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
002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들다.
미친 과학자가, 아니면 미친 대통령이, 그것도 아니면 그냥 미친놈들이 무언가 미친 짓을 시도했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실패의 결과로 세상은 깔쌈하게 망했고, 나 같은 기이한 변종들, 흔히 말하는 초능력자들이 극소수 탄생했다.
*****
두 번째 삶은 의외로 일찍 끝났다.
세상이 망해가는 지경에도 아이는 끊임없이 태어난다.
솔직히 부럽다. 이전 삶의 나는 섹스를 누릴 기회가 없었는데, 나의 생물학적 부모님은 도대체 어디서 기회를 잡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아포칼립스에서 아기란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생존의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이번 삶은 TPO를 잘못 골랐다. 나는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시궁창이 흐르는 하수구에 버려졌고, 잠시 발버둥을 치다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세 번째는 따듯한 느낌에 감싸여 있다가 갑자기 추워지더니 끝났다. 웅얼대는 비명에 집중해 보건대, 어머님이 배에 총을 맞은 것 같았다.
총알은 그녀의 배와, 나의 배를 관통했고, 나는 그대로 갈가리 찢겨 사망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도 상황은 비슷했다. 눈도 뜨지 못하고, 귀도 듣지 못할 때 죽었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사망 원인의 절반 이상은 아사(餓死)였다.
그 무렵의 나는 내가 어떻게 태어나고 죽었는지 일일이 세는 것을 포기했다.
다시 태어난 이유? 그런 걸 따지는 게 바보였다.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왜? 가 아닌, 어떻게? 였다.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한 곳에 태어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만이······.
삶과 죽음의 엿 같은 순환 고리를 대강 열··· 몇 번쯤 반복했을 무렵. 나는 드디어 눈을 뜨는 것에 성공했다.
*****
편하게 계산하자면, 두 번째 삶의 시작은 고통이었다.
바들바들!
짜릿한 통증이 손발에서 머리끝까지 단숨에 관통한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던 첫 번째 삶의 어린 시절, 전기 파리채를 가지고 놀다가 손끝에 전기가 흐른 적이 있다. 그때 고통을 열 배 정도 곱하면 지금과 비슷할 터이다.
사실 이때 나는 ‘또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아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아기에게 전기고문을 하나? 이건 당연히 실패할 각이다.
몇 번의 발버둥, 살이 타고 신경이 망가지는 시간이 지나가자 몸이 편안해진다. (원래 아기가 힘이 없긴 하지만) 나는 전신의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퉁! 퉁!
가만히 늘어져 있자니 진동이 전해진다. 진동?
마치 어미의 뱃속에 있는 것이 아닌, 유리통 안에 들어간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이다.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
눈을 뜨자 꽤나 늙수그레한 남자의 놀라 하는 얼굴이 보였다. 그 남자가 방정맞은 춤을 추며 내게 다가오더니 양손으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성공이야!)
귓가가 막힌, 먹먹한 소리. 양손으로 끌어안았는데도 망가지지 않는 연약한 아기의 몸.
내 예상이 맞았다. 나는 누군가의 뱃속이 아닌, 작은 원통 안에 담겨있었다.
시야는 온통 초록색이다.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니 팔다리에 바늘이 꽂혀있고, 탯줄 역시 기계관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남자가 익숙한, 그리고 약간은 변형된 한국어로 내게 말했다.
(눈을 떴군. 이놈아. 내가 보이냐? 이 귀여운 것.)
나는 살짝 긴장했다.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난 걸 알고 한 말인가? 이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 아니지?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나를 원래 자리에 놓고는 방을 나갔다. 그런 뒤 방 너머에서 바쁘게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잠깐의 시간, 나는 내가 있는 방을 둘러보았다. 위, 아래가 막혀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긴 했다.
‘책장?’
내가 있는 곳은 원형으로 둘러싸인 책장의 중간 부분이었다. 책장에는 책 대신 나와 같은 원통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 원통에 나와 같은 처지의 아기가 담겨 있다.
추욱······!
바쁘게 책장과 원통을 구경하는 와중, 내 옆에 있는 아기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아마 저 녀석도 나처럼 전기 지지미를 당하다가 버티지 못하고 죽은 거겠지.
그러자 뭔가를 조작하던 그 남자가 짜증을 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거칠게 옆자리의 원통을 꺼내 든다.
푹푹! 관이 뽑히는 소리가 유리통을 뚫고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남자는 뚜껑을 열더니 안의 내용물을 옆의 처리시설에 무정하게 쏟아버렸다.
