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약 이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필요한 건 크게 두 가지.
먼저, 험클리가 지원해주기로 약속한 에레스발다의 최신형 선박. 그것이 저 먼 서쪽 끝 에레스발다에서 대륙을 반 바퀴 돌아 게리소님까지 오는 데 시간이 어마무지하게 걸린다.
출항 자체는 미리 해두었다.
4개월이나 지각한 마스터 오브 덤벙이, 쉘리 반데스는 뮤온 보트라를 만나 데일리케 왕국의 난과 이러저러한 일을 도와주었고, 그중에는 이종족 연합지역까지의 초장거리 통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초장거리 통신을 이용하여, 험클리의 보증과 뮤온 보트라의 구두 계약으로 최신형 선박을 빌릴 수 있었다고. 해서, 미리 출발한 선박이 게리소님에 도착하기까지 약 이주일 정도가 남았다고 한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나도 그 소식을 듣자 쉘리 반데스에게 약간의 경외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천국의 계단으로 금선탈각해도 수백 년을 사는 괴물 이종족에게 흑마법과의 연결고리를 들킬 위험성이 있는데, 그 위험을 무씁쓰고 통신을 자처하다니.
‘정말이지 대단한 영감이야.’
쉘리 반데스의 업적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뮤온 보트라를 도와 빛의 수호자의 난민(?), 버려진 조직원(?)들도 수거했다.
빛의 수호자는 르데앙의 설명처럼 완벽하게 갈라섰고, 이제는 더 이상 빛의 수호자라고 부를 수 없는 괴래 집단이 되었다. 뮤온 보트라는 그중에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이들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수습하여 데일리케 왕국에서 보호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데일리케 왕국에 적을 둘 순 없는 노릇이다. 빛의 수호자 입장에서 그들은 하부 조직원에 불과하지만, 표면세계의 인간들이 보기엔 하나같이 괴랄한 기술을 다루는 엘리트였으니까.
무슨 소리냐면, 자칫 잘못하다간 데일리케 왕국의 권력 구도가 뒤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분명히 그들은 그럴 만한 능력과 지식, 마법 무구를 보유했다.
뮤온 보트라도 그 사실을 알기에 달인 수준의 고급 인력, 특수한 지식인 등을 따로 빼서 게리소님으로 데려왔다. 그 과정에 쉘리 반데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음은 두말하면 입 아팠다.
우선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상위권의 능력자부터. 그들이 일전, 내가 쉘리 반데스 일행을 만났을 때 함께 따라왔던 50여 명의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수백 명은 해로로 또는 북서쪽 끄트머리에 난 작은 육로를 통해 하나둘 게리소님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그 과정도 몇 개월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으니 앞으로 며칠 후면 한두 무리씩 게리소님의 국경에 발을 디딜 것이다.
그들을 이끄는 대장이 뮤온 보트라의 직계 제자인 가이노스라고 한다.
‘맙소사.’
나는 다른 건 다 시큰둥하게 듣다가 딱 그 말을 들었을 때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불안에 잠겼다.
하지만 뮤온 보트라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가이노스에 대한 신뢰도가 대단한 듯했다. 르데앙이나 험클리도 ‘가이노스면 충분하지…….’라며 넘어간 걸로 보아 일처리 하나만큼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을 믿고, 그러니까 결코 가이노스는 믿지 않고 그들이 믿는 가이노스를 믿고 육로로 오는 빛의 수호자 난민들에 대한 걱정을 접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잔당의 안전 확인과 에레스발다 선박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 * *
“…그래서. 음?”
반데스 영주성. 집무실 안. 나는 이스마일에게 감찰 결과를 상세히 보고하다가 밖에 익숙한 기척이 느껴지자 커튼을 살짝 젖혔다.
차라락!
커튼 사이로, 정오의 나른한 햇빛이 겨울의 끝자락에 걸려서 안뜰을 따듯하게 데워준다. 하지만 아직 쌀쌀한 안뜰. 그곳을 세 명의 여인이 춥지도 않은지 산책하고 있었다.
한 명은 크림.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앞서나가는 두 여인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공손히 따라온다. 그런 크림의 앞에 선 두 여인은 소니아와 르데앙이었다.
“저거. 또 저러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눈으로 르데앙에게 조잘대는 소니아를 흘겨보았다.
소니아가 르데앙에게 찰싹 붙어 다닌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소니아는, 르데앙을 만난 그날부터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르데앙을 불러내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잡담을 떨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양팔을 뻗어 자랑하듯이 안뜰을 보여주는 소니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르데앙.
