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 * *
그날 오전. 올스를 막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갈리어드가 지도를 보더니 골머리를 쌓았다.
“으음… 웨일. 문제가 있소.”
갈리어드가 지도를 가리키며 다음 마을과의 거리를 알려주었다. 거리는 대강 30~4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멀리? 중간마다 작은 마을 같은 건 하나도 없어?”
그러고보니 혼자 여행하면서도 자잘한 마을을 본 적이 없다. 보통 사막은 마을이 수십 킬로미터 단위로 떨어져 있나?
내가 신기하다는 어조로 묻자 갈리어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모여 살 것. 그것이 사막의 기본이오.”
몬스터가 날뛰는 극지방의 극한 환경에서 소규모 씨족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는 법. 설령 있다 해도 차라리 관계를 안 맺는 게 나을 정도로 배타적이고 흉포한 이들만이 남았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뛰어가면 되지만 갈리어드도 지치고 시간도 오래 걸려. 테러는 시간이 생명인데……. 그렇다고 나는 것도 금지고.’
사막은 황량하고 자연스레 시야가 넓다. 아무리 내가 잘났다고 혼자서 날아다니다간, 몬스터의 관심을 독차지해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빠지게 될 터이니 날아가는 것도 당연히 안 될 일.
그렇다고 이전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걸어가기에는 시간이 급하다.
“이러면…….”
나는 찜찜한 얼굴로 올스 방향을 바라보았다. 갈리어드가 민망하다는 듯 콧잔등을 긁으며 내가 하지 못한 뒷말을 대신해주었다.
“올스에서 낙타라도 빌리는 게 좋겠소다만.”
“…그러자.”
우리는 조용히 올스로 되돌아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부리는 장로를 은밀하게 만나 낙타 두 필을 빌려줄 것을 부탁했다.
“내가 그 부탁을 들어주리라 생각하는 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항변하는 장로의 얼굴은 꽤나 볼만했다. 갈리어드도 면목이 없는지 할 말을 잃고 먼 산만 바라보았다.
여기선 협상의 달인 웨일이 나설 차례다. 나는 장로에게 말했다.
“흑마법사 죽였잖아. 낙타 두 마리 정도야 줄 만하지.”
“부탁하지도 않은 일 아니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적, 물적 피해를 돈으로 환산하면 오히려 내가 낙타 이백 마리를 받아야 할 지경이네.”
협상의 달인 침몰했다.
나도 할 말이 없어서 갈리어드와 반대편 방향의 먼 산만 바라보았다. 참고로 협곡 안이라서 먼 산도 뭣도 보이지 않는 절벽만이 우리 둘을 반겼다.
“까짓 거 주시지요. 어르신.”
합죽이 두 명에게 구원자가 내려왔다. 바로 몇 시간 전, 내게 덤볐다가 탈진하고 쓰러진 익스퍼트 중급의 강자인 바리다였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올스의 소란을 정리하는 데 힘을 썼는지 꼼꼼히 무장을 한 바리다. 하지만 그래도 지친 얼굴은 숨길 수 없었다. 바리다가 피곤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하는 김에 두 필이 아니라 세 필을 주실 순 없을까요.”
“왜? 너도 날 따라오게?”
내 질문에 장로가 기겁하며 나와 바리다를 번갈아 보았다. 장로가 바리다의 망토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바리다! 절대 안 된다!”
아무리 건장하다지만 노인네가 근육질의 젊은 남성을 붙잡고 애걸하는 장면은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다. 바리다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이미 마음을 굳혔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장로님. 더 이상 올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웨일의 말처럼 흑마법사를, 최소한 트록바를 뿌리 뽑지 않는 한 사막의 평화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올스의 최고 고수인 네가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순 없는 노릇이다!”
“환상마법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까. 흑마법사가 정면으로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 올스가 위협받을 일은 없습니다. 제가 할 일은 올스를 넘어 사막의 안전을…….”
