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Lives Eight Lives RAW novel - Chapter 90
090
*****
“끄으윽······!”
“이게 실망인데.”
나는 화장실에 갔다 온, 진짜배기 흑마법사를 보고 혀를 찼다.
흑마법사의 전투능력이 내 추정치보다 한참을 밑돌았다. 마법 실력은 션이 만난 정식 흑마법사와 엇비슷한데, 막상 실전에 들어서면 능력을 반도 발휘하지 못한다.
이 진짜배기 놈의 실력은 한심 그 자체였다. 어떻게 된 게 문을 열고 부하들이 쓰러진 걸 봤으면 방어마법부터 쓰거나 소리를 질러야지, 기겁해서 부하들에게 달려가냐······.
천장에 찰싹 달라붙어서 대비하던 내 한 수를 헛된 짓거리로 만드는, 어리석으면서도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이거나, 애초에 연구원으로만 살다 보니 발생한 부작용이었다.
“어? 나 때는 말이야. 너 정도 되는 애들한테 잠깐만 시간을 주면 저주에 방어에, 노예들한테 정신지배 걸어서 자살공격까지 시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진짜배기 흑마법사가 무어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그자의 양손, 양발가락, 팔꿈치와 무릎, 어깨와 고관절을 몽땅 꺾었고, 척추와 목에 바늘을 박아 전신마비로 만들었기에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명치와 하복부를 포함한 전신에도 성력을 투입한 바늘을 박아서 흑마법도 쓰지 못한다. 죽이는 게 제일 편한데, 진짜배기쯤 되면 생명력 연동까지 썼을 가능성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살려두었다.
나는 진짜배기 흑마법사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코라다! 이 씹새끼야!”
코라 라는 이름의 진짜배기 흑마법사가 소리를 왁! 질렀다. 이제 와서라도 동료를 부를 심산인가 본데, 이미 초능력으로 소리를 차단했단다.
순순히 대답할 생각은 없나 보다. 나는 코라를 무시하고 관제실을 둘러보았다. 패널 중간 중간에 마력석이 박혀있고, 마력석을 통해 연구소의 방어 시스템을 제어하는 듯했다.
‘어디부터 시작할까······. 마력석을 모조리 뽑으면 되나?’
흑마법사의 음산한 성격을 고려하면, 마력석을 우악스럽게 뽑으면 내가 모르는 자폭 시퀀스가 발동할 수 있다. 나는 여러 색깔의 버튼을 살펴보았다.
악의 조직에 두 번이나 몸을 담은 내 경험으로 살펴보면, 보통 빨간색 버튼이 나쁜 거고 초록색 버튼이 좋은 거다. 나는 초록색 버튼에 손바닥을 올렸다.
버튼을 누르기 전, 고개를 돌려 코라와 눈을 마주쳤다.
“코라. 연구소를 탈출하려 하는데, 협력해주지 않으련? 이걸 누르면 되나?”
코라가 나를 비웃었다.
“어디 한 번 눌러봐라. 병신 실험체가!”
“그러지 말고.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서로 빨리빨리 끝내자고.”
“큭! 네가 어떻게 성력을 각성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얌전히 포기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웨일 일칠칠삼.”
“···나 그 이름 정말 안 좋아해.”
“뭐. 웨일 일칠칠삼? 어미어비도 없이, 샬레에서 탄생한 장난감 따위가······!”
얘는 내 역린을 건드렸다. 좋게좋게 협력하면 고통 없이 보내주려고 했는데, 꼴에 흑마법사라고 마지막까지 악을 지르네.
“너 따위는 우리······!”
듣기 싫다. 나는 초능력으로 코라의 입을 막았다. 그런 뒤 죽은 하급 흑마법사의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단검 날이 날카로운 걸 확인하며 코라에게 한 걸음씩 걸어갔다.
스윽······.
인생, 어디든 배우면 쓸 데가 있나니. 드디어 51번이 ‘직접’ 경험하고, 쉰둘과 션이 발전시킨 고문을 실전에 쓸 때가 왔다. 나는 코라의 손가락에 단검을 들이대었다.
“아무래도 솔직해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동의하지?”
