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482)
483화 묘지기 (1)
“당신이죠? 정령왕.”
야누스가 김미소를 돌아봤다.
팔뚝만 한 크기의 요정은 아이 같은 모습이지만 절대 우습게 볼 수가 없었다.
[신의 말을 전하는 자……. 말을 섞을 수준은 되겠구나.]작디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날카롭다. 김미소는 요정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온몸이 낭자될 것 같은 위기감이 가득하다.
날카롭고 사나운 기파는 격이 되지 않으면 견디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김미소는 심호흡하며 말을 뱉었다. 질문도 신중하게 골랐다.
“당신이 이성우의 회귀를 도왔죠?”
스스슷.
정령왕의 몸에서 발산된 무형의 기파가 에너지를 담고 김미소에게 쇄도했다.
촤르륵!
김미소가 서둘러 펼친 조화력에, 그녀의 옆에 있던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자라나며 방패처럼 막아섰다.
파파팟!
여기저기 나뭇가지가 잘리고 잎사귀가 떨어져 내렸으나 천만다행으로 김미소는 무사했다.
[감히 누가 질문해도 된다고 했지?]“…….”
무성한 수풀 너머로 작은 요정과 눈이 마주친 김미소는 얼어붙었다.
슬쩍 시선을 돌린 김미소는 잘려진 나뭇가지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그간 김미소에게 있어 절대불가침의 방어막과 같은 것이었다.
조화력으로 키운 나무는 핵무기의 폭발도 견딘다. 세계에서 가장 방어력이 높은 성벽은 나무로 만들어진 수호시티다.
신성력으로 키운 나무들이 성벽을 이루고 있어서다. 그런 절대 방어막이 깨졌다.
‘신성력이야.’
신성력, 조화력, 정령의 힘.
뭐라고 부르든지 간에 동격의 힘이다.
신급 군주를 보호하는 신성 보호막도, 조화력이 깃든 나무도, 정령의 공격도, G급 각성자의 공격도 모두 동격의 힘이기에 서로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인류의 군대가 어찌하지 못하는 신급 군주를 G급 각성자만이 사냥할 수 있는 이유도 그와 같다.
지구에서는 신수와의 격돌을 제외하면 G급 각성자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블랙맨 정도가 유일했는데…….
‘죽을 수도 있어.’
김미소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입매를 끌어올렸다.
‘반대가 될 수도 있고.’
정령왕의 힘이 신격에 있다면, 자신의 힘 또한 신격이 있다.
같은 무기를 쥐고 있으니, 더 강한 상대가 이기리라.
‘셋이 덤벼도…… 장담하진 못해.’
명진과 동수가 가세해도 정령왕과의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다. 더욱이 그녀가 홀연히 사라져버리면 막을 방도 또한 없다.
싸워서 이기지도, 도망가는 걸 막지도 못하는 입장인데, 아쉬운 건 이쪽이니 자세를 낮춰 부탁할 수밖에 없다.
김미소의 생글거리는 미소를 보며 요정왕이 이죽였다.
“잠시 대화를 부탁드리고 싶을 것뿐이에요.”
김미소의 공손한 말에 요정왕의 심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저는 인간신을 모시는 대사제. 그분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그르지 못한 길을 가지 마시라 간청할 정도는 되지요.”
[…….]김미소의 말에 야누스가 잠깐 말이 없었다.
‘인간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이미 글러버린 이 세상이다. 다음을 준비하는 패로 김미소도 괜찮지 않을까?
[좋아. 허락하지. 너에게 세 번의 질문할 권한을 주겠다.]야누스의 말에 김미소는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세 번? 왜지?’
동시에 무엇을 물어야 가장 많은 정보량을 얻어낼까 궁리했다.
어린 요정의 몸과 상반되게 진지하던 표정이 변하려는 찰나, 김미소가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요정왕께서는 어째서 거짓말을 할 수 없으신 거죠?”
여러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역시 검증이 먼저다.
‘사실 확인을 해야 해.’
아루카에서 정령왕의 모습으로 수호와 대면했을 때 김미소도 그 자리에 함께였다.
‘저 말이 거짓이면 어쩌려고 그러시지?’
