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 * *
신경가스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신경가스보다 더 중요시해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10분에 걸쳐 쟈기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영광의 고원에 투사한 약화 마법이다.
초능력 파동으로 깊은 곳까지 파고든 약화 마법. 수백 발자국 동안 쌓인 수백 번의 균열. 그것이 드디어 사고를 쳤다.
두두두!
기어코 영광의 고원이 무너진다!
영광의 고원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역사적인 가치를 빼고 본다 해도, 수십만이 이곳에 올라와 있다.
즉, 고원이 무너지면… 그 위에 있는 최하 수십만도 함께 깔려 죽는다. 다들 그걸 알기에 영광의 고원을 무너뜨리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합의를 쟈기가 지킬 의리는 없다. 오히려 그에겐 더 쉽고 효율적인 대량살상법이 눈앞에 있는데 하지 않는 게 바보였다.
꾸르릉!
“으아악!”
“사, 살려……!”
쟈기에 의해 바스라지는 고원 정상. 거대한 구멍으로 떨어지는 사람들, 무너지는 집과 함께 쓸려나가 허무하게 죽는 엄청난 수의 병사들!
천만다행으로 무너진 정상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그가 맡은 고원 끄트머리, 첨탑을 중심으로 반경 백수십여 미터가 전부.
불행 중의 다행은 무너진 땅이 넓지 않다는 것. 그리고 다행 중의 불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여파가 영광의 고원에 퍼졌다는 것!
쾅! 콰과광!
고원이 뒤흔들리는 진동에 고원에 세워진 수층 높이의 건물이 폭삭! 주저앉았다. 건물에 숨은 자, 건물 옥상에서 싸우는 자, 건물 근처에 있는 자들이 그에 휘말렸다.
건장한 이종족도, 스칼러 급 기사도 정수리에 백 킬로그램이 넘는 돌덩이가 찍히면 답이 없었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건물 근처에 있는 이들은 허물어지는 돌덩이에 깔려 죽고, 으깨져 죽었다.
“끄헉?!”
“꽥!”
번쩍!
여기서 쟈기의 마비광(麻痹光) 발사! 샛노란 빛이 동심원 형태로 퍼져 나가며 구석구석까지 노란 빛을 퍼트렸다. 인체를 마비시키는 기본적인 제압 마법의 일종.
그것은 아무리 승천자의 마법 지식을 더해도 효과가 그리 크지 않다. 현시대의 마법 회로로는 있을 수 없는 범위로 마비광을 퍼트렸다지만, 한명 한명에게 걸린 효과는 기껏해야 0.5초가량 몸이 멈칫! 하는 것.
그마저도 마나 유저 상급 이상의 고수에겐 거의 통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쓸데없는 마나, 정신력 소모.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황에 한해서였다.
콰드득!
지금은 근처 수 킬로미터 내의 건물이 일제히 무너지는 황금과도 같은 상황. 지면도 멀쩡히 서 있기 곤란하게 마구 흔들린다.
오존과 질소 기체에 의해 운동능력이 현저히 줄었지, 중금속 기체 탓에 호흡도 고르지 못하지. 그런 상황에서, 건물까지 무너지는데 일반병 대다수가 몸이 영 점 몇 초 굳는다.
그 영 점 몇 초가 그들의 생사를 결정했다.
툭! “어……?”
몸이 굳어, 흔들리는 지면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그 병사의 위를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돌덩이가 덮쳤다.
후두둑! “으악!”
무너지는 건물을 피해 도망치던 병사가 몸이 굳는다. 그는 쓰러지는 돌덩이에 의해 자취를 감췄다.
이와 같은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단 한 번의 마비광. 건물이 무너지는, 그 몇 초를 노린 정확하고도 잔인한 타이밍에 피해가 순식간에 세 배 이상 늘어났다.
뻐버벅! 후드득!
