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0
010
죽어도 살아라.
연구소의 삶은 평화로웠다. 너무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몸에 이끼가 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해파리 할아버지는 가끔 혼자서 밖에 나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나와 쏜 만이 남아 연구소를 지켰다.
혼자서 하는 연구는 초반에는 재미있었지만, 금방 지루해졌다. 뭔가가 막히면 머리를 굴려 새로운 가설을 제시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창의적 사고는 빵점이었는지 잘되지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나중에는 관심도 사라져서 쏜 하고 같이 옛날 드라마, 영화 따위를 보며 빈둥대기만 하는 일상을 보냈다.
그래도 명색이 연구소인데 놀기만 하는 게 보기 안 좋았던 걸까. 쏜이 작은 저장장치를 내게 건넸다.
“너무 작은 것에만 집중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한 번쯤 큰 걸로 시각을 돌려보는 게 어떠니? 크고, 단순한 생명체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거야.”
나는 저장장치에 담긴 정보가 다양한 생명체의 유전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을 컴퓨터로 이미지화하자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빼빼 마른 유전체가 드러났다.
“와우!”
유전체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유전자 배열이 51번이 봤던 환경정화생물, 구제생물과 매우 흡사했다.
“기원생물(起源生物)이라는 거야.”
쏜이 웃으며 기원생물에 대해 설명했다.
기원생물은 박살 난 생태계를 복구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현재 지구에 있는 동식물 대부분의 앞 단계 생명체이다.
예를 들면, 기원생물 종 중 하나인 식물은 말 그대로 ‘식물을 식물답게 정의해주는’ 세포 소기관만 있다. 그리고 유전자 또한 오로지 그걸 생산하는 것만이 존재했다.
동식물의 형태적 특성을 따라 하는 가장 단순한 단위의 생명체 수백 종을 정하고, 거기서 다른 유전적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생명체 분화를 확보하여 수천, 수만 종의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거다.
마지막으로 고 인공지능으로 종이 멸망하지 않는다고 판단된 무작위 유전적 특성을 삽입한다. 그 끝에 같은 종 내에서도 유전적 다양성을 획득하고 자연스럽게 종적 분화를 유도하여 지구 환경을 부활시킨다.
그러니까. 쏜이 말한 가장 단순한 생명체라는 말은 기원생물에게 그 무엇보다도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뭐부터 시작하지?”
나는 기원생물 목록을 뒤지다가 식물성플랑크톤 중 하나를 골랐다.
중요한 건 동물, 식물이 아닌 생명 그 자체였다. 동물은 워낙 활동적이니 초능력을 분석하는 게 힘들다.
“이, 이건!”
실험 이틀째. 나는 기원식물을 자세히 분석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제대로 보니 환경정화생물과 완전히 다르다. 그걸 기반으로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생명을 재창조했어!’
접목이나 유전자 삽입처럼 ‘원래 있는’ 생명체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게 아니다. 유전자 배열을 하나부터 열까지 시뮬레이션한 끝에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것!
정보만 가지고 무(無)에서 만들어낸 생명체! 그게 기원식물의 정보였다. 때문에 세포, 기관의 구조가 그림처럼 단순한 게 기원식물의 특징이었다.
단순할수록 변화량이 적다. 즉, 초능력이라는 외부 물질을 주입했을 때 변이를 감지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의도치 않게 연구에 새로운 활력이 돌았다.
연구소에 온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쏜이 기원생물을 해법으로 제시한 게, 나의 연구소 취직 1년 기념일을 생각하다가 머리를 쥐어짠 결과라는 것을 몇 개월 후에 알았다.
나는 늙은이가 고마워서 초능력으로 쏜의 관절염을 치료해주었다. 어차피 의료병동에 가면 하루 안에 해결될 문제였지만, 쏜은 며칠 동안이나 그걸 입에 담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사각사각······.
북방의 악마의 체세포를 긁어서 획득한다. 죽은 내 몸을 뜯어내는 게 감회가 남다르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몇 번만 그랬고,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어차피 죽은 몸. 곰팡이나 식물 표본을 채취하는 거 하고 같지 않나?
지금에 와선 실험에 실패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체세포를 채취하는 게 귀찮을 뿐이었다.
‘어중간하게 과학이 발달해서. 정말······.’
