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48
048
사악! 하고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네이드의 영역에 의지가 실리고,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두리뭉실한 영역은 14줄기의 나선으로 엮이며 나의 몸 곳곳을 향해 뻗어 갔다.
그의 영역은 이빨이 잔뜩 달린 괴물의 촉수와도 같았다. 아직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게걸스럽게 공간의 마나를 삼키며 나의 영역을 분쇄하고, 침투했다.
그보다 하수가 그와 마주한다면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전신에서 힘이 빠지고, 앗 하는 순간 괴물의 아가리에 목을 내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때로는 물처럼 유순하게, 때로는 바람처럼 사뿐하게 흐르는 나의 영역은 그의 촉수를 간지럽혔고, 응집된 힘을 사방으로 흘렸다. 지는 것 같지만, 결국 내가 이기는 싸움. 이것은 네이드의 공격이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간접적인 증거였다.
꿈틀!
네이드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눈썹을 움찔했다. 그의 기세가 내 주변 공간을 장악하는 데 실패해 당황하는 것. 그가 정신을 바로잡고 마나를 탄탄하게 일으켜서 영역을 확장시켰지만, 그럴수록 개미지옥에 빠지는 개미처럼 한없이 체력만 소모했다.
‘쯧쯧!’
나는 쓸데없는 짓을 계속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네이드를 보고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영역의 깊이는 네이드가 한 수 위! 하지만 영역이란 개념의 접근 방식은 나의 것이 몇 수나 위였다. 아니, 그건 위냐 아래냐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 패러다임을 몇 번이나 넘었기에 비교가 불가능했다.
그런 나에게 어쭙잖게 심상 대결 따위나 하니 손해를 계속 보는 거지. 차라리 눈 딱 감고 검부터 날렸으면 훨씬 유리했을 거다. 아마 나도 위험했겠지.
휘유웅!
영역 싸움이 격해지며, 네이드와 나 사이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주변의 눈은 바람에 떠밀려 상승하다가 응집된 마나에 의해 모래보다 작게 조각나고, 영하의 기온에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그 결과, 네이드와 나의 주변에 소규모의 블리자드가 몰아쳤다. 둘의 영역 싸움을 흥미롭게 또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정보요원들도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어쩔래?’
나는 점차 고립되어가는 네이드에게 눈으로 물었다.
아마 네이드도 미치고 팔짝 뛸 거다. 상대가 자기보다 하수라고 확신해서 한 호흡에 죽이려고 작정했는데, 오히려 손해만 보다니!
이제 와서 영역을 좁혀도 문제다. 그의 영역은 너무 깊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상대의 영역을 타고 마나를 흘려보내 내상을 입힐 능력과 기술이 있다. 네이드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땀을 뻘뻘 흘렸다.
손해인 걸 알아도 수습할 수 없다! 비탈길을 끝없이 굴러가는 유리구슬의 운명이 네이드와도 같았다. 내가 봐주면 일이 쉽게 풀리긴 하다만··· 내가 왜?
이유야 어찌됐건, 그는 내게 공격을 퍼부을 준비를 끝냈고, 나는 나를 공격하는 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최소 팔 하나는 내놔라. 그러면 날깐이를 봐서 살려주긴 할 게.
상황은 한없이 내게 유리하다. 변태, 띠알렌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곤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영역 싸움이 절정에 달했을 때 외부 이물질이 들어오면, 둘의 힘이 이물질에게 집중된다.
눈을 일으키고 갈기갈기 쪼개는 힘은 전부 네이드와 나의 마나다. 그것이 유형화된다면, 그리고 그 힘이 이물질에게 향한다면 집채만 한 돌덩어리도 한순간에 가루가 될 게 분명하다.
띠알렌도 익스퍼트 하급의 달인으로서, 그 사실을 알기에 네이드를 도와주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네···! 안됩니다! 네이드 님!”
띠알렌도 감히 간섭하지 못하는 나와 네이드의 영역싸움. 그 흉흉한 공간에 발을 디디는 머저리가 있었다. 띠알렌은 영역 싸움에 제삼자가 발을 들이미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행위인지 알기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말했듯이 그가 그 사실을 아는 건 익스퍼트 급 강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침입자는 기껏해야 스칼라 상급의 검사여서 자신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거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영역 안에 몸을 집어넣었다.
“흡!” 네이드가 급하게 이를 악물었다.
네이드의 영역이 날카롭게 정련되었다. 하늘 높은 곳에 모인 수증기가 빙결핵을 만나 응축되듯이, 갈피를 잃은 네이드의 기운이 외부인을 인식하자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끝에, 허공에 난데없이 두 개의 오러가 출현했다.
