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6)
47화 뒤틀림
샤아아아.
뜨거운 물줄기가 머리를 타고 내려와 온몸을 적신다.
이성우는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성우! 전화 왔어.”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샤워기를 잠갔다.
“가져와줘.”
“응!”
아키코가 화장실 문을 열고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을 건네줬다.
[나 혼자 렙업하고, 나 혼자 회귀하고, 나 혼자 또 귀…….]액정을 보니 방위대신이다.
“이성우입니다.”
– 아, 히로 상! 급한 일이 있어 전화했네.
급했으니 방위대신이 직접 연락했겠지.
“말씀하십시오.”
-지금 훗카이도로 자네의 팀이 가줘야겠어. 7성 던전의 출현이네.
“…….”
이성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7성 던전의 등장이 이때쯤이었나?
달력을 보곤 표정을 굳혔다.
‘빨라.’
과거보다 더 이른 시기다.
– 당장 던전 공략에 나서라는 게 아니네. 조사차 자네의 의견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이성우의 표정이 심각하자 아키코가 물었다.
“왜 그래?”
“7성 던전이야.”
“벌써? 히로 예지대로라면 5달 뒤잖아?”
“그랬지.”
회귀마다 달랐지만 보통 그쯤이었다.
7성 던전의 공략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다.
충분히 대비했고, 그 자신의 레벨업뿐만 아니라 휘하에 모집한 인재들의 훈련에도 충실했다.
지금 그가 이끄는 결사대는 세계 탑 급이다.
“변수라면 역시…….”
박수호란 존재밖에 없다.
얼마 전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4성 던전 귀환자로 판명 난 각성자. 겨우 던전 귀환자 따위가 보일 수 있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녀석이 자신과 같은 회귀자라면.
‘인류를 위해서야.’
변수는 적을수록 좋다.
이래서야 빼곡히 세워둔 미래 계획이 전부 어그러져버리지 않는가. 잘못하면 미래가 전부 바뀌어 대응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이번 회귀에도 또 실패할 수는 없다.
“그때 박수호 동향은 어때?”
“여전히 서울 인근에 칩거 중이야.”
“…….”
용인과 성남 사이에 자리 잡은 놈이다.
기억을 뒤져 그곳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떠올려봤으나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전혀 중요치 않은 거점.
“그 유튜브 채널은?”
“아! 재밌는 게 있었어. 그가 다이고 씨를 초청했어.”
“다이고?”
“초능관리청 소속 과장이야.”
초능관리청은 방위성 산하 국가기관이다.
이성우를 데려온 도쿄각성자연합회보다 더 국가기관의 색을 띄는 곳.
국가 차원에서 박수호에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아니, 박수호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역시 녀석도 회귀한 것이 틀림없다.’
회귀의 돌은 하나인데? 혹시 자신보다 더 뒷세대에서 온 자인가? 자신보다 더 많은 미래지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깔고 앉은 땅도 미래에 가치가 있다거나,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주변 인물들이 엄청난 인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성우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가정이 맞다면 녀석은 자신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걸 벤치마킹해 더 나은 미래를 설계했을지도 모른다.
‘회귀의 돌이 하나가 아닌 거였어!’
뒷세대에 또 다른 회귀의 돌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몇 년 전으로 보내주는 것일까?
자신과 똑같이 20년 전으로 회귀시켜주는 것일까?
“성우 짱!”
“어?”
“왜 그렇게 심각해?”
“후우……. 아니야.”
지금 상황이 몹시 짜증이 난다.
자신의 설계한 모든 계획을 폐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미꾸라지 한 놈이 모든 걸 망치려 들고 있다.
“다이고가 접촉했어?”
“아니. 하늘길이 막혔잖아.”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키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우 상, 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시민을 위해 그렇게 싸우는 건 감사할 일이지만, 좀 더 자기 몸을 돌봐야 해.”
눈만 뜨면 던전.
미친 듯이 던전을 공략하고, 적과 싸운다.
세상일에는 관심 없는 사람처럼 몬스터 사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성우 상의 희생으로 국민들이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건강을 잃으면 안 돼. 국민 모두가 바라는 일이야.”
개소리다.
스무 번이 넘는 회귀.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안다.
