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 * *
먹빛이 눈과 얼음이 만들어낸 청백색을 집어삼킨다. 악신의 왼쪽 옆구리에서 터진 대검은 여태까지의 울분을 풀겠다는 듯이 시커먼 불꽃을 퍼뜨렸다.
언데드라지만 투혼은 투혼. 투혼의 근원인 검은 불꽃 앞에선 얼음도, 얼음 내부에 수줍게 담겨있던 몬스터 시체도 공평하게 잿더미로 화하여 북극의 세찬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그 누가 투혼의 불꽃을 막을 쏘랴! 단 오가 귓가에 가까이 접근하여 귓구멍으로 폭탄 바늘을 날려대다가 불꽃에 집어삼켜 질 위험에 처했다.
단 오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바늘을 집어 던졌지만, 불꽃에 사르르 녹는다. 마력석을 갈아 만든, 천금짜리 폭탄 바늘 수십 개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했다.
“위험햇!”
카보머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단 오를 발로 차서 뒤로 날렸다. 그에게 밀려오는 불꽃에 맞서 짐승의 발톱처럼 손아귀를 오므리곤, 손톱을 뾰족하게 세운 채로 부드럽게 회전한다.
손톱 끝에서, 열 줄기의 선명한 오러가 허공에 원을 그린다. 한 바퀴에 원 열 개. 불꽃이 오기까지 수십 번의 회전을 하고, 수백 개가 넘는 원이 탄생한다.
파바바밧!
불꽃이 원을 타고 흐르며 사방으로 퍼진다! 가장 바깥쪽의 원이 시커멓게 물들고, 가닥가닥 끊어질 때까지 영 점 몇 초. 카보머는 그 틈을 타서 재빨리 뒤로 빠졌다.
오러의 원은 마나 공급이 끊기자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불꽃에 침식되어 소멸했다. 카보머와 단 오가 피한 자리를 넘어서, 병력 코앞까지 나아간 불길이 소멸했다.
‘일부러 껐다!’
웨일은 검은 불꽃이 부자연스럽게 꺼진 것을 보곤 눈을 빛냈다.
웨일이 나세르 2세, 베노브란도와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예측이 맞고 틀리고를 넘어서, 악신은 무언가를 노리고 병력을 온전한 상태로 유지하려 한다! 삼인이 무기를 움켜쥐곤 악신에게 달려갔다.
“기어… 저 새끼 기어간다!”
그 사이 트라칸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하나만 남은 오른쪽 다리 그리고 어깨에 붙은 두 개의 팔을 이용하여 악신이 기어간다!
그르륵! 그르르륵!
행동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한 번 팔을 뻗었다가 당길 때마다, 한 번 다리를 움츠렸다 펼 때마다 수십 미터씩 쭉쭉! 오러 블레이드에도 조각나지 않는 신장 백 미터짜리 살덩어리의 전진은 그 자체만으로도 천재지변이나 다를 바 없었다.
기어가는 방향은, 검게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포착한 것은 도망치는 수천의 병력. 무너진 눈 언덕 탓에 머팔로가 있는 곳까지 멀리 돌아가느라 아직도 도망치지 못한 늦장꾸러기 아저씨들!
“그어, 어, 으, 어어…….”
입에선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기이한 괴성이 나온다. 검은 불꽃이 이사이로 뚝뚝 흐른다. 허기진 아이가 음식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것 같은 모양새!
“못 가게 막아! 트라칸! 이리로!”
티안이 외치며 악신의 뒤로 이동했다. 그가 길과 함께 악신의 오른쪽 무릎을 베었다. 나머지 한쪽 다리도 떼어내서 이동을 막으려는 계획이다.
일심팔겁(一心八迲)!
환상처럼 여덟 개로 나뉜 티안의 신형이 하나로 합쳐지며 중첩된 오러가 무릎 관절 사이를 벤다. 뼈는 베지 못하지만, 살점과 연골을 베고 들어간 오러에 의해 작은 동굴만 한 상처가 만들어졌다.
볼텍스!
그 틈을 길의 찌르기가 덮쳤다. 팔중나선포를 웨일이 개량한 버전, 볼텍스! 회오리처럼 회전하는 수천 개의 빛 알갱이가 창날에 응축되어 전방을 향해 쏘아진다.
