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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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노[侵]
응접실은 단아하게 꾸며져 있었다. 큰 원목 탁자가 방 안 가운데에 있고, 뒤에는 꽃과 산이 그려진 병풍이 놓여있었다.
병풍 옆의 화분에는 작은 대나무 세 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파릇파릇하게 줄기가 올라 마디마디에서 가지가 힘차게 솟아있고 잎은 칼처럼 뾰족한 것이 학의 갈라진 발가락처럼 당차게 매달려 있었다.
꽃이나 식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호인이라 할지라도 대나무만큼은 그들의 심성을 오롯이 표현한 단 하나의 매개체였다. 방 안은 대나무 하나로 녹음이 진 듯 푸르렀다.
이소호칸은 탁자에 앉아 장원을 관리하는 호인을 불러 차를 부탁했다. 잠시 기다리니 흐릿한 인영이 문 앞에 아른거렸다.
“백모의 아버지시여, 강제의 사신께서 오셨습니다.”
이소호칸은 표정을 살짝 구겼으나 일어나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들라 하시게나.”
방문이 좌우로 열리며 햇살과 함께 검정색 털 갈기를 가진 두 호인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중 한 호인의 모습에 이소호칸의 안색이 좋아져 기쁘게 웃으며 맞았다.
“오오, 흑모 지파의 카츠루기 아닌가, 이게 얼마만인가. 자네 부친인 슴베 어르신은 문안하신가?”
“오래간만에 뵙겠습니다, 이소호칸 어르신.”
무늬 없이 검정 갈기를 가진 자가 권상의 예를 취했다.
윤기 있는 흑발의 털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호박색의 빛나는 눈동자에는 온화한 빛이 감돌아 푸근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소호칸이 권상의 예를 맞받아 갖추기도 전에 옆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옛날이야기나 하자고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카츠루기. 어디 죽지 않고 잘 지내셨소? 백모의 대족장.”
날카로운 인상의 호인 하나가 카츠루기 뒤에서 능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소호칸이 꺼려 마지않는 노비츠였다. 그는 카츠루기와 달리 얼굴에 노란색 줄무늬가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흑모 지파에서도 상당히 드물게 나오는 형태였으며 강제의 무늬와 비슷하여 강제가 그를 특히 아꼈다.
“어서 오시오, 노비츠. 이 노인은 아직 죽을 날이 급히 오지 않은 듯하여 열심히 백모 지파를 이끌고 있소.”
이소호칸은 최대한 딱딱한 어투로 답했다. 카츠루기에 비해서라면 노비츠에게 대하는 말투는 말라 갈라진 땅과 같았다.
카츠루기는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이소호칸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아버지께서도 이소호칸 어르신께 안부를 전해달라 말씀하셨습니다. 부친은 잘 지내시며 언제 흑모 지파에 방문하신다면 옛날이야기를 하며 술 한잔하자 하시니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네. 장성한 자네를 보니 슴베 어르신이 늘 자랑하실 것만 같군. 자, 자, 앉으시지요.”
이소호칸은 손을 들어 두 의자를 빼두었다.
노비츠는 심기가 불편한 듯 킁킁거렸으나, 카츠루기가 옆에서 그를 최대한 절제하게 만들었으므로 더 이상의 독설은 없었다.
“길게 말하지 않겠소. 강제께 보낼 예물을 받으러 왔소.”
자리에 앉자마자 노비츠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는 한 지파의 대족장에게 취하는 예의에 어긋난 것이었다.
카츠루기도 노비츠의 그런 갑작스러움에 약간 당황했는지 당장 말을 잇지 못하고 눈치를 살폈다.
이소호칸의 눈썹이 좌우로 살짝 떨렸지만 평정을 잃지 않았다.
만일 이 자리에 노비츠 한 사람만 있었다면 그를 죽여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전 흑모 지파의 대족장 슴베의 아들인 카츠루기까지 와있었다. 그의 존재로 이소호칸은 노기를 간신히 잠재울 수 있었다.
본래 강제께 보내는 예물은 사신을 보내어 가져가기도 했으나 그 의미는 그 지파가 강제에게 예물을 제대로 바치려 하지 않을 때나 해당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노비츠가 왔다고 들었을 때부터 이소호칸은 이 녀석이 예물에 대해 딴죽을 걸 것이란 것을 예상했다.
“하나 예물은 저희 쪽에서 준비하여 강제께 보내드리는 것이 순번 아닙니까?”
예상하고는 있었으나 자신의 자존심마저 꺾으면서까지 고개를 숙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소호칸은 노비츠에게 자신을 시험하고자 하는 것인지 넌지시 물었다.
