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
“크으으···!”
압도적인 흑마력을 두른 포식자의 등장에 마물도 싸움을 멎었다. 마물은 꼬리를 말고, 소수의 흑마법사는 오줌을 지리며 잿더미 속으로 숨었다. 괴물 꽃도 주인의 등장에 뿌리를 숨겼다.
고고한 침묵 속에서, 흑마법사가 구름과 오우거 언데드의 호위를 받으며 수도로 날아들어왔다. 흑마법사가 느긋한 시선으로 수도를 구경하다가 내게서 시선이 멈췄다.
검게 물든 눈동자, 호위하듯이 둥실 떠다니는 흑마력 안개. 나는 그가 트록바의 장로 급 흑마법사임을 알았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교차하고, 흑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너는 웨······.”
“개자식! 죽어랏!!”
눈이 뒤집힌 하넬리카의 외침이 그의 말을 끊었다. 하넬리카가 마물에게 가하는 공격을 거두고 모든 공격마법을 흑마법사에게 쏟아 부었다.
콰과광!
화염구, 화염 화살, 화염 창이 날아든다. 번개가 몇 번이나 내려치고, 땅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칼바람이 마법사에게 쇄도한다.
하넬리카는 그것도 부족하다 여겼는지 왼손, 네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피가 줄줄 흐르는 네 손가락을 장로 흑마법사에게 겨누자 빛의 파동이 쏘아졌다.
번쩍! 번쩍!
빛은 각각 네 개의 악독한 저주 마법을 담았다. 무력화, 혼란, 구토, 정신력 저하.
장로 흑마법사가 자신에게 쇄도하는 공격 마법의 세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깜찍한 짓을 하는구나. 하넬.”
딱!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음파가 네 개의 저주 마법을 아침 안개처럼 흐트러뜨렸다. 그대로 손에 묻은 물을 털 듯이 손바닥을 작게 흔든다.
휘이잉! 손짓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칼바람에 스며들었다. 그가 칼바람의 제어권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빼앗아서 하넬리카에게 되돌려 보냈다.
퍼버벙!
칼바람과 화염 계열의 공격마법이 충돌하며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칼바람은 화염구, 화살, 창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분쇄하고 사라졌다.
내려쳐 진 번개는 빈손 검지손가락을 들자 순한 양이 되어 그의 검지로 모여들었다. 흑마법사가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하넬리카를 바라보았다.
“하넬. 네게 마법을 알려준 게 누구인지 까먹었느냐. 네 마법은 통하지 않는데··· 쯧쯧! 그것도 모르는 멍청하고 아둔한 놈이니 세뇌도 제대로 걸리지 않은 거겠지.”
흑마법사가 혀를 차며 검지를 하넬리카에게 겨눴다. 검지 끝에 모인 번개가 파지직! 거리더니 눈이 부신 빛을 발했다.
꽈광!
아광속으로 쏘아진 번개가 하넬리카의 가슴을 때렸다! 미처 하넬리카가 방어마법을 쓸 틈도 없이 쏘아진 일격!
하넬리카의 가슴팍이 자글자글 달아오르고, 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딱딱 떨리는 이빨 사이에서 작은 전류가 번뜩이며 흘렀다. 가슴에서 시작된 가지 무늬의 흉터가 손끝, 발끝까지 퍼지며 그의 손발톱이 터져나갔다.
퍼벙!
하넬리카가 양손가락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악독하게 빛나는 눈은 결코 죽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보고 흑마법사가 이채를 표했다.
“예전엔 비굴해서 꼴도 보기 싫더니, 제법 흑마법사 다운 눈빛을 하게 됐구나. 헌데······.”
흑마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그런 월등한 신체개조를 받았는지 알려주지 않으련?”
“닥쳐!”
하넬리카가 욕설을 내뱉으며 얼음, 돌 계열의 공격마법을 마구 내쏘았다.
흑마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건 여전하군. 안 통한다니까.”
흑마법사는 하넬리카의 공격 마법을 손가락 몇 번 까딱하는 걸로 손쉽게 파회했다. 사방에 가득 찬 흑마력이 그의 힘이 되어주니, 실질적으로 그는 조금의 낭비도 하지 않고 하넬리카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우득! 마력구가 하넬리카의 복부를 때렸다. 기이한 감각을 감지했는지 흑마법사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신기한 걸 몸에 달고 있구나. 저게 뭐지?”
