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 * *
쏴아아아! 철썩! 쏴아아아! 철썩!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이어진 격전이 거짓말처럼 고요함을 되찾은 해변.
물론… 아직도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괴한 색깔의 썩어가는 살점, 그리고 사이좋게 해변에 널려 썩어가는 천수백 구의 몬스터 시체를 본다면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서 치워!”
“여기! 도와줘! 아직 꿈틀거리고 있어!”
또한 해변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수백 명의 건장한 남녀들이 있기에 고요함조차 머나먼 말이 되었다.
그들이 이 피비린내 나는 장소에 온 이유는 모래사장에 널린 몬스터 시체와 파도에 떠밀려온 살덩이의 회수 및 처리. 그리고 추가로…….
“물! 깨끗한 물 가져와! 로이안 가문에서 치료 마법사… 아니, 르데앙 성자님을 불러!”
“붕대 남는 거! 그리고 천막 쳐!”
밤새 쉬지도 못하고 싸운 험클리, 알보이오 골곤과 그의 병력의 치료가 있었다. 밤 동안 이루어진 싸움이 어찌나 격했는지 이종족인 험클리마저 녹초가 되었고 르데앙도 성력을 쓰는 것 외에는 달리는 것도 힘들 정도로 크게 지쳤다.
그런 만큼 피해도 컸다. 알보이오 골곤이 데려온 마흔 명의 방창병 중 두 명이 사망했다. 그 외에 손가락이 잘리고, 독이빨에 다리가 물리고, 상처로 몬스터의 혈액이 스며들고…… 기타 등등까지 다 합치면 전투력의 절반이 손실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피해를 보았다.
쟈기가 초능력마저 적극 써서 아군에게 신체 강화, 감각 강화, 피부 경화까지 걸어주었는데도 이 정도 피해였다. 그는 추가로 성력을 더한 회복 마법장과 보조 마법마저 걸어주어서 밤새도록 싸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도 두 명이나 사망자가 나올 정도였으니… 아니, 어떻게 보면 초능력과 마법을 적극 썼기에 겨우 두 명만 죽은 거였다. 그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알보이오 병력의 생존자는 알보이오 골곤이 유일했으리라.
“여섯 시간을 쉬지 않고 싸우다니… 태어나서 처음이야.”
“물은 마셨잖아. 빗물.”
“그게 마신 거냐.”
해변에 드러누워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는 알보이오 병력. 몬스터 처리를 위해 나온 도시 사람들은 그들의 성과를 알기에 편하게 쉬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의 분전 덕분에 챠르 섬 주민들이 머무르는 도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쟈기와 르데앙, 험클리, 알보이오 골곤을 비롯한 그의 병력이 싸운 해변 너머가 바로 도시였기에, 그들이 다치면서 몬스터를 막지 않았으면 그 백배에 달하는 일반인 피해가 생겼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분전했다 할지라도 다른 방향에서 몰려오는 몬스터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지에조, 로이안 가문과 뮤온 보트라, 자치대원과 억센 선원들, 심지어는 건장한 청년들까지 나서서 도시로 쳐들어오는 몬스터와 맞서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내 사망자 수는 일백을 헤아린다. 즉, 지금 이 자리에 나온 이들도 난리통에 휩싸인 바람에 밤새 자지 못해서 피곤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고 본능에 따를 때가 아니다. 곳곳에 널브러진 몬스터 사체를 시급히 치우지 않는다면 피 냄새를 맡고 또 몬스터가 또 몰려올 것이다.
“밤이 오기 전에 다 없애야 해! 거기, 이 등신 새끼야! 깊은 곳에 가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나!”
다들 그것을 알기에 지친 몸을 채찍질해가며 바닷물을 잔뜩 먹은, 썩어가는 살덩이를 회수했다.
해변에 드러누워 그 장면을 지켜보던 알보이오 골곤. 곳곳에 붕대를 감은 그가 비도를 정비하다가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입에 담았다.
“적어도 올해 농사는 풍년이겠군요.”
“예…? 농사… 말입니까?”
험클리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바라보자 쓰게 웃으며 앞에 놓인 몬스터의 척추 뼈를 뽑아서 보여준다.
