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 * *
“들어가! 들어가!”
눈, 코, 귀 등으로 침입하는 일흔 명의 무인들!
왼쪽 콧구멍으로 돌입한 웨일 일행은 큰 살덩이를 서걱서걱 자르며 깊숙히 들어갔다. 피와 끈적한 액체가 밑바닥에 질질 흐르고 코가 썩는 악취가 풍기지만, 그 누구도 돌아가겠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여기서 무작정 위로 뚫으면 되는 거겠지! 하!”
꽈릉!
라코아는 더럽다기보다는 신나 죽겠다는 표정으로 사방에 널린 살더미를 베었다. 하나둘 라코아를 따라 콧구멍을 베며 안으로 들어간다.
적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몸 안까지 들어온 돌대가리는 세상천지를 뒤져도 이들밖에 없을 것이다. 웨일도 라코아와 함께 신나게 콧구멍을 베며 위로 올라갔다.
흔들흔들!
“어, 어어?”
“조심해!”
성력이 더해진 오러에 고통을 느끼는 걸까. 악신의 머리가 위아래, 좌우로 흔들리며 안쪽에 있는 이들까지 균형이 무너졌다. 시간이 그들의 편만은 아니었다.
신 나게 콧구멍만 자를 때가 아니다. 뇌로 향하는 길을 뚫어야 했다. 웨일이 뒤로 손을 내밀었다.
“창.”
“여기 있습니다.”
따라온 익스퍼트 한 명이 예비용 창을 건넸다. 웨일은 대각선 윗 방향을 노리고 볼텍스 피어싱을 날렸다. 세차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백색 오러가 살을 뚫고 저 안쪽까지 지지다가, 깡! 하는 소음과 함께 막혔다.
콰가가각!
전동 드릴을 무난하게 막는 티타늄 주괴처럼, 볼텍스 피어싱이 단단한 뼈대에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문다.
마침내 빛과 불똥만을 남기고 볼텍스 피어싱이 소멸했다. 다들 고개를 빼꼼 내밀어 볼텍스 피어싱이 뚫은 살덩어리를 구경했다.
단단한 뼈를 볼텍스 피어싱이 몇십 센티미터 가량 파고든 흔적이 남아있다. 볼텍스 피어싱으로도 저 정도가 고작이면 미터 단위의 안쪽 두개골을 뚫는 것은 무리였다.
웨일은 무리를 이끌고 코안 쪽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비강(鼻腔) 끄트머리에서 살을 파고 가는 거야.”
사기 충만하게 살을 베며 구불구불한 콧구멍 언덕을 지나자, 거대한 살덩어리 동공이 나온다. 웨일이 잠시 동공 입구에서 멈춰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파지지직!
동시에 우측에서 뇌전이 터지며 큼지막한 살덩이가 폭발했다. 그리곤 홀로 보무도 당당하게 카보머가 등장했다. 그가 웨일 등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웨일! 여기서 만나게 되었군.”
“그렇죠. 생각해보면 굳이 좌우로 나눠 들어갈 필요도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렇지! 꼭 작전을 짜면 잘 가다가 엉뚱한 데서 삐끗하는 게 무인의 숙명 아닌가!”
카보머가 호탕하게 웃으며 웨일 일행에 합류했다. 그가 웃음기를 지우곤 비강 안쪽을 가리켰다.
“위를 뚫어봤나? 이 악신인지 투혼인지 하는 개자식은 안쪽에도 뼈가 있어서 뚫는 게 쉽지 않더군.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네.”
“인간도 똑같습니다. 어쨌든, 비강 너머의 뼈는 그나마 얇으니 뚫는 것도 쉬울 겁니다. 그리고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이 악신을 이루는 뼈에는 몬스터의 것도 들어가 있습니다.”
“…아아! 약한 부분을 찾아 거기만 깨면 된다 이거지!”
“예. 일단 큰 거 한 방 날려서 살 좀 치워주시죠.”
“그거야 쉽지.”
