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대답은 곧장 나왔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쩌렁쩌렁하게 고함질렀다.
“안 돼!!”
“안 됩니까?”
“당연히 안 되지! 자네 지금 미쳤나?”
“진짜로 진짜로 안 됩니까?”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안 돼. 안 돼. 안 돼요. 안 돼요. 돼요돼요돼요?”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나?!”
“아닙니다. 120 퍼센트 진심입니다.”
사실 절반은 진심이고 절반은 장난이다. 피오드에게 장난을 치는 거지. 이 중에서 션의 검법 전수를 허락할 수 있는 이는 피오드 뿐이다.
하지만 대체 어떤 이유로 내게 션의 검법 전수를 허락해줄 건가? 피오드 이 자식아. 네가 어제부터 자꾸 나 놀렸는데, 어디 한 번 너도 당해봐라.
나는 유들유들하게 어깨를 흔들었다. 그런 나를 보고 폭발하기 직전의 베이누스 프솔리아네를 뮤온 보트라가 말린다.
“진정하시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 제가 묻겠소. 쟈기. 어째서 그런 무리… 무도… 무례…… 양심 없는 발언을 한 것이지?”
“그야 이 중에서 제가 제일 약하지 않습니까.”
“저 씨발 뭔 헛소리를… 헙! 아, 아닙니다.”
르데앙이 격렬하게 반응하다가 입을 막았다. 우리는 민망해하며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는 그녀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나는 웃음을 참는 험클리의 옆구리를 쿡! 찌른 뒤, 이어 말했다.
“뮤온 보트라는 중앙 대륙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여러 고급의 검술을, 르데앙 경 또한 이종족 연합지역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니 오성검법 말고도 여러 무술을 배웠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음. 그렇긴 하지.”
“…….”
“하지만 저는요?”
나는 벌떡 일어서서 먼지만 풀풀 날리는 바지 주머니를 거꾸로 까뒤집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남쪽 대륙이 얼마나 거지 같은 지 아십니까? 거지 중의 상거지예요. 검법 계의 무덤인 남쪽 대륙에서 평생을 살아서 배운 것도 별로 없습니다.”
“어이.” 무 총관이 나를 게슴츠레 노려보았다.
“제가 어떻게 검술을 익혔는지 아십니까? 실전에서 다른 검사의 비전을 훔쳐서 한 땀 한 땀 경지를 올렸습니다. 검술 사막 남쪽대륙에선 그것 말고는 고수가 될 방법이 없더군요.”
“쟈기. 제발 이 새끼야…….” 이번에는 무 총관이 얼굴을 덮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양보 못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알테어의 그 해피 폐하입니다. 세 분은 이미 본인만의 검리를 완성했지만, 저는 아니죠. 이른 시일 안에 전력을 상승시킬 방법은 제가 새로운 검법을 배우는 것뿐입니다.”
후루룩! 베이누스 프솔리아네는 어찌나 마음이 흔들렸는지 차를 마시는 소리까지 거하게 흘렸다. 그녀가 콧김을 흥흥! 내뱉으며 화를 참다가 피오드에게 도움을 구했다.
피오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 피오드가 화내지 않는데 본인이 화를 낼 수 없는 법이지. 아마 그렇게 생각한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침착하게 비꼬았다.
“흥미로운 헛소리구나. 그것과 알테어의 비전을 타국의 귀족에게 알려준다는 건 아무런 연관이 없다만.”
“연관이 없다뇨. 8대 난검 아닙니까? 어차피 익히지도 못할 검법, 다른 이도 아니라 두 분의 허락을 받으면 저라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테니까요.”
“너 따… 네가 8대 난검을 익힌다고?”
“예.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사실 일주일이 아니라 7초면 검증할 수 있다.
“본인의 재능에 과도하게 자신감이 넘치는군.”