북방의 악마의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 굳이 그의 육체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생명체가 초능력을 획득하는 과정은 단순히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리, 화학적 과정으로만 유발할 수 없다. 때문에 그의 초능력이 부스러기라도 남아있는 원본 세포가 있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내 오른손이 휑한 거였어.’
나는 북방의 악마의 오른손을 보았다. 내 기억으로는 손가락 두 개가 남아있어야 하는데 깔끔히 잘린 걸로 보아 꾸준히 세포를 채취 해서 없어진 것 같다. 추가로 혈액 전부, 옆구리 근육, 피부와 심장 일부도 사라져 있었다.
‘불에 타서 불알이 없는 게 다행이지. 내 자식들이 미래세계를 활보하는 걸 볼 뻔했어.’
하지만 이건 내 교만한 생각.
불알이 없다고 내 자식이 없을까? 무(無)에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미친 미래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들리는 걸로는 북방의 악마의 체세포를 이용해서 그의 복제본을 만들어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악마의 복제는 악마처럼 강력한 초능력도, 사이코패스같은 사고방식도 타고나지 않았다.
악마의 복제본은 몇몇 실험 끝에 각자 다른 유전적 특성을 부여받고는 미래인이 되어 현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북방의 악마는 참으로 여러 곳에 자기 이름을 남겼다. 그의 세포는 악마 세포. 세포를 가지고 한 여러 실험은 악마 프로젝트. 그리고 그의 자식은 악마의······ 자식?
“흥!”
헛된 생각은 머리를 흔들어 날린다. 쉰둘로서 사는 데 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 악마의 자식 따위에게 쓸 신경머리는 없었다.
나는 내 체세포조직과 아메바를 융합해서 신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과제를 앞두고 있었다. 섭식, 소화 과정에서 화학물질 이상의 분해 능력을 보여주면 성공, 아니면 실패. 간단한 만큼 끈기가 필요한 분야였다.
이게 끝나면 쏜의 아흔 살 생일파티를 준비해야 했다. 바로 반년이 지나면 해파리 할아버지의 생일이 있다.
‘손바닥만 한 케이크에 초를 한가득 올려야지.’
자기 나이를 깨닫고 씁쓸해할 쏜을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한 번 써먹은 걸 또 써먹을 순 없으니 해파리 할아버지 생일에는 다른 골림 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일이 끝나면 영화와 드라마. 때론 과거의 소설이나 만화를 보며 대충 시간을 보낸다. 해파리 할아버지가 차려둔 저녁을 먹고, 적당히 늙은이들의 말에 맞장구치면 하루가 저문다.
그러다가 일 할 시간이 되면 어제 했던 연구를 계속하고, 오후 네 시에 칼같이 퇴근한다. 퇴근과 출근 시간을 다 합쳐 5분 이내인 황금 직장도 장점이다.
*****
매일 연구소에 박혀 사는 건 아니다. 가끔씩 과거의 나처럼 직장체험을 하러 온 신인류 꼬맹이들을 안내하고, 녀석들을 적당히 구워삶아서 연구에 도움을 받는다.
“감사합니다. 쉰둘, 너도 즐겁게 지내는 모양이구나.”
방문한 신인류 꼬맹이들의 부모인 스페이서가 쏜과 해파리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한 뒤, 내게 말을 걸어왔다.
스페이서는 일주일간 나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았다. 기억에도 없는 얼굴이다. 하지만 나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게 궁금했다.
“저를 아시나요?”
“서쪽에게 들었어.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말썽꾸러기라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랬지. 잘 지내는 걸 확인했으니 서쪽도 안심할 거다. 잘 지내려무나. 쏜 님, 해파리 할아버님도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말한 뒤 스페이서와 신인류 꼬맹이들이 떠났다. 쏜에게 들었는데 그는 서쪽과 형제라고 했다.
서쪽은 아직 진로를 정하지 않은 몇몇 아이들과 함께 생지에서 지내고 있다. 이것도 나중에 알았는데 나처럼 직업체험을 하자마자 진로를 결정한 게 지나치게 빠른 거라고 한다.
원래는 부모와 10년 정도 지내는 게 기본이니, 3년 만에 독립한 내가 비정상이었다. 어차피 돈도 크게 의미가 없는 세상이었으니, 직업도 목적도 없이 공용 거주지에서 한량처럼 사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아이고! 이 멍청아!’