그러는 와중에도 쟈기의 목 뽑기는 계속되었다. 그는 무너지는 영광의 고원 일각을 벗어나지 않고, 밑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따라갔다.
목을 뽑는 것이 일생 대과제인 양, 추락하는 이들 중에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무너지는 돌덩이를 밟으며 추락하는 이들에게 손을 뻗는다.
뚜두둑!
떨어지는 와중에도 수십 개의 목이 부러지고, 머리가 하늘을 난다. 쟈기는 그대로 영광의 고원에 생긴 거대 싱크홀로 사라졌고, 그가 사라진 구멍에서 눈을 뜨기 힘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휘웅-! 알싸한 바람을 내뿜는 거대 싱크홀. 일천, 어쩌면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깔려 죽은 자리. 그곳으로 쟈기가 들어갔다. 쟈기와 맞서 싸우던 수만 명이 넘는 병력이 거친 숨을 들이쉬며 싱크홀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번쩍! 번쩍번쩍!
보랏빛 섬광이 어둠이 내려앉은 싱크홀에서 몇 번이나 터져 나온다. 섬광과 함께, 싱크홀을 포위한 병사들의 후각에 알싸한 금속제 향기가 풍겼다.
오존 기체 생성! 마법사가 즉각 병사들을 뒤로 물렸다. 저것이 어떠한 것을 만드는지 모르지만, 이 향기가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지난 십수 분간의 전투로 지긋하리만치 경험한 그들이었다.
“뒤로 물러나! 호흡 곤란이 찾아온 이들은 한 곳으로 빠져라!”
“대기를 따로 모아! 산소를 공급해! 너, 너는… 뭐야? 왜 그래?!”
“마, 마법사… 마법사님! 제 목에… 모, 모그로 무어…… 그르륵……!!”
바들바들 떨며 마법사를 찾던 병사가 게거품을 물며 쓰러진다. 인공 생명체가 병사의 뇌혈관을 갈기갈기 찢고, 뇌를 파먹은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초에도 양손으로 다 세기 힘든 수의 병사가 쓰러져서 게거품을 문다. 마법사가 기겁하며 쓰러진 병사들에게 달려갔다.
“제기랄! 또! 쓰러진 병사한테서 멀리 떨어져! 부축하지 말고 떨어지라고! 이 개자식들아! 제발 말 좀 들어!!”
마법사가 병사의 몸에 압력파 마법을 걸었다. 마법사 전대가 그를 따라서 쓰러져 죽은 병사의 몸에 갖가지 마법을 건다.
“죽어! 제발 죽어! 제발 사라지라고오오!!”
울부짖으며 죽은 병사의 몸을 갖가지 마법으로 다지는 마법사 병단. 잔인하지만, 누구도 마법사들을 나무라지 못했다.
그들은 병사를 죽인 원인이 인공 생명체라는 것을 모른다.
다만, 정화 마법에도 정화되지 않는 걸로 보아 인체에 ‘무언가’가 침입했다 여겨서 그것을 통째로 으스러뜨리기 위해 압력파 등의 물리적 힘을 가하는 마법을 건 것이다.
빛의 수호자 마법사의 판단은 정확했다. 인공 생명체는 힘을 가해 몸을 손상하거나, 500도 이상의 고온, 영하 100도 이상의 극저온, 강산이나 강염기로 무력화할 수 있었다.
또는 베터리가 다하거나 인공 생명체를 이루는 탄소 원자의 반감기만큼 기다리면 된다.
어쨌든, 그들 또한 나름대로 엘리트라 자부할 수 있는 빛의 수호자 소속 마법사. 원인을 몰라도 신속한 사후 조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끄웩! 켁! 끄어억!”
“콜록! 콜록! 수, 숨이…… 우웨엑!”
싱크홀을 포위한 이들이 하나둘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신경가스가 정상이 무너져 발생한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기침을 하는 병사,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토를 하는 병사. 그조차도 못하고 질식해서 죽어버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아아! 으아! 으아아아!! 피, 피부가!! 피부가 불타는 것 같아! 사, 살려주세요!”