흑마법사가 압력파를 이용해 하넬리카를 때렸다. 압력파는 타진(打診)하듯이 하넬리카를 골고루 두들겼다. 곧 하넬리카의 몸에 담긴 것을 깨닫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 놀랍군! 몸에 성력이 담긴 마력석을 박아넣었다니? 그런데 어떻게 흑마력을··· 이런! 네 신체를 흑마력 정제 기관으로 쓰는 거구나! 성력으로 신체 회복과 보호를 이루고, 비늘에 모은 흑마력을 한순간 체내로 돌려 마법을 쓰는 거군!”
흑마법사가 박수를 치며 하넬리카를 칭찬했다.
“하하! 제법 머리를 굴렸어! 효율은 낮지만, 오랫동안 죽지 않고 마법을 쓰려면 저 방식이 제격이지!”
“크악! 악! 아악!”
“저런, 반항하지 마라. 제자의 성과를 알아보는 게 스승의 의무이니. 비록··· 버릴 패로 쓸 제자이긴 하지만 말이야!”
콰광!
얼음 화살이 하넬리카의 방어를 뚫고, 은밀하게 스며들어간 폭발이 그의 전신을 두들긴다. 흑마법사가 제대로 힘을 쓰자 하넬리카는 마법전에서 완전히 밀려 힘도 쓰지 못하고 두들겨 맞기만 했다.
‘돌겠네.’
나는 탈탈 털리는 하넬리카를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흑마법사는 하넬리카를 패면서 흑마력 구름의 제어권을 빼앗아오려고 했다.
아무리 성력으로 신체를 보호해도 이 이상 마법을 맞으면 흑마력 안개의 제어권을 뺐긴다. 나라를 미끼를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흑마력 안개의 제어권을 저 흑마법사에게 주어선 안 되었다.
나는 하넬리카를 두들겨 패는 흑마법사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트록바. 이름이 뭐냐.”
다행히 흑마법사가 초주검이 된 하넬리카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욕망에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훑었다.
“웨일 일칠칠삼. 네가 성력을 각성했구나!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군.”
“나를 알아?”
“그럼. 알다마다. 신인류 프로젝트는 트록바 일파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항염 녀석이 연구 성과를 독점하는 걸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았을 텐데 말이야. 참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느냐?”
“전혀. 세상 밖에 나와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
“흐흐! 아가야. 이제 아빠가 왔으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란다. 거기에··· 르데앙 더블원까지 있다니. 급히 발을 돌릴 가치가 있는 일이었어.”
“흥!”
호루스 란이 어딜 감히 시건방을 떠느냔 표정으로 르데앙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르데앙은 그를 밀치고 앞으로 나서서 흑마법사에게 검을 겨눴다.
흑마법사가 르데앙의 행동을 보고 기꺼워했다.
“저리도 훌륭하게 자라다니!
재수 없는 새끼. 흑마력 구름의 제어권만 빼앗으면 백만대군도 두렵지 않은 힘을 얻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너무 김치국부터 마시는 거 아니야?
나는 숨어서 접근하는 베노브란도와 스팅에게 은밀히 시선을 주었다. 네가 어떤 놈이든 칼부터 맞고 다시 대화를 시작하자.
하지만 흑마법사는 그들이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 것도 알아챈 듯했다. 그가 오우거 언데드를 앞세우며 마법을 준비했다.
아까, 하넬리카에게 쓴 것은 장난이라는 듯 지름 수미터가 넘는 검은 화염구가 그의 등 뒤에 다섯 개가 떴다.
“익스퍼트 상급 셋의 호위를 받다니. 일국의 왕도 누리지 못할 호사를 누렸구나. 적당히 즐겼으면 더 혼내기 전에 따라오렴. 이 옵티바 아일이 네가 태어난 진정한 목적을 가르쳐주겠다.”
“흥!”
익스퍼트 상급 셋 가지고 무슨. 나는 소드 마스터 셋의 호위를 받은 적도 있었다. 나는 천천히 옵티바 아일에게 다가가며 그의 빈틈을 노렸다.