코라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읍! 으읍! 으으읍!” 코라도 동의했다.
성력의 좋은 점은 굳이 성력을 좋은 쪽에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성력은 여러모로 유용했고, 그 유용함은 고문에도 통용되었다.
“읍읍!!
“좀 아플 거야. 죽지는 않을 테니깐 안심해도 좋아.”
“흐읍!!”
“도와줄 생각이 있으면 왼쪽 눈을 세 번 깜빡여.”
코라가 왼쪽 눈을 마구 깜빡였다. 나는 코라의 눈알을 뽑아서, 피가 묻은 눈알을 그에게 먹여주었다. 피를 많이 흘릴 테니 이렇게라도 수분을 섭취하라는 배려였다.
“지금 말고, 한 5분 후에 물어볼 테니까. 그때까진 참으라고.”
코라에게 필요한 것을 뽑아낼 때까지 7분이 걸렸다.
*****
“오? 이제 시작했네?”
모니터를 통해 실험체의 반란을 확인한다. 르데앙을 필두로 백 명이 넘는 실험체가 일사불란하게 복도로 뛰쳐나왔다.
하나하나가 최소 스칼라 하급에 들어선 180명의 실험체들. 살아남은 소수의 용병이 그들에게 맞섰지만, 매일같이 몬스터와 싸우며 실전을 겪은 실험체를 이기는 건 무리였다.
탈출을 시도하는 실험체중, 단연코 돋보이는 이들은 알파인 르데앙과 베타급 실험체들이었다. 특히나 익스퍼트에 들어선 르데앙은 마치 양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와도 같았다.
슈욱!
용병들이 복도의 갈림길을 막고 석궁을 날렸다. 뒤에선 단검이나 독이 묻은 마름쇠 따위를 던져댔다.
르데앙이 가볍게 철창 검을 그었다. 오러는 나오지 않지만, 섬뜩한 검풍이 발사되어 단검과 마름쇠를 으스러뜨렸다.
검풍에 걸린 용병들도 차에 치인 것처럼 팔다리가 부러져서 멀리 날아갔다.
전열이 무너진 용병들 사이를 라코아가 뛰어들었다. 좁은 복도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는 듯이, 길쭉한 철창 검을 신랄하게 휘두르는 그였다.
무지막지한 근력에 선천적인 강화능력까지 더해지자 철창 검은 격벽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거기에 걸린 용병들의 육체는 종잇장보다 못했다.
라코아가 지나가는 길마다 피가 범람했다.
라코아와 비교하면 르데앙은 비교적 얌전했다. 르데앙이 얇은 세검을 휘두르면 누군가가 급소가 베였다.
르데앙의 손속은 효율적이면서도 잔인했는데, 즉사가 아니라 전투를 불가능하게 근육과 인대를 끊으면서도 과다출혈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처를 용병에게 남겼다.
용병은 사지가 불타는 듯한 고통과 과다출혈 속에서 죽어갔다. 비틀거리는 그의 위로,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수십 명의 실험체가 덮쳤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
살육을 반복한 끝에 마주친 몇 개의 갈림길. 르데앙이 흰옷을 꺼내 열 조각으로 잘랐다. 흰옷에는 내 피로 그려진 연구소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들이 몇 명의 베타급 실험체를 앞세우며,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일부는 몬스터와 싸우는 곳으로 가서 무기를 챙기고, 일부는 몇 명 남은 용병들의 정리와 연구소 기능을 망가뜨리러, 도주에 필요한 물품을 챙기러 떠나는 것이다.
문이 열리고 겨우 1분. 실험체는 반란이 처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행동을 개시했다.
“너희도 이제야 움직이는 군.”
이상현상을 감지하고 깨어난 진짜배기 흑마법사들이 황급히 몇 무리로 갈라져서 일부는 실험체에게, 일부는 관제실로 오는 게 포착되었다.
나는 모니터를 보며 패널을 조작했다.
“코라? 포이즌 포그가 어느 버튼이었지?”
“헤으으··· 헤흐허으어응······.”
