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506)
507화 미증유
“뭔 소리야?”
정확히는 서버의 첫 연결고리.
수호를 믿고 의지하는 모든 이들의 시작이자 첫 연결.
“그보다, 아직 의외로 멀쩡하네?”
“이게 멀쩡해 보여?”
주변엔 타 죽은 몬스터가 수만이고, 저 멀리 바다는 소용돌이치며 성난 물줄기를 뿜고 있다.
바로 뒤엔 검은 우주 같은 구멍이 뚫려 있는데…….
“고생했다.”
“형…….”
자신의 생각보다 지구는 더 건재했다.
지구의 관리자이기에, 포탈을 통해 나오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이다.
“일단 바로잡자.”
수호의 신형이 허공을 날아 침식구역에 올라섰다.
세계를 조율하던 창조주는 사라졌다.
“야누스.”
파파팟.
그 대행자인 야누스가 지구 관리자의 부름에 곧장 모습을 드러냈으나, 전보다 더 희미한 것이 곧 사라질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결국 무모한 인간이 일을 냈구나.]수호는 이 외골수 요정왕이 귀엽게만 보였다.
“너, 곧 소멸하겠네.”
창조주의 하위신.
지구의 보호와 인류의 보호, 번영을 철석같이 믿었던, 태생이 그러했던 신.
이대로 죽게 두고 싶지 않았다.
수호는 인벤토리에서 야누르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세계수의 가지였던 야누르의 지팡이다.
본디 그 세계수의 관리 OS인 야누스를 담기엔 부족하지 않으리라.
“이리 와.”
[소용없는 일. 소실되고 있다. 결국 시뮬레이션의 끝은 나의 소멸이었구나.]“잔말 말고.”
수호는 유령 같은 요정왕을 잡아채 핼버드의 세계수 가지에 쑥 집어넣어 버렸다.
[무, 무슨 짓이냐. 나를 에고웨폰으로 쓰려 하다니.]“일단 거기서 연명하고 있어 봐. 창조주가 튀어서 그 일부인 네가 사라지려던 거니까.”
[무, 무슨 소리냐?]창조주의 의식을 이루던 메인 서버가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그 기반이 창조주에게 귀속되어 있던 야누스가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수호는 야누스의 말에 일일이 답하기보다, 자신의 계획을 읊었다.
“루나와 지구가 양립하려면, 관리자가 둘은 되어야겠지.”
수호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행성을 한자리에 불러오려 했다.
‘구천하고 비슷해지려나?’
끝없이 대립하던 그 행성의 두 종족도 사실은 다른 신들을 모시던 이들이 아닐까?
창조주는 여러 신들을 잡아먹어 그 덩치를 불리고 세계를 확장해왔으니까, 영 가능성 없는 생각도 아니다.
일단 상념은 뒤로.
‘왕의 대지.’
나 인간신이자, 야수왕이 살아갈 땅이다.
파파팟.
침식구역에서 산이 쑥 뽑혀 올라왔다. 그들이 딛고 선 곳은 평평한 증명의 무투장.
무투장은 산이 올라오며 점점 더 높아졌는데, 종래엔 침식구역을 넘어서 지구의 구역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과, 관둬라! 세계의 중첩이 일어나지 않느냐?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무너지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꼴을 보려느냐?]“그거 멋지겠군.”
수호는 멈추지 않고 이 지구에 ‘루나’를 덮어씌웠다.
쿠구구구구!
남대서양을 찢어발길 기세로 높은 산이 우뚝 솟아났다. 그 높은 산 정상엔 부유섬이 있었는데, 수호는 훌쩍 뛰어올라 그 부유섬의 신전에 다가갔다.
신전의 앞마당에 야누르의 지팡이를 꽂았다.
콰직!
즉시 조화력을 끌어와 지팡이를 성장시켰다.
파파파파팟!
순식간에 자라난 나무가 공중섬에 빠르게 뿌리를 내리며 쑥쑥 자라났다.
세상이 뒤집힌다.
공중섬에 뿌리내린 세계수 ‘야누스’가 세상을 인지했다.
[…….]두 세상이 중첩되고 있다.