말은 안 들리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자기가 이만큼이나 성공했다고 엄마한테 자랑하는 딸아이 같았다. 사실 이번만이 아니라 소니아는 일주일 내내 르데앙에게 게리소님을 자랑하고, 또 자랑했다. 그걸 짜증 내는 기색 없이 받아주는 르데앙도 대단했다.
‘자랑하고 싶은 게 많겠지만, 적당히 해라. 르데앙은 이종족 연합지역 출신이다.’
매지컬 헬리콥터도 운용하는 게 30년 전의 이종족 연합지역이다. 지금은 마법 공학이 얼마나 발달했을지 나도 모르지.
그런 이종족 연합지역의 핵심에 깊게 침투한 르데앙이다. 솔직히 르데앙이 보기엔 가장 발달한 게리소님과 위성도시도 ‘꽤나 정감이 가는 재롱잔치군요.’ 정도의 감상으로 끝내겠지.
‘르데앙은 뭘 보던 놀랄 일이 없을 거라 확신하니, 집안 자랑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 업무로 복귀하면 안 되겠습니까. 소니아 아가씨.’
하루 정도는 회포를 풀라고 할 수 있지만, 일주일은 과했다. 나는 지금에 와선 소니아가 언제 정신을 차리고 실무에 집중하려나… 궁금해져서 간섭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스마일. 저대로 두고 보실 겁니까?”
어느새 옆에 다가와 창가를 내려다보는 이스마일에게 묻는다. 이스마일은 손녀딸의 재롱을 흐뭇하게 구경하는 할아버지 특유의 얼굴을 했다가 내 질문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 당신이라도 얼렁 정신 차려서 소니아를 말려야 할 것 아니야. 하지만 그런 내 기대완 다르게, 이스마일이 굉장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일거리가 쌓여가는 책상과 창밖에서 조잘대는 소니아를 번갈아 보더니, ‘큿!’하고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스마일이 고통스러워하며 내게 말했다.
“소니아는… 친구가 없어서 말이네…….”
“그 이야기를 꺼내시면 말리는 저만 나쁜 놈이 되는데요.”
친구 없는 70년 인생이라니. 너무 불쌍해서 화를 내려던 마음도 사그라졌잖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스마일을 다그치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가만히, 친구를 만나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는 소니아와 어린아이의 재롱을 받아주는 르데앙을 구경하는 나와 이스마일이었다.
“음?”
아, 둘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크림이 뒷걸음질로 물러나 안뜰에서 벗어난다. 소니아나 르데앙이 명령한 기색은 없는데 알아서 벗어나는 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렉시놈이라던가?
내가 알아챈 걸 이스마일도 알아차렸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두 여인을 바라본다. 하지만 렉시놈의 제1 본거지인 영주성은 마법진이 쫙 깔렸고, 그 마법 중엔 차음(遮音)기능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군.”
고민하던 이스마일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순간 그의 마나가 복잡하게 흐르며 집무실로 퍼졌고, 집무실을 매개로 하여 영주성의 마법진에 미세한 변화가 발생했다.
그 변화로 안뜰을 감싼 마법 중의 일부 기능이 무효화되었으며, 안뜰에서 발생하는 일정치 이상의 음압 데시벨(dBSPL)이 집무실로 전달되었다.
“…해서. 힘들다는 건 알지만, 꼭 부탁하고 싶었어.”
르데앙의 낭랑한 목소리가 우리 둘의 귀에 들려온다.
그렇다.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결국엔 둘의 대화를 엿듣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딸이 친구가 생긴 게 흐뭇하다지만, 과년한 처자의 비밀 대화를 엿듣는다니. 이 아저씨가 지금 제정신인가?
“아저씨. 혹시 개인정보 보호라는 개념은 아십니까?”
“내 마법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알려줄 테니 잘 듣게나. 쟈기 자작.”
“아이구. 고견을 들려두신다면 귀를 활짝 열고 받아들이겠사옵니다. 이스마일 전하.”
“큭큭… 할 수 있는 것은 한다! 일단 저지르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마법사라네.”
“…….”
폼 잡고 말하기에 장단 좀 맞춰줬더니 시답잖은 소리나 하고 있는 영감탱이다.
나는 관심 없어서 코딱지를 팠다. 주륵-! 하고 손끝에 묻은 잔여물을 커튼에 슥슥! 비벼서 닦았다. 내 행동에 이스마일이 기겁하며 커튼을 휙! 뺏었다.
“…들어보게. 할 수 있는데도 남들 눈치 보느라 우물쭈물하고 머릿속에서만 장난질하고 끝내면, 그 사람의 그릇은 거기서 끝이야.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할 수 없는 걸 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마법의 세계이네.”
