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61)
462화 검객의 귀환 (3)
수호는 팔짱을 낀 채 미간을 찌푸리곤 개머리 인간을 지그시 보았다.
“낙송.”
“위대한 개돌족 소년의 이름이 침략자의 입에서 뱉어지니 불쾌하기 그지없군.”
“재식아.”
“형님. 아까부터 왜 계속 그리 부르시오.”
“낙송.”
“흥, 더 이상 그 더러운 입에 나의 이름을 담지 말라.”
“재식아.”
“아니, 불렀으면 말을 하시오.”
수호는 기가 막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 기가 막히네.”
“흥, 내가 더 어이없소.”
“낙송 들어가.”
수호는 고개를 흔들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뭐하자는 거요? 보기 싫으니 얼른 꺼지는 것도 좋지만, 형님 나도 데려가시오.”
“하나만 해라. 하나만.”
탁!
수호는 개머리 인간의 머리를 툭 쳤다.
“분하다!”
“재식아.”
“예, 형님. 왈.”
“왈은 뭐냐?”
“나도 모르게 나왔소. 틱인가? 멍.”
“가지가지 한다. 어후.”
수호는 개머리 인간을 보며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심각해 보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거 같은데.”
“오락가락이 아니라. 이게 마음이 수시로 바뀌는 그런 기분인데요? 형님 얼굴 보니 꼴 보기 싫다가도 반갑고…….”
“으음.”
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 모습 보면 수인족인데. 재식이 의식만 들어온 건 아닌 것 같고.”
지금의 개머리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낙송인가? 그 수인 몸에 네가 들어온 것 같은데?”
“흥, 이 침략자 녀석을 빼가라.”
“어후, 재식아 하나만 해라 하나만.”
“아니, 형님. 그 다른 이름 좀 부르지 마시오.”
“응?”
“이게 내 마음이 오락가락하는데 형님이 자꾸 그 이름을 부르니 미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소. 방금 형님 얼굴에 침 뱉을 뻔한 걸 겨우 참았소.”
“허, 무슨 트리거 같은 건가.”
낙송의 이름을 부르면 그 자아가 더 힘을 받고, 재식의 이름을 부르면 재식의 자아가 더 주도권을 가져오는 건가.
“아무튼 정신 분열보다는 두 개의 자아가 하나에 들어서 혼란스러운 거 같은데……. 몸은 움직여지지?”
“많이 나아졌소. 아까 칼질 보셨잖소? 내 형님을 반 쪼갤 수 있었는데 아쉽소.”
“…….”
수호는 입을 꾹 다물고 화를 삭였다.
이마의 힘줄이 돋아났으나 개머리 인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완전히 분리되진 않은 것 같고 섞인 것 같은데…….”
발단이야 모르지만 어쨌든 현 상황은 두 개의 자아가 일정 부분 영향을 받으면서 뒤섞인 것 같았다.
재식이면서도 개돌족 소년 낙송.
개 주둥이가 열렸다.
“그 말이 맞소. 내 의식을 차리고 처음엔 너무 황당하였소. 생각도 뒤죽박죽이고, 개돌족이었다가 인간이었다가 하니, 며칠을 그저 누워만 있었소.”
“그래?”
“처음엔 몸도 움직일 수 없었소. 이리 가려니 저리 가고, 이리 앉으려니 고꾸라지고. 이러고 싶다가 저리고 싶으니 내가 미친 줄 알았소.”
“…….”
수호는 지금도 충분히 미쳐 보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확실히 나는 이 두 녀석을 통제하는 데 참 많은 힘이 들었소.”
수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두 녀석?’
낙송과 재식의 자아를 말함이 분명했다.
그럼 지금 개머리 인간은 낙송도, 재식도 아니란 말인가?
“이제는 이 한 몸 움직이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소. 아까 형님을 거의 벨 뻔하지 않았소?”
녀석의 허언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진검을 들었어 봐라. 터럭 하나 못 베었을 거다.”
“흠, 검객에게 검이 검이지 진검 가검이 어디 있겠소? 하지만 확실히 날붙이였다면 형님을 위협할 수는 있었을 터요.”
수호는 자부심 가득한 개머리 검객을 보며 크게 숨을 한번 쉬었다.
“네 이름이 뭐냐?”
“나지. 누구요.”
“이름이 없어?”
“재식이라 부르면 재식이고, 낙송이라 부르면 낙송이지. 흥, 네깟놈이 뭔데 이름을 묻느냐?”
