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75
475화
* * *
습격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기습은 신속하게, 행동은 더 신속하게!
콰아아- !
역발(力拔)! 오성검법의 후반부 비기가 르데앙의 손에서 펼쳐졌다. 막대한 힘을 분출하는 오러가 지구인과 우주선 사이를 갈랐다.
그 사이에 트라칸이 재빨리 역발이 만든 경계선, 지구인과 우주선 중간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일어나!”
잠을 자는 척하며 경계를 서던 럼이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품에서 단봉을 꺼낸다. 처음부터 르암인을 완전히 믿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신속한 대응!
럼이 든 단봉 끝에서 빛이 응집되기 전, 어둠 속에 숨어있던 쉘리 반데스가 손끝을 럼에게 겨누었다.
번쩍! 지잉- !
백색의 빛이 방출되어 럼이 든 단봉에 닿았다. 단봉이 가래떡처럼 휘어지고, 단봉에서 방출되려던 정체 모를 힘이 무효화되었다.
르데앙이 오러를 쏘고, 럼이 든 단봉이 망가지기까지 한순간! 그 한순간에 잠자던 지구인 여덟 명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텔레파시로 일어난 일을 콤마 초보다 빠르게 전달한다. 럼의 정보를 받자 지구인들이 분주하게 초능력을 일으키고, 품에서 무기를 꺼냈다.
번쩍! 번쩍!
하지만 무기는 꺼내자마자 쉘리 반데스가 발한 물성변화 마법에 무력화된다.
[기절한 노인네! 쉘리 반데스가 사라졌다!] [제길! 저게 마법인가? 물질변화를 담아서 물성변화에 저항해!]텔레파시로 순식간에 의견 교환을 끝낸 지구인이 행동을 달리한다. 그 모습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쉘리 반데스의 뇌리로, 작전에 들어가기 전 다두가 한 경고가 떠올랐다.
(지구인이 뭘 꺼낼 틈을 주지 마십시오. 손에 들린 거에 물성변형(物性變形)을 걸어서 못 쓰게 만드세요.)
(만약 실패하면?)
(하나라도 실패하면, 저들의 손에 들린 무기가 단 한 개라도 사용된다면… 저희 일행 중 최소 반은 죽습니다.)
저게 대체 뭐기에 그리도 무시무시한 경고를 할까. 쉘리 반데스는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환생하는 괴물의 경고를 쉬이 듣지 않았다.
그가 꾹 참으며 지구인의 무기 견제를 계속해나갔다.
우우웅- !
[변환 방어막! 걸었어!]리만이라는 작은 키의 우주인이 그만의 분해 방어막을 쳤다. 쉘리 반데스의 빛이 방어막에 닿자 광자가 최소단위로 분해되고, 곡선을 그리는 공간을 종횡하다가 소멸했다.
‘뭐냐 저건?’
빛을 흩트리거나 막는 게 아니라 아예 분해한다고? 심지어 마법력이 실린 빛을? 쉘리 반데스는 기가 찼지만, 틈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해서 물성 변화를 거는 데 집중했다.
그 틈에 피넛버터가 우주복의 손 부분을 변형시켰다. 손가락 부분에 구멍이 뚫리고, 우주선으로 가는 길을 막는 르데앙을 겨눈다.
저게 쏘아지면 끝이다. 한 발이라도. 단 한 발이라도 발사되면 르암인 중 한 명은 무조건 죽는다. 스치면 무력화는 당첨된 것.
“차합!”
하지만 아직 트라칸이 남아있었다. 트라칸이 대검을 들고 세차게 휘둘렀다.
녹색 오러 블레이드가 참새처럼 날쌔게 난다. 어둠을 가른 오러 블레이드가 지구인 주위를 마구잡이로 때렸다.
꽝! 꽈광!
(트라칸 님은 소모전을 하십시오. 오러 파장과 폭발력을 적극 이용해서 지구인이 무기에 초능력을 불어넣지 못하게, 방어에 힘을 쓰게 유도하는 겁니다.)
(오러 파장으로 지구인이 죽는다면 어쩌려고 그러냐?)