흥! 하고 카보머가 콧김을 불며 양 주먹을 마주쳤다.
팡! 파앙! 우르릉!
주먹을 마주치고 떨어뜨릴 때마다 사이로 번개가 우렁차게 울린다. 이윽고 자주색 번개가 카보머의 주먹을 넘어 양팔마저 휘감았다.
번개의 충전이 극에 달했을 때, 카보머가 양손을 펼쳐 수도(手刀)를 만들었다. 그가 번개의 구로 수도를 찔러 넣으며, 마치 합장하듯이 양팔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만수자천(萬手紫天)!
쿠르르릉!
번개로 이루어진 수인(手刃)이 비강을 빼곡히 채운다! 작은 공동은 보랏빛 뇌전으로 가득 찼다. 흐르는 핏물도 뇌전에 튀겨져 증발한다! 안에 담긴 흑마력 따위야 뇌전의 정화에 한줌의 저주도 남기지 못하고 사멸했다.
뇌전의 성질을 띤 오러 수인이 살점을 분쇄한 끝에 뇌로 향하는 길을 막는 뼈가 드러났다.
그 순간, 악신이 머리통을 밑으로 기울였는지 평평한 동공이 급격한 경사로로 변했다. 다들 살점에 칼을 박아넣고 버티는 그 순간, 웨일은 훤히 드러난 안쪽 뼈대 사이에 희미하게 다른 색깔을 풍기는 뼈를 발견했다.
“하앗!”
살점을 밟고 뛰어올라, 염동력으로 가속도마저 추가하여 차지 공격! 창극에서 사중나선을 그리는 백색 오러가 힘을 증폭시킨 끝에 몬스터의 뼈대로 이루어진 부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뼈가 아닌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두개골 안에 고이 보관된 뇌가 그 속살을 드러냈다.
“마침내…….”
웨일은 일그러진 살점에 손바닥을 푹! 집어넣고 초능력 파동을 발휘했다. 뇌에 흐르는 복잡한 흑마력 흐름과 그 안에 담긴 흑마법사의 생명력을 느끼며, 녀석들이 어디 있는지 찾는다.
흑마법사를 찾는데 엉뚱한 게 그의 감각에 걸렸다. 위쪽 좌우측, 나세르 2세와 티안이 가장 먼저 귀를 통해 뇌로 진입한 것이다. 트라칸과 아본은 조금 막힌 듯하지만 웨일처럼 방법을 찾았는지 한쪽 뼈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늦으면 안 되지.”
죽여도 내가 먼저 발견하고 죽인다. 그들 사이에 만자흐마비코가 있는지 찾아야 했다. 웨일이 섬뜩한 미소를 흘리며 살기를 끌어올렸다.
“!!”
죽음을 반복하며 살아온 전생자의 살기는 카보머도 흠칫 놀랄 정도로 농밀했고, 광기가 넘쳐흘렀다. 기세등등하게 웨일을 따라 왼쪽 콧구멍에 들어온 열 명의 익스퍼트도 악신을 잊고 웨일을 뚫어지라 바라본다.
웨일이 창을 들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백색의 오러가 창을 휘감으며 올라온다. 백색에 푸른색이 섞이지만, 그 누가 푸른색을 보고 성력을 떠올릴 수 있을까!
살기는 푸른색마저 집어삼키며 오러를 기괴한 색으로 변환시켰다. 살기마저 더해진 오러는 삼원색(三原色)의 조합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광기의 색이 탄생했다.
어두운 비강 속, 빛이라고는 익스퍼트가 내뿜는 오러가 전부. 횃불과도 같은 오러의 군무 속에서 고개를 숙인 웨일의 얼굴에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그가 초능력 파동에 집중하다가 고개를 휙! 들었다. 웨일이 한 자 한 자 똑똑히 끊어 뱉으며 창을 들었다.
“찾! 았! 다!”
끼이익!
기괴한 빛을 내뿜는 창이 괴음성(怪音聲)을 발하며 주인의 마음에 동조했다. 창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주인의 손에서 팔딱거리며 기쁨의 춤을 추었다.