뿌드득! 데롱!
“그야… 이렇게 비료로 쓸 재료가 넘쳐나지 않습니까. 올해하고 내년은 물론이고, 앞으로 십 년 동안은 흉작 걱정은 없겠습니다. 하하!”
“하, 하하… 그, 그렇군요…….”
험클리가 마주,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지쳐서 이렇게 드러누워 있는 덕분에, 어른 특유의 씁쓸한 개그나 듣게 된다니. 인생 참 한치 앞날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험클리는 아재 개그에 고통받고, 르데앙은 지친 몸을 이끌며 성력을 전해주는 도중.
유일하게 펄펄한 쟈기는 무역선을 확인하러 자리를 비웠다.
“배는 어떻지?”
쟈기는 어수선한 도시와 해변을 떠나 간이 정박지로 향했다. 몬스터의 해일에 배도 휩쓸려 망가지지 않았을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역선은 목재가 아닌 철재선이어서 손상이 심하지 않았다. 상처라고 해봤자 외곽 부근에 손톱자국이 지저분하게 나 있는 수준?
“아이고…….”
그러나 안심은 딱 거기까지. 갑판으로 올라가자 몬스터가 만들어낸 참상이 쟈기의 눈앞을 가렸다.
배에 실린 무역품, 차곡차곡 실린 나무 박스 더미 윗부분이 몽땅 뜯어져 있다. 빗물과 바닷물에 적셔지고, 몬스터의 지랄발광에 횡액을 입어, 무역품의 10분의 1 정도가 상품 가치를 잃었다.
다행인 건 상부의 무역품은 원자재와 같은 무게가 덜한 것들이라는 점?
진짜로 비싼, 무겁고 가치 있는 것들은 무게 중심을 위해 하부에 있었다. 그렇다고 상부에 놓인 무역품이 가치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스윽~ 갉작! 갉작! 갉작! 갉작!
쟈기는 뭐 하나라도 건지려고 바닷물에 적셔진 원단을 들었다가, 옷이 접혀 있는 부분에 굼벵이와 비슷한 종류의 애벌레 수십 마리가 옷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으익?!”
진저리를 내며 옷가지를 집어 던진다. 여기 있는 건 만지기도 싫은 그였다. 상세한 분류는 선원에게 맡기자며 자연스럽게 일거리를 떠넘기고, 그는 선실로 향했다.
선실로 가는 문짝도 부서진 지 오래. 축축하게 젖은 해초나 생명체의 몸에서 나왔으리라 짐작되는 다채로운 색의 기름 덩어리가 바닷물과 함께 계단, 복도, 선실 문짝 등등에 널브러져 있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이렇게 더러운 곳에 오는 건 똥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바다 특유의 비린내와 유기물이 썩어가는 구리구리한 냄새가 복도에 진동한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부패가 이만큼이나 진행됐다니, 이세계는 미생물조차 근성이 넘쳐나는 세상이구나-라며 쟈기는 엉뚱한 곳에 감탄하며 현실도피를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까. 선실은 운이 좋았다. 선내까지 침입한 몬스터는 얼마 없었고, 썩어가는 바닷물이 무릎까지 차오를지언정 방까지 몬스터가 쳐들어오지는 않았다. 대신 복도는 엉망이지만.
첨벙첨벙!
1층, 2층을 넘어 3층까지 확인을 하는 쟈기. 확인하면 할수록 ‘이걸 언제 다 치우지?’라는 고민에 빠진 채, 허리춤까지 물이 올라온 지하 3층 복도를 걷는 그의 위로 매끈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쟈기의 뒤통수를 포착하자마자 전신의 근육을 용수철처럼 거세게 튕겼다.
“캬악!”
선실에 갇혀서 천장에 웅크리고 숨어있던 레인보우 스네이크 종에 속하는 중형 몬스터가 쟈기의 정수리를 향해 습격!
딱!
쟈기는 짜증을 내며 손가락을 튕겼다. 원형으로 회전하는 초능력이 레인보우 스네이크 종의 머리를 빠득! 빠득! 갈았다.