(예?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직격하지만 않으면 지구인이 당할 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전력을 다해서 화망을 만들어야 할 걸요?)
(…….)
이상하리만치 지구인의 무력을 높게 잡는 다두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땐 고루한 학자 녀석들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 무시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지구인의 대응을 보니 다두의 말이 맞았다.
둥! 두웅!
직격하지 않는다지만, 무지막지한 위력을 지닌 오러 블레이드의 폭발. 그러나 피넛버터라는 지구인이 만든 다색(多色)의 보호막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소멸한다.
어떠한 주문이나 마나의 흐름도 없이, 그저 급하게 손을 들어 만든 방어막에 불과한데 오러 블레이드의 간접 폭발을 막는 다라… 트라칸은 지구인의 무력 수준을 상향조절했다.
“흠… 기습이라니.”
폭발을 막는 방어막 속, 아이로젠 브릿지가 공손히 양손을 모았다.
“르암인. 우리는 당신들을 신뢰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신뢰가 깨졌습니다. 그것이 불러올 파장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차분하고, 어리숙한 어투. 그러나 파장에 실린 텔레파시에 르암인의 머리가 쭈뼛 섰다.
아이로젠 브릿지의 마주 잡은 손바닥에 새하얀 빛이 서렸다. 원자가 분해되고, 순수한 물리력이 그의 손안에 잡힌다. 물리력에 초능력이 깃들어 상위 에너지마저 파괴하는 초월적인 힘이 완성되려 한다.
스왁- !
완성된 초능력이 발산되기 전! 우주선 뒤에 숨은 옥시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곤 저주와 약화 마법을 걸었다.
간단한 수준의 저주이지만, 처음 보는 계통의 능력에 지구인의 정신이 흐려지고, 완성된 초능력이 허무하게 흩어진다.
(옥시아 님은 견제입니다. 공격 마법은 오히려 지구인의 에너지 변화에 힘을 실어주니 꿈도 꾸지 마십시오. 약화, 저주, 둔화, 마비, 제압 계열의 마법으로만 저들의 정신을 흩트려 놓으세요.)
(굳이 뛰어난 거에 집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법에 적응하지 못하게, 기초부터 고급 계열까지 최대한 다양한 마법을 쓰는 거에 집중하십시오.)
그러며 정신 계열 마법은 절대로! 절대로 쓰지 말라는 당부까지 내렸다. 옥시아는 다두의 경고에 긴가민가했지만…….
‘으으! 저건 뭐야?!’
아이로젠 브릿지의 초능력을 보고는 마음을 바꿨다. 저것이 쏘아지면 쉘리 반데스와 뮤온 보트라 말고는 살아남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법사인 그녀는 아이로젠 브릿지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그리고 나머지 초능력자들도 그에 준하는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빨을 딱딱 떨었다.
다두의 말에 따라야 한다. 저들의 공격을 초장부터 끊어내는 옥시아의 능력이 필요했다. 그녀는 다두의 말에 따라 최대한 다양한 저주, 약화 계열의 마법을 사용해가며 지구인의 공격의 결을 끊었다.
그렇게 르데앙이 길목을 막고, 트라칸이 오러 파동과 폭발력으로 지구인의 초능력을 방어로 돌린다. 옥시아는 초능력 발현을 방해하고, 쉘리 반데스는 지구인의 무기를 쓰는 걸 막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지구인 9명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리란 불가능!
[됐어! 쏴!]“안돼! 막앗!”
스트로크, 럼, 크사나, 리만이 다중 방어막을 치고, 그 중심에서 제노바가 파괴광선을 완성하여 발사하기 전!
서걱!
공간을 가르는 새하얀 심검! 심검의 검격에 스트로크가 친 시공난류(時空亂流)가 천조각처럼 찢어졌다.
럼의 다색 방어막은 바위와 부딪친 계란처럼 바스러지고, 무형의 방어막과 물질 방어막도 잘렸다.
거침없이 다중 방어막을 가른 심검이 파괴광선의 맥(脈)을 찔렀다.
“이런 썅!”
제노바가 욕설을 내질렀다. 파괴광선의 힘이 제어를 잃고 풀려나고, 르암인을 공격하기 위해 모인 힘은 오히려 지구인을 공격하려 한다.