박수호는 정령왕의 말을 너무 쉬이 믿었고, 김미소로서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그간 박수호에게 들었고, 스스로도 들었던 야누스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확언.
한 번의 기회를 날려도 아쉽지 않은 질문이다.
[거짓을 입에 담는 순간, 내 존재가 무너지겠지. 그것이 이유다.]거짓을 이야기하면 존재를 부정당하는 자?
김미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것 또한 거짓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의심만 하면 모든 해답이 무의미해.’
수호의 막연한 추측이 아닌 야누스 본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김미소는 야누스의 말이 진실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다음 질문을 골랐다.
“당신의 존재가 인류의 수호라면, 어째서 우리의 신과 대립하고 있죠?”
야누스는 수호와 손잡으려고 했었다.
[너의 신은 무모하다. 지금의 질서는 인류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나의 사명은 인류의 보존과 번영이다.]“그렇다면 지금의 파멸을 막아야 하지 않나요?”
[창조주도 하지 못한 일을 그깟 신이 어찌 할 수 있을까? 아직 인류는 차원우주로 나아가기 벅차다.]김미소의 표정이 번뜩였다.
“차원우주는 던전을 말함인가요?”
[질문은 세 개까지만이라고 했을 텐데?]김미소는 갈증이 일었다.
이런 선문답이 무슨 도움이 될까?
가르쳐 주길 원했다.
인류의 수호를 위한 길을 제시해주길 바랐다.
“당신도 인류를 보호하고자 하잖아요? 우릴 도와주세요.”
요정왕 야누스가 웃었다.
야누스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지금 하는 모든 행동들이 무용하다는 저 얼굴. 아등바등해 봐야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듯, 모두 알고 있다는 모습.
“포기하지 않아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너의 신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결국 너의 신은 죽고, 누군가는 신이 돌아올 때까지 억겁의 시간을 견뎌야 할 텐데, 너는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느냐?]“…….”
요정왕은 생각이 많아 보이는 김미소를 보곤 미소 지었다.
‘됐어.’
똑똑한 아이니 금방 이해할 것이다.
지금 세계의 미래는 회귀자 이성우의 50번에 달하는 시뮬레이션만 보아도 답이 나온다.
몇 번을 계산해봐도 결과는 항상 멸망과 닿아 있다.
‘실패.’
지금 인류는 신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다음번 창조될 인류에 걸어보는 것이 마땅하다.
‘어차피 실패할 테지만, 가치는 충분하지.’
현생 인류의 발버둥은 다음 세대 인류의 밑거름이 될 터이니, 귀중한 데이터값을 얻으리라.
파스스.
요정왕의 몸이 점차 흐릿해지자 김미소가 다급하게 물었다.
“당가주는 어떻게 되는 거죠? 왜 깨어나지 않는 건가요!”
급한 외침에 요정왕은 무슨 변덕인지 쉬이 대답을 내놓았다.
[일이 서툰 묘지기가 방황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 인간 따위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김미소는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요정왕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주변의 조화력이 모두 김미소의 통제하에 놓였다.
“후우.”
압박감이 가시며 치솟았던 긴장이 풀렸다. 기감에 민감한 동수가 먼저 나왔다.
“와, 살 떨려. 부사장님. 괜찮으세요?”
“네. 고마워요.”
몇 번의 심호흡으로 신색을 찾은 김미소가 동수를 보며 물었다.
“다 찍으셨죠?”
“당연하죠. 눈도 안 깜박이고 다 저장했어요.”
동수가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영상기억 각성자는, 데리고 다니면 이렇게 쓰임새가 많았다.
“돌아가면 바로 영상으로 남겨 주세요. 복기해 봐야겠어요.”
대화 중에 놓친 것은 무엇인지? 곡해한 내용은 없는지, 김미소는 차분히 다시 되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형님이 진짜 죽을까요?”
“아뇨.”
김미소가 강한 믿음에 근거한 부정의견을 냈다.
“사장님이 돌아가실 일은 없을 거예요.”
박수호는 이 지구를, 인류의 구원자다. 그는 절대 쓰러지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대사제 김미소는 자신의 신을 굳게 믿었다.
“음, 이대로 지구로 돌아가나요?”