‘이건··· 위험하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주변에 수많은 보호마법과 함정이 쫙 깔려있다! 옵티바 아일은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귀가 닳도록 말하고, 이명이 걸릴 만큼 들어도 전혀 과하지 않은 충고. 마법사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마라. 만전의 준비를 끝낸 마법사는 자신보다 한 단계, 많으면 두 단계 위의 적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니 마법사를 죽이려면 준비하기 전을 노려라. 나는 션일 적부터 그 지론을 충실히 따랐다. 웨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소에서 탈출할 때는 새벽을 노려 암살과 독, 함정으로 흑마법사가 제실력을 발휘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아비간 펄니아의 마을에서 장로 흑마법사와 싸울 때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고, 근거리로 접근하기 위해 몸이 꿰뚫리는 중상까지 감수했다.
정보보관소의 흑마법사는 암습과 동료 살해, 아예 지하 건물을 무너뜨리는 초강수를 쓰면서까지 상대의 준비를 무력화했다.
검사는 검이 없어도 강하다. 하지만 마법사는 마법이 없으면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마법사를 일반인으로 만들 상황으로 끌어들여라. 그것이 마법사를 상대하는 대원칙이었다.
그 대원칙을 어긴 적은 내가 아는 한 단 한 번밖에 없었다. 바로 알테어의 흑마법사와 벌였던 최후의 전투였다. 그때의 나는, 션은 대원칙을 어긴 대가로 죽었다.
그리고 지금 제노이에 도착한 흑마법사 장로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다. 심지어 이곳은 마경의 흑마력을 한데 모은 장소!
거리까지 백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저자가 정말 장로에 걸맞은 실력을 보유했으면 접근하기까지 십여 가지가 넘는 저주와 그 배는 되는 공격마법을 쓸 수 있겠지.
‘제기랄. 그렇다고 가만히 구경만 할 순 없잖아.’
비겁하게 가자. 그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스스로를 옵티바 아일이라 밝힌 흑마법사가 화염구를 떨어뜨리기 전에 급하게 말을 걸었다.
“옵티바! 하넬리카가 어떻게 육체의 불균형을 해결했는지 궁금하지 않나?”
“그보다 네가 익스퍼트 상급에 다다른 게 더 궁금하구나.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이냐.”
“내가 워낙 뛰어나서 그렇다. 이 개새끼야.”
아, 참. 도발하면 안 되지.
“하하! 이토록 훌륭하게 자라다니. 르데앙에 웨일··· 남녀 한 쌍을 얻었으니 신인류 프로젝트도 진일보하겠어.”
“역겨운 소리 그만하고 이야기를 돌리지. 하넬리카의 신체 불균형. 내가 해결했다.”
“···뭐?”
너 운 좋은줄 알아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내 비밀을, 그 비밀을 풀 힌트를 네게만 알려주는 거니까.
*****
옵티바가 인상을 굳힌 채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눈동자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아가야. 지금 발언은 나라도 참기 힘들구나. 어서 사과하지 않으면 볼기짝을 후려주지.”
아무래도 내 발언을 허세라고 여긴 듯했다. 상대를 무시한다라··· 오히려 좋지.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충격이 크니 말이야.
나는 그가 관심을 가지길 기도하며 빠르게 설명했다.
“비약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흑령수로 막대한 흑마력을 얻는다. 제법 한가락 했지만, 비약과 흑령수가 따로 놀아서 신체가 조금씩 붕괴하고 있었잖아. 내가 그걸 바로잡아 줬다고.”
“허! 말도 안 되는 소리!”
옵티바 아일이 기가 차다는 듯이 헛숨을 내쉬었다.
인체를 강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빠를수록, 강력할수록 피시전자의 수명은 줄어들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늘어난다.
하넬리카가 10년간 비약을 먹으며 꾸준히 신체를 강화했다 하지만, 사실 그것도 너무 빨랐다. 최소 20년은 잡고 길게 가야 하는 일이 비약의 신체 강화였다.
옵티바 아일을 비롯한 제노이의 트록바 일파가 하넬리카의 신체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은 이유는 소모품을 위해 많은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해봤자 무식하게 성력을 퍼부운 게 전부겠지! 마법의 ‘마’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나를 속이려 드느냐!”
인체를 망가뜨리는 건 쉽지만, 고치는 건 몇 십 배는 어렵다. 특히나 흑마법은 부수고, 변화시키는 일이 전문이지 원상복구는 영 딸렸다.