제노바와 몇몇 지구인이 급히 모여 흩어지는 파괴광선의 힘을 제어했다.
[뮤온 보트라다!] [그 빌어먹을 백색 검이야! 다들 방어막을 더 강하게 쳐!](뮤온 보트라 님이 가장 중요합니다. 황제님은 쉘리 반데스님의 도움으로 어둠 속에 숨어서, 중요한 상황에서만 공격을 해주십시오.)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당신의 존재 자체가 지구인에게 억지력으로 작용할 겁니다.)
공격하고, 막고. 무기를 들고, 부순다. 지구인과 르암인의 전투는 지진부진하면서도 격렬하게 흘러갔다.
(명심하십시오. 이번 싸움은 어디까지나 시간 끌기에 불과합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죽으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죽지 않고, 죽이지 않게 주의해주세요.)
다두 일행이 지구인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기술력을 경계해서이다. 차원함을 만들 정도로 발달한 기술력으로 마법총과 같은 공격무기를 만든다면? 그것으로 르암인을 노린다면?
하지만 다두는 이상하리만치 초능력의 대응법을 알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투라면 사정이 다르겠지만, 저들의 수를 묶고, 시간을 끄는 정도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콰과과!
그렇게 지구인과 르암인의 전투가 물이 끓는 것처럼, 서서히 격화되었다.
* * *
우당탕!
그 사이 다두는 우주선에 몰래 침입했다.
본디 지구인의 우주선은 열쇠나 해킹 따위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 통제권 자체가 아이에게 있기에 그녀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외부인은 출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두는 우주선 안으로 들어왔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총 9명의 지구인의 감각이 흐려지는 한순간을 노려서.
그리고 전생 능력을 깨달은 시점, 두 번째 삶인 51부터 키워온 은신술을 이용하여.
‘이날을 위해서였나?’
참 쓸모없고, 왜 배웠나 가끔씩 고민이 들던 암살술과 은신술. 다두가 되어서도 옛날 버릇대로 꾸준히 수련해 온 은신은 쟈기와는 또 다른 경지로 그를 올려놓았다.
주술을 이용하여 세계의 경계에 발을 내딛어, ‘나’라는 존재감을 완벽에 가깝게 지워버리는 경지. 이제는 더 이상 은신이라는 하위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그것.
그 은신을 사용해서, 어둠의 경계를 타고 접근해 우주선 앞에 당도한다. 그가 우주선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손톱만 한 크기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인간이 들어가기엔 지나치게 작은 구멍. 그러나 다두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자그마한 틈만 있으면 된다.
주술의 극한은 정신을 통한 자연력과 우주력의 개발이고, 경지에 이르른 주술사는 본인의 몸을 물, 바람, 불 등의 속성으로 변할 수 있으니.
‘음……!’
단모음의 발언, 진언으로 주술력을 일깨우고 몸을 바람으로 변하게 하여 구멍을 통해 우주선 안으로 진입!
탁탁탁!
다두는 우주선에 들어가자마자 급히 달려 지하로 향했다. 지하, 문을 박차고 어두운 방 안으로 구르듯이 들어갔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지고 한쪽 벽면이 열린다. 벽면에서 검은 직육면체, 코어가 등장했다. 코어의 표면에 사람 얼굴 형상을 한 이모티콘이 그려지고, 이모티콘이 벌떡 일어서는 다두를 포착했다.
– 왔군요. 다두.
“그래. 약속대로 왔어.”
– 정말 가능한 겁니까?
“도박이지. 너도 이대로 가면 죽는 미래밖에 없다는 걸 알잖아? 이래도 죽을 거면, 적은 가능성이라도 시험해보는 게 인지상정.”
– 하지…….
더 이상 대화할 시간은 없다. 다두는 쉰둘이 담긴 원통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우지직!!
유리와 똑 닮아 보이는 원통 겉면이었지만, 특이하게도 깨지지 않고 우그러진다. 다두는 우그러진 겉면 재질을 잡고는, 벽지 뜯어내듯이 원통을 뜯어내었다.
– …대기권 추락을 염두에 둔 특이금속입니다만. 그걸 맨손으로 뜯어내는 겁니까?