이 힘은…… 창세다.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창조주를 보고 느꼈던 그 신비로움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야누스는 감히 어떠한 말도 뱉어낼 수 없었다. 공중섬의 흔들림이 잦아들자 수호는 조화력을 거뒀다.
“거기서 네 사명을 다해라.”
[…….]수호는 나무 기둥을 툭툭 두드려 주곤,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타탓.
증명의 무투장에 내려서니 근처엔 어느새 의식을 차린 야수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구미도, 후왕도, 짭쿠로도, 비룡도, 일곰도 있었다. 늑대 무리도, 호수악어 무리도, 원숭이 떼에 상어 떼까지 그 수가 수천이 넘었다.
좀 더 인간의 외형으로 변한 그들이, 야수였던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흉흉한 기운을 발산하며 수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수호의 선언에도 수천의 야수들이 가만히 명령을 기다렸다.
수호는 자신이 길들인 야수들을 보았다.
지구의 짐승이었다가, 외계의 종이었다가, 구천의 맹수였던 이들도 있다.
백구는 여전히 흰털이 수북하나 이젠 두 발로 딛고 몸을 세우고 있다.
남만의 영물이었던 팔미는 수호에게 길들여져 구미로 진화하고, 신수로 그 격까지 상승했다.
두 발로 딛고 섰던 구미의 얼굴은 이제 사람이라도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이목구비를 하고 있다.
여전한 아홉 개의 꼬리가 없었다면 영락없이 인간으로 착각했으리라.
남만의 호랑이는 길들일 적에 쿠로가 생각나 짭쿠로라 이름 지었는데, 이제 그 모습이 쿠로와 다르지 않았다.
튼튼한 근육질에 두 발로 딛고 선 채, 두툼한 주먹을 말아쥐고 있는 호랑이 머리의 사람은 작은 덩치의 쿠로라고 봐도 별반 무리가 없었다.
덩치 큰 코끼리는 오우거가 일어선 듯 거대했고, 원숭이 무리들은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사람의 모습과 진배없었다.
수중에서 살던 호수악어와 일본에 들렀을 적에 길들인 상어도 사지를 갖고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으니.
저들은 수호에게 길들여진 야수의 것이 반이고,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을 수인의 데이터가 합쳐진 것이 또 그 반이다.
스킬 ‘길들이기’로 강제로 이어진 인연이다.
수호에게 명령받는 권속은 저들을 이루는 절반일 뿐이니, 조화롭지 못하다.
수호가 여전히 저들의 절반을 사역마로 여기고 쥐고 있으면, 저들은 야수도 수인도 아닌 상태에서 결국은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수호는 의식의 한쪽에 연결된 저들의 통제권을 놓았다.
스르르르.
보이지 않는 실이 끊어지며, 반인반수였던 그들이 ‘수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게 느껴졌다.
[창세, 창세다.]저 위의 세계수 야누스가 부르르 떠는 게 느껴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이 세계수가 미치는 권역이 이제 새로운 수인의 영역이다.”
수호의 선언에 수인들이 부복했다.
“가라! 집 청소는 스스로 해라.”
“우오오오!”
대서양 위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대지 위를 수인들이 질주했다.
“형.”
“너도 가자.”
“어딜?”
“집으로 가야지.”
이제 이 지구에 침식은 없다.
두 행성의 중첩에 여기저기 흔들리며 퍼져나가는 에너지가 보인다.
이 지구의 반대편.
세계수 가이아도 갑작스런 행성 에너지의 증가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을 터.
“가자. 저쪽이 더 급할걸.”
생존한 인류의 도시들도 대부분 거기에 있었고, 전력도 그곳이 더 빈약하다.
방금 뛰쳐나간 수인들 태반이 신수급이니까.
“그래. 돌아가자.”
준호가 주변 바다를 제어하던 힘을 거뒀다.
소용돌이 바다가 관성을 잃고 다시 요동쳤으나 며칠 내로 잠잠해질 터였다.
수호와 준호가 공중섬으로 날아갔다.
위에서 올려다보니 바로 아래 증명의 무투장이 한눈에 보였다.
