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86)
87화 수호시티 (2)
수호성으로 돌아온 공격대 4인방은 북쪽 성벽에 올라 평야를 가득 메운 몬스터 시체에 입을 쩍 벌렸다.
“와우, 어마어마하네요.”
“이 정도면 굳이 던전에 가지 않아도 됐겠는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으음. 나무관세음보살.”
저마다 감상을 뱉다가 동수가 성벽을 이루는 나무들을 쓰다듬더니 한마디 했다.
“여기 처음 올라와 보는데, 엄청 넓네요. 산책해도 되겠어요.”
성벽을 이루는 나무들은 수령이 몇백 년은 되는 것처럼 굵었는데, 쭉 뻗은 나무줄기가 갈라지는 부분이 이어지며 성벽 위에 작은 오솔길 같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위로 나뭇가지들이 또 어지러이 자라 있어 외부에서 보면 그저 무성한 나무처럼 보였지만, 실제 성벽 위는 사람이 지나다니며 나뭇가지 사이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은폐 기능에 충실한 친환경 성벽.
“어, 저기 시작하네요.”
동수가 하늘을 날고 있는 매를 가리켰다.
시산혈해의 현장 위에서 선회하던 매가 차츰 고도를 낮추더니, 날갯짓마다 붉은 불똥을 떨어트렸다.
화르르륵.
불티같은 작은 빛이 몬스터 시체를 태우며 불을 키웠다.
후아아아아!
불길이 뭉쳐지며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났다.
후우우웅!
불기둥을 매가 선회할 때마다 따라서 움직이며 거대한 불의 토네이도가 만들어져 춤췄다.
워낙에 큰 불기둥이라 성벽이 아니라 안에서도 충분히 보이는 광경이었다.
주변으로 퍼지면 재앙이 되어버릴 불기둥은, 평야의 모든 몬스터들을 불살라버리고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슈아악!
할 일을 마친 매가 날아와 성벽 위에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쏙 들어왔다.
“아우, 힘 좀 썼네.”
“형님 멋집니다.”
“짜식들. 왜 이렇게 늦었냐?”
“아니, 하루 만에 오우거 던전 공략하고 나왔으면 엄청 빠른 건데요?”
실제 던전에서 보낸 시간은 삼 일에서 몇 시간이 모자랐다.
5성 던전의 A등급 4인 용병 레이드로는 아주 준수한 성적.
실제 자신들의 힘으로 던전 공략을 마치고 온 터라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다.
“나 일 좀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지키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길드의 공격대가 다 자리를 비운 틈에 일이 터져 큰일 날 뻔했다. 하지만 이제는 야수들도 있고 하니, 수호가 잠깐 자리를 비운다 해도 큰일은 없을 터였다.
“동수 너는 따라가자.”
“저는 왜요?”
“어, 할 일 있어.”
슈아악!
수호의 몸이 매로 변하며 날카로운 발로 동수의 뒷덜미를 잡았다.
“억!”
이유도 모르는 채로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동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적응했다.
이 형님의 쿨함에 이제 몸도 마음도 포기했구나.
유튜브 각이나 뽑자.
“경치 좋네요.”
세상이 망했어도, 사는 게 아무리 치열해도,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이만큼 아름다운 게 있을까 싶었다.
점점 멀어지는 지면과 작아지는 사람들, 드넓은 숲과 여기저기 불기둥이 올라오는 곳들.
잠깐의 경치 구경 후에 물었다.
“형님, 그런데 우리 어디 가요?”
“뱀파이어 잡으러.”
수호는 나무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전장에서 이탈한 뱀파이어들의 소재지는 진즉 파악을 끝냈다.
“아하, 그런데 전 왜 데려가시는 거예요?”
“증거 남겨 달래.”
“증거요?”
“어, 넌 사냥을 찍어.”
“아하! 제가 액션캠이군요.”
빌어먹을 각성 스킬.
A등급이 되어도, 오우거를 1:1로 붙어 찜쪄먹을 실력을 지녀도, 던전 생존에 필요한 20가지가 넘는 스킬을 익힌 멀티플레이어가 되어도.
형님에겐 그냥 액션캠이구나.
서글픔도 잠시, 어떤 섬네일을 넣을까 하는 고민되는 걸 보니 나도 별수 없구나.
“이야, 조회수 좀 나오겠는데요?”
슈아아앙.
목덜미의 뻐근함이나 딸려 올라간 옷 때문에 겨드랑이가 쓰라리는 정도로는 A급 각성자의 육체를 해치지 못한다.
귓가를 때리는 바람을 맞으며, 동수는 편안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어 기사들을 쭉 훑어봤다.
오우거 던전을 공략하는 사이 서울에 난리가 났었구나.
사회지도층을 암살하는 뱀파이어라니.
이놈들, 전략 좀 쓸 줄 아는군.
타이베이를 접수한 놈들이 인간 사육을 준비 중이라는 기사를 보고 동수는 경악했다.