어떤 이들은 갑옷을 벗고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피부를 긁는다. 누구는 그조차 할 힘이 없어서 땅에 쓰러진 채로 몸을 떨었다.
“끅! 끄윽!!”
덜썩! 덜썩! 하고, 흰자위를 드러낸 채로 참치처럼 몸을 덜썩이는 병사. 피부에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저러는 것이다.
이 또한 신경가스가 원흉이다. 신경가스가 피부, 호흡기를 통해 병사들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가 그들을 효율적이면서도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였다.
“안 돼! 회복! 포션 가져와!”
“정화 마법! 정화 마법을 걸어!”
마법사들이 피부가 울긋불긋하게 일어난 병사에게 정화와 회복 계열의 마법을 걸어주었다.
헛수고다. 중금속 기체는 정화된다. 하지만 오존과 질소 기체는 애초에 정화 마법의 대상이 아니고, 신경가스는 현시대의 정화 마법으로는 탐지할 수 없었다.
회복 마법은 인체를 고칠 수 있지만…… 그것은 도리어 더욱더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병사들을 이끄는 것에 불과했다.
“그르르륽……!”
회복 마법을 걸고, 포션을 쏟아부었지만, 신경가스에 당한 병사의 떨림은 그치지 않고 더욱 심해졌다.
펄떡! 펄떡!
입에서 피거품을, 눈에선 피눈물을 흘리는 병사가 호러 영화에 나온 불쌍한 희생양처럼, 인간은 할 수 없을 정도로 격하게 몸을 떨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숨을 멎었다. 통증이 너무나도 심해서 쇼크사한 것이다. 그렇게… 수십 명이 넘는 펄떡이는 병사들이 하나둘 숨을 멎었다. 병사들에게 포션을 들이붓던 마법사가 허망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땡그랑!
포션을 가져오던 병사가 그 자리에서 우뚝 서더니 품 안에 한가득 든 포션병을 떨어뜨렸다. 그가 돌연,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마법사를 애처롭게 불렸다.
“마, 마법사니임……!”
병사가 울먹이며… 팔을 긁는다. 그것을 보고는 마법사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 또한 치료제가 없는 신경가스에 중독되었다는 증거였다.
울먹이던 병사는 삼십 초 후에 쓰러졌다. 이후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펄떡임을 이분 여 간 반복했다. 그러고는 숨을 멎었다.
마법사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원통하다는 듯이 뇌까렸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왜 회복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거야!?”
쿠르르릉!
절규하는 그의 뒤로, 멀리 떨어진 첨탑 하나가 또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하늘 위에 떠 있는 천공요새의 방어막이 꺼질 듯이 흐릿해졌다.
펑펑! 터지는 포격에 방어막이 흔들리고, 가끔씩 쏘아지는 얇은 브레스가 방어막 곳곳에 구멍을 뚫었다. 이제 천공요새가 뚫릴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빛의 수호자의 끝이 다가온다. 그 끝에서, 쟈기는 아직도 피가 고팠다.
후와악-!
싱크홀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숨이 막히는, 지독한 탄내! 중금속의 향기! 그 밀도는, 한 모금만 들이켜도 폐의 기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만큼 지독하다!
흙먼지와 함께 풍겨오는 금속과 피, 죽음의 향기. 대기의 색마저 바뀔 농도의 중금속과 눈을 뜨기 힘든 흙먼지를 등에 지고, 누군가가 절벽 끄트머리에 손을 올렸다.
텁!
생존자 제로의 싱크홀. 그곳에서 기어 올라온 이가 있었다. 평이한 체구, 전체적으로 나른한 인상과 수더분한 회색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남성. 쟈기였다. 싱크홀 위로 올라온 쟈기가 사방을 훑었다.
