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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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검단성[城]
“기름을 부어라! 돌을 쏟아부어라! 화살을 쏘아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검단성을 사수하라! 돌이 떨어지면 성 내부의 집을 부수어 그것을 던져 저들을 막아라! 어떻게든지 저들이 이 위로 올라서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곽권준은 목이 찢어지게 목청을 높였다. 그 목소리에 병사들이 기운을 받아 활을 재기 시작했다. 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화살들이 성벽 위로 올라오려는 호인들에게 쇄도했다.
호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엔 성을 오르고자 작정한 듯했다.
검단성의 저항은 매우 거세었으나 희생을 감수하고 성을 오르는 호인의 돌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허를 찌르는 빠른 기습이었기에 대처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오십이 안 되는 호인 병사들이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성벽 위로 첫 번째 호인이 발을 디뎠다.
젖은 흰색 무명천을 던져버린 그자는 어깨와 등에 화살이 여섯 대는 박혀있었다. 인간이라면 화살을 여섯 대를 맞고서 전투를 속행할 수 없을 터였다.
그 호인은 바로 적색 갈기를 휘날리며 성벽 위의 궁수들에게 달려갔다.
단 1기였다. 호인 하나가 성벽 위에 올라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전황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호인은 발톱을 세워 근처 궁사 셋의 팔다리를 찢더니 바로 허리춤에서 도를 빼어 들어 다섯을 양단했다.
반 각도 안 되는 시간에 여덟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린 돌바닥에 쓰러졌다. 단숨에 기세가 떨어진 궁사들은 뒷걸음질을 치며 호인에게서 멀어졌다.
그렇게 성벽 위에 공간이 생기자 호인이 하나둘 성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들이 서있는 공간마다 병력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호인들은 주위를 경계하며 동료들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충분히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무엇들 하는 것이냐!”
곽권준이 병사들 머리 위로 뛰어오르며 외쳤다. 성벽을 방어해야 하는 수비군이 적의 기세에 압도되어 적들이 설 곳을 내주고 있었다.
“이대로 여길 내준다면 너희뿐만이 아니라 성안의 모든 백성들, 그리고 유단 평야까지도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호인들 앞으로 착지하여 검을 빼어 든 곽권준은 스스로가 본을 보여주기 위해 적에게 달려들었다.
통제사가 직접 뛰어들어 사기를 고양시키자 병사들도 조금씩 공포감에서 해방되기 시작했다.
“권보(權保)! 권중(權中)! 뒤쳐지지 말고 병사를 지휘하라!”
곽권준은 신임하는 천부장 둘의 이름을 외치며 검을 내질렀다.
호인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품으로 찔러 들어오는 검을 내쳤다.
“내 나이가 있지만 아직 호인 열댓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오른손에 쥔 검의 궤도가 크게 틀어졌지만 곽권준은 몸을 비틀어 회전하며 왼손을 휘둘렀다.
호인은 연계되어 온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단지 상체를 젖히는 동작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는 큰 오산이었다. 곽권준이 시도한 공격은 베거나 찌르는 연계가 아니었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컥!”
단말마의 비명이 흐르며 거체가 흔들렸다. 호인은 서둘러 도를 휘둘렀지만 곽권준은 이미 호인의 간격을 벗어난 후였다.
그 휘두름을 마지막으로 도가 다시 휘둘러지는 일은 없었다. 도를 놓지는 않았으나 무릎이 꺾이며 꿇어앉게 된 것이었다.
호인은 도를 쥔 반대쪽 손으로 목을 더듬었다. 적색 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울대에 짧은 검병이 꽂혀있는 것이 슬쩍 보였다.
곽권준이 던진 단검이 적 호인의 목을 정확하게 맞힌 것이었다. 제아무리 공포에 가까운 힘과 두꺼운 가죽이 있다 해도 치명적인 부분에 공격을 가한다면 무력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곽권준은 바로 다음 호인에게 달려들었다. 병사들은 호인 하나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환호하며 활을 내던지고 창을 쥐어 호인들을 압박했다.
