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16
416화
* * *
크아아아아!
해피는 마나를 안정화하다가 위에서 들려온 비명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하늘로 향한 그의 시선에 보인 것은 승천에 실패하여 추락하는 이무기였다.
검은 기류를 내뿜으며 빙글빙글 도는 이무기. 그것을 백색의 구체가 맹렬하게 추적한다. 구체는 이무기 곁을 빙빙 돌며, 새하얀 검광을 방출했다.
서걱! 이무기의 날개가 잘린다. 해피는 흐릿한 눈으로 안력을 집중하여 이무기의 정체가 사실은 팔이 여섯 개가 달린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떨어진 날개는 목을 자르려는 칼날을 맨손으로 막아낸 결과라는 것도. 아쉽게도 목을 자르지 못하였지만, 하얀 검광은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후속 공격을 이어갔다.
쉭! 쉬익!
태풍의 중심을 맹렬하게 회전하는 바람처럼, 이무기 주위를 빙빙 돌며 섬뜩한 검광을 내쏘는 새하얀 구체! 이무기는 남은 다섯 개의 팔로 수십 개의 마법을 쏘았지만, 일격에 마법 절반이 갈리고 복부가 쩍 갈라졌다.
추가로 들어온 이격에 나머지 마법 절반이 갈린다. 그리고 쩍 갈라진 복부로 힘이 죽지 않은 검격이 쇄도한다. 이무기는 팔을 들어 복부를 가르는 검날에 가져다 대었다.
댕겅! 또 하나의 팔이 잘린다. 벌써 두 번의 실패. 하지만 새하얀 구체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다리와 이빨에 독가시가 달린 거미를 다루는 잔인한 어린아이처럼 침착하게. 거미의, 이무기의 팔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그것의 방어를 꼼꼼히 뚫는다.
검광이 빛을 발을 때마다 이무기의 몸에 새하얀 선이 쩍쩍 그어지고, 굵은 피가 튀었다. 급소를 노리는 공격을 막을 때마다 팔이 하나씩 떨어지고, 얼굴에 자라난 여섯 쌍의 눈알이 한 알씩 빛을 잃었다.
“이야… 괴물도 저런 괴물이 따로 없구나.”
홀린 듯이 이무기와 새하얀 구체의 장렬한 전투를 바라보는 해피의 귓가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려 그자를 본다.
목소리의 주인, 피오드가 ‘허이구!’ 하며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가 등에 진 무거운 배낭에 등을 기대며, 히죽히죽 웃으며 해피와 시선을 마주했다.
“공작과의 싸움은 어떠셨습니까? 폐하.”
짓궂은 질문. 그러한 질문을 하기에는 상황도, 때도 여의치 않았다. 해피는 피오드의 질문에 답하기보단 긴 한숨을 토하며 주위를 둘러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재상. 피하십시오. 이곳에 있다가는 죽습니다.”
주로 두 가지 의미로 죽는다. 하나는 치밀하게 이무기의 팔을 떼어내는 새하얀 구체, 쟈기에 의해 죽는다. 둘은 영광의 고원에 퍼진 정체 모를 독에 의해 죽는다.
“끄흐흑……!”
“도, 도망… 어서 여기서 나가!”
철퍽!
지금 이 순간에도 쟈기가 방출한 중금속, 고활성화 질소, 오존 기체에 호흡 곤란이 찾아와 쓰러지는 이들이 줄을 섰다.
쟈기는 악랄하게도 그가 전투에서 빠져도 세 악성 기체 생산이 멈추지 않게, 고원 곳곳에 세 기체를 생성하는 마법을 담은 마나석을 뿌렸다. 그 탓에 이곳은 일반인은 숨조차 쉴 수 없는 극한의 땅으로 변했다.
“주, 죽고 싶지 않아!”
“끄아악?!”
그걸로 끝인가? 슬프게도, 아니었다. 신경가스 그리고 소수 살아남은 인공 생명체가 호흡 곤란에서 도망친 인간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악랄한 수에 죽어가는 인간은, 일 분에 수백을 훌쩍 넘는다. 피오드가 아무리 익스퍼트 중급이라 해도 그의 연세는 120 이상, 그가 이곳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것은 하등 없었다.