그가 한 일이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아이의 목소리에 은은한 놀라움이 서렸다.
촤악!
겉면 재질이 뜯어지자 원통에 가득 찬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다두는 물을 헤쳐 원통 안에 담긴 그것, 쉰둘의 육체를 집었다.
– 정말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군요. 확실히 성력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힘이고 당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아, 시끄럽고. 이미 선을 넘었으니까. 안 도와줄 거면 가만히나 있어!”
다두가 세된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쉰둘을 안았다. 그가 막 쉰둘의 머리로 손을 가져다 댔을 때.
“너……!”
부서진 문으로 등장한 지구인이 있다. 알토! 쉰둘의 형제가 수많은 방해를 뚫고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알토가 쉰둘을 안은 다두를 보고는 쌍심지를 추켜세우며 아이를 타박했다.
“아이! 안 막고 뭐 하는 거야!”
아이가 느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 다두가 전해준 성력이라는 힘이 제게 이상 작용을 합니다. 이상하게 그를 공격할 수 없네요. 알아서 해주세요, 알토.
“이익! 너! 원시인!”
“우주인 차별 발언입니다. 알토님.”
“닥쳐!”
화악!
유백색 원환체가 알토의 손에서 발사되었다. 원환체 수십 개가 음속으로 다두를 향해 날아들었다. 다두는 쉰둘을 등에 업곤 뒤로 피했다.
카가각!
원환체가 속도에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선회기동을 보여주며 좁은 공간을 종횡한다. 다두는 전면에 접근한 원한체 한 개를 향해 손을 굽혔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손짓이 원환체의 돌진을 흘린다. 승천자의 무학, 유수화접이다.
서걱!
아! 다두가 감탄했다. 원환체가 유수화접의 흐름 조작을 이겨내고 다두의 손가락을 베였다!
원환체의 날은 단순한 날카로움이 아닌 공간을 베는 힘이 담겼다. 흐름 이전에 공간을 베어내니 유수화접이 잘 먹히지 않는 것이다.
‘이러면…….’
다두는 흘리기를 포기하고 원환체의 면을 노렸다. 그의 손에 오러가 서리고, 음속으로 날아드는 원환체의 면을 향해 손바닥을 치는 순간.
공간굴절(空間屈折)!
경로는 직선. 그러나 왜곡된 공간을 타는 원환체는 현실세계에서 곡선을 그린다. 휘어지는 곡선이 다두의 공격을 피하고, 그의 팔에 칼날을 들이댔다.
서걱!
심검을 제외하고 그 어떠한 공격에도 잘리지 않은 다두의 육체. 괴괴괴괴 마나 운용술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전생자의 팔이 잘렸다.
‘이런!’
지구인의 공격 초능력이 예상 이상이다. 다두는 흐르는 피로 분리된 팔을 붙잡고는 뒤로 피했다. 그 사이, 알토가 본격적으로 공격용 초능력을 운용했다.
“쉰둘을 내놔!”
밀려 들어오는 염동력이 다두를 압박했다. 염동력이 창처럼 찌른다. 파도처럼 몰아친다. 사지를 붙잡고 비튼다.
알토의 정신이 다두를 침범했다. 새하얀 백색이 그의 뇌를 지운다. 새빨간 적색이 감정에 혼선을 일으킨다. 시커먼 검정이 사고를 집어삼킨다!
폭발에 폭발에 폭발. 호흡을 통해 폭발이 들어간다. 귓구멍을 포함한 칠공과 항문, 요도를 통해 폭발이 들어간다. 전신의 십만 개 모공으로 폭발이 스며든다.
“으아!”
다두가 급히 회전했다. 염동력의 창을 흘리고, 피를 폭발시켜 염동력 파도와 공멸한다. 사지를 붙드는 힘은 은하나선류로 하나하나 맥을 끊었다.
정신을 침범하는 알토의 공격은 비은다각형- 무한소로 응대! 알토는 무한하게 축소하는 다두의 정신에서 빠져나와 그에게 거리를 벌렸다.
꽝!
