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09
409화
* * *
영광의 고원은 바위다. 그냥 바위가 아니라 높이가 400미터를 훌쩍 넘는 엄청나게 큰 바위다. 그런 녀석을 올라가기 위해선 계단을 설치하거나 도르래 등의 장비를 비치해야 한다.
하지만 빛의 수호자는 우리가 올 걸 알고 미리부터 계단을 무너뜨리고, 도르래를 철수했다. 몇 안 남은 급경사 오르막길도 브레스에 고원 자체가 진동하며 곳곳에 금이 가서 수십만 명이 올라갈 만큼 안전하지가 못했다.
그렇다면 안전하지 않다고 영광의 고원을 먹는 걸 포기하냐. 그럴 리가 있나.
“지면 다지기!”
이때를 위해. 영광의 고원이 최후의 결전이 이루어지는 장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준비해왔던 마법. 이종족 연합지역의 마법사들이 합심으로 영광의 고원을 막는 높은 절벽을 향해 지면 다지기라는 마법을 썼다.
기초 암석 계열의 마법. 그것을 고위 마법사 수준으로 증폭시켜서 암석을 원하는 형상으로 재배열하는 것이다. 그 지면 다지기가 절벽을 오르막길로 재배열했다.
꾸르르륵!
돌이 바스라져서 콘크리트 길을 형성하는 저질 CG를 보는 것만 같은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직 경사로의 절벽이 무너지고, 그 앞에 영광의 고원 정상으로 올라가는 긴 오르막길이 탄생한다.
그렇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경사 20도, 길이 약 1.1 킬로미터의 높은 오르막길이 눈앞에 만들어졌다. 높은 경사로를 원활히 오르기 위해 마법사들이 경사로에 역중력과 비행 마법을 걸어주었다.
우와아아!
길이 만들어졌고, 오르막길을 오르기 쉽게 마법의 보조까지 생겼다. 가지각색, 다양한 무구를 착용한 다종족 연합군의 병사들이 망설이지 않고 오르막길로 발을 내디뎠다.
“으아아?!”
“수십만에게 모두 역중력을 거는 건 무리야!”
“순서대로! 고수부터 올라가!”
어이쿠. 잘 안 되는 모양이구나. 하긴 마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십만은 무리지. 이쯤에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다. 주인공은 언제나 늦은 타이밍에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스마일.” 나는 통신으로 이스마일을 불렀다. 이스마일은 내가 통신을 보내기 전부터 그들의 역할을 깨닫고는 게리소님 고위 마법사들을 소집했다.
“다들 비켜라! 이놈들아! 천국의 계단의 실력을 보여주마!”
마냐툴, 그리고 시즈믹스. 그 둘이 몇몇 하위 마법사의 보조를 받으며 광범위 마법을 발휘할 준비를 한다.
일전, 구오를 습격한 적군의 기술력. 열 겹으로 겹쳐진 원통에서 신체 강화가 아닌 ‘위로 밀어주는 힘’을 걸어줌으로써 십만이 넘는 병사들의 진군속도를 반 배 가량 상승시켜준 엄청난 마법.
그것을 경험한 지 몇 개월이나 지났는데 역분해를 못하면 마법사의 자격이 없다. 게리소님은 전쟁 중에 획득한 빛의 수호자의 마법 무구를 탐욕스럽게 분석했고, 대다수는 천국의 계단식으로 개조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천국의 계단식 진군 마법. 7결 마법사인 마냐툴과 6결 마법사인 시즈믹스가 합심으로 오르막길에 그 마법을 사용했다.
“발구름!”
명칭 한 번 저렴하기도 해라. 두 고위 마법사가 상급 마나석 세 개를 소모해 힘을 합쳐 쓰는 마법인데 좀 더 멋진 이름을 떠올릴 순 없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나만인 듯싶었다. 오르막길에 발을 디딘 병사들이 화색을 띄우며 용기 있게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 타이밍에 이종족 연합지역 마법사들이 다른 보조 마법을 걸었다.
“저항증가! 하늘로의 오름!”
발바닥과 지면의 저항을 높여서 경사로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 오르막길 위에 떠오른 새하얀 실은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한다.
이중, 삼중의 보조 마법. 병사들이 지면을 걷는 것보다 편하게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길지 않았다.
