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뮤온 보트라가 눈을 희게 떠서 나와 한보 기사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가 잠시 말을 고른 뒤에 이스마일에게 말했다.
“저는 웨일이란 자를 모르오. 하지만 가이노스를 비롯한 이종족 연합지역의 귀족들이 그를 입에 담았을 때, 그들이 보이는 극도의 존중을 생각해보면 렉시놈과 무작정 적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소.”
“고(故) 웨일이 우리를, 과거의 솔을 그냥 보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소. 그래서 렉시놈과 대화를 해보려고 했소만…….”
뮤온 보트라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우리를 포위한 사용인을 바라보았다.
“했소만… 이자들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소이다.”
“아하! 무언가 오해하고 있나 보군요. 우리는 그들을 세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착각할 만큼 충성심이 깊다고 여기길 바라죠.”
“좀 더 정확하게 말해줬으면 좋겠군. 내가 당신에게 그리한 것처럼.”
“얼마든지요. 그들은 음… 그들은 모두 버림받은 이들입니다. 사회에서, 세상에서, 집단에서 무쓸모 판정을 받아 퇴출당하였죠. 그리고 나와 아버님께 구원받아 새로운 삶과 신분, 기회를 받았다……. 그 이상 명료하게 설명하기 힘들군요.”
“구원이라…….”
“제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지만, 구원…이죠. 사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마땅했던 자명한 권리였지만,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나 봅니다.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짝! 이스마일 반데스가 손뼉을 쳤다.
“어이! 친구들? 나를 보호해주려는 것은 고맙네만, 뮤온 보트라 공은 대화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네. 손님에게 부담을 주는 짓은 그만하고, 각자 일터로 돌아가세나.”
“…….”
사용인이 무표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더니…….
“…큼!”
말쑥한 옷차림을 한 노집사가 헛기침을 하며 넥타이를 고쳐 매는 것을 시작으로, 그들의 얼굴에 인간미가 되돌아왔다.
“오홍홍!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겠습니다.”
넙데데한 시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빠져나가고.
“허험! 영주의 대외적인 신분이 있는데, 신화검과 성자님을 의자도 뭣도 없는 황량한 수련실에서 맞이하면 쓰나.”
문을 벌컥 열고 따라온 늙은 마법사가 이스마일을 타박했다. 아니, 너희가 이리로 끌고 왔잖아. 뭘 인제 와서 아닌 척하냐.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병사가 재빨리 달려가는 걸 시작으로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수수!
예고도 없이, 밑물처럼 들이닥쳤던 인파는 사라질 때 또한 같았다. 마치 한밤중의 밀회를 훔쳐보다가 걸린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수련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이스마일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온기만이 남아있는 빈자리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살며시 위로 들었다. 나는 그 순간 그에게 미약한 마나가 닿은 것을 느꼈다.
‘통신? 메시지? 흔적만 가지고는 파악하기 힘들다.’
고암 사막에서 살저 하라한이 구축한 광범위 통신 마법보다 월등히 뛰어난 의사전달 마법이 이스마일에게 전해졌다. 그가 능숙하게 표정을 숨기곤 머리를 긁었다.
“굳이 준비할 필요까지는 없게 됐군요. 따라오십시오. 렉시놈을 보고자 한다면, 이곳이 아니라 좀 더 어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수련실 반대편 문을 열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깔끔한 복도를 지나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탕! 탕!
나선으로 이어진 철 계단은 지하로 길게 이어졌다. 십여 분 가까이, 침묵 속에서 계단을 내려오자 널찍한 지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空洞)은 아니다. 높이 30미터, 지름 1킬로미터에 다다르는 넓은 지하 공간에는 백수십 명의 사람들과, 그들이 살 만한 건물이 드문드문 들어차 있었다. 지하 100미터에 깊이에 지어진 렉시놈의 안식처였다.
중간마다 몇 개의 우람한 철 기둥이 놓여있고, 그곳마다 우리가 내려온 곳처럼 철 계단이 나선으로 설치되어있다.
천장에는 태양과 비슷한 파장의 빛을 발산하는 마법등이 수십 개 박혀있다.
마법등의 밝기와 세기가 초 단위로 미세하게 변하는 걸로 보아, 지상과 똑같은 생체 사이클을 유지하게 조절해주는 역할도 포함하고 있었다.
탕! 탕! 탕!
철 계단을 밟는 소리가 폐쇄된 공간에 웅~ 웅~ 울렸다. 우리는 나선 계단을 따라 내려오며 넓은 지하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나는 게리소님과 영주성 내부 그리고 지하까지 포함한 지도를 삼차원 공간도형으로 그린 후, 기둥이 있는 위치를 계산했다. 저 기둥들 위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내가 파악한, 소니아처럼 악신의 살로 신체 개조를 한 이들이 사는 집과 위치가 일치한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이스마일에게 말했다.