“폐하.”
하지만 피오드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해피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쟈기 공작과 싸운 감상을 말해주시지요. 그리하면, 제 폐하의 충고를 깊이 새겨듣겠습니다.”
“고집하고는…….”
‘이런’ 피오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가 원하는 걸 빨랑빨랑 들어주는 게 일을 해결하는 지름길이었다. 해피가 투덜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투쾅!
그 사이에 이무기의 세 번째 팔이 잘렸다. 잘린 팔은 포탄처럼 밑으로 쏘아져, 해피의 옆으로 떨어졌다. 떨어진 팔이 땅과 충돌해 박살 나는 것을 보며, 해피가 짜증을 내었다.
“감상이 어떠냐니. 그걸 질문이라고… 대체 저자는 정체가 뭐요?”
“저도 모릅니다만.”
“헛소리. 재상은 쟈기 공작을 잘 알고 있소. 어쩌면… 저기서 싸우는 쉘리 반데스 부왕보다도 많이. 그렇기에 이종족 연합지역으로 그를 보낸 것 아니오.”
“후후… 대화가 조금 새는군요. 늙은 몸으로는 버티기 힘듭니다. 어서 답해주십시오.”
“악몽 같더군.”
“어떤 게?”
“…힘으로 안 돼. 기술로도 밀려, 심지어 검법의 깊이도 알아볼 수 없었소. 내가 부족하여 밀린 게 아니라, 스승의 검법이 밀린 적은 이번이 처음인 듯싶군.”
“오호라.”
“그뿐이오? 저 싸움을 보시오. 공작은 마법 또한 경지에 다다랐소. 대응력, 적응력, 마법과 검법의 연계, 체력과 신체능력은 물론이고 마나량까지… 도저히 답이 없는 괴물이더군.”
“하하! 그렇군요. 폐하, 축하하옵니다.”
“축하? 뭐를? 든든한 아군이 미쳐서 대량살상과 동료 살해를 저지르는 참혹한 싸움의 장에 참가하게 된 것을?”
날이 선 해피의 말에 피오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드디어 폐하가 도전자가 되셨군요. 실로, 수십 년 만에 말입니다. 그에 앞에 설 수 있게 됐어요.”
“무슨……?”
“션 이야기를 해보죠. 제가 들은 션의 최후는 참으로 어이없었습니다. 아니, 인간이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싸울 수 있죠?”
“갑자기 스승은 왜…….”
“그 미치광이는 소드 마스터와 싸우기 위해 전신에 칼을 박아 넣고 절벽을 기어 올라왔죠. 더군다나 최후의 칼을 숨기려고 엉덩이에 칼을 꼽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안다. 해피는 션의 생명을 깎는 전투를 그의 두 눈에, 영혼에 깊숙이 새겼다.
피오드가 기습하듯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날의 션의 광기와 비교하면, 쟈기는 그에 동등합니까?”
이상한 질문이다. 실로 이상한 질문이었다. 쟈기와 싸우는데 난데없이 왜 죽은 션을 입에 담는가. 하지만 해피는 피오드가 헛소리를 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진지하게 답했다.
“동등 또는 그 이상이외다.”
“잘 되었군요. 그렇다면 가서 싸우십시오.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 폐하를 위해. 쟈기 공작과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싸워서 스승을, 션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이 또한 이상한 말이다. 쟈기와 밀리지 않고 싸우는 게 어찌하여 션을 뛰어넘었다는 증명이 되는가.
해피는 눈을 가늘게 떠서 피오드를 바라보았다. 피오드가 조금은 숨이 찬 듯이, 목걸이에 걸린 생존 마법을 강하게 발동시키고는 말했다.
“폐하. 저를 믿으십시오.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건, 그 어떤 것도 아닌, 도전자가 되어 쟈기 공작과 싸워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겁니다.”
“영광의 고원에서 일어난 전쟁보다 이게 더 중요하다?”
“영광의 고원에서 일어난 전쟁보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
“인류의 생사보다도 더?”
“인류의 생사보다도 더.”
“……허!”
해피는 탄식했다. 세상이 미치고 쟈기도 미치더니 이젠 피오드까지 미쳤구나.