“어딜!”
“막아!”
영광의 고원 정상에 모인 빛의 수호자가 바보도 아니고 오르막길을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다.
오르막길에 화염을 뿌리고, 지면 붕괴를 걸어서 오르막길 자체를 무너뜨리려 한다. 거대한 돌덩어리를 밑으로 굴려서 길을 통째로 막는다.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왜 이러실까? 나는 가당찮은 짓을 하는 빛의 수호자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번개 인간이 있었다.
“끄하압!”
카보머가 비명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오르막길 최선두를 달린다. 그가 오르막길을 무너뜨리고 여러 방해마법을 거는 이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춰 서더니 몸을 뒤로 크게 비튼다.
펀칭머신을 때릴 때 흔히 취하는 그 자세 있지 않나. 한계까지 허리를 뒤로 비틀고는… 주먹을 앞으로 꽝!
콰지지직! 퍼엉!
눈앞을 가리는 시퍼런 번개 오러가 오르막길을 가득 채웠다. 화염과 미끄러움 마법은 오러에 박살이 나고, 굴러떨어지는 돌덩이는 폭발하여 손톱보다 자그마한 조각으로 나뉘었다.
몇 번 더 돌덩이가 굴러오고 방해마법이 작렬한다. 하지만 그 어떠한 마법도 밀집도와 순간 공격력 면에선 오러 블레이드를 이길 수 없다.
빛의 수호자는 이를 악물고 광범위 마법을 쓰려 했지만, 이스마일과 여러 고위 마법사들이 대응 마법으로 막는다.
그렇게, 아무런 방해도 없이 선두를 달리는 카보머 뒤로 몇 명의 인영이 추가되었다.
카보머의 뒤를 따르는 것은 알테어의 소드 마스터. 해피, 니웨 그리고 내가 모르는 몇 명. 그들이 혼잡하고 시끄러운 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걸음걸이로 오르막길을 신속히 올랐다.
말했듯이, 오르막길의 길이는 약 1.1킬로미터가량.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30초는 뛰어야 하는 거리다. 그렇기에 그들은 오르막길을 다 오르지 않았다.
10초 정도 전력으로 달린 뒤 해피가 힐끔, 위를 올려다본다. 그가 마법총을 겨누는 수백 명의 병사에게도 겁먹지 않고, 아침 메뉴를 묻듯이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뛰어라.”
“옛!”
펄쩍!
비행, 탄성 마법의 도움과 도움닫기의 힘을 받아 위로 훅! 떠오르는 알테어의 여섯 소드 마스터! 한 번의 발구름에 무려 100여 미터나 솟구친다.
그들이 산양처럼 절벽을 밟으며, 단 몇 번 발을 놀려 영광의 고원 위에 발을 디뎠다. 시야에서 사라진 여섯 명의 소드 마스터.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다.
번쩍!
고원 위에서 가지각색의 빛이 번쩍인다. 여섯 개의 오러 블레이드가 영광의 고원을 지키는 수십만 빛의 수호자를 몰아내며 오르막길을 굳건히 방어했다.
겨우 여유가 생긴 오르막길. 다시 병사들이 오르막길을 오르기 위해 발을 내디디지만… 그것들을 막는 이들이 있었다.
“다들 비켜!”
“옆으로 빠지라고!”
두두두두!
괴물 짐승 수백 마리의 출현! 아니, 수백 정도가 아니다. 수천에 달하는 코끼리만 한 덩치의 괴물을 탄 이종족이 길목에 빽빽하게 모인 아군을 밀치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것들 하나하나가 일전, 게리소님을 습격한 적군의 황금 야수단보다 강건하고 위협적인 놈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달려라! 달려! 누구보다 빠르게! 일 순위는 검술황국에 양보했지만, 이 순위는 이종족 연합지역이 먹는다!”
개중 선두에 선 자, 웨일과 함께 싸웠던 제1 돌격대대 기사단장인 보에몽 실터가 과거 웨일이 보았던 그 어떤 머팔로 보다 거대한 머팔로를 탄 채 목 놓아 외쳤다.
“돌격대대! 충각대대! 파멸대대! 나머지는 어디 있나!”
“무력대대 최후열에 있습니다!”
“야수대대! 인파에 막혔습니다! 곧 길목에 도착합니다!”
