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악신을 발견한 이후 흑마법사의 지파는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첫째. 피의 울타르.
알테어에서 지옥문을 열었지만, 션에게 대장로까지 죽고 주춧돌 하나 남지 않고 망한 바보들.
둘째. 뼈의 트록바.
영광의 고원이란 장소에서 울타르와 협력하여 대지의 정기를 몽땅 흡수해 마나 생명체 에일을 만든 놈들. 현재는 이종족 연합지역으로 후퇴하여 인체실험을 반복해서 나, 웨일과 같은 실험체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셋째. 살의 렉시놈.
살의 렉시놈의 일원은 몇 년 전, 웨일을 탄생시킨 연구소를 재방문하다가 만난 솔이라는 여성이 유일하다. 당시 솔은 나와 르데앙과 함께 정보저장소를 습격하여 트록바의 마법을 훔쳐냈다.
그러는 와중에 솔에게 렉시놈의 사정을 여럿 전해 들었다.
그녀의 말을 완전히 밑을 수 없지만, 절반만 진실이라 해도 렉시놈은 흑마력을 탈피하고 일반 마법사 클랜으로 거듭나려고 노력 중이었다.
‘울타르는 망했고, 렉시놈은 다른 노선을 걸었어. 트록바가 문제야.’
트록바는 영광의 고원에서 에일도 빼앗기고, 실력자도 여럿 죽은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이후 그들은 서쪽으로 후퇴해 이종족 연합지역에 똬리를 틀었다.
그들은 수십 년에 걸쳐 암중에서 활약하여 이종족 연합지역을 좀먹고 들어갔다. 신인지 뭔지 하는 완전생명체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이종족 세포를 모아, 악신의 뼈를 인큐베이터 삼아 신인류를 탄생시켰다.
그 결과물이 웨일이다. 녀석들은 웨일 하나 잘못 만든 대가로 이종족 연합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저지른 악행을 발각당해 피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대가는 웨일이 서이바람 숲에서 한가로이 검술을 익히는 도중에도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흑마법사 처치 열풍이 에레스발다를 넘어 이종족 연합지역으로 퍼져 나가며 대륙에 피바람이 불었다.
억울하게 흑마법사 또는 그들의 협력자로 오해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해는 금방 풀렸다. 흑마력 탐지 마법인 멜트 덕분이었다. 나는, 그리고 에레스발다는 멜트를 오픈 소스로 풀었다.
마법사들 사이에선 처음 보는 실력자를 만나면 악수 대신 멜트를 쓸 정도로, 시골의 마법사도 당연히 알 유명한 마법이 되어버렸다.
‘내가 멜트 마법을 풀지 않았으면, 중세 지구처럼 억울하게 마녀 사냥을 당해 죽은 이들의 수가 많았겠지.’
이종족 연합지역의 의도는 분명했다. 흑마법사는 이종족 연합지역에서 발끝 하나 댈 수 없다! 모조리 쳐 죽여주마!
하지만 과연 트록바가, 영악한 흑마법사가 이종족 연합지역에만 그 손을 뻗쳤을까?
순진한 나는 그런 줄 알았다. 내가 너무 천진난만한 눈으로 세상을 보았어.
그럴 리가 없지. 전생, 션을 죽인 배신자 히라자의 예만 봐도, 흑마법사는 각국에 퍼져서 은밀하게 협력자를 모았다.
대부분 울타르 대장로의 사망과 트록바의 후퇴와 함께 끈을 버렸지만, 일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끈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아니, 전력을 철수시킨 만큼 남은 쪽에 집중을 하여 권력을 얻었다.
그 끈을 유지한 시간이 무려 수십 년, 반백 년이 넘는다. 션이 태어나기 전부터 현재까지 흑마법사가 교묘하게 작업을 친 국가는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속은 완전히 흑마법사 소굴이 되었다.
국가의 탈을 썼지만, 귀족 층의 일부, 왕족 대다수가 흑마법의 혜택을 받으며 젊음과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쾌락을 누리는 미치광이들.