볼텍스가 무릎을 관통하여 왼쪽 허벅지에까지 박혔다! 그 틈에 트라칸이 오러 블레이드를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폭검(爆劍)이 발현되며 오른쪽 무릎마저 떨어뜨리기 직전까지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눈깔아! 이 개새끼야!”
단 오와 아본은 악신의 정면에 서서 단검과 창을 뿌렸다. 열 개의 오러 단검이 악신의 왼쪽 눈알에 박힌 뒤 폭발하고, 오러로 이루어진 파르티잔이 오른쪽 눈알을 깊게 파고들었다.
뒤이어 카보머의 쌍권! 상단과 중단을 동시에 지르는 일격! 상단의 주먹은 검지와 중지 마디를 세워서 양 눈알을 노리고, 중단의 주먹은 밑으로 낮게 빠져서 악신의 가슴골로 향한다.
꽈지직!
검지와 중지에 맺힌 뇌전 오러가 눈알을 타고 들어가 악신의 뇌를 태웠고, 가슴을 파고 들어간 오러 피스트는 악신의 상반신이 아닌, 상반신을 지탱하는 빙하를 깨부쉈다.
“끼야아아악!”
뇌 속에 담겨있던 흑마법사들이 뇌력에 비명을 지른다. 눈, 코, 입을 넘어서 칠공(七公)에서 검은 피를 콸콸! 흘리며 발버둥치지만,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시에 콰득! 하며 빙하를 부수고 날아가는 오러 피스트! 상체의 정중선을 절묘하게 비껴치며 통과한 오러 피스트가 빙하를 박살내고, 악신을 밑으로 추락시켰다.
열심히 악신의 전진을 막지만… 무의미!
“그어어!”
악신이 짜증난다는 듯이, 상처 입은 오른발을 버둥거리며 휘두른다. 어린아이가 바닥에 누워 투정부리듯이, 발을 굽혔다가 폈다가를 반복하기만 할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대에 소규모 재앙이 벌어진다.
길이는 수십 미터, 강도는 티타늄 이상의 살덩이가 방아 찧는 기계처럼 앞뒤로 쿵! 쾅! 쿵! 쾅! 길은 그 살덩이에 스치기만 했는데도 창이 구겨졌고, 티안과 트라칸은 눈사태, 얼음사태, 바람사태, 이런저런 사태에 휘말려서 전신 타박상을 입었다.
“뒈져! 너도 뒈져! 개 같은 새끼야!”
흑마법사 핀트가 악을 지르며 정면의 카보머를 씹어 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원한이 악신을 조종했다.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던 두 개의 오른팔. 그중 채찍을 든 손을 들어 올려 정면을 향해 낫을 휘두르듯이 확!
채찍에 강렬하게 맺힌 순수한 화염의 정화가 악신의 앞을 휩쓸었다. 영하 수십 도의 온도 따윈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검은 화염의 파도가 전면을 거침없이 쓴다.
꾸와앙!
화염의 파도와 함께, 고막을 찢어발길 듯한 굉음이 귓가를 때린다. 채찍 끄트머리의 순간 속도가 음속을 넘었기에 일어나는 현상!
더욱이 끄트머리의 크기만 해도 집채만 한 덩치를 자랑한다. 득의양양하게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카보머 등은 음속을 넘은 화염과 음파 공격에 전신이 너덜너덜해져서 굴러 자빠졌다.
수백 겹이 넘는 오러의 원이 일순간에 생겼다가 채찍 끄트머리에 처맞고 풍선처럼 터져나가고, 그 뒤로 카보머 등 삼인이 굴러다닌다.
흑마법사에겐 천운의 기회! 채찍을 쥔 오른팔이 망치처럼 쓰러진 카보머를 내려쳐 뭉개기 직전!
까득!
“컥!”
뼈 사이를 파고드는 섬뜩한 감각이 흑마법사의 뇌리에 치달린다! 핀트가 악신의 감각계를 점검하자 뒷목에 벌레가 내려앉은 게 느껴졌다.
벌레의 정체는 웨일의 조! 베노브란도가 경추 관절에 창을 꼽고, 웨일이 전력을 다한 내려찍기로 창을 끝까지 박아 넣은 후, 무기 폭발을 일으켰다!
뻥! 하고 터진 마법 무구가 관절 사이사이로 금속 조각을 퍼뜨린다. 목을 돌리기만 해도 관절에 박힌 유리조각이 드르륵! 긁히는 것만 같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흑마법사를 괴롭혔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웨일이 근처에 나뒹구는 철제 무기를 몇 개 목뼈에 박은 뒤, 전력 마법을 일으켰다.