코라는 안면 근육과 혓바닥이 끊어져서 말을 못 하지. 나도 참, 덜렁이라니까. 미안 코라, 내가 지금 바빠서 할 일부터 하고 좀 있다 죽여줄게.
푸슉!
버튼을 누르자 격벽이 내려오고, 진짜배기 흑마법사들이 복도에 고립되었다. 나는 빠르게 버튼을 조작하여 포이즌 포그를 비롯한 방어 마법을 발동시켰다.
쭈우욱!
패널에 박힌 마력석에서 마나가 뽑혀나오고, 진짜배기 들을 비추는 감시용 모니터가 보랏빛 안개로 가득 찼다. 몇 번 화염이 터지고, 우지끈! 하고 부러지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여기. 그리고 또 여기.”
꾹! 꾸욱! 꾹!
나는 피아노를 치듯이 패널을 조작하여 진짜배기 흑마법사의 전력을 줄이고, 실험체들이 유리하게 전황을 조작했다.
삑! 삑!
모니터를 건드려서 실험체들이 있는 부분은 검은색으로, 진짜배기가 있는 곳은 밝게 빛나게 한다. 몇 개의 버튼을 누른 뒤, 마지막으로 아까 내가 누르려고 했던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칙-!
옅은 초록색의 연기가 화장실 자동 탈취제가 뿌려지듯이 뿌려졌다. 여태까지의 방해에도 살아남은 진짜배기 흑마법사들이 초록색 연기를 보자마자 사색이 되었다.
그들이 마법을 쓰는 것도 잊고 발광하며 닫힌 격벽을 손톱으로 마구 긁었다. 어찌나 강하게 긁는지 손톱이 뽑히고, 금속 격벽에도 흔적이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격벽이 뚫릴 리 없고, 결국 옅은 초록색의 연기가 흑마법사의 몸에 닿았다.
뿌득! 빠드득!
그리고··· 흑마법사의 몸이 익사체처럼 퉁퉁 부풀었다. 그들의 피부가 초록색으로 물들고, 입에선 검초록색의 연기를 내뿜었다.
시체와 살덩어리를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발견한 마력시독(魔力屍毒). 마력을, 특히 흑마력을 흡수하여 세를 불리는 마법사의 천적과도 같은 독이다.
동료도 믿지 않는 미친 흑마법사 새끼들은 하급자의 반란, 배신, 다른 흑마법사 일파에게 붙는 것을 경계하여 자기들마저 죽이는 함정을 만든 것이다.
그 함정 발동에 필요한 게 코라와 같은 당직사관(?)의 지문과 마력, 피였다. 나는 셋 다 있다. 쓸 마음도 만만이었다.
“하하!” 나는 흑마법사가 죽는 장면을 보곤 통쾌함을 참지 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버튼 몇 개에 최소 10년이 넘게 마법을 연구한 흑마법의 달인이 피를 토하고, 전력이 깎여나가는 광경은 유쾌, 상쾌, 통쾌의 삼박자를 고루 만족하게 했다.
그러는 와중에 르데앙과 라코아가 이끄는 실험체 무리가 전투실에 들어갔다. 그들이 빠르게 가죽 갑옷을 입고 무기를 챙겼다. 그런 뒤, 한 사람당 몇 개가 넘는 무기를 등에 메었다.
“!!”
르데앙이 어디론가 손가락질하며 무리를 분산시켰다. 내 전생을 통틀어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미인이 전투복을 입고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르데앙이 전투실을 빠져나가기 직전, 감시 카메라(가칭)을 보고 복잡하게 수화를 했다. 나는 수화를 해석하고 코라에게 물었다.
“코라. 이 씨씨티··· 감시··· 이거 이름이 뭐야? 여하튼 이거 빛내는 방법이 뭐라고?”
코라는 성력 주입을 받지 못하자 과다출혈로 기절했다. 요새 젊은 것들은 피 세 바가지 쏟는 것도 못 버텨서 기절이나 하고······. 나는 전생의 적수였던 흑마법사가 이따위 샌님이나 되자 못마땅해서 혀를 끌끌 찼다.
“이거였나?”