멀쩡한 도시로 보이지만, 길 하나만 잘못 들어서면 인신매매를 하는 용병이 판을 치고 생명력 흡수 마법진이 왕족들 사이에선 당연하게 쓰이는 말 그대로 악(惡)의 화신!
그 소굴 중의 하나가, 이번에 드러난 제노이라는 국가다.
이종족 연합지역의 남동쪽, 서이바람 숲에서 동쪽으로 쭉 가고,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바로 도착하는 소국(小國). 그런 만큼 흑마법사가 권력에 접근하기도 쉬운 곳이다.
이들이 제노이라는 소국을 집어삼킨 이유는 오로지 이종족 연합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인체 실험을 보조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에레스발다가 눈에 불을 켜고 대륙을 피로 물들여가며 흑마법사의 모가지를 수도 없이 꺾은 끝에, 반년 전 제노이라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주섬주섬!
나는 짐을 챙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머저리들! 그쯤에서 끝냈어야지!”
그 사실이 알려지자 이종족 연합지역에 난리가 났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국가가 흑마법사 소굴이 되었다니!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초고수는 한 명도 없고, 인구수 백만도 되지 않는 시골 국가였지만, 이웃집 주민이 식인귀라는 사실은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종족 연합지역을 다스리는 중앙(中央)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고수를 제노이로 파견했다. 이종족 연합지역은 노괴물이 자글자글하다. 에레스발다만 해도 겉으로 드러난 익스퍼트 상급만 셋이다.
아본, 길, 베노브란도. 심지어 그들은 젊은 측에 속하니, 전선에서 물러난 노괴물까지 더한다면 최소 두~세배는 더 많은 것이다.
그들만 있어도 제노이 같은 소국은 한 달도 되지 않아 개박살이 난다.
스팅이 말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어.”
몬스터와 싸우느라 국가 간의 전쟁 경험이 소규모 분쟁 말고는 거의 없는 환경. 적국 지도층이 흑마법에 물들었다는 사실이 중앙이 과다한 대응을 하게 하였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제노이를 압박하기보다는 병력 다수와 극소수의 초고수를 파견해 파죽지세로 제노이의 중심부로 쳐들어갔다.
그 시간은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 하지만 그 대상이 쥐가 아니라 흑마법사였고, 일반 평민의 목숨을 접시에 놓인 닭다리 뜯어먹듯이 생명력을 흡수하는 식인왕족(食人王族)이다.
백만 조금 못 되는 백성을 다스릴 대상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쓰다 버릴 장난감으로 보는 제노이의 왕족과 왕. 그들은 자신의 권력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상황에 처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흑마법사가 할 수 있는 극단적인 선택이 뭐겠나. 인간을 땔깜처럼 써서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흑마법사도 신이 났다. 그들은 제노이를 버림패로 쓸 결정을 마쳤고, 수십 년에 걸친 연구 성과를 실현할 기회로 삼았다.
한줌 남은 악신의 뼈를 이용해 몬스터를 강화시키고, 영지 내의 수천 명이 넘는 민간인을 희생하여 지옥의 악마를 불러내고, 수십 명의 생명력을 흡수해서 한순간에 익스퍼트급의 무력을 발휘하는 흑검사(黑劍士)를 대량으로 양산하고…….
원래 중앙은 제노이로 쳐들어가 흑마법사의 멱을 딸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가를 휘몰아치는 흑마법 폭풍에 르암인을 구해주는 구조대로 변했다.
흑마법사는 잘 되었다는 듯이 그 상황을 이용했다.
인간의 살로 만든 골렘! 뼈로 만든 마법 도구! 피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저주와 온갖 독! 대지 전체에 펼쳐진 정혈(精血)흡수 마법진!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에도 극독이 담겼고, 하늘을 나는 새는 비듬 대신에 치명적인 곰팡이와 세균을 퍼트리고는 몇 시간 후에 추락해 죽는다.