“이래서 함부로 지하로 확장을 못 하게 한 거였군요.”
게리소님의 건축법은 아주 엄격하다.
특히나 지하 증축 시에는 반드시 하급 행정관이 동행해야 했다. 기사들의 정기 순찰 업무 중에는 불법 지하 건축물 감시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하도시가 드러날까 그랬던 것. 지하로 70미터나 파고 내려갈 미친놈은 없겠지만, 렉시놈의 이름을 생각하면 그 편집적인 대응도 납득이 되었다.
사족으로, 쟈기가 검술 수련을 하는 게 들킨 것도 이 때문이다.
지하 증축이 워낙 엄격해서 몰래 지하실을 만드는 게 불가능했다. 문을 닫고 방에서 수련해도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질 수밖에 없었지.
“그러네. 역시 눈치가 빠르군.”
이스마일이 왠지 모를 흐뭇한 얼굴로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우리를 이끌고 중앙에 놓인 커다란 건물로 향했다.
뮤온 보트라가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이, 이스마일? 이곳은……?”
“당신이 그토록 보고, 확인하고 싶어 했던 렉시놈입니다.”
렉시놈. 정확히 말하자면 ‘악신의 살로 신체가 개조된 이들’과 ‘일반 마나로도 사용할 수 있게 개량된 렉시놈의 마법을 익힌 이들’이 사는 구역이다.
직접 본 건 처음이지만, 아마 맞겠지.
“대부분은 위의 세상에서도 적절한 신분이 있죠. 하지만… 오, 이런.”
“아…….”
말을 하던 이스마일이 스크롤을 잔뜩 들고 바쁘게 거리를 오가던 두 남성과 마주치더니만 말을 멈췄다.
“오, 오셨습니까?”
한 남자가 뮤온 보트라와 가이노스를 보더니, 어색한 웃음을 띠며 스크롤을 품 안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었다.
뮤온 보트라나 가이노스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유를 안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일이 틀어졌을 때’ 뮤온 등에게 퍼부으려고 준비한 공격, 저주 마법 스크롤이었다.
“어이쿠!”
뒤따르던 중년 남성은 몇 개의 마나석, 완드, 기이한 빛을 내뿜는 구체, 원통형의 철제 물품 등의 마법 물품을 수레에 실은 채 나르다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저것들도 위험한 마법이 잔뜩 인챈트 되어 있었다. 손님을 들인다 하니 허겁지겁 경계를 풀다가 타이밍 나쁘게 마주친 거군.
스크롤을 든 남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스마일에게 말을 걸었다.
“영주님. 소니아 공녀님까지 데리고 웬일로 여까지 오셨습니까? 특히 공녀님은 여기 냄새가 퀴퀴하다며 질색하셨으면서 말입니다.”
“허, 다 듣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은. 아버님을 만나러 왔네. 저 안에 계시지?”
“아, 예. 예… 그럼요.”
“잘 됐군. 물건 치우는 김에 어르신들도 불러주게나.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알겠습니다요.”
남자 둘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어, 어어…….”
뮤온 보트라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떠나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스크롤의 정체를 알아내서가 아니다. 이종족 연합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5결 마법사를 이리도 쉽게 보니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 둘만 특별히 뛰어난 게 아니다. 할리 수준의 6결 마법사는 내 감각에만 3명이 잡혔고, 7결 마법사도 한 명이 느껴졌다.
‘이디티 에이와 살저 하라한.’
웨일이 본 7결 마법사. 이종족 연합지역의 7결 마법사가 저 둘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고수가 바쁘게 움직였던 투쟁의 시대였으니, 웨일이 보지 못한 고위급 마법사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웨일이 20년 동안 단 두 명밖에 보지 못한 7결 마법사가 이 장소에서 같은 수가 존재했다. 이것이 렉시놈의 진정한 힘이었다.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장소에서 느껴지는, 렉시놈의 진경(眞境)을 이은 이들은 약 백여 명. 그들 중 10명 이상이 5결 마법사에 다다라 있었다.
게리소님을 통치하며 쌓아온 자원과 물자는 또 어떻고. 내가 확신하건대, 이자들만으로도 렉시놈은 남쪽 대륙 전체와 싸울 수 있었다.
뮤온 보트라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이, 이스마일 반데스. 저들은 다…….”
“예. 렉시놈의 ‘마법사’들입니다. 외부 활동 없이 지하에서만 생활해서, 뮤온 보트라 님도 처음 보는 이들이 많을 겁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완벽히 처음 보는 인물이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그들의 실력이면 어디서든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여기에 숨어 있는 거요?”