누가 해악을 끼치는 테러리스트가 되고, 어디에 보물 아이템을 가득 품은 던전이 나타나고, 언제 한국이 망하고, 언제 새로운 행성이 접촉하는지도 안다.
다 아니까 관심두지 않았다.
신문 한 줄 읽고, 뉴스 한 편 볼 시간에 몬스터를 잡아 레벨업 하는 게 더 득이 되니까.
“자세히 말해봐.”
“성우상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아키코는 미리 모아둔 언론 기사를 보여줬다.
[시베리아 상공을 뒤덮은 익룡!] [싱가포르발 여객기, 공중 괴생명체의 습격에 추락.] [세계의 항공사들 잇단 결항.] [막혀버린 하늘길. 바다는 안전한가?]“시발.”
또 앞당겨졌다.
기사 속의 괴생명체가 무엇인지 안다.
시베리아나 중국 등, 생성되는 모든 던전을 각성자들이 공략해 클리어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인구수 대비 큰 국토를 가진 모든 나라들이 그렇다.
도시만을 지키며, 필드에 생성된 던전은 돈이 되면 공략하고, 아니면 브레이크를 기다려 온갖 미사일 세례를 퍼부어 몬스터를 정리한다.
그러다 시베리아에서 터진 던전에서 와이번 수천 마리가 나와 폭격을 피해 아시아 대륙에 퍼졌다.
‘와이번 던전이 터지는 건 세 달 뒤야!’
그리고 세계의 공군들이 녀석들을 완전히 정리하는 데 한 달. 하지만 이후 터진 7성 던전에 세계적인 위기가 온다.
7성 던전의 등장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6성 던전의 잦은 출몰이니까.
이성우가 서둘러 인벤토리에 보관하는 수첩을 꺼내 들었다.
10월 와이번 둥지 브레이크
12월 불가사리 등장, 대형 화재1월 7성 던전 등장, 장소 홋카이도, 시드니, 파주, 싱가포르…….
5월 서울 후퇴.
7월 부산 후퇴.
…….
빼곡히 적힌 메모들.
자신의 모든 계획과 행동은 이 미래기반의 정보를 바탕으로 정해진다.
“박수호를 당장 만나야겠어.”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녀석의 생각, 녀석이 가진 정보, 녀석의 계획.
모든 걸 알아야겠다.
만약 자신과 뜻이 다르다면…….
‘인류 구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성우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
“허, 그래서 지금 못 간다고요?”
“그렇게 됐어요. 운행하는 항공편이 하나도 없어요.”
“차 타고 가면 되잖아?”
“제대로 된 도로도 없어요. 열차길도 끊겼고요.”
“그럼 배는?”
“배로 출발해 도착하는 것보다 몬스터 정리가 빠를 거예요. 전문가들은 한 달로 예측하고 있어요.”
“허.”
던전 브레이크가 도심에서 터지는 것만 아니면 토벌은 쉽다. 브레이크 시간에 맞춰 포격을 퍼부으면 되니까.
문명의 화력무기를 견디는 몬스터는 없다.
하다못해 핵이라는 최후 수단도 있으니까.
브레이크 이후 토벌은 보통 1시간 전후에 끝난다. 이후 남은 잔재 몬스터야 도시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수준이면 토벌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이번 토벌에 한 달이나 잡은 건 녀석들에게 날개가 있어서다. 지금처럼 많은 수의 대형 비행종 몬스터가 브레이크로 지구에 온 사례가 처음이니까.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다음에 이런 상황이 재발한다면 그때는 이미 적절한 대응책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쳇, 별수 없네.”
잔뜩 들떴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전 말 전했어요. 그럼.”
김미소 팀장이 돌아가고, 수호는 팔을 베고 누웠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갑자기 취소된 약속처럼 일정이 붕 떴다.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날개 없는 게 서럽군. ……음?”
수호가 평상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무성에 본격적으로 주거시설을 갖추기 위해 길드원들 모두가 바쁘다. 그 와중에 수호 혼자 빈둥거리고 있다.
정확히는 할 일이 없었다.
심심해서 인근 던전에 모두 가봤지만 하나같이 오크나 오우거 같이 인간형 몬스터만 나오지, 늑대나 표범같이 야수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은 없었다.
“맹수가 던전에만 사는 건 아니지.”
지구에도 있다.