“사실이니까요. 아무래도 저는 새로운 걸 배우고, 다른 사람의 검술을 훔치는 것 하나만큼은 재능이 있는 것 같더군요.”
“…네 나이가 몇 살이라고?”
“스물여섯? 아니, 스물일곱이었나?”
사람이 백 살 넘게 살면 자기 나이를 잊을 때가 종종 있다. 특히나 나는 워낙 여러 사람으로 살다 보니 현생의 정확한 나이를 계산하는 게 힘이 들었다.
“스물일곱에 익스퍼트 상급……. 굉장하다는 말도 부족한 천재군. 확실히 석년의 폐하도 자네를 따라오진 못했어.”
기막혀하는 그녀의 시선이 잠시 내게 닿았다가 르데앙에게 향했다.
“혹시…….”
나는 손을 휘저었다.
“아, 아닙니다. 르데앙 경의 연세는 분명 쉰…….”
“쟈기 경. 입 다무세요. 닥치시라고요.”
“옙.”
여자의 나이는 함부로 묻는 게 아니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는 나와 르데앙의 대화를 못 들은 척,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확인해주게.”
스륵-!
넓은 옷소매에서 단검이 물 흐르듯이 튀어나와 베이누스 프솔리아네의 손에 잡힌다. 그녀가 단검을 내 미간을 향해 찔렀다. 속도는 평이하다. 마나는 스칼러 수준.
하지만 소드 마스터의 신묘한 무리를 품은 단검이 미끈한 곡선을 그리며 망설이지 않고 내게 접근한다.
도대체 뭘 확인하라고 단검을 휘두르는 걸까. 아마 그녀도 이유를 모를 것이다. 다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막 나가다 못해 양심 없음의 신기원을 개척하는 나를 말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거겠지.
나에겐 아주 좋다. 나는 동일한 양의 마나를 일으키곤 마주 티스푼을 휘둘렀다.
웅! 우웅-!
하복부, 명치, 어깨, 팔꿈치, 손목의 기운이 싱크홀로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격하게 회전한다. 마나가 각 포인트를 거치며 회전에 담긴 힘을 순차적으로 흡수, 각도에 변화를 주어 난회전을 일으킨다.
동시에 근육을 타고 흐르는 마나가 난회전을 일으키는 마나 덩어리를 부드럽게 감싸, 육체의 손상을 방지한다. 부드러움 속의 강함.
궁극적으로는 본인 수준보다 두 단계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검격의 현실화. 칠보검법의 마나 운용술이었다. 칠보검법의 논리에 따라 힘을 축적한 티스푼이 베이누스 프솔리아네의 단검과 충돌했다.
파앙!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피부가 따끔한 파장이 기도실에 퍼졌다. 끼익! 하고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앉은 의자가 뒤로 10 센티미터 정도 밀렸다. 반면에 나는 제자리를 고수했다.
같은 양의 마나를 이끌었는데 상대는 밀리고, 나는 가만히 있다. 위력 부분에서 내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 일격에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더듬거리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치, 칠보강검?”
칠보검법의 다른 말이 칠보강검이다. 검로는 전체적으로 평이하지만, 검을 휘두를수록 위력이 배가 되는 검법. 최종적으로는 일격에 일곱 배의 위력을 담을 수 있는, 파천황의 검법이다.
나는 휘어진 스푼을 바로잡으며 대꾸했다.
“제가 발견한 션의 검법이 칠보강검이라는 검법의 초안본이더군요. 가져오면서 대충 훑어봤는데 딱히 어려운 검법은 아니라서 금방 익혔습니다.”
어렵지 않을 리가. 두 배 증폭만 해도 년 단위의 고련이 필요하고, 네 배 증폭부터는 익스퍼트가 아닌 이상 엄두도 못 낸다. 션이 죽을 때까지 네 배 증폭을 달성한 수련자는 해피 말고 아무도 없었지.