“초기병(超騎兵) 연대 전원 있습니다!”
“좋아! 누구보다 빠르게 오르막길에 올라서서 길을 뚫는다! 아군이 계속해서 올라갈 수 있게 위를 정리해!”
굳세게 달리는 초기병 연대. 머팔로를 비롯하여 가지각색의 거대 괴수를 탄, 이종족 연합지역이 자랑하는 돌격대대의 일종이다.
게리소님은 기껏해야 괴물 말 백여 필을 키우는 게 전부였는데, 이종족 연합지역은 수천이 넘는다.
‘스케일이 차원이 다르시구먼.’
나는 게리소님과 이종족 연합지역의 부의 격차에 혀를 내두르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다다!
“왔… 다?”
기세 좋게 달려, 정상에 첫 타로 발을 디딘 보에몽 실터가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시간을 너무 소모한 것이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데에만 10분 넘게 시간을 소모했다. 수십만 적군과 마법사에게 10분이라는 시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막 오르막길에 올라선 우리를 반긴 것은 기사나 병사, 마법사가 아닌 수백 정의 마포였다. 빛의 수호자는 근처의 마포를 모조리 끌고 와서 오르막길에 배치했다.
“어… 시발. 마법사!”
보에몽 실터가 급하게 마법사를 찾지만, 세상 어떤 마법사가 괴물 짐승의 돌격을 따라올 체력이 있겠냐? 오르막길 정상에 선 아군은 초기병 연대와 칼 쓰는 바보가 전부였다.
이건 내가 나서야겠군. 먼저 염동력을 넓게 흩뿌려서 포탄의 방향을 바꿔야겠어. 다음으로 비은다각형 바람 폭풍과 개변상수치환을 쓰면 90%는 막겠지.
결심한 내가 텔레파시로 심상의 실수 공간 체계로 들어가 무한을 그리는 프렉탈 마법 회로를 준비했다. 막, 전신에서 불길처럼 일어난 마나가 심상 속 프렉탈 마법 회로를 질주하기 직전.
콰드드득!
보라색 덩어리가 정상에 올라선 우리들 앞에 떨어져 내렸다. 그것의 크기는 지하철 세 대를 품(品)자로 배치한 것만큼이나 컸고, 길이는 무려 200미터에 다다랐다.
바로 쉘리 반데스가 창조한 괴물 지렁이! 그것이 몸을 한껏 길게 늘여서 정상에 발을 디딘 아군 앞을 ⌒자 모양으로 가렸다.
적군-지렁이-아군 순으로 배치된 순서! 지렁이가 앞을 가리자마자 기겁한 적군이 무차별적으로 마포를 쏘았다.
꽝! 꽈광! 두두두!
지렁이가 마구 흔들리며 아군에게 쏘아지는 포탄을 대신 맞는다. 나는 지렁이가 망가지는 것을, 정확히는 지렁이 재료로 쓰인 내 성게 마나석이 망가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참다못해 쉘리 반데스를 재촉했다.
“개변상수치환 안 쓰십니까? 지렁이가 아무리 단단해도 마포 수백 발을 맞으면 부서질 텐데요?”
쉘리 반데스가 내 질문을 듣고는 굵직한 미간을 찌부러뜨렸다.
“뭐? 너 인마. 설마 내 귀염둥이를 지렁이라고 부르는 거냐?”
“아, 지금 이 순간에 기어코 그 이야기를 꺼내시겠다? 저기요 할아버지. 눈치 좀 챙기시죠? 예? 딴 얘기 하지 말고 얼른 개변상수치환이나 사용하세요.”
개변상수치환이 있어야 괴물 지렁이가 마포 세례에서 버틸 수 있다. 그래야 내 마나석도 무사하지. 하지만 쉘리 반데스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이미 썼다. 이 건방진 새끼야.”
또, 또 저런다. 건방진 새끼라는 말 좀 그만하면 안 되나? 그리고… 어?
“뭐라고요? 이미 썼다고요?”
“그래.”
“…안 느껴지는데.” 나는 그의 발언에 의심스러운 눈길로 마포를 막아내는 괴물 지렁이를 바라보았다.
울컥! 울컥!