그 말을 들었을 땐, 나는 억울해서 며칠이나 밤잠을 설쳤다. 한량이라니! 이것보다 더 편한 삶이 있었다니! 괜히 부모의 말을 듣고 어린 나이에 직업전선에 빠진 내 인생이 너무 처량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하는 말을 전부 믿으면 안 된다. 나는 그 격언이 미래세계에도 통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
시간이 있는 듯 없는 듯 흘러가는 일상. 나는 어느새 하루의 3분의 1 가까이를 구시대의 영화,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데 소비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잠을 자거나, 짬짬이 연구를 하거나, 몸이 굳지 않게 수련을 한다.
수련이나 연구를 하는 이유도 웃기다. 가만히 있다 보면 좀이 쑤셔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평화로운 세상에 태어나서 생기는 문제였다.
이런 생활을 5년쯤 하니 고민거리가 하나 탄생했다. 구시대의 오락거리를 다 즐기면 나머지 인생은 뭘 하며 살지? 하는 사치스러운 고민이었다.
지금 세상에도 비슷한 영상매체나 즐길 거리가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감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드라마 같은 것은 초능력이나 짱짱한 육체가 있으니 갈등 구조도 미약하고, 인간관계에서의 마찰도 신경 보조 모듈과 텔레파스가 있으니 생기자마자 사라진다.
그렇다면 게임은?
PC로 하는 모험, 어드벤쳐 등은 전멸한 지 오래.
전신감응 AR게임은 ‘내가 얼마나 창조적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나.’에 집중되어있다. 가 봤자 동물원처럼 타인이 창조한 공간을 구경하기만 한다.
예를 들면 블랙홀 너머, 사상의 지평선을 구경 한다든가 4차원 폴립체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등의··· 미래시대 감성은 너무 사이키델릭해서 나로선 따라잡기 힘들다.
그러니 너무 지루하다. 미래인 나름대로 자극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지네가 용을 써도 매일매일이 스너프 필름이었던 구인류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산책이나 해야겠다.”
나는 연구소를 벗어나 산책을 나갔다.
마음이 늙으니 산책이 취미가 되어버렸다. 내 생에 산책 따위를 취미로 하는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 의외로 재미있었다.
사사삭!
나는 초능력을 이용해 빠르게 연구소를 벗어났다. 연구소는 협곡의 절벽 끄트머리에 있었기에 탁 트인 시야 하나만큼은 장관이었다.
협곡과 협곡 사이를 날아다니고, 절벽을 걸어 올라가며 사색에 잠기기를 몇 분.
뚜둑!
‘음?’
기이한 소리가 산책하는 내 귀를 잡아끌었다.
저 소리는 최소한 사람 키보다 크고, 길쭉한 돌덩어리가 한 번에 부러지는 소리다.
‘이상한데?’
동물이 저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고, 자연적으로 돌이 부서지면 추가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한 번 부러지는 걸로 끝이라고?
나는 미세 파동을 보내 주변을 살폈다. 감지력을 최대한 발휘해도 소동물 몇십 종류만이 돌아다니는 게 느껴진다.
저것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돌을 부술 수 없다.
해파리 할아버지라면 너끈히 할 수 있지만, 그의 기척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있다 해도 그가 이유 없이 무언가를 파괴하는 쪽으로 초능력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한 번 가 보자.’
할 일도 없겠다. 나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이동했다.
도착한 장소는 협곡 아래, 우뚝 솟은 커다란 돌덩어리. 침식에 의해 뾰족하게 깎여나간 그것은 돌이라기보단 작은 탑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올발랐다.
그 커다란 돌 뒤에 그놈이 있었다.
우웅!
온통 어두컴컴한 몸체. 이족 보행하는 인간인지, 개나 고양잇과 동물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걸 택한 건지 알기 힘든 외형. 그리고 몸에서 올라오는 불길한 파동.
‘저놈은?’
나는 저 녀석을 알고 있다. 정확하겐 저 형태가 아닌 기운을 알고 있다. 작금 세상에서 저놈을 모르면 간첩보다 간첩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던 그것과는 형태가 많이 다르다. 나는 기척을 최대한 줄인 채 조심스럽게 녀석을 지켜보았다.