말 한 번 길기도 하다.
‘이러면… 이래도 되나?’
나는 바리다와 장로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흐라탄의 주인인 살저 하라한은 내게 감시역 및 도우미 역할로 갈리어드를 붙여주었다. 살저 하라한의 목적은 나를 드러난 칼로 쓰는 것이다.
사막 부족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륙에서 들이닥친 테러리스트. (언제까지 통할진 모르겠지만) 흑마법사와의 전면전을 피하며 대놓고 흑마법사의 전력을 줄일, 그리고 그들의 원한을 받을 욕받이 역할!
하지만 바리다가 나와 함께하는 그 순간 ‘사막 부족과 테러리스트 웨일은 협동관계가 아니다.’라는 눈 가리고 아웅은 깨지기 마련이다.
사실 갈리어드도 아슬아슬하지만, 바리다의 무력을 생각하면 그가 함께하는 파장은 더욱 컸다.
‘어이.’
나는 은근히 갈리어드에게 눈짓을 했다.
너 하나만 해도 아슬아슬한데 바리다까지 더해지면 사막의 복잡 미묘한 사정이 뒤흔들릴 수 있지 않나. 바리다를 말리든지 뭐 하든지 해봐라.
“…….”
하지만 내 눈빛을 받은 갈리어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이 병사들을 불러 자기가 탈 낙타를 꼼꼼히 점검하기만 한다. 혓바닥을 보고, 눈을 뒤집고, 귀속을 살피고……. 그렇게 ‘세’ 필의 낙타를 직접 고르고 있었다.
‘오호라? 이놈 봐라?’
나는 대놓고 모르는 척을 하는 갈리어드를 보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갈리어드는 전형적인 무인으로 보여도 올스에서 그가 한 일을 생각하면 의외로 혓바닥도 돌아가는 위인이다. 혓바닥이 돌아가는 놈이 대가리가 안 돌아갈 리가 없고, 대가리가 돌아가는 놈이 나와 살저 하라한의 은밀한 거래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런 그인데도, 심지어 자신의 고향인 사막 부족의 안전이 걸린 일인데도 바리다의 합류를 모른 척 반긴다? 이건 뭔가가 있다. 내가 모르는 구린내가 풀풀 풍겼다.
살저 하라한과 갈리어드. 그리고 갈리어드를 통해 올스에게 전한 전령. 그들은 분명히 나를 미끼로 흑마법사에게 뒤통수를 칠 계략을 준비하고 있다.
흑마법사가 바리다나 갈리어드 등으로 나와 사막 부족의 관계를 눈치 챘을 땐, 이미 쌀이 익어 빵이 되고 메주가 되고도 남았을 테니 신경 안 써도 된다는 거겠지.
씨익.
나는 모른 척 하는 갈리어드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러면 나도 나쁘지 않다. 미끼라고 하지만, 고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 일도 편해지고 죽을 확률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
바리다의 합류를 거절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아니지……. 남이 짠 판에 휘둘리기만 하는 건 재미없지.’
여기서 웨일의 나쁜 버릇이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웨일은 참 반골에 성격도 더럽고, 남한테 엿 먹이는 걸 좋아하는 개자식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웨일이다. 웨일로 사는 나는 웨일의 이러한 성격이 좋았다. 나는 잘 되었다는 듯이 바리다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와락!
“좋다! 바리다여! 무인이 진검 들고 싸우면 친구 아닌가! 함께 가자고!”
“저, 정말이오?”
“그럼! 어차피 말은 길게 하지만 내 검술을 훔쳐 배우려고 날 따라오겠다는 거 아니야? 다 알려주진 못하지만 보고 따라 하는 것 정도는 말리지 않을 테니 있는 힘껏 따라와라!”
“하! 하하! 그, 그럴 수가!”
“어, 어억?! 야, 이 미친……!”
