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
001. 배고파, 똥 마려, 섹스하고 싶어. 그리고 다시 배고파.
001
배고파, 똥 마려, 섹스하고 싶어. 그리고 다시 배고파.
인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배고파, 똥 마려, 섹스하고 싶어. 그리고 다시 배고파로 돌아간다.
인간의 정신은 사실 그리 복잡하지도, 뛰어나지도 않다. 내가 어느 SF 소설에서 읽은 글귀다.
뭇 선인들의 말은 개소리에 불과하다고, 그 캐릭터는 신랄하게 인간 정신의 복잡성을 짓밟았다.
기억이 애매하지만 대충 그렇게 말한 것 같더라.
과거 나는 그 문구를 읽고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며 가볍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우걱! 우걱! 꿀꺽!
바싹 말라비틀어진 빵(같은 것)을 먼지 섞인 물과 잘 섞은 뒤 한입에 삼키며 그때 읽었던 글귀를 떠올린다.
‘어쩜 그렇게 콕 집어서 정답을 말할 수 있지?’
한숨을 쉬진 않는다. 한숨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아깝다. 차라리 이불을 깔고 벽에 등을 기댄다.
부스럭.
밥도 다 먹었겠다. 똥 마려울 때까진 할 일이 없다. 나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아예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나는 약간 남은 의식을 청각에 집중한 뒤, 끊긴 생각을 이어갔다.
간단하게, 망한 지구에 대해서.
누군가는 말한다.
미친 과학자가 뭐시기를 열었다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미친 과학자가 국가와 협력한 미친 실험이 실패해서 이렇게 됐다고.
또 누군가가 말하기를.
미친 과학자가······.
‘어째 미친 과학자만 단골로 등장하는 느낌인데.’
미친 과학자든, 미친 대통령든 뭐가 중요하랴.
지금에 와선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아니, 최소한 내가 만났던 이들 중에는 없었다. 그저 [대실패]라는 참혹한 결과 값만 남아있을 뿐이다.
‘과학자가 문제야. 과학자가. 이래서 이과는 안 돼.’
이과만 안 될 뿐이랴? 인간도 글러 먹었다.
환경파괴와 우주적 재앙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인간은 집단이 아닌 개체의 생존을 위해 짐승보다도 짐승 같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끼익!
배부르고 등 따신 행복의 순간. 오랜만에 심오한 정신활동을 하려 했건만 쇠문이 들리는 거친 소리가 사고활동을 방해한다.
땅! 땅! 딱딱한 군화가 사다리를 밟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메아리친다. 소음과 함께 가래 끓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봤지! 있다고 했지! 내 말이 맞았어! 벙커가 있었다고!”
“닥쳐! 우리 왔다고 광고할 셈이야!”
“흥! 무슨 상관이야! 몇 주일이나 여길 지켜봤다고! 있는 놈이라곤 삐쩍 마른 애새끼 혼자가 전부인데 우리를 어떻게 이기려고!”
“둘 다 침착해. 이렇게 좋은 벙커를 발견했는데 별일 아닌 걸로 싸울 필욘 없잖아.”
중성적인 목소리가 둘을 말린다. 여자인가? 여자야??
“아······. 하긴.”
“흐흐흐···! 이제 고생 끝이라고!”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기뻐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있는 곳은 아파트 지하에 지어진 벙커. 보일러실 구석에 숨겨진 패널을 열고 배선 망을 치운 뒤,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장소이다.
언제 이런 정신 나간 장소가 만들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내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시절, 재개발이 난무하던 때에 있는 건 돈밖에 없는 인간들이 공사비를 몰래 빼서 만들었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그만큼 발견하기도, 발견되기도 쉽지 않은 장소. 나도 천운으로 이곳을 발견했고, 발견한 시점부터 2년 넘게 잘 이용해먹는 중이다.
참고로 이전 거주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주인이 바뀌면서 비밀을 알려주지 않았나? 아니면 벙커로 오는 와중에 죽었나?
어찌 되었든 내겐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저 시간 때우기 용으로 ‘추리 놀이’에 사용하는 게 전부였다.
“총알은 아껴. 복도도 좁은 데 괜히 쐈다가 앞에 놈 맞추지 말고.”
뭐?!
“총도 있어? 말하는 걸 보니 당연히 총알도······.”
반가운 소식에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을 내뱉었다. 얼마 만에 말해보는 걸까. 혓바닥이 굳은 게 느껴졌다.