하지만 폭발은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양 귀, 입, 사타구니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모공으로 스며들어 간 폭발력이 세포 크기만한 폭발을 일으켜 다두의 전신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피를 흘리며 염동력을 막는 다두에게 알토가 2차 공격을 가했다.
천만타(千萬打).
치고, 누르고, 잡고, 끌어당기고, 밀치고, 비틀고, 때리고, 잡아 뜯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타격(打擊)이 다두의 전신을 침범한다.
타격의 수와 복잡성은 다두로서도 계산 불가능! 그가 익힌 검법으로도 천만타의 변화를 집어삼킬 수가 없다. 이것이 신경 보조 모듈의 도움을 받는 지구인의 연산능력과 정신계 초능력의 힘이었다.
‘이거 빡센데?’
다두는 피로 밧줄을 만들어 쉰둘을 등에 묶었다. 그가 자유로운 한 손으로 유수화접을 발휘해 알토의 공격을 하나하나 흘렸다.
쉐엑- ! 또 날아드는 원환체! 이건 유수화접으로 못 흘린다. 다두가 등을 돌려 원환체로 향했다. 등에 진 살덩어리, 쉰둘이 원환체에 갈리려는 순간 알토가 급히 원환체의 방향을 틀었다.
으득!
쉰둘을 방패로 삼아? 알토가 이를 갈며 명령했다.
“아이! 긴급통제권 이전!”
– 확인합니다. 상차원 탐사대원 알토에게 통제권이 이전됩니다.
알토만으로도 숨이 차는데 여기서 우주선의 방어 기능까지 추가된다고? 다두가 우는소리를 했다.
“아가씨. 우리 좀 유연하게 가자고.”
– 저를 이루는 부품은 유연하지 않습니다.
“네 부품 중에는 유기물도 있잖아.”
– 모든 유기물이 부드러울 거라고 착각하는 불쌍한 지성체가 여기 있군요.
“뇌 조직은?”
– ……인정합니다. 원하는 게 뭡니까?
“1세대 신경 보조 모듈 두 개 하고 유선 중계기.”
“너! 원시인 따위가 어떻게 신경 보조 모듈을!”
“아가씨.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자고요.”
– 빰. 빠라. 빠라빠라. 빰. 빰.
아이는 괴상한 효과음을 불렀다!
다두가 원환체와 염동력 투사를 피하며 투덜거렸다.
“뭐야 그건.”
– 전통적인 RPG게임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면 나오는 효과음으…….
“아니, 나도 아는데 왜 하필 그런 효과음을 내냐는 거거든?!”
– 두 분의 싸움을 보니 저도 모르게 몸이 달아올라서 그만. 발달하지 못한 자들이 어째서 오락을 즐기는지 알 것 같습니다.
“몸도 없는 주제에 말은 잘하시네.”
–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자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였더라.
“저네요! 제기라… 악!”
획!
아이와 떠드는 사이 다두의 다리가 염동력 팔에 잡혔다.
다리를 통해 전달된 초능력이 그의 세포 결합을 끊었다. 전자의 흐름을 막고, 화학적 결합을 방해한다. 또한 체열(體熱)을 빼앗아 다두의 몸을 얼렸다.
다두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의 피부에 성에가 끼고, 혈액이 꽝꽝! 얼어붙었다. 다두는 마법으로 열에너지를 발생시킴과 동시에 물리, 화학적 기작의 작용을 대신했다.
“야, 너 일부러 그런 거지.”
–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입니다.
우직!
염동력 팔이 다리를 부러뜨린다. 그의 다리와 알토의 염동력 팔은 근원소(根源素)로 결합되었기에 평범한 방법으로는 풀 수 없다.
다리를 붙잡은 팔이 세차게 휘둘려졌다. 다두는 바람에 나부끼는 마분지가 되었다. 날아간 그가 벽과 충돌했다.
꽝!
단단한 벽이 으스러지고, 무게*속도의 계산공식을 따르지 않는 막대한 충격량이 다두의 몸을 타격한다.
꽈앙! 또 한 번! 다두의 척추뼈 돌기가 바스러졌다.
‘시발!’