제 스스로 낙송이라 부르고서는 욱해서 뱉는 녀석을 보며 수호가 픽 웃었다.
‘이름이 없다?’
수호는 지금 개머리 인간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조금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식이도 맞고, 낙송도 맞다.’
그리고.
‘재식도 아니고, 낙송도 아니다.’
지금 녀석은 두 자아가 뒤섞이며 미쳐버리는 선택 대신 제3의 자아를 탄생시켰다.
두 인격을 모두 가진, 제3의 자아를 몸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제 스스로 안정을 꾀했다.
‘두 사람의 기억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라.’
수호는 지금 눈앞의 개머리 인간을 보면서 턱을 쓸었다. 어쩌면 자신이 쿠로의 마석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흡수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도 쿠로의 마석을 먹었으면 저렇게 미쳤으려나?’
장담할 수 없다.
‘나한테 죽은 쿠로가 여섯인가? 아니, 전생의 나겠군.’
지금 수호의 기억은 만 년을 넘는다.
수십의 자아가 살아온 세월을 합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본래의 수호는 고작 천 년 넘게 살았을 뿐이라 쿠로와 대적해서 한 번도 그를 이겨본 적이 없다.
하지만 무덤에 묻혔던 과거의 기억은 다른지라, 쿠로를 쉽게 이긴 기억도 있고, 호각세를 다툰 기억도 있다.
서로 얽히고설킨 기억들 사이 쿠로가 자신을 죽인 기억도 수차례 존재하는지라 미간을 찌푸렸다.
쿠로와 자신은 지금 친우처럼 지낸다지만 과거의 기억은 다른지라, 철천지원수처럼 서로를 적대한 기억도 있고, 싸움이 너무 백중세라 목숨을 앗지 않고는 승패를 낼 수가 없어 서로 죽인 기억도 있다.
‘왜 그리 사납게 달려들었는지는 알겠는데…….’
쿠로에게 있어 인간인 자신은 루나 행성을 뺏은 침략자와 닮아있다.
루나를 지켜내지 못한 자책이 심한 쿠로에게는 충분히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확실히 나도 제정신은 아니었겠네.”
쿠로의 마석은 그 힘이 결코 약하지 않다.
어쩌면 미쳐버리는 수준이 아니라 쿠로의 자아에 잡아먹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이기긴 했을 거 같은데.”
블랙비스트를 잡고 나온 마석이다.
그 말은 블랙비스트를 직접 상대하고 얻은 것이기에 대충 전력 측정이 가능했다.
그 모든 것들이 합쳐진 시너지야 모르겠지만…….
“에이, 모르겠다.”
이미 마석은 자신의 손에 없고, 쿠로에게 주었다.
번잡한 번뇌와 유혹이 싫어 진즉 넘기고 지구로 내려온 수호였다.
“뭐라는 거요? 형님 미치셨소?”
“…….”
미친놈에게 미친놈 취급을 받으니 영 어이가 없었다.
“이름은 있어야겠지.”
낙송도 맞고, 장재식도 맞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니었다.
지금 저 혼란한 정신상태는 둘 모두를 부정하며 둘을 재료삼아 스스로 제3의 자아를 만들어냈다.
수호는 저 혼란을 이해한다.
아니, 깊이 공감한다.
이름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가장 원초적인 단어이자 유일무이한 표현이다.
수호도 제 스스로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투쟁하지 않았던가.
“뭐라고 불러줄까?”
불손하고 건방져진 장재식이라고 해야 할까?
침략자 인간을 증오하지만, 절반은 인간의 기억을 가져버린 낙송이라고 해야 할까.
“흥, 형님. 내가 뭐라 불리든 무슨 상관이겠소? 다만.”
개머리 인간이 일어섰다.
“내 이 혼란한 와중에 오직 하나 일치단결하는 것이 있으니.”
개머리 인간이 한 발짝 옆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를 주웠다.
“검객이라 불리면 족하오.”
“검객이라.”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재식이 진지하게 검술을 대했듯, 수인족 낙송 또한 그러했던 모양이다.
“좋아. 검객.”
수호는 개머리 인간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낙송과 장재식의 혼합물은 스스로를 검객으로 정의한 모양이다.
“그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재식이 몸이 아직 지구에 그대로인데.”
“음? 내 몸이 아직 살아있소?”
“그래.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지만.”
“아! 그야 내 혼이 여깄으니 껍데기만 남았겠구려. 형님, 어서 지구도 돌아갑시다.”