사방으로 달아난 용병들이 중앙의 병사를 만나고 안도에 빠져 잠이 들자 복부를 뚫고 혈거미 수백 마리가 튀어나와 소대를 전멸시킨다!
에레스발다에서 웨일이 만난 흑마법은 애들 장난 취급할 악독한 흑마법이 제노이를 뒤덮었다. 심지어 그들은 수만이 넘는 인간, 동물 시체를 이용하여 대지마저도 오염시켜 흑마력이 넘실거리는 땅, 마경(魔境)으로 뒤바꿨다.
바스락! 바스락!
나는 제노이의 지도를 펼쳤다.
‘알테어도 드레이와 같은 복수회가 암중에서 흑마법사를 처치하지 않았으면 제노이와 같은 꼴이 되었겠지.’
흑마법사는 수십 만 제노이 인간을 모두 죽일 생각으로 마음껏 흑마법을 펼쳤다. 그들은 악신의 뼈를 보유한 흑마법사가 충분한 희생양을 확보하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중앙도 그쯤 되니 인식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전쟁이 아니다. 흑마력에 물든 대지가 제노이를 넘어 이종족 연합지대까지 퍼지기 전에 막아야했다.
사정이 이리되니 발라리안 티핑 같은 의협심 충만한 사람이 가만히 지켜볼 리 없었다. 그는 성자(聖子)의 의무를 다하고자, 흑마력에 벌벌 떠는 수십 만의 인류를 구하고자 제노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중앙은 강제력까지 발휘하려 그를 말리고자 했지만… 내게서 단단히 배운 르데앙과 호루스 란, 베노브란도라는 두 익스퍼트 상급 고수의 힘으로 모든 방해를 뚫고 제노이로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중앙과 관련 없는 다른 인맥을 이용하여 편지라는 구닥다리 방법으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거기까지가 제노이라는 국가와 발라리안 티핑에게 일어난 일의 진상이었다.
* * *
발라리안 티핑의 편지를 받은 건 오전, 스팅이 편지를 읽자 안색이 창백해져서 구구절절이 위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어느새 오후가 훌쩍 넘은 시각. 나는 정보를 들으며 서이바람 숲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떠나기 전, 티안을 타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티안, 스팅도 아는 내용을 당신은 왜 몰랐던 겁니까? 아니, 제노이라는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예전에는 노아였어.”
스팅이 한숨을 내쉬었다.
“노아가 멸망한 지도 이백 년이 넘었습니다.”
“…….”
“제 탓입니다. 스승님께 방해될까 봐 소식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티안 스승님.”
원래 티안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 위의 사정도, 지난 반년 동안 제노이에 일어난 일도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티안은 마스터로 나아갈 단서에 정신을 뺏겼고, 스팅은 그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정보전달에 제한을 걸었다.
백년이 넘게 마스터의 벽에서 절망한 티안을 지켜본 스팅이었다. 스팅은 티안에게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타국의 일 따위를 알려주어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스팅 정도의 사내라면 그 정도 권한은 있다. 정보를 알려줘 봤자 발라리안 티핑이 돌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미리 알고 막을 수 있던 것도 아니었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여태까지 고마웠습니다.”
“웨일, 잠깐, 스팅도 데려가라.”
“예?”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티안을 바라보았다. 설마 스팅이 정보를 숨긴 벌을 받는 건가?
티안이 고개를 저었다.
“발라리안 티핑은 우리의 은인이기도 하다. 그가 위기에 처했는데 서이바람 숲이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그렇지만……. 스팅, 정말 괜찮겠습니까? 마경은 저도 처음 가보는 곳입니다. 일일이 당신을 지켜줄 여유 따윈 없어요.”
스팅이 기가 차다는 얼굴로 피크노제가 준비한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것이 무슨 세상 경험을 했다고 처음 가본다는 말을 하나.”
“그건 또 그렇네요. 제가 깜빡한 게 좀 많아서.”
“깜빡은 무슨. 나도 익스퍼트 상급의 고수. 내가 죽으면 네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이니 신경쓰지 마라.”