꽈릉! 꽈과광!
“꺄그그! 끄에약!”
카보머의 뇌전 오러에 웨일의 뇌전 마법까지! 악신의 육체는 튼튼하여 망가지지 않지만, 뇌속에 파묻힌 흑마법사는 두 번에 걸친 뇌전 공격에 온몸이 엉망이 되었다.
딱딱! 마주치는 이빨 사이로 스파크가 튀고, 머리로는 검은 연기가 펄펄 올라온다. 눈알이 터지고, 잇몸에 피가 주르륵 흘렀다.
“으헤! 흐헤헤헤! 짜릿한데!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아! 열혈의 반대말은 냉혈이 아니라 흑마법사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흑마법사가 그 누구보다도 열혈스럽게 눈을 빛내며 악신을 조종했다
뇌전에도 지지 않는다. 눈알이 터지고 무릎이 갈라져도, 목뼈에 쇳조각이 박혀서 그 세된 고통이 전신을 괴롭혀도 칠지(七肢)를 놀려 앞으로! 앞으로!
“퉷! 시건방진 새끼들!”
흑마법사 만자흐마비코가 피가 섞인, 아니 피밖에 없는 침을 뱉었다. 그가 이빨을 까드득 갈며 고통을 연료 삼아 왼팔을 움직이는 정신력을 발휘했다.
탁! 왼팔에 잡힌 창이 들려서 등에 닿았다. 먼지를 쓸어담는 쓰레받기처럼, 대각선으로 세워진 창날이 등을 쓸며 위로 올라갔다.
엉덩이, 척추, 날개뼈를 지나 목뼈에 자리 잡은 웨일 일행을 쓸 듯이 덮쳐오는 창날! 그 크기와 두께는 마치 성벽이 습격하는 것과도 같았다.
“밑으로 피해!”
웨일 다음 순번으로 목뼈를 가르려던 나세르 2세가 목 밑으로 뛰었다. 밑으로? 목 아래로? 그러니까 어깨하고 목 사이로? 웨일은 밑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쓰러진 채, 불도저처럼 전진하는 악신. 악신의 어깨는 깨진 얼음이 모여서 고체의 급류가 형성되어 있었다. 저기에 휘말리면 사지가 부러져서 죽기 마련이다.
“쯧!”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인간은 미물과 다름없다. 웨일은 나세르 2세의 뒷목을 잡고, 마찬가지로 무식하게 뛰어드는 베노브란도도 잡은 뒤에 위로 뛰어올랐다.
창날을 피하곤, 엉덩이에 착지한다.
“목으로 올라가면서 척추를 베!”
나세르 2세의 명령을 웨일과 베노브란도가 따랐다. 일차적으로 베노브란도가 살을 베며 올라가고, 다음으로 웨일이 상처를 깊게 벌린다. 마지막으로 나세르 2세가 오러 블레이드를 터뜨려 척추 사이사이를 떨어뜨린다.
콰과곽!
눈을 베고, 목을 베고, 무릎을 벤다. 얼음을 터뜨리고 파묻어도 악신은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기어간다. 마침내, 한걸음에 수십 미터씩 쭉쭉 나아가던 악신이 우왕좌왕하던 병력을 앞에 뒀다.
“흐흐… 먹어라.”
시각이 아닌 육감으로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던 흑마법사 핀트. 그가 지그시 감은 눈꺼풀 사이로 피눈물을 줄즐 흘리며 흐리게 미소 지었다.
그의 명령은 그의 육체를 타고 악신의 뇌로 전달되었고, 악신의 뇌는 명령을 받아 조신하게 입을 벌렸다. 입에서 나온 것은 상냥한 불꽃 채찍. 채찍이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구렁이처럼 구불구불한 움직임을 보이며 쏜살같이 움직인다.
쉬쉬쉿!
코끼리도 한입에 집어삼킬 만한 쩍 벌어진 아가리! 그 지옥의 입구에서 구렁이가 빠져나와 병사들에게 향한다. 하지만 병사들은 당황하지 않고 진영을 잡았다.