한 번만 실수하면 증폭도 초기화된다. 때문에 평타 사이에 두 배, 세 배, 또 평타 이후에 두 배, 또 평타 이후에 두 배, 세 배… 이런 식으로 복잡한 심리전도 요하는 검법이었다.
“피오드 재상님? 저 이거 써도 되죠?”
계속 눈을 감고 있던 피오드가 아득! 이빨을 갈았다.
“…어차피 자네가 아니면 평생을 땅속에 묻혀있었을 검법. 완성본도 아니고 초안본을 토대로 자기류로 완성한 검술을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막나?”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물었다.
“그걸… 언제 발견했다고?”
“그제 밤이요.”
“…하? 이틀 만에? 아니 그… 그게 가능이나 한가?”
“아, 예. 다들 그런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이십대에 익스퍼트 상급 돼보셨습니까? 안 됐으면 말을 마세요.”
이야. 내가 생각해도 싸가지 없는 말이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도 쌍심지를 치켜세우며 단검을 바로잡았다.
“못 믿겠네. 다시 한 번 가보지.”
“얼마든지요.”
쉬익!
재차 단검을 찔러오는 베이누스 프솔리아네.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신랄한 경로를 그리는 쾌검술. 나도 쾌검으로 마주 대응했다.
땅! 종이 울리는 듯한 맑은소리가 울리고 단검이 튕겨 나갔다. 내 티스푼은 끝 부분이 부러졌다. 나는 막힘없이 부러진 티스푼 끝자락을 휘둘렀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급히 손목을 회전하여 연이어 들어오는 티스푼을 쳐냈다. 그렇게 두 번 쳐냈지만, 내 공격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나의 손이 희끗해지고, 식탁 위가 내가 만들어낸 티스푼의 검광으로 가득 찼다.
까가강!
단검과 수십 회나 맞부딪힌 티스푼의 연환쾌검은 손잡이 부분만 남기고 잘게 잘려서야 끝이 났다. 나는 손잡이 부분만 남은 티스푼을 버렸다.
이번에 반응한 건 뮤온 보트라였다. 그가 눈을 치켜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네, 네이플루의 쾌검?”
“그게 누굽니까?” 내가 물었다.
이번에 사용한 검법은 코로미트 왕을 호위하던 익스퍼트 상급의 검사, 사자 갈기의 것이었다.
폭포수처럼 수십 개의 검광이 쏘아지는, 쾌검인 척하는 연환검술. 하지만 장기전에서 파탄이 드러나 내게 공략당했지. 나는 그것을 뮤온 보트라가 전수해준 선과 흐름의 법으로 보완하는 데 성공했다.
사자 갈기의 이름이 페이탄이었나? 네이플루는 처음 듣는다. 내가 그리 말하자 뮤온 보트라가 살짝, 무 총관의 눈치를 보았다.
“남쪽 대륙의 그… 폭발에 관여한, 멸화(滅火)의 검을 다루는 검사가 네이플루이다.”
“…마법검을 다루던 익스퍼트 최상급 대머리요?”
셀트리번 화산 분화 시, 열에너지를 흡수하는 승천자의 무기를 다루던 대머리 검사. 그 녀석이 네이플루인 듯싶었다.
뮤온 보트라가 피곤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맞을 것이다. 어떻게 그의 검법을 배웠지?”
“방금 말했지 않습니까. 훔쳐 배웠습니다. 사자 갈기, 페이탄이라고 했나요? 그도 비슷한 검법을 쓰더군요. 페이탄에 네이플루. 두 번 봤으면 게임 끝이죠.”
“……믿을 수 없군.”
이번에는 르데앙이 끼어들었다.
“쟈기 경. 설마 제 오성검법도……?”
“아, 그거 아주 훌륭하더군요.”
나는 수도로 대신하여 오성검법을 시연했다. 오성검법 전반부, 다섯 개의 검결이 물 흐르듯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보여주자 기도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신음하듯이 말했다.