아무리 뱀이 생명력이 뛰어나도 두개골을 통째로 걸레 쥐어짜듯이 비틀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머리를 잃은 레인보우 스네이크 종의 몸뚱어리가 신경 작용에 꿈틀대면서 복도의 물바다 속을 헤엄쳤다.
쟈기는 한숨을 내쉬며 꿈틀거리는 레인보우 스네이크 종의 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신체 변이 초능력이 녀석의 신경계를 마비시켰고, 곧이어 몸만 남은 몬스터는 완전한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실에 남아있는 얼간이 몬스터를 하나둘씩 쳐 죽이며 무역선을 정리한 그가 양손을 펼치곤 주문을 길게 외웠다.
체내에 새겨진 마법 회로가 빛을 발하고, 속성력이 발휘되자 무역선을 지저분하게 더럽히는 바닷물이 그의 의지에 따라 역류한다.
쏴아아!
선실, 복도, 무역품, 선장실, 식당까지. 곳곳을 가득 채운 수분, 유분, 염분, 여러 미생물과 몬스터 살덩어리가 복도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쏟아지는 폭포수를 촬영한 동영상을 거꾸로 되감기 하는 것처럼, 3층의 물이 2층으로, 2층의 물이 1층으로, 그리고 마침내 선실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올라와 무역선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쿠과과!
일 초에 수 톤씩 밖으로 쏟아지는 지저분한 물덩이들! 쟈기는 그 과정을 통제하며 혹시나 놓친 것이 없는지 꼼꼼히 검사했다.
원단을 열심히 갉아 먹던 벌레까지 포함해서, 배를 대강 치운 쟈기. 갑판을 돌아다니며 부서지고 물 때 묻은 곳을 점검하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착!
“왔습니까?”
“음.”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곱상한 인상의 미남, 뮤온 보트라가 섬을 비행하듯이 날아와 그의 앞에 착지한 것이다.
뮤온 보트라는 쟈기 만큼이나 멀쩡했다. 500년 이상의 비밀조직 근속경험은 그 누구보다 격하게 싸웠으면서도 일말의 피로감도 내비치지 않는 안면통제능력을 제공해주었다.
쟈기가 부서진 난간을 금속 제어 마법으로 고치며 물었다.
“어디 갔다 오신 겁니까?”
“섬을 한 바퀴 돌고 왔다. 위험한 녀석은 남아있지 않은 것 같더군.”
해변을 정리하는 사람들은 이쪽 해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섬 전체에 걸쳐서, 쌀 한 말이라도 나를 수 있는 이들은 모조리 동원되어 섬을 샅샅이 청소하는 작업에 참가했다.
몇몇 예외는 치료, 요리, 건물 수리, 약품 제조 등의 전문 기술자뿐. 양아치는 물론이고 3대 가문에 속한 코맹맹이 아이들까지 조막만 한 손을 놀리며 섬 청소에 애를 썼다.
뮤온 보트라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육지와 대결계 안쪽의 얕은 바닷속까지 구석구석 수색하여 더 이상 위험한 몬스터가 남아있지 않고, 남아있다 할지라도 그의 검에 의해 위험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순찰이 오전에 끝나, 무역선을 점검하는 쟈기를 만나러 온 것이다. 그가 아직은 물기가 남아있는 갑판을 신발로 퉁퉁 퉁기며 물었다.
“배의 손상 정도는 어떻지?”
“아직 마법진 점검이 남아있는데, 아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선장실은 방어 마법으로 보호되었고, 내벽 마법 회로는 일체의 손상도 없으니까요. 뭐, 원하신다면야 당장 몇 시간 후면 출항할 수도 있습니다.”
“잘됐군. 최대한 빨리 점검해다오. 아무래도 섬이 심상치 않은 것이 근처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예? 정말입니까? 그것에 이 배를 쓰자고요?”
무역선 운전은 공짜가 아니다. 은신 마법진의 장기적인 유지를 위해선 마나석의 소모가 필수적이다. 더군다나 무거운 짐까지 실었으니, 말 그대로 돈 먹는 하마나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돈에 인색하지 않은 쟈기였지만, 무역선은 그의 것이 아닌 이종족 연합지역의 것이고 무역품이 손상을 입었다는 것 때문에 지금만큼은 손해에 민감했다.