하지만 더 미친 것은 그 말에 끌리는 본인이었다. 수십 년 넘게 금기시되어왔던, 션의 죽음을 화제로 삼은 대화.
피오드는 실로 수십 년 만에 션의 죽음을 미끼삼아 해피를 자극했고, 수십 년 동안 굶주린 물고기는 낚싯바늘이 있는 걸 알면서도 미끼를 덥썩! 물었다.
“재상이 스승의 이야기까지 꺼내는데 가만있을 순 없겠지. 어디 한 번 해봅시다.”
착! 해피가 으스러진 이무기의 팔을 집었다. 그 즉시, 이무기의 팔이 기화하여 검은 기류로 변하더니 해피에게 흡수되었다.
흑마법인가? 아니다. 연쇄 쌍접화에서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 5대 마법 중 보조의 특이화가 쉘리 반데스의 팔을 재물 삼아 발동되었다! 익스퍼트와 소드 마스터에게도 통용되는 놀라운 강화 마법!
그것이 잘린 팔을 통해 해피에게 걸렸다. 그의 신체 능력이 3할 가까이 상승하고, 각성제라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또렷해진다.
그의 정신이 보조 마법의 도움을 받아 한 계단 높은 곳으로 올라섰다. 세상이 알록달록하게 물들고, 각 색상이 전해주는 정보가 샅샅이 파헤쳐진다.
“아……!”
특이화가 전해주는 막대한 도약감에 해피가 몸을 떨었다. 망설임이 사라지고, 그의 두 눈에 찬란한 빛이 어렸다. 그가 검을 집고 일어섰다.
꽈아앙-!
그가 일어선 순간,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이무기의 추락이 끝이 났다. 해피 앞, 수십 미터 떨어진 지면에 이무기와 새하얀 구체가 엄청난 속도로 처박혔다.
지면에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쩍쩍 가고,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근처의 땅이 뒤흔들린다. 충돌의 중심지는 버섯구름처럼 맹렬하게 일어난 흙먼지가 앞을 가렸다.
해피의 안력을 흙먼지를 뚫었다. 그 안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저항하는 늙은 이무기, 육안비가 풀린 쉘리 반데스의 발버둥을 포착했다.
그가 계산하기로 앞으로 5초. 5초 안에 모든 수단이 막힌 쉘리 반데스는 쟈기의 검에 목이 잘린다.
일 초가 급한 시각. 해피는 피오드를 뒤로 하고 흙먼지 속으로 달렸다. 달려가는 그의 귓가로 피오드의 말이 들렸다.
“아, 이걸 말씀 안 드렸군요. 살아남으십시오.”
“재상은 늘 무리한 부탁을 하는군.”
“늘 성공하셨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내가 누구 제자인데. 해피는 자화자찬하며 검을 가로로 베었다.
후왁!
신랄하게 일어난 검풍. 드레이의 풍검술이 다섯 개의 검결과 합쳐져서 흙먼지를 뚫고 쟈기의 등으로 향했다. 막 쉘리 반데스의 심장을 꿰뚫으려던 쟈기가 뒤를 바라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렀다.
효자손처럼, 검으로 등을 긁듯이 가볍게 슥슥. 하지만 그 가벼운 검격에 쟈기의 등을 노린 풍검술 기반의 검풍이 쩍쩍 갈라졌다.
해피는 개의치 않고 연이어 오러를 발출했다. 이번에는 쾌검의 섬광검, 연검의 무한접, 강검의 칠보강검. 그리고 오성검법의 역발까지!
푹! 스윽~ 쟈기가 쉘리 반데스의 배에 검을 박고, 그의 멱살을 잡았다. 쉘리 반데스가 인상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마법을 썼지만,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를 들어 해피의 오러에 가져다 댄다.
“어딜!”
해피가 발출한 오러에 마나의 실을 연결했다. 그의 몸이 버드나무처럼 부드럽게 흔들리고, 움직임을 타고 전해진 유한 마나가 싸늘하게 쳐들어가는 오러의 방향을 뒤바꾸었다.