“…자작. 어디 가서 그런 재능을 보유했다고 입도 뻥긋하지 말게. 세상의 모든 검사가 자네를 죽여서라도 검법의 유출을 막을 거야.”
“저도 압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죠. 하지만 알테어와의 화합을 위해서라면, 해피 폐하를 위해서라면 저는 얼마든지 제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
“저는 그런 각오로 제 재능을 드러낸 겁니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 님. 8대 난검을 허락해 주십시오..”
“아……! 자네의 결심이 그러하다면…….”
여기까지 진심을 드러내면 상대도 반대하기 힘들어진다.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곤란하다는 듯이 피오드를 바라보았다. 말했듯이, 이 자리에서 션의 검술을 타국의 귀족에게 전수해도 되는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갖춘 이는 피오드 뿐이었다.
우리 모두의 시선이 피오드에게 향하고, 그는 여전히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짧은 침묵 후에, 마침내 피오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션은…….”
으드득! 이빨을 갈며 나를 노려보는 피오드. 그가 한숨을 내쉬며 옛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션은 검법 전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어. 재능 있는 이를 발견하면 상대를 억압하고, 납치, 심지어는 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가르침을 주었다.”
“그, 그런 일이…….” 험클리가 질려했다.
“남들은 성자니 뭐니 칭송하지만, 아주 제대로 맛이 간 새끼였지. 그 새끼는 검술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제 부모도 팔아먹을 개자식이었어.”
뮤온 보트라와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당신들은 션 본지 하루도 안 됐으면서 뭘 안다고 고개를 끄덕여요.
“때문에 그런 션이기에 미래를 걱정했지. 그가 완성한 검법서를 내게 전해주며 한 말이 있다.”
“무슨 말을 했습니까?” 내 기억으로는 걱정한 게 없었는데?
“그는 ‘완성한 검법, 검술을 외부로 풀면 이것들의 행방은 내 손을 떠난다.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계급과 지역을 나누고 무술의 전수에 제한을 두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션이 그런 말을 한 적은 결단코 단 한 번도 없다. 그건 오히려 피오드가 걱정한 거고, 나는 인간들이 내 검술 가지고 지지고 볶든, 카르스트 제도를 만들든 말든 알 바 아니라고 대답했었지.
고개를 갸우뚱한 나를 피오드가 토할 것 같은 얼굴로 노려보았다. 그가 안면을 씰룩대며 힘겹게 말을 토했다.
“그래서… 션은 내게…… 적, 적합한 재능을 보유한 이가 거, 검술… 고급의 검술을 원하…면…….”
“원하면요?”
내 놀리는 듯한 질문에 피오드가 쾅! 하고 식탁을 내려쳤다. 다들, 심지어는 두 소드 마스터조차 그의 돌발 행동에 놀라 어깨를 움찔! 했다.
그는 한 번이 아니라 단어마다 강세를 주며 쾅쾅! 식탁을 때리며 외쳤다.
“종족! 국적! 성별! 나이를! 불문! 하고! 그에게! 나의! 검법을! 알려! 주라고! 이! 말을! 했다고!”
쾅쾅쾅쾅쾅! 노인네가 힘도 참 좋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물었다.
“오! 정말인가요?”
“그래! 이 개새끼야!”
“그럼 저 8대 난검 익혀도 됩니까?”
“그래! 이 시팔 놈아!”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흥분한 피오드를 말렸다.
“재, 재상… 왜 그러십니까. 진정하시지요.”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합니다! 베이누스 경!”
“재상! 그러다 쓰러집니다! 르데앙! 험클리! 어서 그에게 성력을!”
“예, 예!” “아, 알겠습니다.”
“재상님. 빨리 8대 난검 알려주세요.”
“좀! 기다려! 이 좆같은! 개자……!”
“쟈기!”
“쟈기 경!”
“쟈기 자작!”
“쟈기 이 새끼야!”
