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325
325화
* * *
우드득! 꽈직!
산을 개간한 계단식 농경지대가 몬스터의 우악스러운 발길에 짓밟힌다. 자라난 싹이 엉망이 된 것이, 이번 해의 농사가 망했음을 당연히 알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는다.
“쉬익! 쉬이익!”
“훅! 쿠훅!”
쿵쿵쿵!
그야 논을 짓밟는 존재가 질리도록 수가 많은 해양 몬스터이니. 당장 저놈들부터 막는 게 우선무지, 몇 개월 후의 농사일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놈이 바보였다.
다행히도 이들이 있는 곳은 해발고도 400여 미터의 산. 해양 몬스터가 올라오기에는 힘든 높이다. 뱀, 게, 뛰어다니는 가재, 두 발로 펄쩍펄쩍 뛰는 개구리, 점프하는 거대 매기 등… 소수의 몬스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제 겨우 산의 입구에 발을 디뎠다.
“아니, 그것도 많잖아?!”
호테가 울상을 지으며 장창을 찔렀다.
쩍-!
정수리가 관통당한 거대 개구리. 올라오면서 험난한 싸움을 펼쳤는지 뒷다리와 몸 이곳저곳에 물리고 뜯겨나간 상처가 가득한 녀석이 목책에 몸을 들이박으려다가 눈을 까뒤집고 즉사한다.
호테와 같은 조원이 장대로 즉사한 개구리를 밀친다. 거구가 내리막길을 굴러가며 한 몬스터를 덮치고, 뒤의 녀석을 덮치고, 또 그 뒤의 녀석을… 이러며 한 번에 수 마리의 몬스터를 없앤다.
호테처럼 다른 이들도 몬스터가 목책에 접근하면 목이나 척추를 창으로 찌르고, 장대로 밀어서 굴린다. 이런 일이 기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가까이 가지 못하는 이들은 뒤에서 투석을 던져대며 중거리 견제를 도맡는다.
쿵! 쿠웅!
“제길! 장대! 한 명 더 붙어!”
현혹하는 불길과 이지러지는 빛 등의, 자멸을 유도하는 마법에 걸려 정상까지 올라오는 녀석들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수백 중에서 겨우 수십. 하지만 그 10분의 1조차도 인간 측에게 압박이 되긴 매한가지였다.
인간은 화살 한 대만 사지 끝에 박혀도 전투력이 급감한다. 하지만 몬스터는 로드롤러로 하체를 반듯하고 깔끔하게 밀고 상체만 남겨도 발톱을 들이대는 전투광.
그런 놈들이기에 온몸이 상처투성이라도 개의치 않고 목책에 공격을 시도한다. 이빨, 손톱, 하다못해 몸통박치기라도 날리고 장렬하게 산화한다. 명백하게 내구력의 한계가 존재하는 목책 특성 상, 몬스터 한 녀석이 거는 몸통 박치기조차 심히 부담스러웠다.
퍽퍽! 한 아낙네가 던진 주먹만 한 돌덩이가 몬스터의 머리통을 깨는 것을 보며, 쟈기는 준비 시간이 하루도 되지 않은 게 심히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시간과 여유가 있었으면……!’
능력 없는 악역 과학자나 할 법한 생각을 하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사실이었다.
딱히 흑마법을 쓰지 않아도 혈액독과 식물독의 응용은 일반 마법에 얼마든지 있는 수법이니 거리낌 없이 쓸 수 있었다.
만약 2~3일만 넉넉하게 시간이 주어졌으면 해양 몬스터의 혈액과 몇몇 육상, 해저 식물을 이용해서 섬을 뒤덮을 분량의 안개 독을 만들 수 있었을 터였다.
그것만 있으면 1만이든 10만이든 몰려오는 족족 죽이는 게 가능했겠지. 로이안과 알보이오 가문의 마법사들을 개처럼 부려서 마스크를 만들거나 아군을 보호하는 정화 마법진을 그릴 수도 있었겠고.
‘없는 거에 미련 두지 말자.’
지금은 있는 걸로 어떻게든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상어 가죽에 저장된 두 번째 마법을 준비하며 지에조에게 말했다.
“지에조! 당신을 포함해서 정령사들을 이용해 산 정상을 물로 뒤덮어!”
지에조는 쟈기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마법사가 물, 불 등의 속성력을 주문하면 그에 맞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와 정령을 다루는 열댓 명의 지에조 가문 정령사가 이를 악물곤 넘쳐나는 수분을 제어해 기지 밖으로 뿌렸다.