가열차게 마포를 두들겨 맞는 괴물 지렁이가 온몸에서 흙과 돌로 이루어진 피를 흘린다. 녀석의 몸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역설적으로 놈의 신체 부피는 공격이 계속될수록 부풀어 올랐다.
질량이 줄어드는데 부피는 늘어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기현상에 괴물 지렁이를 자세히 분석한다. 녀석을 이루는 마법의 구조를 읽어내고는 감탄을 토했다.
“…허! 그걸 그새 개조하셨어요?”
“진짜로 알아챘냐? 괴물 같은 놈. 어쨌든, 보았느냐. 발전은 마법사의 의무다. 5대 마법은 그걸로 끝이 아니라 무한한 가짓수로 펼쳐나갈 다섯 개의 시작점이다. 그렇기에 우리 천국의 계단은…….”
잘났다고 떠드는 쉘리 반데스의 말을 들을 때가 아니다. 나는 초기병 연대에 속한 이종족들에게 집약성(集約性) 확성 마법을 걸어주고는 말했다.
“잠시 후에 저 괴물 지렁이가 대폭발을 일으킬 겁니다. 여러분은 그 틈을 타서 원 타격 지점으로 흩어지시면 됩니다.”
“폭발한다고? 공작, 저 녀석이?”
“예.”
“그렇다면 가까이 있는 우리도 위험한 거 아닌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나는 쉘리 반데스에게 설명을 요구했지만, 그는 말을 안 들었다고 그새 삐쳤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카보머에게 말했다.
“그런 게 있습니다. 여하튼 아군 쪽은 폭발에서 안전하니까 돌격할 준비만 하십시오.”
“……알겠네.”
못 미덥다는 투다. 어차피 상관없다. 괴물 지렁이의 폭발은 바로 1~2초 후에 일어나거든.
이렇게.
후와악-! 퍼버벙!
천국의 계단 오대 마법, 방어의 개변상수치환. 여러 가지 물리 수치를 변화함으로써 에너지의 변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손실률을 극대화하여 공격의 위력을 낮추는 방어마법.
쉘리 반데스는 에너지의 전환에 중점을 두어서 마포의 운동 에너지를 파동(波動) 형태로 바꾸어 괴물 지렁이의 내부에 축적했다. 마포를 맞으면 맞을수록 지렁이가 모으는 파동 에너지는 수직상승한다.
그 파동 에너지를 한계까지 응축한 뒤에, 지렁이의 외피를 가득 채운 성게의 가시로 투여하는 거다.
수백 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포탄 수백 발의 운동 에너지. 파동으로 변환된 에너지는 전부는 아니고 일부에 불과하다지만, 지렁이 가시가 음속을 넘는 속도로 발사되기에는 충분했다.
파바박!
지렁이의 폭발과 함께 터져 나온 수만 발의 가시 탄환!
괴물 성게의 가시를 기반으로 하기에 단단한 돌덩이도, 마법사의 방어막도, 갑옷과 마포를 이루는 금속도 거침없이 뚫는다!
마포가 한곳에 모여 있었던 게 오히려 적군에게 악수! 이번 한 번의 공격에 근방에 모인 마포 수백 정이 가시에 꿰뚫려서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마포만 그러냐? 그럴 리가. 기사와 마법사, 강화병, 마법총병 수천 명이 가시에 찔려 온몸에서 피를 흘렸다.
“그르륵……!”
목에 가시가 박혀 피를 토해내며 죽는 기사. 머리가 관통당해 즉사한 마법사. 가슴에 가시가 박혀 허우적대며 쓰러지는 병사.
천 명이 넘는 정예병이 한 번의 공격에 사망했고, 그 서너 배는 되는 수가 무력화되었다. 이것이 쉘리 반데스의 진정한 실력이었다.
“어…….”
그 엄청난 성과에는 이종족 연합지역의 초기병 연대도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카보머의 주먹에 서린 오러도 파스스… 하고 소심하게 흩어졌다.
어이쿠. 이 아마추어들이. 지금 뭐 하고 있어? 나는 음성 확장 마법을 걸고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초기병 연대! 돌격하라니까!”
내 말에 보에몽 실터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고삐를 굳게 쥐었다.
“아, 앗!? 지금이다! 초기병 연대 돌격해라!”
“도. 돌격!”
두두두두두!