침입자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오러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보호본능이다. 만약 네이드가 억지로 오러를 걷어내면 그가 치명적인 내상을 입는다. 그리고 세상 그 누구도 머저리를 위해 자기 손해를 감수하는 인간은 없다.
네이드가 노한 목소리로 침입자에게 소리쳤다.
“멍청한 놈!”
후왁!
두 갈래의 오러가 번뜩이는 검광으로 변했다. 검광은 소리의 전달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밑에서 위로 솟구쳤다. 검광의 기세에 소규모 블리자드가 썽퉁! 잘려 흩어졌다. 검광은 블리자드를 가르는 걸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침입자의 피를 맛보려고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약 30도의 각도로 교차하는 X자형 검광! 하나는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나머지 하나는 심장과 왼쪽 옆구리를 지나는 경로로 쏘아진다!
“이런!”
나는 두 궤도가 교차하는 지점, 명치 부근에 검을 가져다 댔다. 승천자의 기술인 유수화접이 펼쳐지며 오러를 붙들고, 결을 흐트러뜨린 후 힘의 방향을 24개로 쪼갰다.
서걱!
힘을 잃은 검광은 대부분 허공으로, 일부는 침입자의 피부를 날카롭게 가르는 것을 끝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 다행히 검광은 네이드의 전력이 아닌, 부지불식간에 쓴 오러였기에 쉽게 흘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미약한 힘도 침입자는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비틀거린다. 침입자, 선임 정보요원이 몸속으로 들어온 네이드의 마나를 어떻게든 몰아내며 더듬더듬 말했다.
“안··· 됩니다. 네이드 님. 거, 검을··· 검을 거둬주십시오.”
“네놈······!”
“다 설명··· 드리겠습니다. 제, 제 말을 들은 이후라도 좋으니······”
“······.”
아무리 상대가 정보요원이고, 무술을 배웠고, 잠재적인 적이라 할지라도 무저항인 상대를 베는 것은 검사로서 찜찜하다. 네이드가 인상을 쓰며 영역을 축소시켰다. 나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그에 맞춰주었다.
선임 정보요원은 별말 없이 눈 위에 쓰러진 느억이를 가리켰다. 아, 그녀를 업고 있었는데 급해서 눈에 버리고 달려든 거구나. 그가 느억이와 스트랜돌에게 업힌 날깐이를 보며 내게 부탁했다.
“션 님. 저 두 분을 깨워주십시오.”
“···별로 내키지 않는데?”
“그래야 이야기가 쉽게 정리됩니다. 션 님도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있지 않습니까? 두 분을 깨우면 생각 이상으로 이야기가 빨리 진행됩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내가 한 행동이 있어서 아무리 뻔뻔한 나라도 둘을 깨우는 건 조금 꺼려진다.
“둘 다 일어나자마자 엄청나게 화내지 않을까?”
“제 목숨을 걸고 감히 말씀하지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선임 정보요원이 확신하듯이 그리 말했다. 나는 그의 행동을 보고 생각했다.
세 번째다. 느억이와 날깐이, 그리고 선임 정보요원이 이상하리만치 내게 호의적인 행동을 보여준 게 벌써 세 번째였다. 나는 확실히 그 의문을 푸리라 결심했고, 이번에 그 비밀이 밝혀지리란 직감이 들었다.
나는 느억이와 날깐이를 옭아매는 초능력을 회수했다. 초능력을 회수하자마자 두 사람이 찜찜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우리를 쏘아보았다.
“끄응······!”
“······.”
초능력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을 뿐이지 둘 다 오래전에 깨어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둘은 불평하기보다 어째서 선임 정보요원이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깨닫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작은 느억이였다. 그녀가 띠알렌에게 어금니를 드러냈다.
“변태. 네가 뭔데 내 부하들을 이끌고 있는 거야? 월권행위 그만하고, 당장 소집 해제시켜.”
느억이도 띠알렌을 변태라고 부르는구나. 하긴 영하의 기온에 눈까지 내리는데 레오타드나 입은 남자 놈을 지칭하는 단어는 세계 어디서나 변태 말고는 없었다.
변태 띠알렌, 띠알렌 변태가 말했다.
“네이드 님 말 못 들었나? 임무가 이중으로 겹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몬스터 때문에 임무는 늘어나지, 인력은 적지. 지금처럼 긴급 상황에선 현지 인력을 쓰는 게······.”
“닥쳐. 최고 중요 사항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소집 해제하고, 무기 거두고 숨어있는 놈들 다 나오라 해.”