“와, 난리 날 만하구나.”
개성에도 뱀파이어 던전이 터졌는데 수호가 막아냈다.
수호성 앞에 깔린 몬스터 시체들도 그때 온 놈들이구나.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부와 수호 길드 간의 협상에 대한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막 물어보려는데 고도가 급격히 낮아져 몸에 힘이 들어갔다.
아, 오줌 쌀 뻔.
“벌써 도착했어요?”
“어, 저 밑에 있네. 잡는 거 잘 찍어라.”
“넵.”
내려선 바닥은 비무장지대의 어느 산 중턱.
수호가 나무 하나에 손을 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츠츠츳.
나무정령들이 그의 손을 타고 노닐다가, 수호가 눈을 뜨자 흩어졌다.
“저기네.”
조금 걸어서 산비탈을 내려가니 바위틈의 작은 동굴이 나왔다.
“이거 들어가기 너무 비좁은데요?”
“왜 들어가냐.”
“…….”
입이 툭 튀어나온 동수를 보며 툭 쳤다.
“삐쳤냐?”
“겨우 A급 용병 나부랭이가 던전 공략 끝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잡혀왔다고 설마 삐쳤겠습니까.”
“에이, 삐쳤네.”
“액션캠 나부랭이가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닥치고 두 눈만 시뻘겋게 뜨고 있으면 되지, 설마 삐칠 리가요. 안 삐쳤습니다.”
“어, 그래. 안 삐쳤다니까 다행이다. 그럼 잘 찍어라.”
“…….”
어우, 이 눈치.
동수가 입을 한 댓 발 더 내밀어봤으나, 수호의 시선은 이미 바위틈으로 가 있었다.
“좀 나와볼래?”
“…….”
말로 해서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수호가 손바닥을 내밀어 바위를 가리켰다.
쿠구궁!
땅 속성의 조화마법, 대지 강타.
지진도 일으키는 마당에 좁은 바위틈 하나 메꾸는 게 뭐가 어려운 일일까.
푸시시시!
압력밥솥 증기처럼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뭉치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형체화했다.
“키에엑!”
“아 시발. 깜짝이야!”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이 비명을 질러대니 동수가 화들짝 놀랐다.
상어 같은 이빨을 보니 사람은 아니고 이게 뱀파이어인 것 같았다.
확실히 입만 닫고 있으면 사람하고 영 구분이 안 가니, 문명도시에 치명적일 것 같았다.
잠깐의 실체화 이후 다시 검은 연기로 변하려는 그를 수호가 맨손으로 잡았다.
“잡았다.”
“키에엑!”
붙잡힌 순간부터 실체화를 풀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던 녀석을 수호가 주먹으로 쳤다.
말 그대로 멱살을 쥐고 반대 손으로 머리통을 때렸다.
쾅!
머리가 터지며 그대로 검은 연기로 화해 흩어져버리는 녀석.
툭.
그리고 혈석 하나가 떨어지며 녀석의 죽음을 알렸다.
“…….”
와, 나 누구한테 개긴 거지.
“형님 대단하십니다.”
“다 찍었지?”
“넵. 하나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잘했어.”
“헤헤, 근데 이거 왜 잡는 거예요?”
“이거 잡아주면 땅 준대.”
“땅이요? 길드?”
“어, 이제 완전히 내 땅이지.”
“어, 으음.”
기사로 뜬 것도 없는 걸 보면, 비공식적으로 뭔가 딜이 오고 간 모양.
“얼른 잡고 가죠.”
수호에게 물어보느니 차라리 일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게 낫다.
“다시 가자.”
수호가 다시 매로 변해 동수의 뒷덜미를 잡고 날았다.
슈아아아.
바람 좋고, 고도 좋고, 승차감 좋고.
동수는 허공에 몸을 내맡기고 바람을 만끽했다.
*각성자관리국장실.
폭풍 같은 3일이 지났다.
순식간에 뱀파이어 사냥을 마친 박수호가 영상자료를 보내왔고, 청와대 승인을 받아 수호 길드의 레벨을 0로 격상시켰다.
서울 옆에 의정부 땅.
수호시라는 새로운 도시가 출범했다.
혹자는 왜 그만을 위한 도시를 만들었냐며 특별대우의 부당함을 이야기했고, 혹자는 외국에 뺏길지도 모를 챔피언을 이웃으로 눌러앉힌 정부의 결단에 박수를 보냈다.
모든 일이 끝난 게 방금 전.
언론에 공식적으로 수호시티에 대한 보도자료가 나오고 있었다.
통신망도, 언론사도 없다.
혈석발전시설과 정수시설 등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수호시티는 자족 기능이 떨어져, 많은 부분 서울시에 의존할 것이다.
당장 달라진 것은 딱 하나.
세금을 내고 당연히 누리던 그것들을 이제는 사용료를 지불하고 이용한다.