하지만 뮤온 보트라도 굳이 무역선을 순찰용으로 쓰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었다.
“쟈기, 챠르 섬의 선박은 모두 목재선이다. 그것들이 어제의 난리를 겪고도 멀쩡히 작동할 것 같나?”
“아아…….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뮤온 보트라의 담담한 설득에 쟈기가 납득했다. 그가 잠시 기다려달라 말한 뒤, 선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굳게 걸어 잠궜다.
몇 초 후, 뮤온 보트라의 감각으로 무역선을 감싸는 넓은 마나 파동이 느껴졌다. 치료법의 일종인 촉진법(觸診法)처럼, 마법진을 살며시 두드리며 기능을 확인하고 작은 이상이 생겼으면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게 두 시간에 걸쳐 무역선의 기능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쟈기가 선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문을 연 그를 기다리는 것은 뮤온 보트라만이 아닌, 특사에 파견된 선원들 절반과 섬사람들 20여 명이었다.
쟈기는 섬사람 중에서 안면이 있는 젊은 남성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호테? 네가 여긴 웬일이야.”
“호테입니다만…….”
첫날. 쟈기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혼쭐이 난 호테를 필두로 섬에서 선원 일을 하는 이들이 쟈기네 쪽 선원들과 함께 선장실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았는지, 갑판과 부서진 포장 자재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있는 게 보인다. 쟈기가 배를 점검하는 동안 항해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배 내부를 치운 것이다.
뮤온 보트라가 그들을 질서 있게 갑판 위에 세운 뒤, 쟈기에게 말했다.
“우리 쪽 선원들도 다친 이들이 많이 있어서. 이들을 동원했다. 몰았던 배의 수준은 다르지만, 같은 선원이니 괜찮을 것이다.”
쟈기는 선장을 보았다. 이런 일에는 뮤온 보트라나 그가 아닌 선장의 확답이 필요했다. 선장은 챠르 섬에 머무르는 4일 동안 섬의 선원들과 많이 친해졌는지 맡겨달라는 듯이 가슴을 퉁! 하고 때렸다.
“명령 체계라거나 몇몇 다른 부분이 있긴 한데, 간단한 일 정도는 무리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같은 바닷일 하던 놈들이니깐요.”
호테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슴다! 맡겨만 주십쇼!
쟈기는 뮤온 보트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작게 물었다.
“미끼?”
순찰을 하는 와중, 중형 몬스터 무리가 귀찮게 하면 한 명씩 미끼로 집어 던지려고 참여시킨 것인지 물은 것이다.
“아니다. 무시무시한 생각 하지 마라.”
뮤온 보트라가 이런 때에까지 헛소리하는 쟈기의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싶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쟈기가 어떤 계산을 했는지 모르는 챠르 섬 선원들만이 듬직한 표정을 지으며 배를 몰 준비를 했다. 십여 분에 걸쳐 준비가 끝나고, 푸셔가 가동되며 배가 정박지에서 멀어졌다.
뿌우우…….
소심한 뱃고동소리와 함께, 첫날, 그들을 구해주었던 로이안 그로샤도 일행에 껴서 대결계의 문을 열고 출항.
속도는 약 11노트의 지극히 느린 속도로. 섬을 중심으로 반지름 20킬로미터의 원을 그리며 한 바퀴를 돈다.
크르르!
첨벙! 첨벙!
캬아악!
약 여섯 시간이 걸린 순찰 결과는 예상대로 최악.
근처의 커다란 해양 동물은 씨가 말랐고,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몬스터의 살점, 뼈다귀, 거죽 등이 바다를 둥둥 떠다닌다.
소형 물고기 떼가 그것들을 뜯어먹고, 아직도 흥분을 참지 못하는 중대형 해양 몬스터가 무리를 이루며 사방을 종횡무진하는 미치광이 풍경이 바닷속에 펼쳐졌다.
“…….”
“꿀꺽!”