대격변 이후로 운영되는 동물원이 없다고 하지만, 그때 탈출한 녀석들이 있을 수도 있고 본래 산이며 들이며 사는 놈들도 있을 수도 있다.
수호는 전화를 걸었다.
– 왜요?
“바쁘냐?”
– 바쁘죠.
“너 탐지하는 거, 막 숲에 숨어사는 호랑이 같은 것도 하고 그래?”
-아니,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이런 시답잖은 걸로 전화할 정도 사이예요?
“거 까칠하네. 끊어.”
누구에게 물어볼까 고민하는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형님, 밥차 왔어요. 점심 드세요.”
“동수, 너 할 일 없지?”
“할 일이 왜 없어요. 저 여태 밀린 영상 편집한다고 눈알이 빠질 것 같은데.”
“잘됐네. 안 바쁘면 나랑 어디 좀 가자.”
“아니, 바쁘다니까요? 근데 어딜 가요?”
“날개 찾으러.”
“예?”
*
부우우우우.
잘 나아가던 차가 멈췄다.
“형님. 이 이상은 힘들겠는데요?”
도로가 뒤집어지고 파헤쳐져 승용차가 나아갈 수 없었다.
“이 차 별로네.”
“와, 형님. 이 차가 얼마나 비싼데요?”
“비싼 쓰레기네.”
뭐, 반박할 말이 없다.
“여기 두고 가자.”
“아니, 이 비싼 걸 누가 훔쳐가면 어떻게 해요?”
“얼만데?”
“이거 한 대에 5억이 넘어요.”
“앞마당 던전 몇 번 돌면 되네.”
“어, 아, 헉, 헐!”
동수는 새삼 자신의 처지에 놀랐다.
“그렇구나. 나 이제 돈 많이 버는구나.”
후원금 몇만 원에 감사하다고 생난리를 추던 유튜버가 언제 이렇게 성장했단 말인가? 이제 진짜 방송은 취미 수준이다.
마음 독하게 먹고 수호 따라다니면서 던전만 돌면 하루 몇억도 우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동수도 돈 많이 버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유튜브를 시작했고, 용병도 되었다.
막상 가지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을 쉽게 할 돈을 가지자 목표를 잃은 느낌.
돈이 아닌 인생목표를 생각할 때였다.
“뭔 생각하냐? 여기 세워두고 돌아갈 때 타자.”
“제가 지키고 있을까요?”
“그럼 길은 누가 가르쳐주냐? 기다려봐.”
수호는 야수사육장을 통해 늑대 7마리를 불렀다.
“너희는 여기서 차 지키고 있어.”
“컹, 컹!”
충성스런 늑대 5마리를 차 지키도록 두고, 수호가 일늑이의 등에 훌쩍 탔다.
“너도 타.”
“제, 제가요?”
어정쩡하게 오른 동수가 늑대 털을 움켜쥐었다.
수호가 길들여서 그렇지, 자신보다 더 등급이 높은 몬스터가 아닌가? 심장이 쫄깃한 마음이다.
“오크들은 잘 타던데. 일늑아, 가자.”
수호와 동수를 태운 늑대 둘이 엉망이 되어버린 길을 달렸다. 수호 혼자 움직이면 외려 달리는 게 편하지만, 동수를 업고 갈 것도 아니니 그냥 유람삼아 늑대를 탔다.
‘옛날 생각나네.’
낙오된 행성에서 문명의 흔적을 찾겠다고 행성 여기저기 탐험하던 때가 생각났다. 길가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거기에 머물러 몇 년 지나다 또 길을 나서고 했던 세월들.
“이쪽으로 가면 진짜 있냐?”
“아, 당연하죠. 거기보다 더 자연이 보존된 데가 없어요. 막 이따만 한 독수리들도 나와요.”
“이야.”
그 정도 크기라면 변신했을 때 날개가 생기지 않을까?
백구나 늑대와 변신하면 꼬리가 생기는 것을 봤을 때 불가능할 일이 아니다.
충분히 시도해봄직한 일.
“거기 다른 애들도 있냐? 호랑이나 표범 같은 애들.”
“어……. 한국에 호랑이가 아직 남았나. 곰 같은 건 있지 않을까요? 멧돼지나.”
동수도 뉴스로만 보던 곳이라 정확히 모른다.
수호와 동수를 태운 늑대 둘이 남방한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 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