증명의 무투장 자체가 높은 산 정상에 있어, 거대한 산은 바다에 뿌리내린 듯 섬을 이루는 걸 넘어 한쪽이 남미대륙에 붙어 있었다.
바다엔 못 보던 섬도 군데군데 생겨나 있었고, 본래 대륙이던 곳은 푹 꺼지듯 사라진 곳도 있었다.
땅 자체가 하늘에 떠오른 곳도 그곳에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준호의 중얼거림에 수호가 웃었다.
“우린 말이 되고?”
“……하긴.”
신이 존재하는 시대에 물리적인 사실관계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난센스 같았다.
“가자.”
“날아가?”
“아니.”
수호는 세계수의 앞에 붉은 포탈을 생성시켰다.
즈아아앙!
신계에서 지구로 이끌었던 최초의 포탈과 닮은 그것을 통해 두 명의 신이 사라졌다.
세계수는 자신이 뿌리내린 공중섬에 생겨난 포탈의 존재를 느끼며 중얼거렸다.
[세상을 연결하는 자…….]야누스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태초의 피조물이라 여겼건만.’
세계수에 갇히고 보니 ‘복구’되는 이 기억은 무엇인가?
‘나는 본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자.’
AI 야누스는 지구의 수호를 위해 시작된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했다.
‘창조주는 나를 창조하지 않았구나.’
태초의 피조물은 잘못된 말이다.
필요에 의해 그에게 새롭게 세팅되었을 뿐이구나.
이제야 비로소 찾은 태생의 데이터를 받아들이며 가만히 영역의 확장을 시작했다.
중첩의 가속이 일어난 이 세상의 안정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
세계수 가이아가 진동했다.
[음?]백사는 세계수 가지에서 툭 떨어지듯 내려왔다. 지구의 기운이 일변했다. 새끼 빙염룡의 모습을 한 그는 혀를 날름거렸다.
[돌아왔군.]천지만물의 기운이 요동치는데도 불안한 마음보다 이제야 비로소 안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확연히 느껴지는 그의 존재 덕분이다.
스스스.
요동치는 건 지구만이 아닌지, 가만히 누워 있던 장재식의 신형이 흩어지는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음, 죽었나?]아예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재식의 몸이 소멸되는 것과 비슷하게 박쥐가 깨어났다.
프스스.
연기로 화해 인간으로 변신한 차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괴로운 얼굴을 했다.
“으으, 싫어요.”
[박쥐. 미쳤느냐?]“싫어요! 전 괜찮아요.”
[미친 것 같군.]머리를 부여잡고 도리질치며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박쥐 인간을 뒤로하고 몸을 쭉 늘리며 기지개를 켰다.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대충 약속은 지켰다.
주인이 돌아오기 전까지 세계수는 잘 지켜냈다.
파파팟.
그때 세계수 옆에 붉은 포탈이 생기며 수호, 준호 형제가 걸어 나왔다.
[오랜만이군.]“오, 백사. 차이.”
수호는 오랜만에 보는 둘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주인님! 전 상관없습니다. 제 존재가 멸한다 하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따르게 해주십시오.”
뱀파이어 차이를 보며 수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본래 넌 야수도 아니고, 뱀파이어도 이젠 아니게 됐어. 수인으로 살아갈 기회야.”
“차라리 죽겠습니다. 부디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눈물로 호소하는 차이를 보며 수호는 그녀와의 연결을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위태롭게 쌓인 돌탑이나 다름없어, 언제 그녀의 존재가 사라질지 모르기에 조치는 취해야 했다.
뱀파이어이자, 수호의 사역마이며, 라미족이 함께 버무려진 존재는 수호와 결속을 새롭게 맺었다.
“너는 이제 사역마가 아니라, 나의 사도다.”
“아아!”
뱀파이어 차이는 없다.
인간신이자, 창조주를 멸한 자, 세상을 연결하는 자의 첫 사도가 되었다.
“기쁘게 받아들이겠나이다.”
스스스.
검은 연기로 화해 모습을 감춘 차이는 수호의 부름에 언제든 헌신할 준비를 마쳤다.