쏴아아!
삽시간에 수백 톤의 물이 기지 근처로 뿌려진다. 수십 초 동안 물을 뿌렸지만, 아무리 그들이 온 힘을 써도 넓은 산 정상을 물바다로 만드는 건 힘들다.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땅을 촉촉하게 적시는 수준.
그러나 쟈기에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가 상어 가죽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다음 마법을 발동했다.
“1시의 빙원!”
쩍! 쩌적!
400미터 가량의 능선, 양측 다 합치면 1킬로미터가 넘는 넓은 땅에 성에가 낀다. 물을 잔뜩 머금은 대지가 빙판길로 변한다.
오르막길에, 얼어붙은 돌길. 철저하게 몬스터의 이동을 막는 것에 집중한다는, 더럽게 치사하고 효율적인 환경 제어 마법의 극한! 쟈기는 빙원이 성공적으로 발동하자 지체하지 않고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11시의 우편향(右偏向).”
두 번째 현혹마법 완성! 이번에는 효과는 약하게, 하지만 최대한 넓은 범위로 기지와 산 근처를 감싸게 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법이 발동되자 너울거리는 반투명한 천막이 수백 미터 길이로 튀어나와, 마치 오로라처럼 산을 포근하게 감싼다.
천막은 기지를 중심으로 나선으로 원을 그렸다. 오른방향으로 나선을 그리는 반투명한 천막. 이것이 우편향이다.
우편향은 이것 자체만 가지고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하지만 12시의 현혹하는 불길과 더한다면 자원은 적게 들이면서 큰 효과를 보는 굉장한 녀석이 된다.
기우뚱~!
효과는 바로 나왔다. 산을 오르는 몬스터의 발걸음이 비비 꼬이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몇 개의 현혹마법에 걸려 방향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는 녀석들인데, 우편향에 그것이 한층 더 심해진다.
우측으로 기울어지는 몬스터의 발걸음. 기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산을 우로 빙빙~ 돌며 올라오다가 날아든 돌멩이를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졌다.
더군다나 이곳은 경사진 산, 계단식 논이 가득 들어차 있는 곳. 논 턱에 발이 걸리거나, 밑을 신경 못 쓰고 옆으로 걷다가 물이 빠지는 곳에 넘어지고, 계단을 구른다.
그 효과는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강해진다. 아름드리나무는 한 번에 부술 수 있는 거대 집게를 양손에 장착한 괴물 가재가 목책 가까이 다가오다가 우편향에 당해 몸을 틀었다. 우측으로 살짝, 20도 정도 틀어진 몸통.
“쩔러! 아니, 밀어!”
그 틈을 노리고 가재 쪽에 있던 경비대원이 악을 쓰듯이 외쳤다.
타다닷! 알보이오 가문의 밀치기 마법이 적용된 네 대의 봉이 가재의 옆구리와 관자놀이, 눈을 때린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좁은 어깨를 보유한 게 가재. 그런 녀석을 경사진 곳에서 옆으로 밀쳤으니… 엎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옆으로 풀썩 쓰러져, 스케이트 보드처럼 죽-! 밀려 내려간다. 가재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인간 상체만 한 날치가 대신한다. 날개 지느러미를 펄떡거리며 이 높은 상 정상까지 올라온 것이다.
배지느러미는 거친 흙과 돌바닥을 올라오느라 상처투성이. 해양 생물이 육지를, 그것도 산을 올라온다는 정신 나간 짓거리를 했지만, 녀석의 눈은 죽지 않았다. 날치가 펄떡 뛰어서 목책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박았다.
우직!
한입에 주먹보다 커다란 분량의 나무가 뜯겨 나간다. 그 모습을 보자 로이안의 마법 무구를 장비한 스칼러급 실력자가 득달같이 달려와 뼈창을 찔렀다.
마법이 걸린 덕분에 뼈의 그것보다 몇 배는 날카로운 창날이 날치의 정수리를 꿰뚫는다. 다음엔 이오브린의 장봉을 장비한 경비대원이 날치를 친다.
투쾅! 장봉에 걸린 밀치기 마법이 날치를 날려 보낸다. 이후엔 마법사들이 뛰어와 대지의 장벽으로 손상된 부위를 보강.
이런 싸움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시간상으로는 거의 30분 정도. 단지 30분 만에 목책 주변에 수백이 넘는 몬스터가 우글우글하게 쌓이게 되었다.