구석 부분에 있는 자그마한 키패드를 누르자 르데앙의 몸이 반짝 빛이 났다. 감시 카메라에서 빛이 나온 것이다. 나는 버튼을 조작하여 빛을 통해 모스부호를 만들었다.
르데앙은 모스부호를 해석하고는 빠르게 전투실을 벗어났다. 만일의 만일의 만일의 만일을 대비한다. 우리의 대비는 주로 수신호였다.
빛, 움직임, 소리, 행동, 손가락 하나부터 다섯 개까지, 눈 깜빡임, 목소리의 높낮이, 땅을 두드리는 행위 등등······.
르데앙과 내가 10년간 만든 수신호만 수십 개가 넘는다. 물론, 대부분 내가 알려준 것이다. 이래서 어느 일이든 경력자가 우대받는다.
‘여기까지는 작전대로야. 마지막까지 다 잘 되겠지?’
감시 카메라에서 사라지는 르데앙을 보고, 내 가슴도 오랜만에 두근거렸다. 정말 이대로 탈출할 수 있을까? 아니, 붙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대장급 흑마법사가 사라진 그 순간부터 탈출은 성공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그리고 이변을 깨닫고 소중한 실험체를 되찾으려 하는 흑마법사들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문제였다.
즉, 정보다. 정보가 필요하다.
현재 이 연구소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 근처에 있는 왕국은? 협력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용병들이 흑마법사 편에 붙은 걸 보면, 권력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권력자 중 배신자는 또 누구이고, 누구를 경계해야 하는가.
더불어, 지금은 시대 상황이 어떠한가. 내가, 션이 죽은 지 몇 년이 지났고 몬스터 대란과 성벽시대는 얼마만큼 진압되었나.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렇기에 무기, 음식, 숙박용품, 거기에 실험체를 탄생시키는 데 사용된 흑마법적 지식과 그 수단, 인근 지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실험체를 쪼갠 것이다.
어디에 필요한 게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신도 아니고 방을 뚫고 다 살펴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대신 건축 형태를 보고, 그나마 중요한 게 있으리라 생각되는 방에 따로 표시를 해두었다.
“빙고.”
나는 감시 카메라 한 곳에 불이 들어오는 걸 보고 미소 지었다. 허가받지 않고 문이 열리자 작동된 감시 카메라가 실험체 몇 명이 들어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방 안은 서류 더미가 한가득 쌓여있다. 실험체들이 서류를 한아름 챙겼다. 몇 초가 지나자 다른 모니터가 켜지고 실험체가 또 들어와서 책과 서류를, 또 다른 모니터에는 식량과 모포 등을 챙기는 게 연달아 보였다.
이 정도면 되었다. 다들 입구는 안다. 나는 흑마법사의 품에서 단검과 소검을 챙기곤 빠르게 관제실을 벗어났다. 코라는 죽어있었다.
“크악!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복도를 뛰어가는 와중, 덩치가 2미터는 넘는 우람한 용병이 도끼질로 격벽을 부수고 돌진해오는 게 보였다.
용병단의 대장이었던 사내로 이 연구소의 유일한 스칼라 상급이었다. 생명력 흡수 마법진 덕분에 젊음을 되찾고, 신체능력도 크게 향상되어서 스칼라 중에선 적수가 없는 강함을 자랑하는 이였다.
실제로도 라코아나 르데앙도 그와 싸우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아니, 지금의 르데앙이라면 이길 수도 있었다. 그자가 나를 보고는 양손도끼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곤 쿵쿵쿵! 돌진해왔다.
“너! 너 실험체! 엎드리고 양손 들어라! 안 그러면 죽이겠다!”
말로는 엎드리고 양손 들면 살려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근육의 긴장도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소검을 살포시 쥐고 용병에게 돌진했다.
“이놈이!”
용병이 대뜸 양손도끼를 집어던졌다. 그런 뒤, 허리춤에 달린 스몰 소드를 꺼내서 전면을 크게 베었다. 피할 공간이 거의 없는, 좁은 복도에서는 쓸 만한 전략이었다.