싱크홀로 올라온 쟈기를 포위한 이들은 만이 넘는다. 말 그대로 수만 명이 쟈기 하나를 포위하고 있다. 독과 호흡기 질환, 인공 생명체에 수십 명씩 죽어가는 와중에도 마포와 수백 명이 넘는 마법총 부대가 준비되어 그를 노렸다.
“으으으……!”
주춤!
하지만 아무도 그를 공격하지 않는다. 선공하여 그의 목표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수만 대 일. 그러나 오히려 수만이 밀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쟈기는 그를 포위한 수만 병력을 보며 진심으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왜 너희가 아직도 똑바로 서 있는 거지?”
순간, 그의 사고속도가 20배로 가속되었다. 텔레파시 초능력은 미래세계 초능력의 근본. 모든 정신 계열 초능력의 시작이자 끝. 그중에는 사고 가속 또한 포함되어 있다.
20배로 가속된 그의 사고가 정신 한구석에 가상의 실수 공간 체계를 형성했다. 가상의 마법 회로를 타고 무한히 흐르는 마나!
천국의 계단 5대 마법. 공격의 비은다각형(非垠多角形)! 비은다각형의 마법 회로를 타고, 20배로 가속된 사고 속에서 중첩된 마법이 그의 손에 모습을 드러냈다.
웅! 우웅!
쟈기의 손에 초당 수만 rpm으로 회전하는 전자력이 탄생했다. 미처 그를 포위한 병력이 마포와 마법총을 발사하기 전, 전자력이 먼저 폭발을 일으켰다.
빠앙! 거센 폭발음과 함께 터진 전자력! 하지만 그 엄청난 소음과 달리 빛이나 화염의 세기는 극단적으로 적다. 그저, 공기폭발처럼 세차게 폭발하기만 할 뿐.
그리고 그걸로 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법이 실패한 건가? 결단코 아니었다. 이번에 쟈기가 쓴 마법은 그 어떤 것보다도 지독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사색사광(四色死狂) 그리고 집합적 저주. 피의 울타르의 비전 마법. 울타르의 멸망과 함께, 80년도 더 전에 실전된 그것.
과거의 션은 마법의 경지가 일천하여 사색사광을 겪고도 역분해를 할 수 없었지만, 그가 경험한 것은 웨일과 쟈기로 살며 수도 없이 탐구했고, 그 끝에 그만의 새로운 저주 마법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바로 무색사광(無色死狂).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난, X선으로 세포까지 침투하는 고밀도의 파장을 발산한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영향이 없다. 지금 당장은. 그것에 쟈기를 포위한 병력은 그의 마법을 실패했다고 (심지어 빛의 수호자 마법사마저) 오해했다.
“…기다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임시 익스퍼트는 저 괴물(쟈기)가 발한 마법의 위력을 똑똑히 경험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명이 경동맥이 끊어질 정도로 목을 긁으며 죽어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호신부에 담긴 방어 마법으로 정체 모를 무형의 폭발을 방어했다. 신체에 아무런 이상이 없고, 정화 마법 키트도 반응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병사들을 데리고 쟈기에게 돌진했다.
아니, 돌진하기 전.
“커헉-!”
한 병사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또 이상한 마법에 걸린 건가? 정체 모를 독에 호흡이 멎고, 포션도 통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는 건가?
아니다. 질식사와 비슷한 죽음을 앓던 아까와는 많이 다르다. 이것이 쟈기의 무색사광이었다.
마법의 빛은 단순한 광선이 아니다. 마법은 빛에 실질적인 힘을 실을 수 있다. 빛을 통한 환각, 빛을 통한 타격, 빛을 통한 저주 등등.
무색사광 또한 그러하다. 그의 무색사광은 일반적인, 피부-근육-뼈 또는 순환계를 통한 확장 등의 침투 경로를 거치지 않고 X선을 통해 세포 하나하나에 다이렉트로 저주의 힘을 때려 박는 마법이었다.