이런 상태론 싸우기 힘들다. 나는 이불을 구석에 집어 던지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벽에 기대어진 철봉을 잡고 구부렸다.
끼기긱!
헬스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바벨 봉. 그 단단한 봉이 직각으로 구부러졌다가 다시 뻣뻣하게 펴졌다. 이걸 몇 번 반복하는 걸로 준비운동은 끝.
쇠도 맨손으로 구부리는 초능력자와 좁은 공간에서 근접 전투를 치른다는 안일한 발상. 나에겐 아주 좋다.
‘다 죽이고 아지트 불라고 해야지.’
침입자 놈들 아지트에서 챙길 건 총알과 음식. 여자도 있었으면 좋겠다. 예쁘면 더욱 좋고. 그런 생각과 함께 살금살금 걸어서 문에 귀를 가져다 댄다.
탕! 끼익! 탕! 끼익!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복도 문을 하나씩 열고 안을 확인하는 소리.
벙커의 복도는 길다. 지하에 몰래 호텔이라도 지었다고 착각할 정도다. 그만큼 복도 곳곳에 여러 개의 문과, 여러 개의 방이 존재했다.
한 명이 문을 열고, 뒤에 있는 둘은···. 뭐, 대충 식칼 같은 거라도 들고 경계하고 있겠지.
탕! 끼익! 탕! 끼익!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 희희낙락하던 침입자들도 긴장되는지 숨소리가 점차 가빠지는 게 문 뒤로도 들릴 지경이었다.
“······.”
몇 초가 지났을까. 마침내 발걸음소리가 내가 숨은 문에서 멎었다. 잠시 소리가 멈춘다. 이제 1~2초 후면 문을 거칠게 차서 열 것이다.
녀석들은 여태까지 그렇게 문을 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자가 차기 전, 내가 문을 향해 전력으로 태클을 날렸다.
콰앙!
문을 통째로 부수며 앞의 벽까지 돌진! 발차기하던, 가장 열정적인 남자는 문과 벽 사이에 끼이게 되었다.
우드득!
어둡고 회색빛만 감도는 벙커 안. 선명한 붉은색 액체가 문과 벽 사이에 흘러내렸다.
“으학?!”
바로 뒤에 있던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귀신이든 뭐든 일단 쏘고 본다. 한국인의 근성이 느껴지는 훌륭한 대처법이었다.
하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속도에서 나를 이기려면 오발을 각오하고서라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어야 했다.
“흡!”
나는 짧고 굵은 호흡과 함께 바벨 봉을 찔렀다. 아니, 거의 던지듯이 앞으로 내던졌다.
권총과 봉 던지기의 승자는 바벨 봉이었다. 남자가 기인열전에 나오는 권총 사격의 달인이었다면 결과가 달랐겠지만, 지금은 문명인이 아닌 야만인이 승리했다.
우득!
바벨 봉은 권총을 든 남성의 흉골을 박살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후두둑!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의 살점을 뚫고 들어가는 불쾌한 감각이 손끝에 걸렸다. 바벨 봉은 흉골을 지나 폐와 기관지를 포함한, 여러 ‘망가져서 안 될 장기’를 으깬 뒤 흉추까지 파고들었다.
“꺼···! 크르륵······.”
불쌍하게도 즉사하지 않는구나. 인간의 몸이란 참 신기하기도 해라. 나는 상냥함을 발휘해 남자의 고통을 끊어주기로 했다.
상냥한 태클(가칭)이 남자의 복부에 작렬했다. 요추가 부러지고 배 안에서 작게 ‘빠앙!’ 하며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어깨를 타고 전달되었다.
“끄! 끄···! 끄극!”
아이고. 이래도 안 죽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상냥함은 이제 끝이다. 나는 남자를 어깨에 매달고 산불 맞은 멧돼지마냥 앞으로 돌진했다.
내가 착해서 태클을 건 것은 아니다. 남자의 뒤에서,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마찬가지로 권총을 꺼내는 세 번째 남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두 번째 남자는 음······. 좀 고급스럽게 표현한다면 생물학적 보호기구쯤 되겠지.
탕탕! 탕!
세 번째 남자는 태클에 휩쓸려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내게 정확히 발포했다. 그래서 태클을 건 거다.
“···흐!!”
생물학적 보호기구의 효과는 대단했다. 마지막 한 발은 막지 못했지만, 첫 두 발을 막은 것만으로도 제 효용을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세 발 째는 막기 힘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정신없이 돌진하는 중이고, 세 번째 남자는 왼손으론 내 머리카락을 꽉 움켜쥔 상태로 총을 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욱신!