기기괴괴한 궤도로 꺾여, 그림처럼 쉘리 반데스를 피하고 쟈기의 전신으로 향하는 오러 블레이드! 쟈기는 쉘리 반데스의 등을 발로 차며 뒤로 피했다.
가볍게 찬 것 같은데, 발길질에 어찌나 많은 힘이 담겼는지 다섯 개가 넘는 다중 회전 방어막이 와장창! 깨지고, 발과 등의 접촉지점에서 스파크가 튄다.
우지끈! 쉘리 반데스의 척추뼈가 바스라지는 소리가 멀리서 달려오는 해피의 귀에까지 똑똑히 들렸다. 복부는 임산부의 그것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엉망이 된 쉘리 반데스가 해피에게 날아온다. 해피는 쉘리 반데스의 시선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발을 꼬아 밟아 쉘리 반데스를 받지도 않고 지나쳐, 쟈기를 향해 달렸다.
후웅-!
크게 뛰어서, 쟈기를 습격!
천재검법과 승천무결!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맞물리는 수많은 검류가 쟈기를 압박한다! 연백색 오러 블레이드가 세상을 물로, 불로, 바람으로 칠했으며 그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불태우고, 갈기갈기 찢었다.
그에 대항하는 쟈기는 천재검과 같으면서도 다른 무리의 합결을 꺼냈다. 쟈기의 손에 들린 검신에서, 출아법으로 새끼를 생산하는 동물처럼 오러로 이루어진 검이 똑! 튀어나와 분리되었다.
오러 검이 쟈기의 검신을 드론처럼 맴돌며 쟈기의 검격과 함께했다.
째앵!
해피의 오러 블레이드와 쟈기의 오러 블레이드가 충돌했다. 충돌 순간, 열두 개의 오러 검이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해피에게 달려들었다.
채앵!
섬광과도 같은 검격으로 오러 검을 떨쳐내고, 쟈기와 초 근접전을 벌인다. 페이스 배분을 생각하지 않는 격한 움직임으로 겨우 쟈기와 동등한 수준의 속도 영역에 들어선 해피다.
하지만 이것도 길지 않겠지. 특이화의 강화 효과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해피는 쟈기의 검을 치고, 흘리며 그의 검법을 분석했다.
‘아까와 다르다!’
해피는 앞선 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뭐가 달라졌지? 우선, 쟈기의 근력이 아까 같지 않다.
한 번 충돌하면 손목뼈가 으스러지는 것처럼 아픈 건 여전하다. 이종족도 아이 취급할 만큼 신체능력이 대단한 것도 똑같다. 그러나 첫 타의 그것처럼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막대한 신체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뭐지?’
해피는 쟈기의 두 발이 산산이 조각난 것을 보았다. 그 탓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니,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왼팔이 없잖아? 기세에 눌려서 상대가 어떤 몸인지도 잊은 해피였다.
해피는 기뻐함과 동시에 기가 찼다. 저 괴물은 발뼈가 복합골절을 일으키고 팔 하나가 없음에도 이만한 근력을 발휘했다. 조금만 정상이었으면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바람에 날아가는 개미처럼 날아갔으리라.
“…….”
쟈기도 그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대응을 달리했다. 그의 검신을 맴도는 오러 검이 아까와는 질적으로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검법이었다. 오러 검 하나가 검법의 묘리를 표현하며 해피의 공격을 흘렸다.
진득하게 달라붙나? 아니다. 다시 보니 깃털처럼 가볍다. 하지만 빛살처럼 빨랐다. 그럼에도 산처럼 무거웠고, 바람보다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검격이 무수한 분화를 일으킨다. 만변의 도가 무변으로 변하고,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오러에 세찬 소용돌이가 맴돈다.
집합체(集合體)!
한 개의 모검(母劍)과 열두 개의 자검(子劍)으로 서로 다른 복합적인 검결을 표현하여, 궁극적으로 그것을 하나로 합쳐 막대한 힘의 상승률을 재현하는 검법.
이 또한 쟈기만의 검법이다. 쟈기가 집합체를 본격적으로 발동하자 해피의 천재검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합결 대 합결. 또는 분결 대 분결. 승자는 더 넓고 깊은 합(合)을 표현하는 쪽. 이것에는 하나의 검보다 열세 개의 검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 쪽이 더 유리했다.