그렇기에 무색(無色). 가시광선 영역을 벗어난 빛은 빛이지만 인간은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죽음이 그들에게 내려앉았다.
“으어어……!”
무색사광에 당한 희생자는 고밀도의 방사선에 직격당해 피부와 근조직이 녹아내리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죽음을 경험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역겹고 잔인했다.
강력한 침투력을 지닌 저주가 수십 조 개의 세포에 침입하여 생명력을 소진시키고 분자 결합을 끊는다. 세포막이 뻥뻥! 터져서 몸 곳곳에 울긋불긋한 멍울이 생기고, 약화된 혈관은 혈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찢어졌다.
“흐으어어!!”
세포 골격을 이루는 필라멘트가 가닥가닥 끊어져 근육이 흐물흐물해진다. 힘을 잃은 병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움찔댔다. 각막 또한 터져 나와 눈알에서 진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떤 이는 비명을 지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심장근육이 괴사하여 심장마비가 일어나 쓰러진 것이다. 그나마 그들은 고통 없이 갔으니 호상(好喪)으로 분류해도 좋았다.
임시 익스퍼트가 눈을 부릅떴다.
“마, 마법사?!”
“방어… 분명히 방어 마법을 썼소!”
“그런데 저게… 으득!”
임시 익스퍼트가 방어 마법으로도 막지 못하는 괴이한 공격에 이를 갈았다.
그들은 쟈기의 무색사광을 매우 크게 오해했다. 이것을 막으려면 고위의 방어 마법보다 두꺼운 격벽 뒤에 숨는 것이 몇 배는 더 효율적이었다. 아니면 금속 방패로 전면을 가리거나.
또한, 무색사광은 침투력이 비상할 뿐, 인간 한 명에게 가해지는 저주의 총량은 지극히 적다. 스칼러 이상의 실력자는 마나를 돌리면 간단히 떨쳐낼 수 있다.
그렇기에 기사나 마법사는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정수준 이상의 능력자에 한할 뿐. 그리고 쟈기를 포위한 수만 명 중 대다수는 마나 유저 상급도 되지 못한 일반병이다.
그들 모두가 무색사광에 영향을 받았다. 금속제 방어구로 가리지 못한 신체가 X선에 노출되었고, 그와 함께 침투한 저주 마법이 세포를 죽였다.
털썩!
쟈기를 포위한 수만 명 중 삼 분의 일 가까이가 쓰러진다. 멍울, 울혈, 뇌출혈, 내출혈, 심장마비… 가지각색의 죽음이 그들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으아… 으아아아…….”
믿을 수 없는 집단 사망! 쟈기를 포위한 수십 명의 임시 익스퍼트가 눈을 헤벌레 떴다. 어떤 마법사는 오줌까지 지렸다.
이건 악몽이다. 세상 그 어떤 마법사가 단 일격에 수천 명을 죽이는가! 쟈기 또한 그럴만한 힘이 없다. 하지만 그에겐 지식이 있었고, 마법은 힘의 총량보다 지식이 더 우선순위를 가지는 세계였다.
신경가스, X선, 세포 단위로 침투하는 저주 등. 그것들은 쟈기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원시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죽이는 것보다 몇십 배나 높은 효율의 대량살상을 가능케 해주었다.
쟈기는 무색사광에 죽지 않은 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너희가 아직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지?”
아하, 무색사광을 약하게 썼구나. 파장의 밀도를 높이면 된다. X선이 안 되면 감마선으로 무색사광을 때려 박는다. 그리 판단한 쟈기가 재차 무색사광을 준비했다.
손안에 탄생한 전자기력이 빠직거리며 스파크를 튀었다. 백열하는 빛은 오러 블레이드로 마나의 회전구를 만들었다는 증거였다.
오러 블레이드와 초능력, 마법의 합작품은 일개 인간의 손에서 감마선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선보였다. 아니, 아직 아니다. 이제 그의 손에 모인 전자기력과 빛이 터지면, 그때가 감마선이 방출될 시기다.