조악하게 방탄복을 만들어 보겠다고 이것저것 덧대 입었는데 효과는 거의 없었다. 왼쪽 어깨가 시큰해지는 감각이 세게 들었다.
“끄응!”
나는 잇 사이로 작은 비명을 내지르며 생물학적 보호기구와 세 번째 남자를 한 번에 끌어안았다. 그리곤 레슬링을 하는 것처럼 땅바닥에 거칠게 내리쳤다.
꽈앙!
“커헉!”
중성적인, 그리고 조금 높은 비명이 들린다. 남자는 잠시 바동거리더니 거친 숨만 내뱉으며 움직임을 멈췄다. 척추나 어디가 나간 거겠지.
목소리를 보아 세 번째 남자가 여자··· 라고 생각되던 자였다. 하지만 내가 계속 이자를 남자라 지칭하는 이유가 체격이 아무리 봐도 남자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파묻은 고개를 들어 세 번째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얼굴은··· 어떻게든 양보를 한다면 남성적인 여자라고 볼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왼쪽 어깨를 틀어막으며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 여자야?”
“흐흐흐···!”
내장이 터졌는지 입에서 꿀럭꿀럭 피를 흘리던 세 번째 남자가 피, 내장조각과 함께 헛웃음을 토했다.
웃지 마라. 이게 제일 중요하다. 여자면 살린다. 며칠은 살려둬야 나도 즐겁고 남자(?)도 살아서 좋지 않나.
쿨럭! 크게 기침한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여전히 중성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시팔. 근데 왜 목소리가 그따위야. 얼굴도 반반해가지고. 괜히 착각했잖아.”
“그게······.”
짜증 섞인 목소리에 남자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죽은 둘을 가리켰다.
“내가 이 둘 사이에서 여자 역할이었거든.”
“······.”
“다 죽어가는 몸이긴 하지만··· 할레?”
“됐어.”
남자면 관심 없다. 나는 죽은 두 번째 남자의 품을 뒤져 권총과 퍽퍽한 쿠키 비슷한 것, 물을 꺼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세 번째 남자가 말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지만 다행히도 내 귀에도 들렸다.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설마 초능력자였나?”
“그래.”
“하아···! 멍청한 새끼. 혼자인 게 불안하다고 계속 말렸건만······.”
“아저씨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설마 셋만 있는 건 아니겠지? 아지트 말해.”
“내가 미쳤다고?”
나는 남자의 말을 끊고 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칼을 남자의 앞에 흔든다.
“얼마 못 갈 것 같은데. 깔끔하게 고통 없이 갈래 칼집 역할하고 갈래?”
남자가 문 사이에 끼어 시체도 보이지 않는 첫 번째 남자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가 퉤! 하고 침을 뱉은 뒤 이어 말했다.
“다 죽일 생각인가?”
“당연하지.”
“자비를 베풀 순 없나?”
“왜? 식량도 나눠야 하잖아. 죽이는 게 제일 편해.”
“우리도 널 죽이려고 한 건 아니라고. 그 증거로 총도 안 꺼냈었어.”
“거짓말하지 마. 복도가 좁아서 어쩌구 하는 거 다 들었어.”
“······.”
“걱정하지 마. 여자는 살려줄게. 아저씨 같은 가짜 말고, 진짜 여자.”
남자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죽어가는 놈. 할 일 다 하고 천천히 요리해주자. 나는 그를 무시하고 첫 번째 남자에게 다가갔다.
치적! 철퍽!
문과 벽 사이에 정성스럽게도 끼인 살점을 털고 주머니를 뒤지는 와중, 뒤에서 철컥!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휙!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수류탄을 높게 쳐든 게 보인다.
아니 여기서 협박을?? 여기서 밀리면 진다. 나는 콧김을 세게 불며 남자를 째려보았다.
“하! 수류탄 그까짓 거 코앞에서 터진 적도 있어. 며칠 끙끙 앓아눕고 끝이었다고. 허튼짓 하지 말고, 불고 편하게 가.”
사실 반쯤 죽을 뻔했었다. 하지만 초능력자의 신체는 대단하기 그지없어서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실제로 총을 맞은 왼쪽 어깨도 벌써 피가 멎고 새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큭큭···! 수류탄! 이걸 보고 수류탄이라니! 컥! 켁켁!”
남자가 광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피를 토했다. 그가 끙끙대며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았다. 번뜩이는 눈은 죽어가는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형하게 빛났다.