콸콸콸! 주르륵!
영유아 살해를 끝낸 그가 내게 다가왔다. 그가 유성 매직으로 내가 담긴 원통에 글씨를 썼다. 선명한 아라비아 숫자로 적힌 글귀는 ‘51’ 이었다.
(네 이름은 51번이다. 다음에 또 보자꾸나.)
남자가 그렇게 말한 뒤 방을 나갔다. 이쯤 되면 고졸도 못된 나라도 이곳의 정체를 안다.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디자인 베이비.’
그게 내가 태어난 곳의 정체였다.
*****
내가 태어난 지 3년이 지났다. 보통 이맘때쯤 아기는 어떻게 돌아다닐까.
나는 애를 키웠던 기억이 없고, 6살 이전의 기억도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게 안다. 최소한 나만큼 장성하게 자라지는 않았다.
휙휙!
세 살짜리 아기가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뜀박질을 한다.
사실, 아기라고 부르긴 힘들다. 나의 신장은 130센티가 넘었다.
내가 있는 곳은 넓은, 너무 넓어서 축구 경기장이 세 개쯤 들어갈 만한 지하 훈련장이었다. 이 훈련장에 나와 같은 어린아이 수십 명이 각종 운동에 땀을 흘렸다.
“더 정확하게! 호흡을 골라!”
다른 아이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걸 알아챈 걸까. 젊은 남자가 회초리를 들고 내 등에 휘둘렀다.
짝!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 회초리는 채찍만큼이나 유연하고 질겼다. 그걸 성인 남자가 전력으로 휘두르니 등짝의 피부가 터지고 피가 흘러내렸다.
남자는 나를 봐주지 않고 엄하게 말했다.
“51번! 불충분! 열 바퀴 추가한다! 몇 바퀴라고!”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열 바퀴입니다.”
“열다섯 바퀴다! 실행! 뛰어!”
전생에서도 군대에 간 적이 없는데 여기서 군 생활을 다 하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달리기에 집중했다.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등짝의 고통이 사라졌다. 피도 멈췄고, 벌써 살이 아무는 중이다. 그랬다. 나는 운 좋게도 이번 생에도 초능력자로 태어나는 데 성공했다.
서걱!
“으악!”
트랙을 돌며 달리기를 하는 와중, 옆에서 살이 베이고 비명이 들린다. 이번에 정신을 팔면 채찍이 아닌 쇠몽둥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기 쉬웠다.
“17번! 항상 말했지! 파고들어라! 너와 나의 신장 차를 이용하라고! 실행!”
17번이라고 불린 어린아이, 나와 같은 처지의 디자인 베이비는 눈물을 삼키곤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곳에서 눈물이란 오줌보다도 쓸모가 없으니 현명한 태도라 할 만했다.
뚝뚝. 하고 피 떨어지는 소리가 줄어든다. 17번 역시 나와 같은 초능력자이다. 17번뿐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각종 훈련을 하는 아이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초능력자였다.
내가 51번, 가장 늦은 번호는 84번.
총 84명의 과성장 한 어린아이가 몇 개의 무리로 나뉘어서 단검술, 달리기, 체조, 각종 아크로바틱한 파쿠르를 훈련한다. 나도 달리기가 끝나면 다음 메뉴로 파쿠르와 단검술이 기다리고 있다.
이쯤 되니 이자들의 목적이 궁금해졌다.
초능력자들이 84명이나 되는데 얘네들을 데리고 뭘 계획하고 있을까. 망한 세상에서 초능력 올림픽이나 새로 기획할 예정인 걸까?
아니다. 이자들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히트맨 또는 병사로 키웠다. 그것을 위해서 다들 말 그대로 피가 튀고 뼈가 갈리는 지옥훈련을 감당해야 했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숙소에서.
“흐흑······!”
잠을 자는 와중에 17번이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17번은 나보다 반년 먼저 태어났다. 아무리 세 살 반년 생이라도 울 줄은 안다. 당연히 아프고 슬플 거다.
상대는 평범한 인간 수십 명, 우리는 쇠도 구부리는 초능력자 84명. 반란을 일으키면 이길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아무도 반항을 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고립된 환경에서 극한의 고통과 쳇바퀴 돌아가듯이 반복되는 일상으로 정신을 무너뜨린다. 약물과 세뇌, 최면요법까지 사용하니 반항은 꿈도 못 꿨다.
결정적으로 애들이 아무리 커도 결국 다 서너 살짜리 꼬맹이들. 녀석들은 왜 이렇게 인생이 고단한지 이유도, 원인도 알지 못하고 그저 공포에 떨면서 교육자들을 신으로 모시고 무조건 따랐다.