죽음으로 향하는 카운트 다운.
“마, 마법… 방어를…….”
임시 익스퍼트가 더듬거리며 마법 병단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들은 그들의 마법 지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에 넋이 나간 지 오래였다.
마법은 마나의 배열과 정신이 만들어내는 기적. 정신이 무너진 마법사는 마법을 쓸 수 없었다. 마법사는 정신이 나갔고, 병사는 의미가 없다. 기사는 그의 마법을 막을 실력이 없었다.
“아흐……!”
마침내, 임시 익스퍼트의 눈에도 눈물이 서렸다. 그가 코를 훌쩍대다가…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그위 귀로 쟈기의 담담한 질문이 들렸다.
“왜 네가 내 허락도 없이 눈을 감는 거지?”
“…흐윽!”
기사의 울음과 함께 터져 나온 감마선과 저주 마법이 그들의 세포를, 골수세포마저 죽이기 전.
“어둠의 잔향(殘香)!”
후왁!
짙은 어둠이 쟈기를 감쌌다. 밀도 있는 어둠은 쟈기가 발한 빛도, 저주도 외부로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그냥 당하면 쟈기가 아니다. 그는 즉각 대응 마법과 빛 폭발, 기류 흡수, 파동 변환 등의 다섯 개의 마법을 써서 어둠의 잔향을 물렀다.
실로 신속한 대처. 1초 만에 어둠의 잔향을 흐트러트린 그가 다시 마법을 준비한다. 그러나 다른 공격이 그의 마법을 방해했다.
휭휭휭!
멀리서 쳐들어오는 비검(飛劍)! 보석처럼 정제된 연백색 오러 블레이드가 쟈기의 몸통을 노리고 날아온다! 쟈기는 그것을 보지도 않고, 그저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슈왁! 수도를 수직으로 긋는 단순한 동작에 유수화접의 정수가 담겼다. 오러 블레이드는 그의 유수화접을 뚫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흘렸다.
마법에 오러 블레이드. 계속된 방해에 쟈기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안개를 타고 내려오는 인영이 있었다.
“쟈기… 이 미친놈아. 이게 대체 웬 짓이냐.”
둥실 떠서, 착잡한 얼굴로 그에게 내려오는 쉘리 반데스.
“공작. 정신 차려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그리고 오러 블레이드를 던진 자. 기세를 잔뜩 피운 채, 쟈기에게 접근하는 해피 알테어.
첨탑을 무너뜨리고, 천공요새의 방어막을 약화하는 일은 절대 경지에 들어선 쉘리 반데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 탓에 기괴한 외침을 들었음에도 쟈기에게 오는데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렸다.
도착한 쉘리 반데스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쟈기 주변에 발생한 사망자를 헤아렸다.
‘대체 얼마나 죽은 거지?’
전투가 재개된 지 약 20분. 그 동안에 발생한 전체 사상자의 절반 이상이 쟈기의 짓이다.
이건 이상하다. 살리자, 살리자, 노래를 부르는 허허로운 녀석이 반시간도 되지 않아 저런 미친 짓거리를 벌이는 것은 인생을 오래 산 쉘리 반데스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쉘리 반데스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빛의 수호자에게 있다고 여겼다. 그가 공격 마법을 준비하며 쟈기를 설득했다.
“빛의 수호자가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정신 차려라. 이 자식아.”
“공작. 네가 한 짓은 선을 넘었다. 계속 한다면 너를 힘으로 말릴 수밖에 없다.”
“…….”
쟈기는 그저, 조용히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러며 20분 동안 이어진 학살에도 꺼내지 않은 검을 들었다. 그가 둘에게 멸화의 롱소드를 겨누며 조용히 물었다.
“죽으면 안 됩니까?”
협상 결렬이란 뜻이었다.
북방의 악마에게 동료란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은 먼저 죽일 자와 나중에 죽일 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