뚝! 뚜둑!
녀석이 반으로 깨진 길쭉한 돌을 잡더니 다시 반으로 분리했다.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비정상적인 근력을 보고 확신했다.
‘그림자다.’
인류 멸망의 최대 원인. 통칭 그림자. 그놈이 맞다.
‘하지만 뭔가······.’
나는 눈을 가늘게 떠서 녀석을 자세히 관찰했다. 내가 아는 ‘그 그림자’하고는 형태가 많이 다르다.
녀석의 이름이 괜히 그림자가 아니다.
신체 구성요소는 검은색의 일렁이는 파동 또는 불길, 형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우비와도 같았기에 그림자라고 부른 것이다.
그 상태로 바보처럼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게 그림자의 습성이었다.
그러다가 인간을 발견하면 클래식한 사신처럼 검은 눈을 불태우며 쫓아온다. 그림자에게는 물리적 장벽은 의미가 없어서 어디로 도망치든 소용이 없었다.
한 번 들키면 내가 죽든지, 아니면 죽이고 살아남든지 둘 중 하나. 상대하는 방법은 초능력으로 강화한 냉병기나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 화력을 퍼붓는 게 전부.
그런 괴물이 상차원을 열었던 장소에서 한 번에 수천만 개체가 쏟아져 나왔으니, 지구를 이 꼴로 만든 구인류 우두머리 조직이 앗!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멸망에 처한 인류는 그림자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다니거나, 초능력자에게 의존하거나, 산불도 감수하고 온통 불을 지르고 화약을 뻥뻥 터뜨려야지만 생존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랬을 텐데? 그래야 할 텐데······?’
하지만 저놈은 우스꽝스럽지만, 동물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거기에 돌덩어리를 부수며 장난까지 친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어긋나자 내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꿍!
혼란스럽게 배회하는 생각을 위에서 내려온 단단한 주먹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주먹의 주인이 차분하지만 엄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놈. 함부로 나가지 말라고 했잖니.”
“그것보다. 할아버지, 저놈이요.”
나는 아파하는 기색도 없이 그림자 ‘같은’ 놈을 가리켰다.
“제가 아는 그림자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서쪽한테 배우지 않았니?”
“딱히 구인류의 역사나 지구 환경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쯧쯧······. 지식의 편식이라니. 서쪽한테 들었지만 이런 기본적인 것까지··· 아니, 몇 년 동안 같이 산 나도 안 가르쳐 주었으니 내 잘못도 있는 건가.”
혀를 찬 주먹의 주인, 해파리 할아버지가 여러 감정을 접어두곤 멍청한 신인류 꼬맹이를 위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림자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니.”
나는 기초교육 때 배운 내용과 전생의 내가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두루뭉술하게 설명했다. 해파리 할아버지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내 설명을 들었다.
“지식이······. 꽤나 옛날 거에 국한되어 있구나.”
“멸망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남은 생존자의 수기(手記)를 읽는 게 요새 취미라서요.”
“나쁜 취미야.”
“저 성격 나쁜 거 아시면서.”
“······후우! 어쨌든, 네가 읽은 그림자와는 완전히 다른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십 년 동안 저놈도 진화했어. 지구 생명체의 그것보다 몇 백, 몇 천 배는 빠르게.”
“진화요? 지구 생명체의 형태, 습성을 따라 한 건가요?”
“정확히는 빙의(憑依)한 거다. 최초로 발견된 건 50년 전. 인간을 쫓던 그림자가 난데없이 쥐 주검에 기웃거리더니 낑낑대며 쥐 안으로 파고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저런······.”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남몰래 혀를 찼다.
“딱 봐도 오해할 게 뻔한 기록이군요.”
해파리 할아버지가 끌끌 대며 내 말에 동의했다.
“그래. 인류는 그걸 잘못 판단했다. 그림자에게 죽은 동물을 던지면 정신이 팔린다고 오해했던 거야. 그들은 열심히··· 아주 성실하게 던졌지. 던지고, 던지고 또 던졌다.”
“······.”
“5년이 지나 우리가 크게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해져 있었어. 다들 책임을 미루느라 난리도 아니었어. 겨우 하나가 된 인류가 죽은 동물을 던진 책임소재 때문에 찢어질 뻔 했다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011. 죽어도 살아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