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53)
54화 – 선전포고
길드 건물 앞.
다섯 대의 차가 시동을 켠 채 대기하고 있었다.
모인 인원만 30명.
공격대 15인과 그들의 매니저 겸 서포터 요원 15인이다.
“이게 다 뭐야?”
수호가 황당해 물으니 윌리엄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롤랑이 자랑하는 피닉스 공격대입니다.”
롤랑길드의 네임드 길드 중 하나.
A급 전력을 가진 공격대다.
“으음. 잘못 전달됐군.”
수호는 자신의 의사를 정정해 주었다.
“그냥 던전까지 태워다 주면 돼. 공략은 나 혼자 나선다.”
“예? 그 던전은 5성 던전입니다.”
“그게 왜요?”
“아니, 내일 당장 토들러 박사와 스케줄이 있지 않습니까?”
수호가 여전히 의문 가득한 얼굴로 윌리엄을 보았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표정이다.
“영국도 던전 입장에 대한 절차와 자격이 있습니다.”
“으음.”
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처음 가보는 던전이지만 몇 시간 정도면 충분히 공략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커리어 대부분은 한국에서 이뤄진 것.
토들러 박사처럼 자신에 대해 깊이 조사하지 않은 다음에야 최근 러시아와 북유럽에서 활약한 드래곤 나이트의 모습이 이들이 본 수호의 전부이리라.
토들러 박사의 초대를 받은 드래곤을 길들여 타고 다니는 각성자.
딱 그 정도다.
‘성가시네.’
문명의 룰이라면 따라야지.
남의 영역에 초대받은 입장에서 주인처럼 굴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럼 아무데나 혼자 갈 수 있는 던전 없나요? 이번에 발견된 한글 던전이 아니어도 되요.”
어차피 아주 조금의 경험치만 얻으면 된다.
40레벨이 되면 두 가지 드루이드 스킬이 해금된다.
마침 시간이 남으니 사냥을 해두고 싶을 뿐이다.
“그럼 도버 7구역의 3성 던전은 어떻습니까?”
7구역은 롤랑길드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어디죠?”
“5분 거립니다.”
“딱 좋네요.”
윌리엄이 대기 중이던 피닉스 공격대에게 다가가 양해를 구했다.
“손님의 던전 공략지가 바뀌었습니다. 굳이 피닉스 공격대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쳇, 완전 제멋대로군.”
“이럴 때 대장은 어디 간 거야.”
“아시아프린스라도 돼? 오라 가라 귀찮게.”
죄다 A급, 아니면 B급의 용병들이다. 영국 내에서 위상도 결코 낮지 않은 이들이다. 수호의 말 한마디에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하니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양해를 바랍니다. 토들러 박사의 중요한 손님입니다.”
롤랑사에서 토들러 박사가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기에 그의 초대를 받은 박수호에 대한 대접도 극진하다.
던전 공략을 하고 싶다는 그의 한마디에 피닉스 공격대를 준비시킬 정도로 말이다.
곤란해하는 윌리엄을 향해 피닉스공격대의 부대장이 나섰다.
“윌리엄 씨가 고생이네요. 저희야 원래 비상대기 중이었으니 상관없어요.”
“미스터 빌. 감사합니다.”
윌리엄이 인사 후 수호에게 다가왔다.
“가시죠. 지금이라도 필요하시면 3성 던전 공략에 맞춰 공격대를 준비하겠습니다.”
“혼자서 충분해요.”
윌리엄은 이 자신감 넘치는 한국인을 설득하길 포기했다.
던전은 정말 가까운 곳에 있어 출입 절차에 대해 윌리엄이 대신 진행해 주었다.
“롤랑사의 보증으로 던전 입장을 허가하지만, 던전 공략 실패 시에 어떠한 책임도 없음을 동의하십니까?”
“물론.”
“던전 공략에 따른 모든 전리품은 박수호 씨 개인에게 귀속됩니다. 입장료는 저희 롤랑사에서 대납해 드립니다.”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니 이익도 없다.
입장료는 호의다.
영국은 포탈에 대한 소유권이 길드가 아닌 국가에 있어 모든 길드와 개인용병은 국가에 사용료를 내야했다.
“그럼 다녀오죠.”
파팟!
수호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포탈로 들어서자 윌리엄은 고개를 절레 내저었다.
“자신감 하나는 정말 대단하군.”