수호시가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큰 틀 아래 놓인 도시자치국이 되었다.
“후, 지치는군.”
국장은 최근 3일간 가장 많은 일을 한 것 같았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며 숨을 돌리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13지부가 사라지며 대기발령 상태인 김미소가 들어왔다.
“어, 김 지부장. 고생했어.”
수호 길드와 가장 우호적인 고위 공무원인 그녀도 중간에 협상조율 단계에서 많은 일을 했다.
“이건 뭔가?”
“그동안 감사했어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사직서를 바라보는 국장의 얼굴은 그대로 경직되었다. 긴장이 풀어져 느슨했던 뒷목이 뻣뻣해지는 느낌.
“뭔가 오해가 있었나 본데, 13지부가 사라지는 게 아냐. 잠시 보류될 뿐이야. 수원 필드 쪽으로 재건사업이 진행…….”
김미소가 국장의 말을 끊었다.
“제가 좌천 때문에 그만둔다고 생각하세요?”
“허면? 거기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지부로 발령 내려 줄 수도 있어.”
“제 꿈을 수호 길드에서 봤어요.”
“허, 김 지부장. 아니, 미소야.”
자신을 이름을 부르는 국장의 모습에 미소가 미소지었다. 직책이 아닌 이름을 부른다.
“사표 수리된 걸로 받아들여도 되나요?”
“이미 단단히 결심하고 왔는데 네 고집을 어찌 막겠냐?”
충동적인 사직이 아닐 것이다.
그녀가 마음먹었으면 이미 잡기는 그른 일.
“네가 관리국에 들어온 지 5년 되었나?”
그 5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쉽고 안타깝다.
김미소 같은 인재가 나라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한편으론 지쳤을 그녀를 이해했다.
“후, 그만두고 뭘 할 거냐? 아니, 너 정도면 오라는 데가 많겠지.”
“수호 길드로 갑니다.”
“뭐?”
관리국장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거긴 말만 자치도시지, 그냥 마을 수준이야. 아니, 마을 인구도 못돼.”
“알죠.”
그러니까 가는 거다.
시골 마을도 못한 인구를 가진 그곳을, 자신의 꿈을 펼칠 무대로 삼는다.
“너라면 어느 길드를 가도 대우받을 텐데, 왜 거기냐?”
일에 지쳐서 관두는 게 아니다. 그랬다면 국장의 말마따나 대기업 길드에 가서 한자리 차지하고 편하게 보냈을 거다.
“거기에 제가 할 일이 있으니까요.”
“으음.”
“수호시티는 곧 진짜 도시가 될 겁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수호 길드라면…….’
다른 여타의 대기업 길드들이 하지 못할 일도 해낼 역량이 있다. 수호 길드기에 가능한 일들이.
그래서 간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으음. 악수나 한번 하자.”
대격변 초창기.
혼란스런 정국에 메스를 휘두르다 우연히 각성자가 되어버린 의대생은 강제징집되어 5년을 군인으로, 또다시 5년을 공무원으로 보냈다.
이 정도 애국했으면 이제 더 염치없어서라도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다.
진심으로 그녀의 앞날에 축복을 빌었다.
“이거 벌써 협상테이블 앉기가 두렵구만.”
갈라서기를 위한 분리가 아니다.
더 긴밀한 협조를 위한 자치권 인정이다.
관리국 내에서도 능력 좋은 그녀가 갔으니, 수호시티와의 협상에 난관이 예상되었다.
“각오하고 오세요.”
김미소가 마주 웃고는 최근 근무했던 귀환자관리팀 사무실을 한번 방문한 뒤 각성자 관리국을 나섰다.
이제 공무원이 아니니 그를 수행하던 보좌관도 없고, 차도 없다.
관리국 앞에 대기 중인 택시에 올랐다.
구해놓고 외박이 더 많아 방치된 집으로 굳이 갈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가족도 챙길 것도 없으니까.
“34게이트로 가주세요.”
“음, 손님. 거긴 출입금지인데요.”
뱀파이어들의 사냥 완료 소식을 언론에서 발표하면서 비상계엄령은 해제된 상태지만, 여전히 북쪽으로 통하는 외부게이트는 출입금지가 걸린 상태.
“괜찮아요. 일단 가주세요.”
“예, 뭐.”
부우웅.
택시가 출발하자 김미소는 태블릿을 꺼내들어 다운로드한 파일을 열었다.
대부분의 귀환자들이 길드에 스카웃되었지만, 도무지 통제불능인 자들도 있기 마련. 그들 중 인재를 가려 스카웃할 것이다.
큰일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할 일이 인재 수집 아니겠는가.
누구든 능력만 있다면 박수호가 알아서 통제해 줄 것이다.
‘여포 100명을 등에 업고 시작하는 기분이군.’
재야의 고수들을 모조리 모아 주마.
삼국지 마니아 김미소의 대계는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미소의 미소가 유난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