참 마이페이스적인 대답이다. 어쨌든 스팅 정도의 실력자면 도움이 크게 될 것이다. 나는 스팅과 함께 서이바람 숲을 떠났다.
* * *
일주일 후.
“지옥이군.”
나는 절벽 위에 서서 제노이 ‘였던’ 땅을 바라보았다. 대지는 거무죽죽하게 죽었고, 썩어가는 좀비나 구울 따위가 배회하고 있다.
제노이 초입인데도 저런 놈들이 넘쳐난다. 대지도 과연 마경이라는 말에 걸맞게 흉흉하게 변했다.
후우웅!
가뭄에 말라붙은 논처럼 쩍쩍 갈라진 틈에서 중력에 역행하여 검은 바람이 상승기류를 일으킨다. 바람을 이루던 검은 무언가가 가을바람에 휘말리는 낙엽과도 같이 잘게 쪼개져서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검은 알갱이는 어떤 것은 다시 대지로 환원되고, 어떤 것은 말라 죽은 나무나 들풀, 썩어가는 동물로 스며들었다.
“저게 대체 뭐지?”
“흑마력입니다. 그냥 흑마력이 아니라 생명체에게서 기반한 에너지도 더했어요. 저걸 보십쇼.”
나는 멀리 떨어져 죽은 소동물를 가리켰다.
썩은 정도로 보아 죽은 지 일주일은 족히 지난, 거대한 쥐. 그 녀석에게 대지에서 올라온 검은 알갱이가 무수히 스며들었다. 알갱이는 살을 파먹는 구더기처럼 녀석의 피부밑을 꿈틀대며 기어갔다.
그러길 잠시.
움찔!
쥐가 발끝을 오므렸다. 이윽고 사지를 떨며 땅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직직! 검은 선이 대지에 수 미터가 그어지더니 쥐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검은 알갱이는 녀석의 육체를 기괴하게 바꾼 끝에 쥐가 아닌, 쥐의 형상을 한 좀비로 변화했다. 수십 분 후, 완연히 좀비로 변한 쥐가 비틀거리며 언덕을 떠났다.
스팅은 어떠한 마법적 처치도 없이, 대지에서 근원한 흑마력을 받은 것만으로도 좀비가 된 쥐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어, 어떻게 저게…….”
“그냥 흑마력이 아니라고 말했잖습니까. 일이 더 심각해지는데요? 어서 출발합시다.”
팍! 팍팍!
절벽에 장대를 꼽고, 장대 위에 편지를 두 개 접어놓는다. 하나는 발라리안 티핑이 보낸 편지, 나머지 하나는 내가 적은 편지다.
출발하면 중앙의 순찰병이 우리를 발견하고 절벽에 꽂힌 편지를 읽겠지. 준비를 끝낸 나는 절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 중앙의 협력을 받지 않고 바로 들어갈 건가?”
막 절벽 밑으로 뛰어내리려는 나를 스팅이 붙잡았다. 나는 그의 어깨도 잡아끌며 절벽 밑으로 내려왔다.
“그 멍청이들하고 같이 있으면 화딱지나서 죽을 걸요.”
중앙도 이번 사건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무려 성자 둘이 흑마법사의 안방으로 들어갔다. 중앙은 난리가 나서 아예 제노이를 잿더미로 만들자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발라리안 티핑과 르데앙이 제노이로 들어간 이유는 힘없는 일반인을 위해서다. 그런데 그 둘을 구하겠다고 제노이 국민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부순다면 과연 그 둘이 이후에도 이종족 연합지역에 남아있을까.
다다닷!
나는 흑마력이 올라오는 대지를 뛰어넘으며 말했다.
“살아있고 뭐고 할 단계가 아니라고요. 왜 땅에서 올라온 흑마력만 받고도 쥐가 좀비가 됐겠습니까? 흑마법사 그 미친 새끼들이 제노이 국민을 모조리 죽여서 그들의 정혈을 대지에 퍼부었어요.”
“그, 그건…….”