그들 또한 눈과 귀가 있니 악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안다. 퇴로가 막혀있으면 죽을 각오로 적을 막는 것 말고는 살 길이 없다. 병사와 익스퍼트가 구렁이를 막는 사이, 악신이 기어갈 때부터 준비하던 마법사들이 몇 개의 마법을 완성했다.
“전부 비켜라!”
쩌렁쩌렁한 목소리. 7결 마법사 이디티 에이와 살저 하라한! 그 둘이 보석과 스크롤, 연원을 알기 힘든 마법 무구를 주렁주렁 달고 주문을 외웠다.
흑마법사에게 쓰기 위해 아껴뒀던 공격용 마도구! 마지막으로 르데앙이 축성(祝聖)하여 성력을 품은 공격 마법이 악신과 검은 채찍을 향해 아낌없이 쏘아졌다.
뿌우우!
뿔피리에서 튀어나온 화염의 용이 검은 채찍에 휘감긴다! 성력을 품은 화염의 용은 검은 채찍을 모조리 불사르곤, 악신의 머리통을 휘감은 뒤, 정수리를 으스러뜨릴 듯이 깨물었다.
녹, 적, 청, 흑, 황 색색의 보석이 바람을 타고 흘러 악신의 등에 오망성을 그리며 박힌다. 찬란하게 빛나는 오색의 선이 악신을 억압하고, 그것에 담긴 성력이 악신의 피부를 태운다.
뇌전이 타오르는 그물망이 손을 묶고, 불타는 암석구가 안면, 머리통, 등짝을 후려갈긴다. 칼날 폭풍이 휘몰아치며 눈과 코를 갈고, 집체만한 돌덩이도 가루로 만들 파동이 눈과 입을 타고 들어가 악신의 내부를 진탕 시킨다.
수많은 공격 마법이 악신을 괴롭힌다. 꼼꼼히 준비한 마법사의 서슬퍼런 기세에 마스터급 강자도 감히 악신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무수한 공격 끝에, 이디티 에이가 휘청이며 외쳤다.
“지금이오! 살저 하라한!”
“끄오옵!!”
살저 하라한이 코피를 흘리며 양손을 위로 쳐들었다. 그가 적색과 청색으로 빛나는 네 개의 구를 합쳤다.
“사성(四性)의 법(法)! 두 개의 이치(理致)는 상생(相生)하여 혼연(渾然)이 되고, 두 개의 이치는 상극(相剋)하여 양극(兩極)이 되니!”
적색과 청색 구가 더해지는데 백색으로 물든 구가 탄생한다. 두 개의 백색 구는 하나는 외부로, 하나는 내부로 힘이 흐르며 살저 하라한의 손에 들렸다.
두 백색 구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살저 하라한의 피부가 녹슨 쇠 표면이 떨어지듯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의 마법을 보조하던 수십의 마법사들도 비틀대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마법이… 마법이……. 힘들어 죽겠네! 시발! 뒈져!”
포옹!
살포시 날아간 두 백색 구가 악신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잠깐의 고요 후, 악신의 아가리가 터져나갔다.
고오오오!
입안에서 터진 막대한 폭발! 악신의 눈과 입, 코에서 백색 섬광이 분출된다! 귓가로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무한하게 이어지는 폭발이 악신의 입을 타고 넘어가 뱃속까지 강타했다!
“그어어어어!!”
악신이 발버둥친다. 전면에 쌓여있던 눈이 섬광에 닿은 여파만으로도 증발할 정도의 막대한 열량이 입에서 흐른다.
둥! 두둥! 두두둥! 배에서 무수하게 북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악신의 입으로 질척한 피가 흘러나온다. 피는 흐르자마자 부글부글 끓으며 증발한다.
울룩불룩!
외계생명체가 내장을 잡아먹는 것처럼, 악신의 뱃가죽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꿈틀거린다. 활기찬 문어를 봉투에 집어넣고 입구를 꾹 막으면 저런 모습이 펼쳐질까. 어쨌든 생명체의 배가 보일만 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꿈틀거림은 갈수록 격해지고, 이윽고 복부 중앙이 시커멓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악신의 입에선 검은 불꽃 대신에 새까만 연기가 끝도 없이 흘러나오고, 눈에 보이는 거대한 악의의 빛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쿠웅!
그 끝에, 배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의 종결과 함께 악신이 얼음 대지에 몸을 눕혔다. 이마를 땅에 대고, 칠공에서 끈적한 무언가와 함께 연기를 토해낸다.
“으, 으으…….”