“너······.”
“내가 장담하고 말하는데 네가 내 말을 안 따르면 나는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일 거야. 그래도 사정을 설명하면 윗선에서 아무도 내게 처벌을 내리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어. 아니, 오히려 네 목 하나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길 거다. 그러니 어서!”
와. 말 엄청 세네. 진짜 성격이 뭔지 알 수 없는 여자다.
띠알렌이 지그시 느억이를 노려보았다. 느억이는 그를 무시하고 날깐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둘이 대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날깐이는 그녀의 눈빛을 읽고는 망설이지 않고 띠알렌을 향해 서서히 기세를 피워 올렸다.
“쯧!”
그걸 보고 장난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띠알렌이 혀를 차며 손을 위로 들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사방에서 숨어있던 41명의 정보요원이 일어서서 느억이 곁으로 다가왔다.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자 날깐이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네이드에게 말했다.
“빌어처먹을 새끼야. 왕궁이든 어디든 가주마. 하지만 이거 두 개는 명심해라. 하나, 천재검은 가짜고 둘, 넌 지금 해선 안 될 짓을 저지를 뻔했어.”
네이드가 콧수염에 묻은 서리를 떨구며 날깐이를 노려보았다.
“나도 똑같이 말해주지. 하나, 의무도 잊고 욕심에 눈이 먼 이기적인 놈의 말 따윈 믿지 않아. 둘, 나보단 자네가 한참이나 먼저 선을 넘었어.”
“하! 웃기는 머리통하고 콧수염만큼이나 웃기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넌 옛날부터 머리숱이 적었지. 그걸 지금 부럽다 말하기엔 상황이 안 맞지 않나?”
확실히 날깐이의 머리카락은 옅은 기색이 있었다.
“크크! 부럽기는. 이제 네가 나를 부러워할 거다.”
날깐이가 흉폭하게 웃으며 네이드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빠르게 시선을 돌려 날깐이의 머리를 안 보는 척했다.
날깐이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션··· 이라고 했소이까?”
“어, 음······.”
왜 갑자기 너도 존댓말이냐. 정말 어색해 죽겠네.
고개를 든 날깐이가 알 수 없는 의미가 담긴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션 님. 저들에게 당신이 가진 힘을 보여주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힘? 내가 가진 거? 뭐, 오러로 다 쳐 죽이라는 건가? 아니면 마법을 보여주라고? 나는 문맥이 해석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저 멀리, 내 시선 끝에서 마법사가 기괴한 손짓을 했다. 그건 첫 번째 삶에서 인터넷에서 자주 본, 메이드 카페의 여직원이 완성된 음식에 사랑을 담아주는 자세와 비슷했다. 늙은 아저씨가 저딴 손짓을 하니 속이 다 느글거렸다.
하지만 개 같은 손짓 덕분에 뭘 뜻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선임 정보요원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네이드의 마나 일부조차 다 몰아내지 못해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몇 주 동안 골골댈 게 분명하기에 그에게 이 힘을 쓰는 게 가장 적당하리라.
포옹!
내 손에서 푸른색의 구체, 성력(聖力)이 나왔다. 성력은 선임 정보요원의 몸으로 스며들어서 망가져 가는 그의 신체를 치료해주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설마······.’ 하는 표정으로 푸른 구체를 바라보던 띠알렌과 네이드가 눈을 부릅떴다. 띠알렌이 낭패한 얼굴로 느억이를 바라보았다.
척!
네이드의 반응은 더 극적이었다. 그가 검 손잡이에 올린 손을 떼고, 차가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뒤 정중하기 그지없게 고개를 숙였다.
“성자의 말을 의심하고, 검을 겨눈 죄. 이 네이트 하몬 스트라토스의 팔을 잘라 사과하겠습니다.”
그가 왼팔의 수도를 세워 오른팔을 내려쳤다. 왼팔에 서린 오러와 자세를 보면 사과하는 척 만 하는 게 아니다. 그는 정말로 팔을 자르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왼팔을 발로 찼다.
퍽!
네이드가 자리에 쓰러지더니 다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허리띠를 풀어 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하!’
나는 이제야 날깐이, 느억이, 선임 정보요원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사실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성력 좀 쓰는 게 뭐가 어때서 사람을 그렇게 달리 보나. 성력 쓰는 놈 중에서도 지랄 맞은 놈들은 있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여기서 이유를 묻는 건 괜히 분위기를 무너뜨릴 수 있다. 나는 대충 분위기를 읽고 눈치 있게 행동하기로 했다.
내가 말했다.