“아니, 아닙니다. 노비츠 공께서 여로가 피곤하여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리 급하게 말한 듯합니다. 저희가 온 것은 분명 예물을 헌상받아 오려는 목적도 있지만, 이번에 죽은 각 지파의 호인들을 강제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은록에 올려 주시고자 각지에 사신을 파견하신 것입니다. 이미 백모 지파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파에도 모두 사신이 갔습니다.”
노비츠는 카츠루기가 끼어들자 언짢은 듯했으나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닌 듯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이소호칸은 고개를 끄떡거리며 그의 말을 듣고는 밖에 있는 시녀를 불러 자신이 작성한 강제께 드릴 상소문을 가져오라 말했다.
시녀는 한달음에 달려가 상소문을 가져왔다.
“내 미리 강제께 드리기 위해 상소문을 작성했소이다. 사신께서 직접 강제께 전해 주신다면 감사하기 이를 데가 없겠소.”
이소호칸이 서찰을 내밀자 노비츠는 꼼짝도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카츠루기가 빨리 그 서찰을 집어 품속에 넣었다.
하지만 그가 서찰을 받자 노비츠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츠루기도 이소호칸도 그런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발칙해 놀랐다.
“자, 그럼 서찰을 받았으니 대족장 어른께서 준비한 예물을 보러 갑시다. 예물의 수준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소이다.”
아무리 강제의 신임을 받는 노비츠라도 지파의 대족장에게 이런 식으로 홀대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였다.
보다 못한 카츠루기가 따라 일어나 노호했다. 그의 고요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노비츠 공! 아무리 그래도 어른께 실례가 되지 않소!”
하지만 카츠루기는 노비츠보다 명백히 서열이 낮은 자였다. 카츠루기가 분기에 저리 행동하면 후에 노비츠에게서 어떻게든 피해가 올 것이 자명했다.
이소호칸은 그 둘이 더 심각한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카츠루기를 막아섰다.
“자, 자, 알겠소. 노비츠 공, 바로 예물을 보여 드리리다. 하지만 나도 대족장 지위에 있는 몸이오. 공께서 나를 계속 능멸코자 한다면 내 발톱과 이빨은 더 이상의 자비를 보일 수 없을 것이외다.”
“킁, 내가 백모 지파 어른을 왜 능멸하겠소. 난 단지 강제께 빨리 예물을 드릴 생각밖에 하지 못했을 뿐이오.”
“강제께서 노비츠 공을 아끼는 이유가 그런 곳에 있으리라 봅니다. 예물을 보고 백모 지파가 아끼는 명주를 한잔 대접해 드리리다.”
이소호칸은 최대한 노비츠의 비위를 맞추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녀석이지만, 이번에도 강제를 걸고 넘어지며 잘도 빠져나갔다.
“좋소, 대족장 어른. 그 명주를 기대하도록 하겠소. 그리고 카츠루기, 자네가 나에게 언사를 높인 것은 내 기억해 두겠네.”
노비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카츠루기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하지만 이소호칸이 먼저 나서서 중재를 해준 마당에 노비츠와 더 언사를 높일 수는 없었다.
“이소호칸 어르신은 너무 인성이 좋으십니다. 아마 다른 자였으면 저 가증스러운 입을 찢어버려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나라고 안 그렇겠는가. 다 자네 얼굴을 봐서 참는 것이지.”
카츠루기가 멀리 떨어진 노비츠의 뒷모습을 보며 속삭였고, 이소호칸이 그런 카츠루기를 보며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희 부친이신 슴베께서 저자가 이소호칸 어른을 뵈러 사신을 청한다 할 때 서둘러 저를 같이 대동케 했습니다. 제 부친께도 싹수없게 굴기를 서슴지 않는 자여서 도저히 같이 장단을 맞춰줄 수 없었습니다. 저런 자가 어찌 어질고 강하신 강제의 신임을 얻었는지 의문입니다.”
“뭐, 그건 나도 의문이라네. 나도 자네가 없었다면 저자를 단번에 이승에서 하직시켜 버렸겠지. 슴베 어른께서 확실히 안목이 있으시구먼. 자네를 보냈으니 말일세. 자, 분기를 낮추고 빨리 저자를 따라잡도록 하세. 안 그러면 또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르네.”
이소호칸이 말을 마치고 노비츠를 따라나서자 카츠루기 또한 어쩔 수 없이 발을 움직였다.
노비츠를 바라보는 두 호인의 표정은 똥을 씹은 것만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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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