“너 못 나오잖아.”
“그야…….”
개머리 검객은 주변을 둘러보며 눈빛이 흔들렸다. 벌써 많은 날을 이 좁은 공간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써봤었다.
“확실히 형님 말이 맞소. 나는 강제로 이곳을 나설 수 없소.”
“팔 줘봐.”
수호는 말과 동시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검객의 팔을 낚아챘다.
“어어?”
검객이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으나,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수호에게 이끌려 경계까지 다가갔지만.
툭!
수호는 잡아끌어도 벽에 막힌 듯 끌려오지 않는 검객의 팔을 보며 인상을 썼다.
더 힘을 줘 봐야 그의 팔이 터지면 터졌지,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으윽, 형님 더 힘주면 팔이 빠질 것 같소. 놔라 새끼야.”
“알았어. 임마.”
괜히 퉁명스럽게 말한 수호가 팔을 놓곤 인상을 찌푸렸다.
“뭐, 지구랑 같은 게 없네.”
지구에서 침식구역은 생명체의 접근을 막는 게 없었다. 다만, 발을 디딘 생명체를 분쇄해 삭제하듯 흡수해버릴 뿐이었다.
침식구역에서 자유로이 활보할 수 있는 이들은 오직 수호 길드의 G급 용병들뿐.
“기다려봐. 사제 임명하지 뭐.”
수호는 스킬창을 열어 눈앞의 검객을 자신의 사제로 임명할 작정이었다.
“어?”
수호는 생각지 못한 문제에 잠깐 당황스러웠다.
지금 눈앞의 개머리 인간이 제3의 자아가 깨어났니 마니 해도, 그건 그의 사정이고 겉보기엔 개돌족 모습일 뿐이다.
그 속에 영혼이 둘이나 있는데 장재식은 이미 사제이기에 중복 임명이 불가능했다.
“이봐, 낙송.”
“신성한 개돌 소년의 이름을 친근히 부르지 마라!”
팔이 많이 아픈지 주무르던 개머리 인간이 버럭 소리 질렀다.
“시끄럽고 날 믿어봐.”
“흥! 내 고향을 불태우고 뺏은 침략자를 어찌 믿으라 하느냐? 개가 웃을 일이다.”
자학개그인가?
“날 찬양해. 그럼 내가 너에게 신의 힘을 주지. 여기서 나갈 수 있다.”
“흥!”
콧방귀 낀 개돌족 얼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 평생 이곳에 갇혀 썩어 죽는다 해도 침략자를 숭배할 일은 없다! 내가 오직 믿는 것은 우리들의 왕뿐이다.”
개돌족 소년 낙송의 목소리에 담긴 강한 확신은 어떤 설득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았다.
*
쿠로는 마석을 인벤토리에 넣음으로써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
쿠로는 인벤토리가 죄인의 목에 걸어준 보석 같다고 여겼다.
루나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해, 신계에 발을 디딘 야만왕에게 내리는 포상.
이것은 쿠로에게 포상이 아니라, 루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의 증표였다.
상태창도 어이없었다.
자신의 개별 능력을 객관화하여 보여주는 이 정보창은 스스로의 관조를 비웃었다.
명상을 할 필요도 없으며, 스스로를 내다보며 가늠해보는 관조도 필요 없다.
‘내가 다 알려줄게.’
그 편한 속삭임이 목줄임을 모르지 않았다.
나를 남이 보아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패배했을지라도, 너의 노예로 살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쿠로는 눈을 감고 스스로를 내다보는 것을 여전히 즐겼다.
‘나의 평가조차 남에게 맡기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사고하지 못하면 노예와 다를 바 없다.
쿠로는 팔 베개를 하고 누워 심상의 공간을 노닐었다.
그때 쿠로 인생 수천 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메시지가 떴다.
번쩍!
쿠로는 너무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크르르.”
이건 또 무슨 조화일까?
지난 수백 년 사이 오늘만큼 평정심이 무너졌던 때가 있었던가?
부리부리한 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사나운 기운이 사방을 훑고 지나갔다.
어디서 또 요정왕이 장난질을 치는 걸까?
“으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요정왕이 조화력을 다루지만 메시지 자체를 건드릴 일은 없다.
이것은 신계에서 오직 ‘신’에게만 보이는 메시지니까.
쿠로는 단단하게 마음먹은 게 몇 초 전인데, 스스로의 각오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다.
“상태창.”
파팟.
쿠로의 눈앞에 그의 상태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