웨일이 웃음을 흘리며 발광하는 창을 손에서 놓았다. 창이 쏘아진 방향은 흑마법사가 숨어있는, 대뇌 중심부!
콰르르르르!!
볼텍스? 아니다. 볼텍스 피어싱? 그것도 아니다. 태풍을 집약한 것과도 같은 기괴하게 빛나는 소용돌이가 뇌를 갈아버리며 저 안쪽까지 날아갔다.
성력이 뇌조직의 구조를 약화시키며 오러가 살점을 간다. 안에 담긴 섬뜩한 살기는 악신의 뇌를 근본에서부터 죽인다. 순식간에 눈앞에 거대한 뇌 동굴이 만들어졌다. 웨일이 쌍검을 꺼내 들며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쌍검으로 펼치는 연환십자로! 그림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십자 검기가 동굴 끝까지 날아간다. 이내 십자 오러가 동굴 끄트머리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길을 넓힌다. 웨일은 미친 사람처럼 동굴을 달려가며 검을 휘둘렀다.
“만자흐마비코! 네가 살아있었구나!”
듣기만 해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살기 가득한 목소리! 카보머도 잠시 주춤할 정도였다. 카보머가 마나를 순환시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용기있게 외치며 뇌 동굴로 발을 내디뎠다.
“우리도 어서 따라가지!”
카보머가 황소처럼 발을 묵직하게 밟으며 웨일을 따라 뇌 동굴로 들어갔다. 그의 전신에 서린 뇌광이 웨일이 썰어놓은 뇌 조직을 소멸시키며 동굴의 넓이를 넓혔다.
쿵쿵! 뇌광이 터질 때마다 성력과 살기에 약화되었던 뇌 조직이 후드득 떨어진다. 두 명이 겨우 어깨를 맞댈 정도로 넓었던 뇌 동굴이 족히 두 배 가까이 넓어졌다. 뒤이어 익스퍼트가 카보머의 뒤를 따라 뇌 동굴로 진입했다.
“으아… 나 저 상태의 웨일 따라가기 진짜 싫은데.”
같은 연구소 출신, 라코아만이 토할 것 같은 표정을 한 채로 가장 후열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 * *
“으하하! 하하! 하하하하!”
웨일은 순수한 기쁨의 웃음을 터뜨리며 뇌속을 돌파했다.
저 안에서 선명한 기운이 느껴진다! 촛불처럼 희미하게 인간 고유의 생명력이 남아있다. 스물 남짓한 생명력 보유자가 뇌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과연 그들 중에 만자흐마비코가 있을까. 웨일은 있다고 확신했다. 육체도 뒤바뀌었지만, 초능력과 성력이 전해주는 초월적인 예감은 그의 핏줄에 저 안에 남아있음을,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논리를 뛰어넘은 예지! 웨일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황제를 호위하는 무사처럼, 밝게 빛나는 연환십자로가 그의 주변에 무수하게 떠오른다. 쌍검술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연환십자로가 뇌를 파고들며 조직을 터트렸다.
쿵! 쿠궁! 쿠우웅!
악신은 이제 고개를 흔드는 수준을 넘어서 발광을 하고 있었다. 흑마력, 몬스터에게 그 무엇보다 치명적인 성력이 뇌에 직통으로 전해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텔레파스를 통해서도 악신이 고통스러워 하는 게 똑똑히 느껴진다. 육체에 잠들어있는 흑마법사들이 공포에 질려, 그들에게 다가오는 확정적인 죽음에 어찌할 바를 몰라 절규하는 것에 손에 잡힐 듯이 뻔했다.
퍼석!
인간을 예로 들면 시상하부와 시상을 지나, 뇌량마저 넘어서 대뇌에 발을 디딘 웨일! 그가 대뇌의 좌우를 잇는 3~4평 넓이의 살덩어리를 발견했다.