그들이, 인체 해부학의 달인인 흑마법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유를 얻은 지 4년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달성했다고 하니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드디어 걸렸다. 이제 이겼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흑마력 구름을 다루는 하넬리카를 가리키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보기엔 이상하지 않은가? 성력으로 신체 불균형을 해결했으면 흑마력을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는 다른 방식으로 불균형을 해결해 마나를 담는 그릇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데 성공했어. 흑마력을 다룬다는 게 그 증거다.”
“······!”
“어떠냐. 트록바의 장로여. 세상 그 누구보다 인체에 관해 자세히 안다고 자부하는 흑마법사여. 어떻게 하넬리카의 인체 불균형을 며칠 안에 해결했는지, 네 가난한 머리를 굴려서 답을 내놔 봐라.”
사실 내 도발에 걸려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흑마법사 또한 마법사! 방식은 다르지만 마도의 길을 걷는 식자(識者)이자 학자(學者).
수백 년간 쌓인 지식과 악신의 시체를 연구하며 얻은 새로운 지식으로도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 일이 실제로 가능했고, 그 결과물이 눈앞에 있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광고하듯이 양팔을 쫙 펼쳐 그를 도발했다.
“괴물 꽃도 그렇지! 수도에 퍼진 괴물 나무를 보았느냐! 저것도 내가 만든 크리쳐다! 재료는 괴물 꽃과 마물의 살점이 전부다! 자! 너라면 하루 안에 저 둘을 가지고 괴물 나무를 만들 수 있는가?”
“······.”
“하하! 못하겠지! 당연히 못 하지!”
나는 몸을 떨며 하넬리카와 나를 번갈아 노려보는 옵티바를 조롱했다.
“멍청이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고 믿는 돌대가리 새끼들. 자 한번 받아봐라. 이게 하넬리카의 불균형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물건이다.”
나는 그에게 성력이 담긴 마력석을 던지기까지 했다. 어떠한 의도도 없이, 야구공을 던지듯이 마력석을 던지자 옵티바 아일이 멍한 눈으로 마력석을 받았다.
그가 마력석을 뚫어지라 쳐다보지만 아무런 답도 내놓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이어 말했다.
“보아라. 그걸 가지고, 너 혼자서 하넬리카의 신체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괴물 나무를 만들 수 있는가! 못 하겠지. 그게 너희 흑마법사의, 악신의 시체에 눈이 먼 머저리들의 한계니까.”
“큭! 네놈···!”
“하지만 나는 했다. 네가 아무리 부정한다 한들, 하넬리카라는 결과물이 있는 이상 내가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이제 알겠어? 너는 병신이야. 병신 돌대가리 새끼. 네 머릿속에 든 마법과 수많은 비의는 나에겐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큼의 가치도 없다!”
나는 당당하게 손을 뒤로 들었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승리포즈였다.
“삼 년! 단 삼 년 반 만에 나는 마법으로도 이만한 경지에 도달했다! 너는 마법으로도 내게 졌어!”
“흐흐···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 네가 나보다 잘났다는 걸 증명하면 이 상황이 바뀌나?”
흑마법사에게 워낙 당하고 살다보니 흑마법사만 보면 내가 완벽하게 승리했다는 걸 한 번쯤은 알려주고 싶었다. 기회가 왔는데 안 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실제로 바뀌기도 한다. 나는 위로 치켜세운 손을 내려 옵티바를 가리켰다.
“당연하지. 참으로 무식한 수법이다만, 하늘 위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나는 흑마법사보다 똑똑하다. 그리고 흑마법사보다 무식하다! 똑똑한 것이든, 무식한 것이든 어떤 분야든 간에 흑마법사보다 못해선 안 되었다.
그걸 가르쳐주겠다. 나는 옵티바를 똑바로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개진(開陣).”
우뚝!
그 말에 다섯 그루의 괴물 나무를 지키던 수십 개체의 환염의 정령이 행동을 멈췄다.
슈우욱!
괴물 나무가 모은 흑마력이 환염의 정령에게 빨려 들어갔다. 환염의 정령이 흑마력을 몽땅 빨아들이더니 엄청난 열량의 화염을 내뿜었다.
한 개체, 한 개체가 불의 화신이 된 것처럼 덩치도 세 배는 커지고, 전신이 검붉은 불꽃에 가려진 환염의 정령!