장로가 뒷목을 잡았다. 나는 그의 양손을 붙잡고 은밀하게 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곤 믿음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로. 나를 믿어라. 바리다를 내게 주면, 내 기필코 그에게 신세계를 경험시켜주지.”
“어, 이, 이 기운……?”
“어디서도 못 해본 경험을 바리다에게 시켜주겠다 이 말이다. 바리다가 할 일은 눈 감고 밤하늘의 별을 세며 내 손길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돼. 그의 인생관이 바뀔 정도의 쾌락을 바리다에게 선물해주겠다.”
“너, 너는… 아니, 당신은…….”
나는 짓궂게 윙크했다.
“장로 당신도 내 마음에 드는데, 어때? 날 따라오지 않겠나?”
장로가 학을 떼며 거절했다. 그렇게 올스로 돌아온 나는 바리다를 데리고 올스를 떠났다.
낙타를 타고 가는 와중, 바리다가 물었다.
“다음은 어디로 갈 생각이오?”
내가 말했다.
“갈리어드?”
갈리어드가 말했다.
“스크래브라는 마을이오.”
“아하, 거기. 웨일, 스크래브에선 올스처럼 날뛰는 짓은 추천하지 않겠소.”
“어째서?”
“스크래브는 개미굴처럼 지하를 파서 만들어진 마을이니까. 잘못 하다간 동굴이 무너져내려 마을 자체가 멸망할지도 모른다오.”
오호라……. 나는 바리다의 경고를 듣고 턱을 쓰다듬었다.
* * *
꽝! 꽈과광!
이 소리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아니다. 지하 마을 스크래브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으아! 아아악!”
스크래브의 역사는 백년도 더 전, 한 고위 마법사가 무작정 지하를 파고 내려가다가 운 좋게 지하 백 수십 미터 즈음에서 지하수를 발견하여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대지 계열의 마법은 땅을 파고 지면을 굳히는 데 제격인 게 많아서 스크래브의 발전은 아주 순조로웠다. 그들의 양적인 팽창을 막는 것은 단 하나, 식수원 말고는 없었다.
사막 마을의 발전은 대부분 스크래브와 비슷하다. 올스처럼 자연이 만들어낸 수원지나 오아시스에 자리를 잡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이유는 당연히, 몬스터 때문이다.
콰르르르르르!!
“끄어어어!!”
오아시스에 자리를 잡는 건 포기. 어느 고위 마법사의 힘으로 수원지를 발견하고, 수십 수백 년에 걸쳐 꾸준히 보존, 개발한다.
지하냐, 지상이냐의 차이점만 있을 뿐 살저 하라한이 다스리는 흐라탄과 비슷한 발전사를 거친 것이 스크래브였다.
퍼버버버벙!
그리고 그 스크래브가. 1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하 도시 스크래브가 내 손에 무너졌다. 아주 철저하게.
시작은 스크래브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의 말이었다. 우리는, 정확히는 바리다가 ‘올스에서 안부인사를 물으러 왔다. 요새 잘 지내냐.’ 라는 식으로 경비병에게 말을 걸어 스크래브의 사정을 파악하려 했다.
경비병이 이렇게 답했다.
“꺼져라.”
바리다가 딱딱하게 굳었다. 멀리서 감시하던 갈리어드도 내가 전해준 경비병의 말을 듣고 똑같이 굳었다. 잠시 후, 바리다가 멋쩍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이, 이몸은 올스의 바리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경비병이 바리다의 말을 끊었다.
“바리다고 바리다다다고 난 모른다. 꺼지라고 말했을 텐데?”
여기서 나는 스크래브의 사정을 눈치 챘다.
‘이미 텄구나.’
스크래브는 트록바 일파를 흐라탄처럼 모른 척 감시하지도 그렇다고 올스처럼 두 파로 나뉘어 냉전을 벌이지도 않았다. 스크래브는 이미 트록바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상대가 어떤 놈들인지 견적이 나왔으면 다음에 해야 할 행동은 전해져 있었다.