“이, 무슨… 마법이 효과가 없어?”
한 청년이 돌을 집어 던지다가 주춤하며 말했다. 그러나 마법의 효과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몬스터의 수가 그걸 상회할 만큼 많을 뿐이었다.
간단한 이야기다. 10분의 1밖에 오지 못한다면 수를 늘리면 된다. 수백 중 수십 만 올 수 있는 것을 수천 중에서 수백으로, 그리고 수만 중에서 수천으로 바꾸는 것.
섬에 올라온 해양 몬스터는 수만이 넘고, 산을 오르는 녀석들은 만을 훌쩍 넘겼다. 그 10분의 1만 해도 천수백을 넘는다.
서걱!
질린 경비원을 뚫고 목책으로 접근한 인간만 한 공벌레를 연푸른 오러가 반으로 가른다. 그나마 익스퍼트가 있기에 수백이 넘는 미친 수에도 현재까지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뮤온 보트라, 험클리, 르데앙, 그리고 지에조를 포함한 챠르 섬의 두 익스퍼트 하급은 각기 네 방향을 점한 채 그 누구보다 수월하게 몬스터를 막았다.
그러나 그것도 슬슬 위험하다. 겨우 30분 만에 달인 급의 실력자가 나와야 했고, 앞으로 버텨야 할 시간은 8시간이 넘는다.
르데앙이 잠시 뒤로 빠져 마법을 준비하는 쟈기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쟈기 경. 저나 신화검 같은 실력자만 따로 빠져, 산을 내려가서 한 번 싹 정리하고 오는 건 어떤가요.”
“표고 400미터짜리 경사로를 밤새도록 왕복할 자신이 있으시다면 그래도 좋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밤새, 말 그대로 밤새도록 이어지는 전투다.
수직 400미터, 대각선으로 600미터 이상 되는 산길을 내려가서 싸운 뒤 올라오고, 또 내려가서 싸운 뒤 올라오고. 아무리 르데앙과 뮤온 보트라의 체력이 좋아도 이 짓을 반복하면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탈진에 빠진다.
“자잘한 피해는 어쩔 수 없습니다. 자리를 지키세요. 그리고… 충분한 수가 모였으니 저도 본격적으로 참가할 수 있을 겁니다.”
로이안 가문의 시조, 로이안이 상어 가죽에 새긴 마법진은 그 스케일이 크다. 아까처럼 겨우 수십 마리가 성벽에 달라붙거나 수백 정도가 산을 올라올 때는 쓰는 게 아까운 마법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천이 넘는 녀석들이 산 중턱까지 올라왔을 땐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쟈기가 상어 가죽에 저장된 또 하나의 마법을 발동했다.
“다들 정신 나가고 싶지 않으면 뒤에 보지 마라! 2시의 아귀 식탐.”
지속형이 아닌 단발형이라서 아껴둔 마법. 목책에 수백, 산을 올라오는 수천의 몬스터가 쌓인 지금이라면 효과가 지대한 종류의 것이다.
아귀 식탐이 발동되자 이지러지는 빛에 회색빛 기류가 섞였다. 산 정상을, 거대한 모닥불과 그 위의 광구를 바라보며 올라오는 대다수의 몬스터와 굼뜬 몇 명의 인간들이 광구에 섞인 회색빛을 보고는 눈을 흐리멍덩하게 바꿨다.
아귀 식탐은 앞서 쓴, 갈망하고 분노해라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노린다. 하지만 단발형인만큼 그 위력은 몇 배나 더 강하다. 회색빛이 그들의 뇌신경에 파고들어, 한순간이나마 배가 아릴 정도로 극심한 허기를 느끼게 하였다.
“끼에악!”
극심한 허기에 눈이 돌아간 말미잘이 성대도 없는 주제에 괴성을 내질렀다. 촉수로 근처의 몬스터를 휘감아 장으로 끌고 온다.
콰드득! 밧줄보다 두꺼운 촉수가 운 나쁜 몬스터의 사지를 부러뜨리는 것을 시작으로. 제2차 잡아먹기 시즌이 도래했다. 그것도 아까보다 수십 배는 스케일이 크고, 격하게.
로이안 바티누스가 밑에서 벌어지는 아귀도를 보곤 눈을 빛냈다. 그가 장대에 불을 붙여 사방으로 휘둘렀다.
“지금! 1열은 뒤로 빠진다! 2열이 앞으로, 3열은 중간으로 이동!”