“그것 참 훌륭하신 명언입니다. 아, 제가 아는 어떤 마법사 집단은 악신을 발굴해서 할 수 있는 걸 모조리 시도하다가 성곽시대하고 투쟁의 시대를 열긴 했는데… 음. 뭐! 지금 저하님이 하신 발언과는 별로 상관없는 소리였네요!”
내 상큼한 발언에 이스마일이 전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대화가 끊기고, 소니아와 르데앙의 대화가 우리 사이의 침묵을 채웠다.
“부탁해. 소니아.”
르데앙이 소니아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녀가 반짝이는 눈동자를 드러내며 소니아를 똑바로 바라본다.
르데앙과 험클리는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동물 가죽과 생체 변이 마법을 적용된 가면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르데앙의 외모를 모두 가리기란 힘들었다.
눈동자는 더더욱 그렇고.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눈동자 어택에 소니아가 얼굴을 확! 붉혔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르데앙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묘한 분위기가 흐르자 작게 중얼거렸다.
“뭐야. 둘이 고백하나?”
그래서 소니아가 70 먹도록 결혼을 안 한 건가? 설마 르데앙도? 르데앙은 여자일 텐데? 아니, 르데앙은 양성구유였다가, 세포 안정화를 통해 여성체로 성별이 고정되었지. 그러면 남성기는 어떻게 되었지? 연구소 탈출 이후 같이 샤워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가슴은 봉긋하게 올라왔는데 설마 남성기는 아직인가?
복잡하다.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런 나를 이스마일이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가 내 머리를 꽁! 하고 때린 후에 다시 창밖을 가리켰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다. 이놈아.”
“그럼 뭔데요.”
“이 속터지는 놈이. 잠자코 듣기나 해.”
대체 뭐가 속이 터진다는 거야. 이스마일의 핀잔을 흘리는 내 귓가로 르데앙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어왔다.
“네가 그들을 보살펴 줘. 쓰고 버려지지 않을까, 뮤온 보트라의 보호가 사라지자마자 핵심 기술을 강탈당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그들을 안심시켜 줘.”
“어, 으, 어, 어떻… 어떻게?” 이건 소니아가 한 말이다. 정신 차려라. 이 년아.
“그들에게 등용(登庸)의 기회를 주길 바라.”
등용? 누구에게 등용의 기회를 준다고? 나와 이스마일이 긴장된 시선이 벌어지는 르데앙의 입가에 집중되었다. 르데앙이 말했다.
“소니아. 게리소님이 빛의 수호자 조직원을 품게 해주지 않을래?”
빛의 수호자? 뮤온 보트라가 데려온 난민들을 게리소님으로 편입시키는 걸 도와달라고? 얼씨구? 르데앙 너, 지금 내정 간섭하니?
“지랄하나. 저 미친년이.”
나도 모르게 르데앙에게 욕을 다 하네.
하지만 그럴 만한 일이 맞다. 빛의 수호자는 남쪽 대륙을 호시탐탐 노리며 테러에 납치까지 일삼았다. 뮤온 보트라의 면을 보아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거지, 원래는 발각되자마자 사살이 원칙이다.
그러니 아무리 르데앙이 부탁해도 들어줄 수 없지. 특히 렉시놈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소니아가 그 부탁을 들어줄 리가 만무하다.
거절하는 거다 소니아! 네 결심을 보여 줘!
나는 굳은 신뢰의 눈으로 소니아를 바라보았고, 내 눈동자에는 소니아가 헤벌쭉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이는 장면이 들어왔다.
그리고 집무실에 울려 퍼지는 소니아의 말.
“에헹헿! 마, 맞겨둬! 내가… 내가 해드께!”
“…….”
애가 미쳤나. 나는 이스마일을 노려보았다. 이스마일이 아까와 똑같이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가 괴로운 듯 한숨과 함께 변명을 토했다.
“소니아는 친구가 없어서 유일한 친구의 부탁을……!”
아니, 이건 친구가 없다 뭐다를 뛰어넘었잖아.
풀썩! 르데앙이 소니아를 껴안았고, 소니아는 여왕벌의 어장관리에 걸린 불쌍한 수컷이 돈이고 간이고 쓸개고 다 갖다 바칠 때 짓는 전형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와 이스마일은 소니아의 얼굴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안뜰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과 별개로, 집무실에는 불편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다시 둘이 조잘거리며 안뜰을 떠난다. 더 이상 딸의 추태를 볼 수 없었는지 이스마일이 손가락을 딱! 튕겨서 엿듣기를 중단했다. 그런 뒤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 하고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분위기를 잡는 그. 미안하지만 나한텐 안 통한다. 나는 해야 할 말이라면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도 하는 쿨한 사람이다.