이스마일이 쓴 미소를 지었다.
“마법을 숨겨야 해서죠. 아무리 일반 마나로도 사용할 수 있게 변화를 거쳤다지만, 흑마법 특유의 마법 회로는 숨기기 힘듭니다.”
“아아…….”
“뭐, 반세기 동안 꾸준히 개량한 덕분에 변환 작업은 거의 끝났지만, 그래도 마지막 하나의 코드까지 확실히 바꿀 때까지는 이곳에 지내는 게 낫죠.”
‘렉시놈을 바닥까지 다 보여주는군.’
한 번 믿기로 했으니 철저하게 가자는 건가? 이스마일에게 의사전달을 한 그 괴물이 허락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쪽이 더 가능성이 높았다.
뮤온 보트라가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이들을 꼼꼼히 확인했다.
“젊은이들이 많군. 게리소님에 정착한 뒤, 새로 받은 이들이오?”
“가장 젊은 자도 서른 살 이상입니다만… 역시 장수종은 관점이 다르군요. 답하자면, 예. 그렇습니다.”
“기존의 렉시놈은?”
“대부분 이곳에 몸을 뉘였습니다. 따로 묘지가 마련되어 있지만, 굳이 그곳을 방문할 필요는 없겠지요.”
렉시놈이 금선탈각(金蝉脱殻)한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진짜 렉시놈’을 이루던 흑마법사는 대부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고, 현재는 그들이 키운 2~3세대 마법사들이 이곳에 거주했다.
이스마일은 설명하는 와중에도 지하 거리를 지나는 이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받아주었다. 그렇게 소소한 잡담과 질의응답을 하며 지하도시를 걸은 우리들은 중앙에 세워진 커다란 건물에 도착했다.
이스마일이 정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기 전, 뿌듯한 얼굴로 작게 뇌까리는 말이 우리의 뇌리에 깊게 틀어박혔다.
“단 한 줄의 회로도, 단 하나의 코드조차 흑마력과의 연관성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면, 저들도 밝은 세상으로 나와 웅지를 펼칠 수 있겠죠. 그날이 오면 저들은 더 이상 렉시놈이 아닌 신생 마법 길드의 중추가 될 것입니다.”
아하. 나는 뮤온 보트라의 눈에 자그마한 믿음이 깃드는 것을 보곤 확신했다. 일부러 그에게 신뢰를 얻기 위하여 속사정을 털어놓은 것이다.
소니아를 바라보는 가이노스의 얼굴에도 긍정적인 감정이 담겼다. 그 감정에는 약간의 안도감마저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가 무엇 때문에 안심하는지 모르겠다만, 이스마일의 작은 책략이 두 이종족에게 제대로 먹혔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스마일이 작게 승리의 미소를 지은 뒤, 문을 활짝 열었다.
삐이꺽~!
문이 열리고 드러난 널찍한 현관. 그 너머에서 인자하고, 조금은 장난기 있어 보이는 인상의 노인이 양손을 벌려 우리를 환영했다.
“짜잔! 어서오게나! 뮤온 보트라!”
“어… 허어?!”
“하하! 딱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이군!”
“…맙소사!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뮤온 보트라가 그를 보더니 여태까지 중에서 가장 놀라운 기색을 드러냈다. 노인이 히죽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오랜만이오. 뮤온 보트라. 어디 보자… 악신의 시체 발굴 이전이니까. 한 백 년 만인가?”
“저, 정말… 정말 당신인가?”
“그럼 내가 나지 누구겠소? 그나저나 여전히 젊군. 나는 이렇게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누구는 백년이 지나도 젊음을 유지한다니. 이래서 장수종이 좋다니까.”
투덜거리는 노인네를 보며 뮤온 보트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노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셜리반. 정말이군. 아직까지 살아있었어.”
“지금은 쉘리 반데스라고 불러주시길.”
쉘리 반데스. 게리소님을 개척한 초대 개척영주.
대외적으로 이스마엘 반데스의 아버지이자 소니아 반데스의 할아버지인 그가 오랜 친우에게 인사하듯이 뮤온 보트라를 맞이했다.
* * *
셜리반, 현재는 쉘리 반데스.
뭔가 있는 것처럼 둘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사실 나는 그를 조금도 모른다.
흑마법사는 1세기 전만 해도 불편하고 때로는 유능한 이웃이었고, 뮤온 보트라는 세상이 좁다 하고 돌아다녔다. 내가 모르는 인연이 있어도 이상한 게 아니지.
그 둘의 사정을 제외하고, 내가 쉘리 반데스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저자다.’
간접적인 마나 파동만으로도 날 긴장시켰던 그 괴물.