3성 던전이라고 해서 만만히 볼 게 아니건만, 저 자신감 넘치는 한국인은 던전 공략 가이드라인도 보지 않고 입장해 버렸다.
그나마 가장 난이도가 낮은 3성 최하위 던전이라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차나 한잔합시다.”
윌리엄은 운전기사와 함께 근처에서 기다릴 생각이다.
커피를 주문해 벤치에 앉아 있는데 거구의 사내가 불쑥 나타났다.
“윌리엄?”
“헉! 다비드!”
영국 최고의 각성자.
세계랭킹 9위의 강자.
다비드 실바.
그의 등장에 윌리엄은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서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미스터 실바.”
“오, 저도 반가워요. 드래곤 나이트와 함께 갔다던데.”
“넵, 맞습니다. 지금 던전에 들어갔습니다.”
“흐음.”
붉은빛이 일렁이는 포탈을 보곤 다비드 실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이정도로 노력하는 사람이군.
그에 대한 호감도가 조금 더 자란 다비드다.
“그가 공략을 마치면 내게 연락 주시겠어요?”
“으음, 어떤 용무이신지?”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용병과의 대면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공사 구분은 철저한 윌리엄이다.
그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손님을 보호해야 한다.
“하하, 그저 오늘 밤 있을 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겁니다. 의견을 물어봐 주시죠.”
“알겠습니다.”
자신의 저택에서 종종 파티를 여는 그다.
“그럼 전 가봐야겠군요. 피지컬 트레이닝 시간이군요.”
한가하게 기다릴 시간은 없다.
육체의 극한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그지만 여전히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그의 성실함과 헌신은 누구에게나 귀감이 될 만한다.
“꼭 잘 전달하겠습니다.”
윌리엄이 배웅하려는데 포탈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호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헉!”
반사적으로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10분이 지났다.
커피 한잔하는 사이 3성 던전을 돌고 왔다.
“아, 윌리엄.”
윌리엄을 발견한 수호가 다가오자 다비드가 흥미로운 눈빛을 했다.
“오! 드래곤 나이트. 팬입니다.”
언제 봤다고 팬을 자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도 씩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박수호야.”
“다비드 실바입니다. 괜찮다면 오늘 밤 파티에 초대해도 될까요?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좋죠.”
수호가 흔쾌히 수락하자 다비드가 허허 웃었다.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요. 괜찮다면 저와 함께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좋죠. 일단 씻고요.”
막 던전 공략을 끝내고 나와 몸 곳곳에 피가 덕지덕지 묻었다.
“오, 좋은 친구를 만나 제가 실례했군요. 전 트레이닝센터에 미리 가 있죠. 윌리엄이 안내해 줄 겁니다.”
“이따 보죠.”
윌리엄의 안내를 따라 호텔로 향했다.
의사들이 실시하는 각종 검사를 마치고 샤워 후 깨끗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수호가 샤워하는 사이 그의 옷 치수를 잰 윌리엄이 딱 맞는 옷으로 준비해 두었다.
벗어뒀던 옷들은 어느새 세탁에 건조까지 마쳐 착 개어져 있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수호는 윌리엄을 따라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섰다.
널찍한 공간에 각종 운동기구들이 들어서있었는데 죄다 흉악한 무게를 자랑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특수 제작된 벤치프레스머신에 누운 다비드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후웁!”
세트를 끝낸 다비드가 일어서다 수호를 발견하곤 웃으며 휴식 테이블로 안내했다.
“드래곤 나이트의 모습을 기사로 봤을 때 제 친구들은 모두 환호했습니다. 드래곤을 길들여 타고 다니다니! 갓댐!”
“보여줘요?”
“워어, 당장 보고 싶지만 이따 파티장에서의 즐거움으로 미뤄두죠.”
다비드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머리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곤 말을 이었다.
“제 친구 중에 실비아라는 녀석이 있는데 당신의 기사를 보곤 당장 러시아로 향한 건 아십니까?”
“모르죠.”
“이런, 조련사로 꽤 유명한 친군데. 아무튼 모두의 로망이지 않습니까?”
와이번은 여태 누구도 길들이지 못한 몬스터다.
“그녀도 몇 번 도전해 봤으나 매번 실패하곤 좌절했었는데 당신을 보곤 큰 자극을 받아 떠났죠. 후후.”
다비드의 눈엔 호감이 가득했다.