수천 말리의 코끼리만한 괴수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앞을 막은 부상자들은 피떡이 되어 바닥을 빨갛게 칠했다.
마포도, 가까이 있는 마법사도 없는 지금. 괴수 수천 마리의 진군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익스퍼트밖에 없었다.
그러나 익스퍼트는 전부 카보머 등의, 초기병 연대 뒤를 따라온 이종족 연합지역의 고수들이 담당했다.
“와아아!”
초기병 연대의 괴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자랑스러운 돌격력을 선보이며 건물과 인간을 무너뜨렸다. 그들이 거침없이 전진하여 알테어의 여섯 소드마스터에게 향했다.
마침내 그들이 오르막길 좌우를 포진한 절벽, 그 절벽을 홀로 막고 외로운 싸움을 펼치는 알테어의 여섯 소드 마스터에게까지 당도했다.
“검술황제의 본국 알테어여!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그만한 괴수를 다루면서 소드 마스터가 신기하나?”
해피가 영광스럽다는 듯이 인사하는 초기병 연대의 이종족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내, 그가 말을 멈추고 초기병 연대와 함께해서 오르막길 좌우의 절벽 길을 막았다.
“돌격하겠습니다! 뒤를 부탁드립니다!”
꽈지직!
체급은 코끼리 하지만 근력과 돌진력은 코끼리도 고양이 취급할 만한 개량 괴수. 초기병 연대의 기마가 건물이고 사람이고 가리지 않고 온 사방을 무너뜨린다.
초기병 연대가 훑고 지나가 길을 알테어의 여섯 소드 마스터가 꼼꼼하게 정리했다.
해피가 한 번 검을 휘두르면 오로라처럼 퍼져 나간 오러가 곳곳에 숨은 적군 수십 명의 멱을 따고, 니웨가 파동검을 휘두르면 근방 수십 미터 내의 돌덩이와 인간이 썰린다.
그것만으로도 적군에겐 지옥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적군이 감당해야 할 높은 산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다음 순번으로 다종족 연합군의 익스퍼트 백수십 명이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데일리케 신성 검성회 도착했습니다! 마스터 카보머! 명령을!”
“초기병 연대를 도와 장소를 넓혀라! 각군 익스퍼트! 정면을 12시로 정하면 좌측 7시, 9시, 11시. 그리고 우측 1시, 3시, 5시 방향에 여섯 소드 마스터가 존재한다. 국가별로 여섯 방향으로 흩어져서 소드 마스터와 초기병 연대를 지원해라!”
“알겠습니다!”
“목표는 하나,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다종족 연합군의 보호! 둘, 다종족 연합군이 정상에 도착했을 시, 넓게 퍼져서 싸울 수 있는 공간의 확보!”
“확인했습니다! 데일리케 신성 검성회 이하 스물! 7시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예입! 게리소님 검귀단과 구검단(舊劍團) 이하 열여덟! 5시 방향으로……!”
“라그랑쥬 지휘기사단 이하 열넷! 3시……!”
속속들이 도착한 익스퍼트가 곳곳으로 퍼진다.
꿍! 꽝! 꽈드득!
곳곳에서 오러가 치솟고, 괴물 짐승의 돌진에 건물이 마구 무너져 내린다. 하늘 위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일 초에 수십 번씩 마포가 천공요새의 방어막을 두드린다.
함성, 고음, 피와 흙먼지. 퀴퀴하게 달아오른 열기와 오러. 혼탁하게 뒤섞인 마나. 그리고 수십만이 뒤엉켜 완성하는 죽음. 이 모든 것들이 영광의 고원 정상에서 벌어졌다.
툭!
멍하니 이 현장을 구경하는 내 등 뒤를 누군가가 살그머니 쳤다. 나세르 2세였다. 오랜만이네요. 누나.
내가 웃으며 인사하자 그녀가 마주 미소 지으며 물었다.
“공작은 안 가나? 다들 공작을 기다리고 있다.”
“다들이요? 아…….”
어느새 내 주위에는 다종족 연합군의 최중요 인물이 모여 있었다.
뮤온 보트라, 나, 쉘리 반데스. 그리고 카보머와 나세르 2세.
티안 포러브나 소니아 등의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최고수들. 이스마일 반데스, 할리 워펜드, 몇 번 본 적도 없는 이종족 연합지역과 빛의 수호자 독립파, 복귀파 국가의 고위 마법사들.