“옝. 8대 난검 익혀도 된다고 허락받은 쟈기입니당.”
“닥쳐라!”
“닥치세요!”
“그 입 다물지 못하겠나!”
“야, 이 미친놈아! 제발 부탁인데 단 하루라도 그 주둥아리 좀 다물 수 없겠냐!”
그렇게 나는 8대 난검 수련을 허락받았고, 베이누스 프솔리아네와의 만남은 아주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그날 밤.
벌컥!
피오드가 노크도 없이 수도원에 마련된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8대 난검 검법서를 집어던지곤 말도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저놈 아주 단단히 삐쳤구먼. 피오드는 옛날부터 그랬다. 자기가 놀리는 건 괜찮은데, 남이 놀리면 정색하고 화내는 녀석이 있지 않은가. 그런 인간이 피오드였다.
나이 먹고 차분해졌나 싶었는데, 인간의 나쁜 면은 나이를 먹을수록 심해진다는 옛말은 이세계에서도 통용되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검법서를 대강 훑었다. 션이 창안한, 승천자의 무학을 가감 없이 담으려는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검법을 읽으며 추억에 잠기길 몇십 분.
저벅.
어두운 수도원을 걷는 발소리가 내 주의를 이끌었다. 그 인기척은 숙소를 지나, 처음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온 예배당으로 향했다.
탓. 조금 묵직한 발걸음이 뒤이어 들려온다. 두 인기척은 예배당에서 만나, 단상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발걸음으로 보아하니 피오드하고 베이누스 프솔리아네인데, 둘이 왜 저기서 만나지?
‘불륜인가?’
피오드를 놀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나는 방에서 나와 예배당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밀회를 현장에서 붙잡을 요량으로 예배당에 발을 들인다.
하지만 내 추잡한 망상과 다르게, 둘은 단상 뒤에 고이 보관된 고급스러운 백자 앞에 양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예상외의 장면에 내가 발끝을 끌었다.
바스락!
“아……!”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나를 눈치 챘다. 그녀가 조금은 화가 난 기색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잠시 후, 피오드도 나를 보더니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다가오라 손짓했다.
둘이 양옆으로 물러나고, 가운데에 내가 선다. 내가 눈으로 무슨 일인지 묻자 피오드가 백자를 턱짓했다.
“기도하는 거네. 부디…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누구에게 말입니까? 천족에게?”
“아니.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화해하기를 바라고, 그것을 보지 못하고 떠난 그녀에게.”
“그녀라니…….”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말했다.
“오세아이노 성자님이라네.”
“아…….”
오세아이노 성자. 10년 전에 죽었다지. 그래. 그녀도 그렇게 갔구나.
눈앞에 있는 백자가 그녀의 뼛가루를 담은 항아리였다.
“함께 하겠나?” 피오드가 물었다.
“그럼요.”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션을 따라나선 그녀를 기억한다. 눈물을 글썽이며, 소드 마스터 히라자의 앞을 가로막고 에일을 지키려 한 그녀의 용기를 기억한다. 내 팔을 잘라 니웨에게 주라고 했을 때, 너네 다 미쳤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을 기억한다.
초인들의 싸움에 휘말린 유일한 범인(凡人).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위해, 자신을 지키고자 스러진 무수한 생명의 가치를 알기에 마지막까지 도망치지 않았던 그녀. 그녀라면 내 절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나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녀에게도 다음 생이 있기를. 다른 시대에서, 다른 인연으로 나와 만나지 않고 평온한 삶을 살기를.
“…….”
말없이 기도하는 나를 베이누스 프솔리아네가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피오드가 잠시 나를 내려다보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세아이노. 제 오랜 친우여. 우리가 드디어 못 다한 악연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부디 하늘에서 저희를 지켜봐 주시길. 그리고 해피의 삶을, 그의 갈 길 잃은 분노를…….”
피오드의 기도와 함께, 트라암에서의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