[주인, 어찌 된 영문이냐? 천지가 요동치고 있는데.]“느껴져?”
빙염룡으로 화한 백사도 야수라기보다는 ‘신수’로 봐야 한다.
신수 길들이기로 맺어진 청룡이나 다른 신수들과 같이 말이다.
이제 수호의 부름에 소환되는 ‘야수’는 없다.
“다들 나와봐.”
파파팟.
청룡부터 백호를 비롯해 신계에서 길들였던 신수들이 대거 소환되었다. 한쪽에는 흐릿한 신형을 가진 고대늑대들이 수십이 소환되어 있었다.
수호는 그들과의 결속으로 공유되는 의식의 한 부분을 느끼며 명령을 전달했다.
“과거의 잔재들을 모조리 지우자.”
[맡겨둬라. 주인. 동쪽은 내가 나아가지.] [서쪽은 내가 가겠다.] [난 북쪽으로 밀고 가지.]신수들이 서로 튀어 나갔고, 곧 머지않아 몬스터들이 정리될 터였다.
“사장님! 부사장님!”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달려오는 김미소를 보며 수호의 입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대사제 김미소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지구도 없다.
“오랜만인데…… 어?”
김미소는 와락 달려들어 수호를 안았다.
매달리듯 안긴 김미소의 눈엔 물기마저 보였다.
‘헐, 김 부사장이.’
평소 차분하고 늘상 냉정해 보이기까지 하던 철혈의 여인 김미소의 새로운 모습에 박준호가 당황했고, 김미소는 가만히 그녀를 토닥여주곤 떼어냈다.
“정말, 정말 끝나는 줄 알았어요.”
눈물 흘리며 활짝 웃는 김미소의 표정을 보며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부사장도 항상 부담스러웠구나.’
타고난 리더로 보였던 김미소의 속내를 엿본 것 같아, 박준호는 괜히 고개를 돌렸다.
“으흠.”
김미소는 소매로 눈물을 찍어 날리고는 말했다.
“이젠 진짜 어디 가실 때 저도 따라갈 거예요.”
“그보다, 지구나 구하자.”
“다 끝난 거 아니에요?”
“창조주가 튀었어.”
“네?”
수호는 잠깐 고민하다 쉽게 설명했다.
“달리던 버스 운전수가 튀었어. 우린 거기 타고 있는 승객이고.”
“그거 큰일이네요.”
“그게 다야?”
수호의 반문에 김미소가 미소 지었다.
“이제 사장님이 운전하실 거잖아요?”
수호는 씩 웃었다.
“맞아. 이 지구를 구해 보자고.”
“계획을 들을 수 있을까요?”
수호는 세계수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랑 지구 반대편. 세계수 영역을 확장할 거야.”
세계수의 권역 아래는 더 이상 차원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차원 틈새로부터 안전해지는 보호막을 치는 거다.
“그 외의 권역에 있는 이들은 피신을 빨리 해야겠군요.”
바로 말귀를 알아듣는 미소를 보며 수호는 씩 웃었다.
“맞아. 여긴 인간들, 반대쪽은 수인들의 영역으로 삼지.”
구천 행성처럼 행성을 반으로 나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보호받는 안전한 영역에서 인간들은 다시 도시를 이룰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반문은 없다.
수호의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다. 김미소는 이제야 비로소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라는 짐을 벗어 던진 것 같았다.
아니, 배 자체가 침몰을 멈췄다.
다시 항해해 나아가는 첫발이다.
“나는 세계수를 맡지. 너는 인간들을 살려라.”
“네!”
수호가 동생을 돌아봤다.
“신수들이 날뛰고 있긴 하지만 준호, 네가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살아.”
“응.”
준호는 대답과 동시에 불이 되어 날아올랐다.
김미소도 서둘러 떠나자, 세계수 앞에는 오직 수호 홀로 남게 되었다.
“후우.”
수호는 팔을 들어 자신의 두 손을 보았다.
“빌어먹을.”
창조주. 아니, AI 노아 녀석. 모양 빠지게 도망치면서도 자신이 사라진 것을 후회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래서였나?
수호는 몸을 죄어오는 압박감을 느끼며 심호흡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