고 나니, 귀에 닿는 낯선 언어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말투만큼이나 건방지게 생겼군.”
“뭐?”
“응?”
인간과 개머리 인간이 서로를 대치하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왜 시비냐?”
“내, 내 종족의 언어를 알고 있었소?”
“알지.”
“그럼 아까 한 욕도 들었소?”
“아까 욕했냐?”
“…….”
잠시간의 침묵 후에 수호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건 언제 치우냐?”
여전히 개머리 인간의 손엔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툭 꺾으면 부러질 앙상한 가지였으나, 반경 몇 미터 되지도 않는 작은 공간에서 구할 수 있는 기다란 막대기는 저것이 전부다.
“…….”
“너, 재식이 맞긴 맞냐?”
“맞소.”
“근데 날 경계해?”
“…….”
수호가 씩 웃었다.
여전히 경계를 지우지 않는 모습이 적을 마주한 듯 보이기도 했고, 맹수를 만난 초식동물의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수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개머리 인간의 눈에 이채가 서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두려움보다 투지다.
‘오히려 좋아해?’
수호가 다가갈수록 개머리 인간은 기세를 피워 올렸는데, 침식과 녹색 공간의 경계에 수호가 멈춰 섰을 때 그 투기가 최대가 되었다.
“너, 못 나오는구나.”
“…….”
개머리 인간이 잠깐 긴장했다.
그것은 찰나에 사라졌으나, 수호가 포착해 내는 덴 문제없었다.
“유인했구나.”
수호가 그에게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는 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검격 또한 마찬가지.
“우리 재식이가 나한테 칼을 들었단 말이지?”
“……맞소.”
“왜?”
“으음, 모르겠소. 형님이 반가운데, 칼 한 대 놓고 싶소.”
“…….”
이 새끼, 미친 건가?
어이없음과는 반대로 수호의 얼굴엔 미소가 짙어졌다.
“뭐가 진짜인지는…….”
수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풀을 밟자 개머리 인간의 검이 날아왔다.
쐐애액.
나뭇가지라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날카롭게 정렬된 기도의 검격!
파스스.
수호의 손짓에 그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의 손엔 방금까지 상대에게 있던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맞아 보면 알겠지.”
“…….”
츠츠츳.
수호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조화력에 의해 커지더니, 몽둥이로 불리기 훌륭한 모습이 되었다.
죽은 나뭇가지가 자라나는 그 광경에 개머리 인간이 눈을 치떴고, 수호는 웃으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
[네? 뭐라구요?]신목의 소리로 대화 중인 김미소의 당황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여기서 직접 눈으로 보는 자신도 당황스러운데 김미소도 얼마나 황당할까.
“겉모습은 개가 됐는데. 알맹이는 둘이야.”
[이중인격인가요?]“뭐, 그래 보이네. 그보다.”
수호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아가 자리잡아 의견 대립 중인, 인간 장재식이자 개돌족 낙송이 자신을 경계한 이유.
“루나가 망한 이유를 알았어.”
[야누스가 뺏었으니 그렇잖아요?]“맞아. 뺏었지. 근데 직접 하진 않았을 거 아냐.”
[그렇죠. 지구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았나요?]“던전이 생기고, 외계종들이 쳐들어오고. 신수들이 날뛰고?”
[아닌가요?]“어, 아냐.”
수호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개머리 인간에게 닿았다.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다져줬는데 아직 그 눈빛이 죽지 않고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날 보고 침략자라고 하더라고.”
[…….]루나 행성을 뺏어온 선봉.
“인간들이 루나를 초토화하고 멸망시켰어. 고블린이나 오크처럼…….”
외계종 인간의 침략을 맞아 루나 행성의 여러 수인들이 분투했으나 끝내 멸망을 막지 못했다.
‘쿠로…….’
실패하기 전 야수왕이던 녀석은 인간들과 싸워 왔다.
고향 행성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