바로 공격이다. 나는 갈리어드를 무시하고, 화를 참는 바리다도 무시하고 전력으로 뛰쳐나가 경비병을 일검에 쳐 죽였다.
삐이꺽!
그리곤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었다.
나는 허겁지겁 달려온 갈리어드와 싸울 준비를 하는 바리다에게 말했다.
“스크래브의 지도는 알고 있겠지?”
갈리어드와 바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 부족은 근친혼의 위험을 피하려고 근처 부족끼리 성인 남녀를 교환하여 혼인관계를 맺는 풍습이 있다. 때문에 가까운 부족끼리는 거리가 먼 친척 관계나 마찬가지.
갈리어드와 바리다가 서로 아는 기색이고, 바리다가 자신만만하게 스크래브에 말을 걸겠다고 한 게 그 이유 때문이다.
그 덕분에 스크래브의 내부 지도도 알음알음 퍼져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지하고 뭐고 간에 직통으로 내려가면서 흑마력이 느껴지는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잡겠다. 너희 둘은 나하고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사람들을 이끌어.”
“그렇게 무식하게 해도 괜찮겠소?”
은근히 스마트한 갈리어드가 내 의견에 반대표를 던졌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올스에서 내가 한 짓은 똑똑해 보였나?”
“…….”
찬성 1, 반대 0, 무효표 2. 완벽한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으로 내 계획대로 스크래브 침략이 시작되었다. 나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초능력 파동을 쏘았다.
쿠왕!
발을 세게 구르자 입구 쪽 바닥이 꺼지면서 밑의 층이 드러난다. 초능력 파동과 함께 퍼진 미약한 성력이 흑마력을 보유한 이들을 자극하며 내게 정보를 전해주었다.
‘용병인지 어디서 모은 놈들인지, 흑마력이 풀풀 풍기는 무력집단이 저수지를 점령했어. 흑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이들은 반대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군.’
이러면 내게 더 좋다. 나는 그들이 모인 곳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언제 어디서든 잘 먹히는 니웨의 비기, 크레센틱 오러!
쿠과광!
지름 3 미터가 넘는 초승달 형태의 오러가 지하 동굴을 대각선으로 관통했다. 바리다와 갈리어드를 내버려두고 흑마력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나아갔다.
“뭐 하나? 나 일반인 죽는 거 안 봐줘. 깔러 죽지 않게 하려면 너희가 알아서 돌봐줘야 한다고.”
서이바람 숲의 웨일은 친절하고 상냥한 검술 선생님이었지만, 사막의 웨일은 잔혹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다.
본성을 자각한 내게 일반인 피해는 줄이면 좋고, 나오면 어쩔 수 없는 정도에 불과했다.
후다닥!
내 말에 갈리어드와 바리다가 당장 반대편 통로로 뛰어들어갔다.
“바리다다! 올스의 바리다가 왔다! 다림! 이오택! 누구 없는가!”
“흐라탄의 갈리어드가 왔소이다!”
잘하고 있네. 나는 고개를 주억이며 크레센틱 오러가 훑고 지나간, 무너진 동굴로 들어갔다. 그때부턴 일방적인 학살이 나를 기다렸다.
파앙!
초능력 파동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꾸앙!
암석포, 지면 붕괴, 석회의 파동 등을 마구 써서 지하를 무너뜨릴 기세로 공격을 개시!
연소와 화염의 장벽으로 산소를 없애고, 연기를 마구 피워 호흡 곤란을 유발한다.
“콜록! 컥!”
“크허헙!”
기침을 한 녀석들의 목에 검광이 번쩍인다. 눈물을 질질 흘리며 기침을 꾹 참아도 공기 폭발, 화염 폭발, 대지 폭발… 연달아 폭발 마법이 터져 사이좋게 이승을 하직한다.
꽝! 꽈광!