화아악!
수도에 수십 개가 넘는 작은 태양이 떴다. 근처의 마물은 뼛조각만 남고는 새까맣게 탄화되었다. 마물을 불태운 화염이 고스란히 환염의 정령에게 돌아가 힘을 더해주었다.
흑마력을 먹고 덩치가 커지고, 불태우고 흡수하여 더 뜨거워지고! 출력을 극대화하고, 한계치 이상으로 흑마력을 빨아들인 환염의 정령은 나도 함부로 제어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흑마력 구름을 없애려고 준비한 수단이었지만······.’
흑마력 구름보다 흑마법사가 우선이다. 저놈을 처리하지 않으면 뒤가 없었다.
“뭐, 뭐냐 저건······!”
옵티바 아일이 탄복하며 환염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정령의 힘을 극대화시켜 한순간 몇 배가 넘는 힘을 발휘하는 건 흑마법에도 있었지만, 수십 개체가 넘는 정령을 일제히 강화하는 것은 그도 모르는 마법이었다.
물론, 나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었다. 저놈이 뭐가 예쁘다고 승천자의 마법을 알려주나. 힌트도 말하지 않을 거다. 그저, 옵티바 아일을 향해 손가락만 까닥이는 게 내 대답의 전부였다.
휘익!
손가락을 까닥이자 환염의 정령이 일제히 옵티바 아일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기겁하며 방어막을 펼치고, 정령체의 응집력을 줄이는 방어장을 깔았다.
우두둑!
근처에 널린 마물의 뼈가 부풀고 재조립되더니 뼈 방패로 변해 옵티바 아일을 보호했다. 방패에 서린 기운은 화염 방어장이었다.
그는 그것도 부족해서 오우거 언데드를 자신의 앞에 배치했다. 오우거 언데드가 막 발을 내디딜 때, 첫 번째 환염의 정령이 오우거 언데드 앞에 터졌다.
꽈아아앙!
귀가 먹먹해질 듯한 폭발! 인근 십수 미터가 초토화되고, 후폭풍을 타고 잿더미가 수십 미터 밖까지 퍼져 나갔다. 베노브란도와 스팅도 후폭풍을 맞고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오우거 언데드는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다른 환염의 정령이 또 다른 오우거 언데드에게 뛰어들었다. 다시 눈이 부신 적열이 자글자글 타오르고는······.
콰과광!
또 다시 폭발! 오우거 언데드 두 개체가 조각나고, 옵티바 아일의 방어막이 파문을 일으켰다. 환염의 정령 두 개체가 뒤이어 폭발을 일으켜 오우거 언데드를 끝장내고, 옵티바 아일의 방어막 앞에서 터졌다.
폭발! 뒤이어 또 환염의 정령의 폭발! 옵티바 아일의 방어막이 뒤흔들리고, 전면을 보호하던 뼈 방패가 와장창! 깨졌다. 그가 이를 악물며 척력장과 화염 분해막을 펼쳤다.
꽈르릉!
추가로 돌벽을 올려 몸을 보호한다.
쿠왕!
하지만 돌벽은 환염의 정령 한 개체의 폭발에 탄화된 돌가루가 되어 비산했다. 옵티바 아일의 입에 작은 실핏줄이 흘러내렸다.
“네 이놈! 이런 추잡한 수를······!”
콰과광!
이어진 폭발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가 분노를 드러내며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지만, 나는 전혀 부끄럽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놀리듯이 휘파람까지 불며 환염의 정령을 조종했다. 어디 이것도 먹어봐라! 환염의 정령이 앞에 가서 꽝!
퍼엉!
장로 흑마법사와 마법전을 벌이면 나의 필패다. 그에게 힘을 실어주는 공간에서 정공법으로 싸워도 승률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고?
복잡한 수 싸움 따윈 개나 줘버려라. 나는 네가 무슨 수를 쓰든 간에 압도적인 화력으로 널 짓눌러버리겠다. 흑마법사, 너는 똑똑함도, 무식함도 나에게 안 된다.
“으하! 으하하하! 뒈져라! 개새끼야!”
나는 광소를 지으며 환염의 정령을 일제히 내보냈다.
꽝! 꽈과광! 콰과과과과!
연달아 터지는 폭발에 옵티바 아일의 몸이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