움직이지 않는 악신이지만, 그 누구도 감히 다가가지 못한다. 머리통이 굴러가기만 해도 백 단위가 넘는 사상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대한 동체는 아무리 정지해있다고 해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위압감을 풍겼다.
“해… 해치웠나?”
한 병사가 조심스럽게 악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절대로 해선 안 될 말이었다.
병사가 막 창으로 악신의 머리통을 찌르기 전.
덥썩!
검은 무언가와 함께 병사의 몸이 사라졌다!
병사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빙하 위에 살며시 놓인 두 다리밖에 없었다. 다리는 정강이 중간 부분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잘린 듯이 깔끔한 절단면을 보여주었다.
찍!
정강이 절단면에서 피가 푸슉! 튄다. 정강이 윗부분은? 정강이 윗부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설명하기가 심히 곤란하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답하기 아주 쉬웠다.
정강이 윗부분, 일반적으로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병사의 육체는 새까맣게 타오른 악신의 오물거리는 입 안에 들어갔다. 악신은 인간의 살점을 음미하며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크헤헤… 헤헤헤! 으헤헤헤헤헤!! 아까웠어.”
악신 내부, 핀트가 다 타버린 얼굴을 바스락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감각을 곤두세워 생존자를 살펴보았다. 만자흐마비코를 비롯하여 흑마법사는 두 손으로 꼽을 정도만이 살아남았다.
“이만큼이나 살아남았잖아. 배가 아니라… 계속 입 안에서 터뜨렸어야지.”
핀트는 바깥에 있는 중앙의 병력이 그의 혼잣말을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중얼거렸다. 그가 다 타버려서 광대뼈가 보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환히 웃었다.
“하하… 그리고… 그리고 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한, 종말의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의 웃음을 보여주며 마지막 힘을 모아 악신을 조종한다. 핀트가 광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코앞에 인간이 있잖냐아아!!”
푸화악!
수백 가닥의 검은 채찍! 악신이 돌연 입을 벌리고, 그 안에서 연기와 썩어가는 내장과 함께 검은 채찍이 튀어나와 병사들에게 향한다!
“어, 어어!”
“살려줘!”
우득!
“아, 안… 커헉!”
미처 뭔갈 할 새도 없이, 수백 명의 병사가 채찍에 옭아매진다! 라코아 등의 병력에 있는 익스퍼트가 오러로 채찍을 갈랐지만 그마저도 소수에 불과!
악신이 입을 벌리고, 다시 다문 한순간에 200이 넘는 병사들이 산채로 악신의 아가리에 들어갔다. 대경한 웨일 등이 달려가 악신의 볼을 베고, 찌르고, 때렸지만… 이미 늦었다.
“꺼지라고!”
핀트가 악을 쓰며 악신을 움직였다. 여섯 개의 팔이 쿵쾅거리며 빙하를 때리고, 대검과 창날, 채찍이 전면을 휩쓴다!
콰과광!
“끄헉!”
웨일은 창날 끄트머리에 맞아 왼팔 뼈가 부러져서 하늘을 날았다. 카보머의 조는 손바닥에 맞은 파리처럼, 대검 날을 맞곤 어디 한 군데가 뒤틀어져서 저만치 날아가 땅을 나뒹굴었다.
트라칸과 티안, 길은 채찍이 만들어낸 긴 얼음 고랑에 떨어졌다. 그들이 미처 고랑을 올라오기도 전, 망치처럼 내려친 주먹질에 피투성이가 되어 얼음에 파묻혔다.
죽을 각오를 한 흑마법사의 조종에 한순간에 뒤바뀐 전황! 다시 입을 쩍 벌리고 불꽃 채찍 세례! 일백이 넘는 병사가 채찍에 감겨 입 안으로 들어간다.
우득! 우드득!
볼 너머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악신의 몸이 점차 변해간다. 울긋불긋했던 피부에 생동감이 감돌고, 흑마력과 사기가 하나로 합쳐지며 불완전했던 악신의 몸이 점차 정상 컨디션을 되찾는다.
그으으!
병력이 보관하던 왼쪽 정강이도 어느새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터진 눈알도 회복을 시작한다.
악신이 두 다리로 우뚝 서며 오만하게 수천의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악신의 시야를 공유하던 핀트가 스산하게 웃었다.
“흐흐… 이제 죽을 시간이다. 같이 죽자. 중앙의 개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