파챵!
쟈기의 집합체가 천재검의 분결을 조각조각 내었다. 해피의 세상이 분쇄되고, 싸늘한 바람이 그의 갑옷을 해체했다. 오러가 해피의 피부를 가르고, 호흡을 제한한다.
패배가 정해진 싸움. 하지만 해피는 이를 악물고 검을 굳게 움켜쥐었다. 그는 알테어의 국왕이 된 이후로, 실로 수십 년 만에 도전자의 그것으로 돌아가서 쟈기를 상대했다.
“지지 않는다!”
크악! 하고 달려드는 해피!
검술이니 검법이니 그럴듯하게 말해도, 곧 싸움! 검법의 심오함에 밀리면 기세로, 기세가 밀리면 쉬지 않고 몰아쳐서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된다.
쟈기의 약점은 분쇄골절을 일으킨 양다리! 그리고 외팔! 해피는 자존심을 버리고 그의 약점을 집중 공략했다.
투쾅!
사그라졌던 투쟁심이 불타오르고, 마음으로 표현하는 오러에 묵직한 무게가 실린다.
피오드의 말대로 도전자가 된 해피는 왕으로서의 체통도 잊고 한 사람의 검사가 되어 쟈기와 맹렬하게 싸움을 벌였다.
“허……! 죽다 살아났네.”
그것을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지켜보는 쉘리 반데스. 누워서 자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다 죽는다. 어서 회복하고 해피를 도와줘야 했다. 그가 급하게 엉망인 몸을 응급처치했다.
“이거 받으시죠.”
성수가 담긴 병이 회복 마법을 쓰는 그에게 권해진다.
“어이쿠! 고맙…… 네?”
쉘리 반데스가 반색하고 성수를 받다가 그것을 전해준 자, 피오드를 보고는 어리둥절해 했다.
아니, 이 늙은이(사실 쉘리 반데스보다 어리지만 어쨌든 액면가로는 늙은이)가 왜 여기 나와? 익스퍼트 중급이라지만, 살날이 오늘내일한 노인네가 뭐 얻어먹겠다고 이 험한 싸움판에?
어이없어하는 쉘리 반데스의 얼굴을 보며, 피오드가 히죽 웃었다. 그가 생을 불태우는 해피와 쟈기의 싸움을 가리키며 쉘리 반데스에게 제안했다.
“쉘리 반데스 부왕. 제가 저 처치 곤란한 미친놈을 다룰 방법을 제안하고 싶은데, 들어주시렵니까?”
“허…! 목숨을 건 용기를 높게 보아서 허락하지. 어디 한번 말해보시오.”
“간단합니다. 적이고 아군이고 다 때려 부수는 미친놈. 제어할 수 없으면 차라리 저희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부수게 전장을 바꿉시다.”
“바꾼다?”
“예. 저기로 말입니다.”
척! 하고 피오드가 천공요새를 가리켰다. 그 손짓에서 쉘리 반데스는 그가 무엇을 노리는지 깨달았다. 또한, 그가 어째서 이곳으로 왔는지도.
쉘리 반데스가 신음하며 피오드를 바라보았다.
“재상… 미쳤군.”
“적재적소라고 해주시죠.”
“적재적소로 미쳤군. 알테어는 다들 미친 인간만 있나?”
“저희로선 대륙인이 지나치게 유한 겁니다만, 뭐 그에 대한 논쟁은 나중으로 미루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라…….”
쉘리 반데스가 천공요새와 험한 전투를 벌이는 해피와 쟈기를 번갈아 보았다. 둘을 번갈아 보던 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서렸다.
말은 안 했지만, 그 또한 마법에 미친자였다. 원래 사람은 끼리끼리 노는 법이었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미친놈이었다.
마법에 미친놈, 검법에 미친놈, 적재적소로 미친놈, 그리고 그냥 미친놈.
반색한 쉘리 반데스는 응급처치를 함과 동시에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적재적소로 미친놈이 말한 계책을 이룰 마법을.
자고로 지구의 옛말에 사람 넷이 모이면 어쩌구 지혜가 생기고, 이세계에선 미친놈 넷이 모이면 천공요새가 무너지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