겨우 얻은 잠깐의 휴식. 광란의 포식 시즌이 지나고, 다시 몬스터가 산 정상을 향해 올라온다.
“찔러!”
“밀어!”
돌팔매질에 찌르고 밀고, 네 명의 익스퍼트와 한 명의 소드 마스터가 체력 분배를 적절히 하며 목책에 상처를 줄 만한 놈들을 처치한다.
아귀 식탐으로 몬스터를 정리한 게 조금 전 같은데, 1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목책 근처가 다시 몬스터로 우글우글해진다. 빙원으로 미끄러워진 발판도 피와 살점에 더럽혀져 효과를 잃었다.
쟈기는 몬스터가 적절히 모이자 다음 마법을 썼다.
“4시의 장난꾸러기!”
투웅!
회갈색 파장이 땅을 타고, 기지에서부터 산 중턱까지 길게 이어진다. 파장은 주먹보다 크고 머리통보다 작은 돌덩이로 스며들었다.
이 마법은 즉각적인 효과가 없다. 그 대신 조건이 충족되면, 이득을 톡톡히 볼 수 있다.
꾸욱!
회갈색 파장이 스며든 돌을 프로그맨이 꾹 밟는다. 단단한 돌을 밟고, 그것을 디딤발로 삼아 다음 발을 내딛기 전.
퉁!
밟아진 돌이 위로 크게 튀어 올랐다. 이것이 장난꾸러기, 회갈색 파장이 스며든 돌의 효과. 일정 이상의 압력이 돌에 걸리면, 1~2초 후 압력이 걸린 것의 반대 방향으로 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수수하지만, 지금처럼 산 정상으로 올라오는 도중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디딤발로 삼은 돌이 위로 튀어 오르자 프로그맨의 균형이 무너지고, 뒤로 엎어진다.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뒤로 엎어지면 뭐? 굴렁쇠 시작이다.
“끄루왁?!”
“꺽! 꺼꺽!”
프로그맨을 시작으로, 장난꾸러기에 영향받은 돌을 밟은 수백의 몬스터가 일제히 나동그라져 내리막길을 굴러떨어졌다. 수백의 몬스터 산사태가 일어나고, 산은 순식간에 운 좋은 몇 녀석을 제외하고는 말끔한 본래 외형을 회복했다.
“알보이오!”
“옙! 지금이다! 돌 보충하고, 부상자를 뒤로 빼라! 대열 교체하고… 거기! 재난 대비 훈련을 몇 번이나 했는데 뭘 꾸물거리는 거야! 지하에서 팔팔한 녀석들 몇 명을 꺼내서 바로바로 교대시켜!”
“부상자는 이리로 데려오세요! 다시 말합니다! 부상자는 이리로 데려오세요!”
쟈기가 가져다준 한순간의 휴식 시간. 하지만 쟈기는 쉬지 못한다. 그는 산 입구까지 굴러떨어진 몬스터를 확인하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로이안 가문이 수 대에 걸쳐 제조한 점액성 독극물을 모닥불로 집어 던지곤, 다음 마법 발동!
화르륵! 치익!
“3시의 썩어가는 늪.”
모닥불에 빠진 점액성 독극물이 짓누런색 연기를 내뿜으며 위로 피어올랐다. 연기는 의지가 있는 것처럼 사방으로, 산 입구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몬스터의 몸에 스며들었다.
퐁! 포옹!
연기가 스며든 몬스터의 살점 곳곳에 노란 기포가 만들어진다. 기포가 터지고, 고름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곳곳으로 퍼진다. 죽은 녀석은 그 현상이 산 녀석보다 족히 열 배는 더 빠르게 일어났다.
고름은 몬스터의 혈액 속으로도 스며들어 심장, 뇌 등의 중요 장기마저 더럽혔다. 수천이 넘는 몬스터가 기포와 고름에 고통받으며 아비규환의 현장에 빠졌다.
팡!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고름이 터지며 반경 수 미터를 더럽힌다. 터진 고름이 몬스터의 피부, 그 상처로 스며들자 다시 상처 부위에 고름이 부풀어 오른다.
꽝! 부풀고, 터지고. 꽈앙! 부풀고 또 터지고! 이번 한 번에 한 세기 넘게 모은 로이안 가문 비장의 독물이 소진되었지만, 쓸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이름은 왜 이따군지 모르겠는데 효과는 좋아.’
쟈기는 이것의 명칭이 대체 왜 늪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상어 가죽에 늪이라고 적혀있으니 원저작자를 존중해서 늪이라고 말한 그였다.