살덩어리는 공포에 질렸는지 웨일이 가까워질 수록 박동수가 빨라졌다. 웨일은 지체하지 않고 살덩어리를 썰고 안으로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살점과 빈 공간, 그리고 육벽에 용종과도 같은 것이 톡! 튀어나와있는 광경이 웨일의 눈앞에 펼쳐졌다.
“흐흐! 하하하! 여기 있었구나!”
웨일이 호탕하게 웃으며 용종을 향해 다가갔다. 대장암처럼 톡 튀어나온 용종이 바로 악신과 하나가 된 흑마법사들이었다.
몸을 바치고, 머리만 남은 죄악의 집단. 쉰 개가 넘는 머리통이 있지만, 절반 이상이 고개를 푹 숙이고 칠공에서 검은 피만 주르륵 흘려대고 있다.
웨일 일행과 싸우며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었다. 웨일은 곳곳에 열댓 개 정도, 머리통과 비슷한 형태를 한 뇌조직을 발견했다. 악신에게 흡수된 흑마법사 들이었다.
“네노옴……!”
으드득!
흑마법사 핀트가 이빨이 부러질 기세로 이를 갈았다. 웨일은 킥킥 웃으며 그에게 검을 내밀었다. 부드럽게 허공을 가른 검신이 그의 머리를 뚫고, 뇌까지 침입했다.
곧이어 백색 오러가 피어올라 핀트의 뇌를 파괴했다. 그의 눈, 코, 귀로 검게 물든 뇌수가 흘러나오고, 핀트의 고개가 축 처졌다.
“허윽?!”
머리만 남은 흑마법사들이 기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란 건 알지만, 그래도 일초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였다.
고요한 살덩어리 속, 웨일은 막힘없이 걸어서 안면이 온통 검은 피로 범벅이 된 한 남성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히익?!”
남성이 비명을 질렀지만, 머리만 남은 채로는 도망갈 방법도 없다. 바사르처럼 새로운 육체를 얻는 것도 장로급 마법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일반 흑마법사는 그조차 불가능했다.
남성이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다. 그렇게 몇 초…. 몇 초가 지나도 올 고통이 오지 않는다. 그가 희미한 희망을 품고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얼굴을 한 웨일과 눈을 마주쳤다.
“어…….”
어, 이건 텄다. 흑마법사인 그는 인간의 감정과 그 한계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의 지식을 기반으로 분석했을 때, 웨일의 표정은 인간의 범주에 있는 이가 해선 안 되는 표정이었다.
저런 표정을 한 녀석에게 잡혀서 살아남길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다. 남성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가 편히 죽음을 기다릴 때, 웨일이 웃으며 한 말이 그를 놀라움의 새로운 경지로 이끌었다.
“아버지!”
“아… 뭐라고?”
“아버지! 접니다! 저 웨일!”
“자, 자식이… 나는 자식이 없…….”
“아냐. 있어! 잘 생각해봐! 만자흐마비코!”
만자흐마비코! 그는 어떻게 웨일이 그의 이름을 아는지, 그리고 변형된 육체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자신을 알아보았는지 궁금할 겨를이 없었다.
가증스러운 이종족 연합지역, 중앙에서 파견된 초고수가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자흐마비코가 죽음의 문턱에서 머리를 굴릴 때, 웨일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힌트를 줄 게. 약 이십 년 전. 당신은 신인류 프로젝트를 위해 세포를 공여(供與)했어. 그렇지?”
“……?”
“이래도 모르겠어? 내 이름을 말해줄게. 나는 웨일. 니웨바 아일 토르소 만자흐마비코 감마 177/3이야. 이래도 모르면 정말 실망할 거야.”
“어… 허억?! 너, 너는!”
“흐흐… 이제 알겠지. 나는 당신을 찾아 이 북쪽까지 왔다고. 제노이에서 아일을 죽였어. 사막에서 니웨바를 죽였지. 이제 만자흐마비코, 당신만이 남았어.”
“제, 제노이에서… 뭐라고? 설마 사막에서 일어난 일도 네가…….”
“자! 이제 설명 타임은 끝!”