“예. 담배 피우면서 들으십쇼. 어떻게 할 겁니까. 진짜로 소니아가 공언한 대로 빛의 수호자 조직원을 기용하실 겁니까?”
“…잡음이 크겠지?”
“큰 정도가 아니죠.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수백 명입니다. 저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입을 잘못 놀려서 자신이 속했던 조직이 남쪽 대륙에 화산 분화와 교류회를 망치려 했던 그 시벌탱이 새끼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 가십니까?”
“……그렇겠지.”
“그렇겠지가 끝이 아니라니까요. 단순히 ‘뮤온 보트라의 부탁으로 영주성에서 보호한다.’와 ‘손발이 닿지 않는 게리소님 왕국 곳곳으로 퍼진다.’는 위험부담이 차원이 다릅니다. 아니면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입을 관리할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있으면 담배나 피우고 있겠나?”
“하이고! 참… 어쩔 수 없군요. 정 하고 싶으시면…….”
슥슥. 하고, 나는 말을 멈추고 엄지와 검지를 슥슥 비볐다. 흑마법이라도 쓸 것이냐는 뜻이었다.
“이걸 써서 계약이라도 하시는 건?”
“금구(噤口)! 흑마법은 절대 금지이네. 무슨 일이 있어도 흑마법은 안 돼.”
이스마일이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더 이상 그 어떠한 반론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
왕이 그리 말한다면 신하인 나는 다신 그 안건을 입에 올려선 안 된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사과의 의미로 허리를 슬쩍 수그렸다.
스륵.
예스럽게 허리를 들며 재차 묻는다.
“그러면 어찌하시렵니까. 이스마일 전하. 전하의 딸인 소니아 왕녀님이, 이종족 연합지역의 특사(特使)인 성검사(聖劍士) 르데앙 님에게 구두로 빛의 수호자 조직원을 등용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저런 장난도 치고, 막말도 하고, 가끔은 욕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이스마일의 신하다. 그가 따르라면 따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참된 신하로서 그에게 충언하는 것 또한 쟈기가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이스마일의 옆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약속을 지키는 데서 오는 위험부담을 어찌 해결할 생각이신지?”
치익! 타들어 가는 시가 끄트머리를 깊은 눈길로 바라보는 이스마일. 나는 그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거야…….”
몇 분 후에, 담뱃재와 함께 다 타버린 시가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이스마일의 입이 열렸다. 그가 한 결 후련한 어조로 내게 대답했다.
“아버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저 그런 농담 안 좋아해요.”
“농담이 아니라.”
이스마일이 목을 축이며 길게 설명했다.
먼저, 이번 일은 르데앙의 잘못이 아니다. 쉘리 반데스가 빛의 수호자 잔당을 데려온 것부터가 문제였다. 굳이 르데앙의 부탁이 아니라 해도 그들의 처우가 도마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다면 그냥 죽인다? 말도 안 된다. 죽일 놈들을 왜 고이 포장해서 게리소님에 데려오나. 더군다나 뮤온 보트라가 두 눈 시뻘겋게 뜨고 살아있는데 그들을 죽이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영주성에 고이 보관하는 것도 힘들었다. 낭중지추라고, 그들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언젠가 두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죽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외부로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다. 쉘리 반데스가 그걸 모르고 잔당을 데려오진 않았을 것.
그가 뮤온 보트라를 도와 빛의 수호자 잔당을 구출했고, 게리소님에 오는 것에도 손을 거들었으면 내가 걱정하는 만일을 위한 대비책 또한 마련했음이 분명하다.
이스마일은 그렇게 말하며 빛의 수호자 잔당에 대한 고민거리를 가볍게 넘겼다. 나는 혀를 차며 그의 변명 아닌 변명을 요약했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모르겠으니 윗사람한테 맡기자. 이거네요?”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게. 혹시 또 모르지 않나? 렉시놈에게만 편중되어 있던 권력 구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지 누가 아나. 하하! 말하고 보니 그것도 은근히 기대되는군.”
“…….”
“저런. 인상 좀 피게. 응? 쟈기는 너무 걱정이 많아. 아니,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만 파악하고 있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네. 저들은… 자네 걱정만큼이나 큰 골칫덩이가 되진 않을 걸세.
그래. 부디 그러길 빈다. 그렇게 뮤온 보트라가 데리고 온, 그리고 앞으로 올 빛의 수호자 잔당 처리와 등용 문제를 해결하며 시간을 보내자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