“제노이 전체가 마경이 되었다고 했죠? 이만한 땅을 오염시키려면 일이십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최소 수십 만에 가축, 몬스터까지 몽땅 죽여도 간당간당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는군.”
나는 단언했다.
“보는군이 아니라 없습니다. 중앙은 헛된 주제로 논쟁하고 있어요. 흑마법을 그렇게 빼서 바쳤는데 아직도 원인을 모르고 저런 주제로 허송세월이나 하고 있으니…….”
실력이 있으면 뭐 하나? 20살 애송이 웨일의 말을 귀담아들을 놈이 없는데.
괜히 르데앙하고 소꿉친구라고 중앙의 군대로 갔다간 귀빈이랍시고 신줏단지 모시듯이 보관되기 십상이었다. 차라리 내 말을 귀담아듣는 스팅과 단둘이 가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스팅을 봐라. 내가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뒤를 따라오지 않나! 이 얼마나 훌륭해!
나는 흡족한 얼굴로 스팅을 바라보다가 그의 표정이 편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흑마력이 넘실거리는 땅을 전력으로 뛰어가고 있으니 마나 소모도 만만치 않고, 신체에 걸리는 부담이 막중해서 그랬다.
휙!
나는 스팅에게 조각난 드레이크 비늘을 던져 주었다.
내가 급히 제작한 마법도구였다. 원래는 살아있을 민간인 무리에게 주려 했는데 생존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제노이 환경을 보니 차라리 스팅이라도 쓰라고 건네주었다.
“수호의 가호가 담겼습니다. 일주일은 족히 가고, 추가로 마나를 넣으면 그 이상도 발동되니 들고 다니세요.”
“고맙… 네?”
스팅이 마법진이 새겨진 드레이크 비늘을 가슴팍에 넣다가 말끝을 흐렸다. 비늘에서 마법만이 아니라 성력의 기색도 은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발라리안 티핑, 르데앙과 내가 여행을 함께해서인지 일이 시급해서인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스팅이 나를 따라서 한 시간 가까이 너른 들판을 달렸다.
“정말 지독하군……. 웨일, 자네 말이 맞았어.”
안으로 들어갈수록 흑마력은 지독해져만 갔다.
익스퍼트 상급인 스팅마저 전력이 저하되는데, 아무런 마나 운용술도 익히지 못한 일반인이 이런 환경에서 버틸 리가 없었다.
우리는 내리 달려 높은 산 정상에 올라갔다. 해봤자 강원도보다 조금 넓기만 한 제노이였기에 산에 올라가니 국토 대부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반사 마법을 건 뒤에 은신하여 높게 뛰었다. 수십 미터나 하늘로 올라가서 제노이를 넓게 보았다.
곳곳에서 올라오는 검은 기운과 콩벌레처럼 우글대며 움직이는 수많은 언데드. 회색빛으로 우중충하게 칠해진 대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색은, 말라붙은 피의 색이 전부였다.
“저기입니다!”
우우웅!
저 멀리서, 인간의 살점을 엮어 만든 골렘 수기의 보호를 받는 흑마법사가 대지를 활보하고 있었다. 골렘의 등에는 나뭇가지를 어설프게 짜서 만든 커다란 바구니가 달려있었다.
스팅이 나를 따라 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격하고 골렘과 흑마법사를 확인했다. 그가 골렘의 등에 걸린 물건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골렘의 등에 수십 구의 시체가 폐사된 돼지 무리처럼 엉망으로 뭉쳐져 있었다. 골렘이 간식 까먹듯이 바구니에서 시체를 뭉텅이로 꺼내 과자처럼 으득으득 씹어먹는 모습이 그와 내 눈에 들어왔다.
스팅이 으스스하게 말했다.
“가지.”
“죽이진 마십시오. 알아내야 할 게 많습니다.”
“알겠네.”
작은 산봉우리를 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야 했지만, 엘프인 그와 나 앞에선 평지나 다름없다. 우리는 기척을 숨기고 재빠르게 흑마법사를 향해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