“꺼흐흑?!”
만자흐마비코가 말을 잇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웨일이 그의 머리를 붙잡고, 안면째로 살덩어리에서 뜯어냈기 때문이다!
우드득! 뚝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뇌에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만자흐마비코의 목뼈가 부러지고, 악신의 목이 뽑히는 소리였다. 그와 거의 동시에 70명에 가까운 익스퍼트가 살덩어리 안에 도착했다.
“이놈드을!”
분기탱천한 외침이 울리고, 바리다의 시미터가 허공을 갈랐다. 이미 죽은 핀트가 시미터에 목이 잘려 떨어졌다. 바리다를 필두로 익스퍼트가 우르르! 몰려와 반항하지 못하는 흑마법사의 목을 베고, 두개골을 세로로 쪼갰다.
파삭! 쩍!
아무리 몬스터의 육체로 강화되었다 해도 악신처럼 상식을 초월하는 내구도를 갖추지 못한 흑마법사들! 오러의 힘에 단단한 두개골도 산산이 쪼개지며 뇌조직이 흩날린다.
랄커트도 갈리어드도 한 명씩 흑마법사의 목을 베었다! 대화도, 포로도 그 어떤 것도 필요 없다! 밖에서 악신이 날뛰는데 속전속결로 죽인 뒤 나중에 조사해주마!
악신이라는 거대 생명체를 만든 것 치고는 지나치게 허무하게 사망한 흑마법사들! 하지만 익스퍼트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데 모인 그들이 뇌조직을 향해 온 힘을 쏟아냈다.
트라칸의 대검이 살덩어리를 크게 가르고, 티안이 살과 뇌가 연결된 살점을 자른다. 카보머의 주먹질이 뇌 안쪽에서 크게 터져 뇌를 통째로 지지고, 나세르 2세의 오러 블레이드가 대뇌를 조각낸다!
“부셔!”
“없애!”
쿠과광!
파괴되는 뇌 속에서, 웨일은 홀로 만자흐마비코의 머리통을 높게 쳐들었다. 그가 성력과 신체강화 초능력을 전해주어 만자흐마비코의 삶을 연장해주었다.
죽음과 파괴의 향연 속에서, 웨일이 상냥한 어투로 만자흐마비코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 당신을 찾아 여기까지 왔어요. 저를 탄생시킨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그의 말은 이곳에 모인 이들의 귓가로 속속들이 들어갔다. 익스퍼트들은 웨일이 말한 ‘아버지’라는 단어에 깊은 의문을 가졌지만, 악신을 죽이는 게 더 중요해 아무도 그를 막지 않았다.
단 한 명, 같은 실험체 출신인 라코아를 제외하면. 라코아가 웨일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더듬거리는 말투로 웨일에게 말했다.
“아, 아버지? 웨일… 너 설마…….”
“흐흐! 그래. 라코아, 이게 내 목표였어! 나를, 우리를 탄생시킨 아버지를 찾아가서! 그들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 나 웨일, 니웨바 아일 토르소 만자흐마비코! 토르소를 제외한 니에바와 아일을 죽였고, 이제 만자흐마비코만 남아 있다고!”
“너, 너 인마… 그,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의미?”
획! 웨일이 고개를 돌려 라코아를 바라보았다. 살기마저 뛰어넘어, 죽음과 생명의 순환이 혼돈으로 몰아치는 눈동자에 라코아가 흠칫했다.
“라코아. 이것이 내 인생이야. 팔만 사천 가지의 삶의 형태 중 하나. 나는, 나 웨일의 인생은 아버지를 죽임으로서…….”
-우오오오오오!!
악신의 외침이 웨일의 입을 막았다. 그래. 대화 같은 거나 할 시간이 아니지.
말을 멈춘 웨일이 서슬퍼런 눈빛으로 만자흐마비코를 들어 바닥에 내려치기 직전.
기우뚱!
세상이 기울었다. 웨일도, 라코아도, 뇌의 모든 것이 기울더니… 한쪽으로 휙! 하고 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