12년 동안 게리소님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자. 영주성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렉시놈의 지배자.
(아마도 확실하게) 렉시놈의 대장로. 흑마력을 벗어던진 이후에도 끊임없이 마도를 수련하여, 검사로 따지면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뛰어넘은 유일한 초인.
승천자의 감각과 초능력 파동으로도 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X-레이로 금속 상자를 찍으면 안은 보이지 않고 백색의 철판만 보이듯이, 쉘리의 신체도 온통 마나로 가득 차 있어서 자세한 흐름을 읽기 힘들었다.
‘역시나.’
직접 마주하니 똑똑히 알겠다. 이건 답이 없다. 마법검 난마(亂魔)도 흑마력을 포기한 쉘리에겐 쓸모없고, 초능력이나 성력 심지어 암살까지 쓸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써도 그를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쉘리라는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전성기의 웨일도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죽기 약 52분에서 52분 30초 전의 웨일을 제외하면 이길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쉘리는 흑마력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것? 렉시놈은 현재의 이스마일과 과거 솔의 주장대로 흑마법의 탈을 벗어 던지고 일반 마법사로 재탄생했다.
내가 골똘히 생각을 계속하는 와중, 쉘리 반데스가 모인 면면을 꼼꼼히 보며 말했다.
“뮤온. 당신도 많이 변했어. 성자도 제자로 받고, 그리고… 음?”
쉘리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그 순간 맹렬한 도주 본능을 느꼈다.
쉘리의 감각과 영역이 쟈기의 기운을 탐색한다. 저것에 저항하면 초인의 영역을 흩트리는 거니 관심을 안 살 수가 없고, 그렇다고 저항하지 않을 수도 없다.
‘어쩔 수 없군.’
나는 전신의 힘을 뺀 뒤, 마나를 한곳에 모았다. 전신 마나의 절반 이상을 내단(內丹)처럼 압축한 뒤, 하복부로 이동시키고 그 안에 성력과 초능력을 숨겼다.
다행히 이 수법이 통했는지 쉘리의 관심이 금방 멀어졌다. 그가 껄껄 웃으며 떨떠름해하는 뮤온을 응접실로 이끌었다.
“대화를 원한댔지. 나도 환영하네. 자, 이리로 오게. 사람들을 모았으니, 간략하게나마 회의라도 하고 가게나.”
“회, 회의라니. 셜리반, 나는…….”
“쉘리.”
“…쉘리 반데스. 내 입장을 알지 않나. 나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자네가 주도한 ‘회의’라는 것에 참가해선 안 돼.”
“하하하! 그러지 말고. 거기 젊은이! 이름이 어떻게 되나?”
이스마일이 답했다.
“예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쟈기, 쟈기 장인입니다.”
“아하! 쟈기, 그 친구. 나 좀 도와주게나.”
쉘리는 늙은이가 뭐 그리 정력이 넘치는지 의자를 번쩍번쩍 들고 날라 응접실을 회의실로 개조했다. 나도 그를 도와 의자를 나르고, 탁자를 가운데로 옮겼다.
응접실, 아니 회의실 가장 상석에 털썩 앉은 그가 턱을 괴고 나와 뮤온 보트라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곤 다짜고짜 폭탄을 터트렸다.
“저기 쟈기 장인이 흥미로운 말을 하더군. 게리소님이 남쪽 대륙을 집어삼키라고 했나?”
와… 진심? 여기서? 이걸 이렇게 갑자기?
나는 기가 찼고, 가이노스는 경악했다. 그리고 뮤온 보트라는…….
“……!!”
눈에서 광선을 쏠 기세로 나를 노려본다. 쉘리 반데스는 드물게 분노를 표출하는 뮤온 보트라를 유쾌하게 지켜보았다.
“꽤나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기도 하고,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견을 듣고 싶네. 어때? 이 정도면 회의에 참석할 만하지?”
“…확실히. 그건 위험부담을 끌어안을 가치가 있군.”
폭풍전야와도 같은 잔잔한 어투로 답하며 쉘리 반데스 옆자리에 앉는 뮤온 보트라. 말은 쉘리와 하지만 눈동자는 내게 고정되어 있다. 그의 시선에는 분노만이 아니라 약간의 후회도 담겨있었다.
대체 뭘 후회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장소에서 가장 큰 후회를 하는 이를 꼽으라 하면 단연코 나였다.
‘차라리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모른 척하고 도망쳐야 했어.’
일이 이렇게 꼬일 줄 누가 알았겠냐. 나는 한숨과 함께 의자를 마저 날랐다. 렉시놈 소속 마법사들이 하나둘 응접실로 들어오며, 뮤온이 원하는 대화와 쉘리가 원하는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