무너뜨리고, 불태우고, 인체에 치명적이지 않은 연기를 내쏘아 호흡 곤란을 일으키고…….
한 층이 정리되면 귀찮게 계단이나 통로 따위를 이용하지 않는다. 무식하게 지면을 크게 굴러서 꽝! 그리고 지하로, 계속해서 지하로 내려간다.
십여 분이 지났을 땐, 내가 지나간 길에는 무너진 동굴과 깔려죽은 이들만이 남았다.
부스럭!
지하까지 일직선으로 개통하여 저수지에 도착한다. 나는 스크래브를 점거한 트록바의 흑마법사 셋과, 그들과 동조한 스크래브의 권력자 노인네들을 마주했다.
배신자 노인네가 내게 소리쳤다.
“다, 당장 멈춰라! 다 같이 죽기 싫으면 그 자리에서 멈추라고!”
나를 협박할 생각인지 저수지에 무언가를 떨어뜨릴 자세를 취한다. 발색과 마나 흐름, 냄새, 초능력 파동으로 파악해보건대 점착성 독이 확실했다.
저게 떨어지면 돌 사이사이로 독액이 들러붙어 스크래브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해버린다. 정화마법을 건다면 가능하겠지만, 지하수 깊숙한 곳까지 퍼진 독을 전부 정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어쩌라고? 나는 사막 사람도 아닌데. 나는 해보라는 듯이 마구 오러를 뿌렸다.
퍼버벅!
그들을 호위하는 잡스러운 용병과 병사들이 피분수를 뿌리며 나자빠졌고, 스크래브 배신자도 둘이나 팔다리가 잘려 쓰러졌다.
급하게 저수지로 돌입하는 병력의 운명도 똑같았다. 늦게 죽나, 일찍 죽나. 돌에 깔려 죽나, 검에 베여 죽나의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그만! 그만하라고 미친 새끼야!!”
스크래브 출신으로 보이는 이가 목에 혈관을 잔뜩 띄우며 나를 말린다. 요새들어 미친놈이라는 말을 자주 듣네. 그럴수록 내 검술은 더욱 피를 보기 마련이다.
툭!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뒤에서 대기하던 트록바의 흑마법사가 배신자의 손을 툭! 때렸다. 노인네의 손에 들린 점착성 독이 수원지를 향해 떨어졌다.
“어, 어어!?”
노인네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크게 떴다.
흑마법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노인네의 등을 발로 뻥! 찼다. 노인네가 허우적거리며 점착성 독과 함께 수원지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흑마법사가 나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나름대로 내게 이지선다를 강요하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비릿한 웃음을 짓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도 내가 누군지 착각했어. 나는 독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오히려 노인네를 발로 차며 내 간격 안으로 들어온 흑마법사의 경솔함을 칭찬했다.
크레센틱 오러 발검식, 광검결!
번쩍!
내 손에서 나아간 빛이 흑마법사의 허리를 일도양단했다. 그는 수십 년간 익힌 자랑스러운 흑마법을 미처 사용하기도 전에, 단 한 번의 방심으로 목숨을 잃었다.
한 번으로 끝나게? 그럴 리가. 빛과 떨어지는 배신자 노인네에 정신이 팔려 익스퍼트 상급의 고수를 무시한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내 몸이 유령처럼 앞으로 나아가고, 몇 번의 빛이 번쩍이자 흑마법사는 물론이고 배신자 노인네들까지 팔다리가 잘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허, 허으어?!”
그 와중에 흑마법사에게 발로 차여 수원지로 떨어지던 노인네는 멀쩡했다. 이미 염동력으로 그의 몸을 고정했기 때문이다. 점착성 독도 아슬아슬하게 공중에 떠서 수면으로 흡수되지 않았다.
“노인네.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야.”
본의 아니게 흑마법사를 죽여 버렸잖아. 너라도 고급 정보가 있기를 바란다. 나는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 노인네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