좋아. 이만한 사람들이 모이면 뭐든 할 수 있지. 나는 가장 중요한 천공요새를 가리켰다.
“다른 것보다 저 천공요새인지 뭔지 하는 플라잉 시발놈부터 막는 게 우선인 듯하군요.”
“큭! 플라인 시발……. 어떻게 막을 생각이지?”
웃음기 섞인 나세르 2세의 질문에 영광의 고원에 높게 솟은 수십 개의 첨탑을 가리킨다. 그러며 나오는 내 말을 듣자 그녀의 얼굴에 서린 웃음기가 사라졌다.
“저 중 대부분은 페이크입니다. 저거, 저것. 그리고 저거하고 저거. 저 네 개가 천공요새에 힘을 실어주는 동력 전달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왕 이곳에 최고 전력이 모였으니 넷으로 흩어져서 저것부터 무너뜨리죠.”
“어… 음? 뭐라… 고? …고, 공작?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예? 어떻게 아냐뇨? 아니, 왜…….”
어랍쇼? 지금 한시가 급한데 그게 궁금해?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세르 2세를 바라보았지만, 의외로 그녀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이들 전부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딱 보면 보이는 걸 정말로 몰라서 묻는 거야? 도리어 내가 다 어이가 없네.
“아, 아니. 아니, 그. 그… 땅! 마나! 흐름! 이거 보면 딱 느껴지는 거 아닙니까? 저 네 첨탑 꼭대기에서 발한 힘이 한곳으로 합쳐지며 사각뿔을 그리고…….”
“…….”
“그게 허공의 한 지점에서 원형으로 퍼지면서…… 어라? 몰라요? 진짜로? 진짜 아무도 몰라서 이러는 거야? 거짓말이지?”
이런 상황에서까지 장난하지 마. 다들 늙을 만큼 늙어가지고 어린애 놀리는 게 그렇게 재밌냐? 취미 한 번 독특하네.
나는 이 중에서 최고 마법사인 쉘리 반데스에게 동의를 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내 입이 열리기 전, 쉘리 반데스가 딱딱한 어조로 하는 말이 나의 발언을 막았다.
“…나는 공작의 말을 믿네. 여하튼 믿어. 그러니까 본인이 가장 가까운 데를 맡겠네.”
쉘리 반데스가 그렇게 말하곤 위로 떠올랐다. 이스마일 반데스와 소니아 반데스를 데리고 하늘을 난 그가 가장 가까운 첨탑으로 도망치듯이 날아갔다.
“어?”
아니, 그냥 가면 어떡해요. 제 상관인데 제 편을 들어주셔야죠. 나는 어쩔 수 없이 안면이 있는 뮤온 보트라와 라그랑쥬 측 고위 마법사에게 도움을 구했다.
라그랑쥬의 고위 마법사가 내 시선을 피하며 하늘로 떠올랐다. 그가 내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듯이 재빨리 말했다.
“큼! 고위 마법사의 천국, 위대한 경지에 다다른 천국의 계단 대장로께서 그러시는데 제가 감히 뭐라고 하겠습니까. 천공요새가 떠 있는 시급한 상황, 의견교환은 나중에 하고 일단 하라는 대로 따릅시다. 함께 가실 분?”
“아, 나도.”, “본인도 함께하지.” “신화검과 함께라면 든든하죠.”
순식간에 전 빛의 수호자 국가가 힘을 합쳤다. 그들이 내가 무어라 질문을 날리기 전에 휭-! 하고, 두 번째로 가까운 첨탑으로 쏜살같이 날았다.
“어…….”
뭐야? 다들 갑자기 왜 이래? 나는 마지막 도우미, 나세르 2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을 받은 그녀가 정색하며 말했다.
“우리는 세 번째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겠네. 공작, 지원이 필요한가?”
“아니, 안 느껴지…….”
“필요 없나 보군. 본인이 고위 마법사이기까지 하니 마법사의 지원도 필요 없겠지. 우리는 우리끼리 가겠다. 무운을 빈다.”
그렇게 말한 나세르 2세가 카보머, 몇몇 마법사들과 함께 세 번째로 멀리 떨어진 첨탑으로 향했다.
휘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