“아뇨. 일단 마몬족 진영 역사의 눈엔 갔다가 가죠.”
역사의 눈은 살펴보고 가야 했다.
무림맹 진영의 역사의 눈에 야수왕의 힘이 깃들었기에, 반대 진영인 마몬족의 역사의 눈에도 무슨 변화가 있는지는 확인해야 했다.
‘당가주도 눈 뜨면 좋고.’
김미소가 조화력을 끌어올려 손짓하자, 이성우의 시체가 있던 주변 풀들이 그것을 잡아당겨 땅에 삼키듯 묻어버렸다.
“빠르게 가죠.”
“네!”
한동수가 다시 와이번으로 변신했고, 숨어 있던 일행이 타는 와중에 고상운 박사가 와서 말을 걸었다.
“부사장님. 가는 길에 이야기나 좀 하지요.”
“네, 좋죠.”
어딘가 홀린 듯한 고상운 박사의 표정은 김미소만큼이나 생각이 많아 보였다.
*
쐐애애액.
검은 창공을 가로지르는 갈색 매가 드디어 호랑이 꼬리를 보았다.
뛰어가는 호랑이가 얼마나 빠른지, 발견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호랑이 머리 위를 날 수 있었다.
“야, 쿠로.”
“…….”
파파파팍!
호랑이 인간 쿠로는 미칠 듯한 직진 본능으로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그대로 쳐버리며 통과했다.
물이 있으면 물 위를 달렸고, 나무나 바위가 있으면 모두 부러져 튕겨 나갔다.
검게 죽은 정지된 공간이 쿠로의 몸에 닿아 변했다는 것은 시간이 흘렀다는 방증.
‘쿠로도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있어.’
쿠로에게도 ‘왕의 대지’ 같은 침식을 소생시키는 스킬이 있을까?
‘그럼 그냥 죽여야 해.’
지금도 원리야 모르지만 지구와 루나는 대칭을 이루기에, 루나의 공간이 살아나는 만큼 지구의 공간은 침식되어버린다.
이런 골칫거리를 남겨두고 혼자 승천해 신계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승부를 피해 지구로 돌아간들, 지구의 수호와 루나의 쿠로가 색종이 뒤집기 하듯 서로의 행성을 검게 칠하며 평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침식된 구역에 있는 생물은 증발해 버릴 테니, 결국 파멸의 수순은 같다.
백사의 회귀 전, 우후죽순 일어난 블랙맨들의 개입으로 지구의 거의 모든 구역이 침식된 것과 다를 바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승부를 봐야 하나?’
수호는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밑에서 올라오는 위협에 일단 날개를 꺾었다.
쐐애액.
아니나 다를까 튀어오른 호랑이 인간이 옆을 지나쳐 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날카로운 발톱에 찢겼으리라.
“너, 아직도 정상 아니구나.”
수호는 고도를 높여 더 높이 날았다.
여전히 붉은 쿠로의 눈은 마석의 기억을 모조리 흡수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 녀석도 동기화 때문에 레벨이 초기화되었나?”
수호도 지구로 귀환한 직후 신계에서 이룬 모든 스탯을 초기화당했다.
쿠로도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기절한것을 보면 충분히 같은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확실히 레벨 1이라고 하면 마석을 취하기 이전의 녀석이 그토록 약했던 이유가 납득이 된다.
“어? 그럼…….”
레벨 1이 되어버린 쿠로가 수십 개의 마석을 흡수해버렸다. 제대로 자아 정립이 완료된 쿠로가 과연 자신이 알던 쿠로일까?
수십 개의 마석 중에 가장 강력한 놈의 자아 특성이 발현되지 않을까?
“아, 모르겠고 나 먼저 간다!”
굳이 호랑이 인간과 보조를 맞춰 날아갈 필요가 없다. 녀석의 진행 방향이 오직 직진이니, 그대로 따라가 보면 뭔가가 있겠지 싶었다.
쐐애애액.
호랑이 인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간 수호는 커다란 산을 마주했다.
아마 루나 행성에서 가장 크지 않을까 싶은 산의 위용에 짧게 감탄하며 그 정상으로 향해 날아갔다.
“어?”
한참을 위로 날아 정상에 당도한 수호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