선원들은 극도로 긴장한 채, 행여나 신발 소리라도 들릴까 갑판을 걷는 것조차 발뒤꿈치를 세우고 살금살금 걸었다.
로이안 그로샤도 안색이 창백하고, 늘상 덤덤하던 뮤온 보트라도 이번만큼은 크게 긴장했다.
“하하. 물 반에 고기 반이 이런 건가 싶네요.”
쟈기가 메마른 웃음을 흘리며 썰렁한 개그를 펼쳤다. 물론, 그 누구도 그의 개그에 웃지 않았다. 아니, 웃지 못했다.
육지와 달리 z축에도 생물을 저장할 수 있는 바다는 몬스터의 양부터가 차원을 달리한다. 녀석들이 무리를 이뤄 돌진하는 것의 무서움은 당장 어젯밤과 오늘 새벽에 뼈저리게 느꼈다.
헌데, 순찰한 것을 보니 그들이 처치한 몬스터의 수는 말 그대로 백사장의 모래알 하나에 불과했고, 바다는 아직도 몬스터로 우글우글했다.
그리고…….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번이 끝이 아니야.”
뮤온 보트라의 민감한 시각은 바닷속 해류에 나부끼는 몬스터 살점을 놓치지 않았다. 저것들 대다수는 해저로 가라앉거나 파도, 해류에 밀려 챠르 섬에서 멀어지겠지만, 극히 적은 양은 챠르 섬 해변으로 밀려올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소한 하루, 인근 바다에 남아있는 몬스터 살점이 가라앉거나, 멀어지거나, 몬스터 뱃속으로 들어가 더 이상 챠르 섬으로 밀려오지 않을 때까지 만 하루 정도가 더 필요했다.
“몬스터를 괜히 치웠나요? 쉬게 내버려 두었던 게…….”
“아니, 안 치웠으면 세 배는 더 몰려왔겠지. 어느 쪽이든 최악이지만, 그나마 치우는 게 차악이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
“…….”
로이안 그로샤는 쟈기와 뮤온 보트라의 대화를 들으며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수평선을 향해 추락하는 붉은 불덩어리, 태양이 그녀의 얼굴을 붉게 비추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몬스터도 시각보단 후각으로 남은 살점을 찾을 것이고, 아무리 대결계의 은신 효과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섬 곳곳으로 밀려온 살점의 냄새를 모두 가려주지 못할 것이다.
“돌아갑시다. 지금쯤 섬사람들도 끝이 아님을 알고 대책을 세웠을 겁니다.”
쟈기가 그리 말하며 배의 방향을 챠르 섬으로 틀었다. 한 시간에 걸쳐 배를 몰아, 챠르 섬에 도착한 일행이 깔끔하게 정리된 해변가에 도착했다. 쟈기는 당장 선원들을 모아 도시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희는 지금 당장 도시로 돌아가서 거기 사람들 말에 따라라.”
“옙.”
“알겠슴다.”
“자작님은 안 오십니까? 어디로 가실 겁니까?”
“우리는 따로 갈 데가 있어. 쓸데 없는 거 묻지 말고, 늦기 전에 어서 가기나 해.”
괜한 질문을 하는 호테의 머리를 쥐어박고, 선원들을 떠나보내는 쟈기. 이제 붉게 물들어가는 해변가에는 쟈기, 뮤온 보트라, 로이안 그로샤만이 남았다.
사람들을 다 떠나보낸 뒤, 뮤온 보트라가 물었다.
“어디 있지?”
쟈기는 대답대신 고개를 돌려 곶 끄트머리에 지어진 웅장한 성, 로이안 가문의 대저택을 바라보았다. 그가 로이안 성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 바다로 발을 내디뎠다.
쩌저적!
바닷물이 두껍게 얼며 해변에서부터 로이안 성이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얼음길이 만들어진다. 쟈기가 아무런 말도 없이 얼음길을 걷고, 뮤온 보트라와 로이안 그로샤가 뒤를 따랐다.
로이안 가문의 성. 그곳에 섬의 최고 전력이 모여 있다. 그들과 섬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험난한 오늘 밤을 보낼 작전을 짜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