신기한 것은 초능력자를 84명이나 데리고 있으면서도 이자들도 초능력자로 각성하는 조건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무식하게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수천, 수만 명이 넘게 만들고 폐기하는 과정을 거쳐서 일종의 초능력자 가챠를 진행했다.
이걸로 끝일까? 당연히 아니다. 그들이 초능력자를 판별하는 기준도 제대로 맛이 갔다.
아기 때 내가 느꼈던 전기충격. 초능력자라면 전기충격에서 살아나니 당첨이고, 일반 아기면 죽으니 그 자리에서 폐기.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들이다.
하지만 의외로 화는 별로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왜냐면 약물 좀 먹는 게 어때서? 채찍 맞는 거야 한 번 털고 일어나면 끝 아닌가.
나한텐 그딴 것보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나오고 따듯한 이불에서 편안히 자는 게 더 중요했다. 솔직히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느니 태어나서 힘들게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나?
누군가에겐 지옥이지만, 나에겐 행복한 매일의 연속이었다.
‘오래 살아야지. 아주 배부르고 등 따시게,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야.’
이게 내게 당면한 최대 과제였다. 그걸 위해서라면 히트맨이든 뭐든지 해주겠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그들의 가혹한 훈련을 군소리 없이 따랐다.
반년이 더 지났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교육을 진행했다. 그 교육에서 우리를 ‘생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유인즉슨, 간단히 요약하자면 질투와 자원 욕심 때문이다.
지구는···. 어······. 지구는 여하튼 머시기의 불길에 휩싸였고 20년이 지났다. 내가 10년 차에 죽었으니 10년 동안 죽고 살기를 열 몇 번이나 반복했다는 뜻이었다.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지옥같이 변한 지구 환경이다. 미친 뭔 놈들이 미친 뭔가를 열어서 지구가 미쳤다.
그 미친 머시깽이들은 환경에도 크나큰 악영향을 미쳤고, 인류가 반쯤 망친 환경을 완벽하게 폭삭 주저앉혔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이 가만히 주저앉아서 죽음을 받아들일 만큼 자연 친화적인 종족인가. 천만의 말씀.
인류는 자기들끼리 생존경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과거의 지식을 모으고 발전시켜 새로운 희망을 탄생시켰다.
“그게 바로······!”
강의를 진행하던 남자가 흥분한 얼굴로 지저분한 칠판을 두들겼다.
탕탕!
남자의 말을 요약하자면, 어떤 인류 집단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환경정화생물과 이런 환경에서도 인간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구제생물의 합성에 성공했다고 한다.
다만 그곳은 내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집단이다. 내가 속한 곳이든 속한 곳이 아니든 간에 그곳은 곧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자! 그럼 여기서 앞뒤가 안 맞는다. 분명 아까 나는 이들이 우리를 히트맨으로 키운다고 했었다.
히트맨을 왜 키우지? 뺏고, 싸우고, 죽이려고.
근데 왜? 지구 환경을, 망한 인류 역사를 다시 이어가게 할 구원자 집단이 등장했는데 사이좋게 협력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인간이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질투였다.
용의 꼬리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너희를 습격해서 연구 성과를 고스란히 가져오겠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미래의 희망이 되겠다.
그 습격을 준비하는 놈들이 한두 놈이 아니다.
그 중 가장 세가 크고 가장 악랄한 집단이 내가 속한 ‘조직’이었고, 조직은 몇 년에 걸쳐 나를 비롯한 초능력자를 살인 병기로 키웠다.
나와 같은 디자인 베이비에게 전해준, 그럴듯한 말과 초등학생이라도 속지 않을 허접한 프로파간다를 재해석하면 대강 위와 같은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위대한 인류의 미래’를 위해 탄생한 신시대의 영웅이라는 말로 남자는 강의를 끝마쳤다.
‘절망적이군. 정말······.’
강의가 끝나고. 나는 몇 년 만에 우울함에 빠졌다.
욕망으로 망한 세상에서도 자기들끼리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는 인류. 누가 이기던 희망찬 미래는 없었다.
나 역시 아마 이번 삶이 끝이 아닐 것이다. 다음에 새 삶을 시작했을 때도 지구가 요 모양 요 꼴이면 살고 죽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만약 그래서 인류가 멸종하면? 나는 어떻게 되지? 새로운 동물로 태어날까. 아니면 영원히 끝이 날까.
“에휴~!”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다.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에 들지 못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003.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들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