소도와 양손도끼에도 마나의 빛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걸 보면 몇 년 안에 익스퍼트에 들어설 가능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나를 만났으니 가능성은 가능성으로만 끝날 뿐이다. 나는 위로 뛰어서 거미처럼 천장을 기어 양손도끼와 칼질을 피했다.
뒤로 착지해서 뛰쳐 든다. 용병은 침착하게 뒤로 돌며, 팔꿈치 보호대를 이용해서 뒤돌아 치기를 했다. 금속 보호대는 소검으로도 뚫기 힘든 두꺼움을 자랑했다.
서걱!
소검에 생생하게 피어오른 오러가 그의 팔은 물론이고 상체도 깊게 베었다. 용병이 절반이나 베인 상체, 잘린 팔을 어리둥절하며 바라보면서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기 전, 허탈한 말을 내뱉었다.
“이, 익스퍼트······!”
그래. 나 익스퍼트야. 익스퍼트 처음 보냐?
뿌직!
용병의 머리를 밟아 부순다. 이게 내가 할 일이다. 방어 마법 속에서도 살아남은 위험한 실력자를 죽이는 일이 내게 남은 마지막 임무였다.
“크허억!”
가는 길목에 있는 진짜배기 흑마법사 셋을 세로로 쪼게 죽인다. 그들이 쓰는 마법 따위야 션이 지긋지긋하게 봤던 거라서 쉽게 대처할 수 있었다.
꽈앙!
마력석을 구동하여 폭탄처럼 들고 있는 용병 무리를 죽이고, 도망치는 녀석들에게 폭탄을 던진다. 연구소가 무너질 것처럼 크게 뒤흔들리고 갈라진 천장 사이로 돌가루가 떨어졌다.
연구소는 지하, 또는 산 밑에 파묻혀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나는 죽은 용병들의 품을 뒤져서 마력석을 몇 개 더 챙겨서 중요한 지점에 박았다.
섬세하게 마나를 운용하여 약 5분 후에 터지게 조작한다. 그 전에 탈출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피로 물든 복도를 지나서 입구에 도달했다.
“웨일!”
“살아있었군!”
입구에는 180명의 실험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전신이 피투성이. 자신의 피는 아니다. 10년 넘게 기다려온 그들의 복수심은 죽은 이들도 가리지 않았다.
화악!
실험체가 길을 비키자 찬 바람이 세차게 밀려 들어왔다. 겨울인가? 나는 실험체들을 지나서, 무언가 서류 무더기를 바라보는 르데앙에게 다가갔다.
르데앙이 나를 보자마자 말도 없이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 서류야말로 우리들의 근본, 실험체를 탄생시킨 ‘부모’들의 인적사항과 개괄적인 실험 개요가 적혀있었다.
‘어디보자······.’
부모는 대부분 흑마법사에게 납치당해 죽었지만, 극히 일부의 실력자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흑마법사는 그들을 죽이기보다는 기회를 노려서 피나 살점을 얻고 퇴각하는 방식으로 세포를 얻었다.
그렇게 얻은 세포를 초기줄기세포로 변화시킨 후, 악신의 뼈에 배양하여 특이점을 획득한다.
변이 특이점 획득 세포끼리 결합하여 다배체 유전체를 가진 1세대 복합 생명체를 만들고······.
파라락!
나는 꼼꼼히 실험기록을 살피다가 한 지점에서 눈을 멈췄다. 믿을 수 없는 글자가 실험기록에 나와 있었다.
내가 경악해서 소리 질렀다.
“션? 션이 여기 왜 나와!?”
실험체를 만든 수많은 세포 공여자들. 그들 이름의 제일 위에, 당당하게 ‘성자 션’의 이름이 쓰여 있던 것이다.
‘허··· 여기서 악마 프로젝트 시즌 2를 찍네?’
나는 허탈한 눈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눈 덮인 산과 멀리 보이는 얼어붙은 바다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환경과 계절까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한 번 꼬이니 끝이 없이 꼬이는 개 같은 인생이었다.
후욱!
한숨을 내쉬자 흰색 입김이 뭉게뭉게 올라온다. 나는 르데앙이 덮여주는 잠바를 걸치며 고민에 빠졌다.
이제 어디로 도망가지?
091. 인간은 섹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