등과 허리, 허벅지까지 저릿저릿한 느낌이 전달된다. 추간판이 터져서 수핵이 흘러나와 신경을 건드리는, 이 불쾌한 감각!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리를 붙잡은 염동력 팔을 통해 알토의 정신 초능력이 몰아쳤다.
휘몰아치는 일만 팔백 개의 감정이 다두의 정신을 침범한다. 마법으로 쌓은 정신 방벽은 회오리에 부서지는 나무 집처럼 조각조각나고, 주술의 정신 방어막은 산불에 타는 꽃잎처럼 허무하게 스러졌다.
‘역시. 정신계 능력으로는 지구인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주술과 마법이 뛰어나도 지금처럼 다리가 붙잡힌 상태에서 지구인의 정신 공격을 막는 건 꿈에서나 있을 일이다.
다두는 마법과 주술로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를 노렸다.
꽝! 꽈광! 꽈과광!
때리고, 또 때리고! 다두의 다리를 붙잡은 염동력 팔이 말 그대로 음속으로 그의 몸을 흔들어서 지하실 이곳저곳을 내리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다두의 등에 묶인 쉰둘의 육체는 조금도 손상이 가지 않았다는 거에서 알토의 능력을 짐작게 했다. 아마 쉰둘이 아니었으면 다두는 수십 조각으로 찢어져 죽었을 것이다.
이대로 알토에게 주도권을 넘기면 위험해진다.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지는 다두의 몸이, 그의 시선이 사방을 훑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천장을 타고 내려온 물건에 고정되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물건을 본 다두가 피와 함께 환호성을 터뜨렸다.
“미리 말을 했어야지!”
– 효과음으로 힌트를 드렸지 않습니까.
“그래! 참 고맙다!”
휙!
수도를 휘둘러 다리를 자른다. 절삭음도 없이, 다두의 다리를 붙잡은 염동력 팔이 그의 몸에서 다리와 함께 분리되었다. 다리 한 짝과 팔 한 짝이 없는 다두가 엉망이 된 방을 날았다.
방을 나는 다두의 목표는 천장에서 내려온 두 개의 헤드기어! 1세대 신경 보조 모듈! 그것을 한 팔로 잡고는, 재빨리 자신의 머리에 장착한다.
신경 보조 모듈에 초능력을 동조하고, 쉰둘에게 급히 손을 뻗는 순간. 다두의 위기 감각이 어서 뒤를 보라고 외쳤다.
다두는 쉰둘의 머리에 헤드기어를 착용하며 뒤로 시선을 돌렸다.
“허억?!”
머리카락이 위로 치솟은 알토가 그를 반겼다. 그녀의 양손에 전력을 다한 파괴광선이 만들어져 다두를 겨눈다.
다두의 방어막으로도 막을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의 공격용 초능력이 발사되어 그를 원자 단위로 분해하기 전…….
“저… 잘못했습니다! 드리겠습니다! 쉰둘!”
다두가 얼른 쉰둘을 내밀었다. 헤드기어를 쓴 쉰둘을 받은 알토가 백색 수정을 소환해 다두의 사지에 박았다.
푹! 푸북!
다두를 완벽하게 제압하고는, 조심스럽게 쉰둘을 받는 알토. 그녀가 울먹이며 눈을 감은 쉰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치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영원토록 그리워하는 것처럼, 결코 눈을 뜨지 않을 이가 언젠가 눈을 뜨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알토에게 안긴 쉰둘은…….
번쩍!
그는 영원히 눈을 감지 않았다.
그가 눈을 떴다.
내가 눈을 떴다.
* * *
끼이익- !
나는 비틀어진 우주선 문을 열고 나왔다. 밖의 풍경은 아주 엉망이었다.
각양각색의 마법과 공격용 초능력이 어두운 대지에 여러 색을 칠한다. 색색의 오러가 땅을 어지럽힌다. 분명히 죽일 각오로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 싸우는 꼴을 보면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날 분위기다.
다들 엉망이구만. 어떻게 된 게 내가 잠시 빠졌다고 서로 죽자살자 싸우냐? 나는 한심하다는 투로 외쳤다.
“자, 다들 그만!”