꿀꺽. 나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조용하고, 짙은 피 냄새가 풍기는 벙커, 그 사이를 남자의 음울한 목소리가 채웠다.
“꼬마야 몇 살이냐.”
“스물··· 후반. 아마도”
“그럼 세상이 이 꼴이 되기 전에는 고등학생이었겠네.”
“···그런데. 전 고등학생한테 죽어서 억울해?”
“아니, 군대도 안 간 놈이라서 천만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수류탄을 높이 들었다.
“이놈아. 이건 수류탄 따위가 아니야. 그딴 거랑은 차원이 달라. 그 이름도 거창한 L···. 어, T···? 아, 시발. 이름을 까먹었어. 여하튼 이거 하나 터지면 벙커는 싸그리 날아가고 아파트도 무너진다. 당연히 너도 죽어.”
이 미친놈은 그딴 걸 왜 들고 다녀.
“거리가 10미터나 떨어져 있군. 잘난 초능력으로 여기까지 오는 데 몇 초가 걸리지? 난 손가락만 까딱하면 끝이야.”
나는 다급하게 그에게 손짓했다.
“아저씨, 아저씨. 내가 치료해 줄 게. 응? 살려준다고.”
“네가 뭘 안다고 내장 터진 걸 치료를 해.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놈이.”
“그럼 안 건드릴게. 얌전히 죽어. 난 식량하고 총만 얻고, 아저씨는 비밀 지키고 얌전히 죽고. 어때?”
뭐지? 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를 설득하려고 힘썼다. 이성은 그의 협박이 거짓말이라고 하면서도, 간질거리는 머릿속 한구석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경고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남자가 한탄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넌 안 돼.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지만, 너는 미쳐도 너무 미쳤다. 나랑 같이 죽자.”
“······.”
“망설이지 않고 죽······.”
방법이 없다. 나는 남자가 말하는 틈을 노려 전력으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아···. 이런 병신한테 우리가······. 세상 참 개 같네.”
찰칵! 하는 쇳소리와 함께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눈을 뜨니 난 흙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 아마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
하반신만 엉망일까? 몸 전체가 전신화상을 입은 것처럼 화끈거린다. 눈도 한쪽이 안 보인다.
등활지옥(等活地獄)이란 게 이런 느낌일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열 번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인데, 빌어먹을 초능력자인 덕분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나의 몸.
“끄으으으~~!”
내 몸은 회복하고, 죽어가길 반복한다. 하지만 회복하는 속도보다 죽어가는 속도가 몇 배는 더 빠르다.
두 속도의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지는 때가 내가 죽을 때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감이지만 그 순간은 짧아도 몇 시간에서 길어야 반나절.
‘아!’
차라리 일찍 죽으면 좋으련만 괜히 초능력자가 된 탓에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몇 시간이나 겪어야 한다니! 입은 비명을 지르느라 바쁘기에 속으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악! 윽! 아악!”
대강 한 시간 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꿈틀대니 팔을 흔들 공간이 나왔다. 나는 희망에 차서 흙을 긁다가 다시 절망에 빠졌다.
여태까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 저지른 대가를 받듯이,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빽빽한 감옥이 나를 에워쌌다.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곧 죽는다.
섹스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하반신이 없다.
졸립다. 하지만 너무 아파서 잠이 오질 않는다.
죽음이 코앞인데 엉뚱한 생각만 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이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정신은 어느 한도를 넘으면 말초적인 쾌락에 집중한다.
“흐··· 흐흐······! 흐흐흐!!”
그 때문일까. 나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품속에서 쿠키와 물을 꺼내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우걱! 우걱!
먹는다. 먹고, 자고, 사는 것 이외에는 즐거움이 없는 세상이다. 죽는 와중에도 먹는 걸 포기할 수 없다. 나는 쿠키를 다 먹자 보슬보슬하게 타오른 내 왼손마저 씹어 먹었다.
우드득! 쩝쩝!
세상이 왜 이렇게 됐을까. 또 나는 왜 이런 인간이 됐을까.
미친 과학자인지, 미친 뭐시기가 뭔가를 열었고, 세상은 지옥도로 변했다. 어렸던 나는 공포에 질려 달아나다가 운 좋게 초능력을 얻었고 10년을 더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걸로 끝. 퍽퍽한 고기 쿠키와 내 몸, 심지어 흙더미까지 배 터지게 먹고, 나는 과다출혈이 아닌 배가 터져서 죽었다.
나는 태어나고, 살고, 죽었고.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지옥이었다.
002.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