어쨌든, 썩어가는 늪 마법이 만든 독 안개는 공기보다 무겁다. 웬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400미터가 넘는 산 정상까지 올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끄아아아아악!!”
썩어가는 늪에서 탈출한 터프한 몇몇 몬스터와 새로이 합류한 녀석들이 지치지도 않는지 또 산 정상을 향해 뛰어온다. 쟈기가 녀석들의 세력을 확인하며 다음 수를 고민했다.
‘아직 썩어가는 늪의 효과가 남아있지. 그러면…….’
벌써부터 공격 마법을 써도 되나? 독에 당하고, 배고픔에 당하고, 산을 굴러떨어지면서 또 당하고! 요 3시간 동안 자멸한 몬스터의 수가 족히 2만을 넘는다. 2,000이 겨우 넘는 이들이 보인 것치고는 지나치게 뛰어난 효과.
하지만 아직도 해변에서 새로운 몬스터가 우글우글 올라온다. 공격 마법으로 마나를 낭비하는 게 아깝지만, 뭐든지 최적의 때가 있는 법. 쟈기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의 마법을 공격 마법으로 정했다.
“5시의 난폭한 요정.”
푹!
산의 흙과 돌이 뾰족뾰족하게 가공되어 몬스터의 발바닥을 꿰뚫는다. 발을 다친 몬스터가 기겁하며 난리를 치다가 산길을 굴러떨어졌지만, 과반수는 그까짓 거 신경도 안 쓰는 터프함을 선보이며 산을 오른다.
보는 대로 별 볼 일 없는 효과였지만, 아까의 것, 썩어가는 늪이 더해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부글부글!
전신에 썩어가는 늪의 독기를 두른 몬스터. 발바닥에 난 상처로 독기가 스며들고, 잠깐 눈을 뗐다 하면 하체가 기포에 난리가 난다.
일단 독기가 스며들면 그걸로 끝이다. 썩어가는 늪의 독기에 오염되어 죽은 몬스터가 산 입구는 물론이고 중턱까지 곳곳에 배치되기 시작하며 안 그래도 오르기 어려운 산을 더더욱이나 험난한 죽음의 길로 만들었다.
“우와… 저, 저것 봐봐.”
“터지고 있… 우웩!”
그 상승효과가 어찌나 뛰어났던지, 독기에 죽어 나자빠진 몬스터는 같은 편들조차도 기겁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쟈기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후후후…! 이게 끝인 것 같냐?”
공방에서 웅크리고 있는 마법사도 같다. 집 안의 마법사는 당신의 절친이다. 마법사가 당신을 집으로 초대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해라 등등…
여러 속담, 격언의 형태로 대륙 곳곳에 통용되는 경고, 준비된 마법사는 무섭다.
완벽하진 않지만, 로이안이 준비한 것들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쟈기는 준비된 마법사였다. 그는 아직도 쓸 마법이 수십 개는 남아있으며, 로이안의 마법을 쓰며 본인도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준비는 더욱 완성되어갈 것이고, 쟈기는 대륙에서 통용되는 ‘무서운 마법사’가 될 것이다. 질 수 없다. 지지 않는다. 쟈기가 마음을 굳게 다잡으며, 여느 때와 같이 자연스럽게 마나를 인도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준비된 마법사보다 준비되지 않은 몬스터의 습격이 열 배는 더 무섭다는 것을.
자신만만한 그에게 세상이 벌을 내리는 걸까. 쟈기도, 섬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몬스터가 해변에서 습격을 개시했다.
쿠웅!
섬이 뒤흔들릴 듯한 거대한 진동. 해변 근처의 바다가 언덕처럼 불쑥! 솟아오르곤, 곧이어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린다.
쿵쿵! 거리는 굉음과 함께 바닷물을 뒤집어쓴 동산이 소규모 쓰나미를 만들어내며 해변을 향해 접근했다.
쏴아아!
“오잉?”
쓰나미를 가르며 등장한 그것에 쟈기가 눈을 비볐다.
며칠 전인가. 4일 전이었나 5일 전이었다. 덩치는 그때의 몇 분의 일로 줄었지만 뾰족뾰족한 가시는 여전했다. 그때 녀석이 쏘았던 브레스가 쟈기에게 크나큰 인상을 주었던 몬스터.
괴물 성게가 해변으로 발을 디뎠다. 쟈기가 성게의 등장을 보고는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시파. 적당히 좀 하면 안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