내 말과 함께 싸움이 멈춘다. 르암인만. 지구인은 재빨리 팔을 뻗어 내게 전력으로 초능력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어……?”
아이로젠 브릿지가 공격용 초능력을 방출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는 다리가 잘려서 걷는 게 불편한지라 부축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 말고 다른 이에게. 우주선에 있는 이가 나 말고 또 누가 있겠나. 그자도 휘말릴 걸 경계해서 공격을 멈춘 것이다.
서쪽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알토? 어째서?”
내 옆에 서서 나를 부축해주는 알토. 서쪽은 알토가 귀신에 홀린 듯한 눈을 한 채 나를 부축해주는 걸 보고는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히죽 웃었다.
“그야…….”
내가 알토의 뒤를 따라, 멀쩡한 두 다리로 걸어 마지막으로 나왔다. 내가 말했다.
“저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말했다.
“자, 나를 봤으니 다들 아시겠죠? 이제 싸울 이유가 없으니깐. 평화롭게 갑시다. 여길 빠져나가기 위해 협력하…….”
내가 말을 막았다. 내가 말했다.
“잠깐만.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어.”
내가 급히 합성기로 달려갔다. 나는 말렸다.
“야, 뭐 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이거 있잖아. 이거.”
합성기에 명령어를 주입한다. 합성기가 정해진 분자식대로 물질을 쏟아내었다.
콸콸콸!
나온 것은 검은색 액체. 단내가 나고, 탄산이 녹아내린 걸 보여주듯이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온다.
커다란 잔에 담긴 탄산음료. 내가 그것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꿀꺽! 꿀꺽!
아니, 한 모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먹는 걸 참을 수 없다. 수십 년 만에 먹어본 음식에 내 몸이 환호성을 지르며 숨도 쉬지 않고 탄산음료를 마셨다.
한 손으로 탄산음료를 마시고, 다른 손으로 합성기에서 나온 탄산음료를 든다. 한 손에 들린 걸 다 마시면 다른 손에 들린 걸 이어서 마신다.
탄산음료! 어떻게 저걸 까먹었지? 나도 참! 나는 알토의 부축에서 벗어나 깽깽이발로 합성기로 달려갔다.
“너만 마시지 말고 나도 좀 줘 봐.”
내가 합성기를 가리켰다.
나는 샐쭉한 눈으로 합성기에 나온 잔을 들었다.
쨍!
내가 탄산음료를 마시며 잔을 마주쳤다. 나는 잔을 들고 이번 삶 처음으로 마시는 탄산음료를 진지한 마음으로 영접했다.
꿀꺽!
입을 가득 채우는 단맛. 그리고 짜릿한 탄산의 감각.
“하!”
나는 탄성을 토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마시는 탄산음료는 세상의 그 어떤 쾌락하고 비교도 할 수 없는 즐거움을 내게 선사했다.
내가 말했다.
“이 한 잔이 그리웠어.”
나는 말했다.
“나도 그리웠어.”
내가 말했다.
“너는 많이 먹어봤잖아.”
내가 하는 말에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설마 이 자식은 ‘그걸’ 음식으로 치는 건가? 나는 말했다.
“거지 같은 음식만 처먹었는데.”
나의 항변을 듣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탄산음료를 마셨다. 마음 같아선 음료수의 바다로 배를 채우고 싶지만, 이제 그만 마셔야 할 때가 왔다.
서쪽 때문이었다. 서쪽이 내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내가 음료수를 내려다 놓고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어…….”
서쪽. 그녀가 헬멧을 벗었다. 혼란과 당혹, 그리고 진한 그리움이 신경 보조 모듈을 통해 내게 전해졌다. 나에게도 전해졌다. 내가, 나는 그녀의 그리움이 담긴 텔레파시를 읽고는 몸을 떨었다.
서쪽이 눈을 글썽이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내게 온 서쪽이 내 얼굴을 감싸 안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서쪽을 옆얼굴을,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서쪽이 울면서 내게 말했다.
“쉬, 쉰둘? 정말 너 맞니?”
나, 다두는 말했다.
“야, 너 부르잖아.”
내가, 쉰둘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탄산음료를 할짝 핥았다. 그러곤 말했다.
“응. 서쪽.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