“검 안 겨눴어.”
네이드가 말했다.
“겨눴습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쟤······. 야, 너 이름이 뭐야?”
선임 정보요원이 말했다.
“없습니다. 보통은 볼보크라 불리고, 임무에 따라 지정명을 따로 받습니다. 지금은 찰리입니다.”
“그래. 찰리한테 겨눈 거야. 그러니까 안 잘라도 돼.”
잘라도 내가 잘라야지. 네가 뭘 잘했다고 스스로 자르냐.
“검 집고, 일어서. 눈 차갑다.”
“알겠습니다.”
네이드가 지극히 멋스러운 동작으로 검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
“······.”
“······.”
어색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감쌌다. 네이드, 띠알렌 등은 (성자가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느억이와 날깐이도 먼저 말을 내뱉지 않는다.
나는 잠시 침묵을 즐기다가 입을 열었다.
“천재검은 가짜다. 그렇게 말해도 믿기 힘들겠지.”
“아닙니다.”
네이드가 군대에서 선임한테 갈굼 받는 후임처럼 말했다. 나는 군대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아닙니다.’ 다음의 갈굼 형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할 말만 하기로 했다.
“못 믿는 거 다 아니 몇 페이지는 보여주지.”
찍! 찌익!
나는 천재검법서를 대충 펼쳐 아무 페이지나 세 장 뜯었다. 그리곤 네이드, 날깐이, 느억이와 띠알렌에게 날려보냈다.
“??”
종이를 받은 네 명이 물음표를 띄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종이로 손가락질했다. 넷은 말은 가짜라고 해도 천재검에 욕심이 났는지 눈동자를 굴려서 종이에 적힌 글을 바라보았다.
“!!”
종이를 보자마자 네이드와 날깐이가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몇 초 차이로 느억이가 입을 벌리고, 띠알렌은 여전히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다가 대충 눈치껏 놀란 척을 했다.
‘네이드와 날깐이는 거의 같은 수준. 느억이는 그들보다 한 수 아래, 상급의 벽에 막혀있군. 띠알렌은 딱 완숙한 하급이야.’
아무 페이지나 뜯어 준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검술과 가장 비슷한 구결이 담긴 부분을 주었기에 관심을 거두려야 거둘 수가 없을 거다.
네이드는 영역 싸움만 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행히 내 예상이 맞았는지 그는 나조차 잊고 종이에 빠져들었다.
느억이와 띠알렌이 본 페이지는 검술보다는 발을 움직이는 구결이 적혀있었다. 내가 정보요원한테 관찰한, 유령 같은 몸놀림과 비슷하면서도 그것보다 훨씬 고급의 무리가 적혀있는 부분이었다.
“종이하고 펜.”
나는 선임 정보요원, 찰리에게 말했다. 찰리가 뒤로 손짓하자 하급자가 빠르게 품 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내게 건냈다. 나는 종이를 받자마자 바로 무언가를 써내려갔다.
사각사각!
휘이잉!
냉한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의 왕성. 사인은 추위도 잊고 몇 시간이나 구결에 집중했다.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중했는지, 산허리 위로 서서히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고 있었다.
‘아침인가?’
나는 사십여 장쯤 되는 종이에 적을 걸 써내려가다가 햇빛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스트랜돌은 멀쩡하지만, 정보요원이 추위에 떨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춥다.”
나는 추위에 고통받는 정보요원에게 말했다. 그들이 사인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스트랜돌도 머뭇거리더니 정보요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나는 왕성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는 이들을 보고 생각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갈 걸 그랬네.’
찰리 이 새끼. 일찍 끝난다더니 몇 시간이나 시간을 끌고 있잖아. 다 죽이고 갈 걸 그랬어.’
사실 이건 내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천재검법에서 페이지를 뜯고, 그들에게 주자마자 떠날 수도 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놈의 사악한 함정 천재검은 단 한 페이지만 익혀도 익스퍼트 몇 명을 죽일만 한 독을 품고 있기에 함정을 제거한 완성본을 따로 주어야 한다.
내가 정신없이 적고 있는 것들. 그게 바로 사인에게 준, 세 장의 종이에 적힌 함정 천재검 구결의 보완본이었다. 그들이 몰아(沒我)에서 깨어나 구결에 적힌 대로 따라하다가 피를 토하고 죽기 전에 이걸 줘야 한다.
나는 왕성 입구에 서서 사인을 예의주시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내 탓인 것 같지만, 여하튼 내 탓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마음먹고 열심히 글을 쓰며 찰리를 발로 찼다.
049. 욕심의 끝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