“사실 처음엔 모두 당신이 길들인 드래곤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전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 거구의 대머리의 밑도 끝도 없는 호감의 원천은 뭐란 말인가?
“제 느낌으로 당신은 저만큼이나 피지컬 훈련을 극한으로 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빡세게 하긴 했죠.”
“역시…….”
다비드는 피지컬 훈련 신봉자다.
각성자가 전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차원 에너지의 양을 늘려 신체 한계를 높이고, 훈련으로 신체 자체를 강화하는 거다.
두 번째는 다방면의 스킬을 익히고 스킬 자체를 강화해 전력을 높이는 방법.
전자는 각성자 자체가 무기가 되는 것이고, 후자는 여러 무기를 소유하는 거다.
“대부분의 이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피지컬훈련을 소홀히 하죠. 하지만 그건 잘못됐습니다. 이건 멈출 수 있는 게 아녜요.”
“맞아요. 더 안 오를 때까지 해야지.”
다비드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싸움이기도 해요.”
모든 각성자들이 피지컬 훈련을 멈춰선 안 된다.
늘어난 한계의 극한까지 신체를 강화해야 한다.
다비드는 자신의 의견을 수긍하는 수호를 만나자 신난 듯 떠들어댔다.
“오, 박! 당신과는 정말 공감대가 많군요. 우리 친구로 지냅시다.”
“좋지!”
수호의 쿨한 반응에 다비드가 기꺼워하며 웃었다.
내가 호감을 가진 상대가 내게도 호감을 갖고 있다.
다비드는 새 친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박, 네가 아직 C등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 C등급인데 이 커리어는 뭐야! 다들 놀랐지. 다들 네 스킬을 궁금해할 때 난 딱 촉이 왔지.”
다비드가 훈훈하게 웃었다.
“넌 내 과야. 등급은 C일지 몰라도 극한까지 훈련한 게 틀림없어. 어지간한 애들은 사역마나 마법의 도움 없이도 맨손으로 잡을 거야. 그치?”
“당연하지.”
“그럴 줄 알았어. 훈련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거야?”
“움직이고 또 움직이지. 한계는 애초에 없어. 늘 앞만 보고 달리는 거지. 죽음이 뒤에 있으니까.”
“왓더…!”
다비드는 크게 감동한 얼굴이었다.
이 한국인 친구는 자신보다 더 진지한 마음가짐이구나.
자신은 늘 목표를 앞에 두고 달려갔는데, 이 친구는 뒤를 없애며 나아갔구나.
훈련이 아니라 생존이구나.
“쿨가이! 넌 정말 멋진 놈이야.”
다비드는 이 친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너야말로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수호의 호쾌한 답에 다비드가 껄껄 웃었다.
영국 최강자. 세계랭킹 7위의 자신이 필요한 도움이 있을까. 이 친구 이거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군.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구나.”
“음?”
“좋아. 더 마음에 들었어.”
유명해지면 그 유명세에 가려 진실된 친구를 만나가기 더욱 어렵다.
“한국은 SFC가 인기 없나 보군.”
“들어는 봤지. 티비에서 한 번씩 하던데.”
“뭐? 하하하.”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익스트림 스포츠가 한국에서는 관심이 시들한가 보군.
그러니 세계랭커인 자신을 몰라보지.
“뭐, 좋아. 아무튼 새 친구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어. 이성우의 도발에 넘어가지 마.”
“응? 걔가 왜?”
“아직 못 본 거야? 뭐, 아무래도 좋아. 녀석은 살인자야. 어떨 때 보면 싸이코패스 같지.”
다비드도 챔피언에 한번 도전해 봤기에 알 수 있다.
그는 패배하고 말았지만 많은 도전자들 중에 몇몇은 죽음을 맞이했다. 아슬한 경기도 아니고 압도적 전력차가 있음에도 녀석은 상대를 죽였다.
그건 분명 사고가 아닌 살인이다.
“무슨 도발?”
이성우랑 자신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리둥절해하는 수호에게 번역된 기사를 보여주었다.
영어로 쓰인 기사지만 언어의 물약을 마시고 읽는 데 지장이 없다. 얼토당토 않는 분석 기사를 내리다가 수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성우의 짓인지 조금 그을린 나무성벽을 뒤로 수호길드 식구들과 이성우가 대치한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이 새끼가.”
감히 자리 비운 사이 내 영역을 습격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