품에 있는 단도는 다섯. 다소 정정당당하게 싸운 것이 아닌 결투 중 암기를 사용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곽권준은 개의치 않았다.
이렇게라도 싸우지 않는다면, 이렇게라도 비겁해지지 않는다면 호인을 상대함에 있어 결코 우위를 점하지 못할 터였다.
다음 호인은 한쪽 눈에 정확히 단도를 맞히고 틈이 벌어진 순간 다리를 베어 넘어트렸다. 그 순간에도 호인은 빠르게 자세를 추스르고 반격을 가했는데 자칫 잘못하면 곽권준의 팔이 달아날 뻔했다.
하루 종일 성벽 주위를 배회하며 10만의 화살 비를 피해내고 성벽을 올라와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임이 분명한 데에도 그들의 공격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이것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목숨이 백 개가 있어도 모자를 터!’
곽권준은 흰털이 드문드문 섞인 눈썹을 구부리며 생각했다.
“물러나십시오! 통제사님!”
목소리가 들리자 곽권준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 번째 호인을 피해내면서 허리를 숙였다. 그러곤 호인의 뒤로 돌아섰다.
쉬쉭!
화살 수십 발이 호인에게 꽂혔다. 방비를 한다고 얼굴과 상체를 두 손으로 가렸으나 화살이 전면에 빼곡하게 꽂히는 바람에 그자는 큰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가 아닌 근거리에서 집중해서 맞은 화살. 그 타격에 이어서 곽권준은 호인의 등에 올라타 목에 검을 박아 넣었다.
갸우뚱, 붉은 핏줄기가 솟구치며 거대한 몸이 쓰러졌다.
“진영을 정비했습니다. 곽권준 장군님, 병사 뒤로 오셔서 대열을 지휘해 주십시오.”
권보와 권중이었다. 곽권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긴 창을 든 병사들이 앞에 서있었다. 그 뒤로 궁병들이 화살을 겨누어 방금 곽권준이 무기력하게 만든 호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서둘러라! 화살을 전부 쏟아부어도 좋다! 어떻게든 버텨라! 올라오는 적의 병력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지하라!”
곽권준은 병사들 틈으로 돌아서며 외쳤다. 흐트러진 사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이 보였기에 자신은 이제 지휘로 돌아서야 했다.
슬쩍 뒤를 돌아 끊임없이 올라오는 호인들을 보며 곽권준은 이를 갈았다.
지금부터는 서로 간의 인내의 싸움이었다.
* * *
“항마레 장군님, 성벽 위로 몇 명이 올라섰으나 성벽을 점거하지는 못한 듯싶습니다.”
“적들이 대열을 다시 정비했습니다. 이제 더욱 저항을 강하게 할 듯합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말에 항마레는 고개를 흔들며 눈을 부라렸다.
항마레는 먼저 올라간 자들의 소식을 듣고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성벽 위에 두 다리로 섰음에도 적을 처리 못하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
“적의 저항이 예상외로 강합니다. 또한 적의 지휘관이 직접 달려와 전세를 바꿔놓은 듯합니다. 인간 쪽에도 상당히 강한 전사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항마레는 침을 퉤 뱉으며 노기를 뿜어냈다.
“인간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느냐! 오십이나 잃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하지만 이제 모든 공격이 이쪽으로 집중될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봉으로서 후퇴는 용납하지 못한다! 이렇게 된 이상… 성벽 위를 점거하는 것은 포기한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벽을 넘어가 성 내부를 유린한다! 내부로 진입하면 적의 화살이나 돌무더기는 무용지물이 될 터. 내부를 공격하여 적을 혼란으로 치닫게 만들고 성문을 열면 후위대가 바로 진입할 것이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다. 이후부터는 내가 진두지휘하겠다.”
항마레는 그렇게 말하고 직접 성벽으로 다가가 발톱을 세웠다.
“모두 성벽을 타고 나를 따라 성벽을 넘어라! 성벽 위에서 적과 싸우지 마라! 그대로 성안으로 타고 들어가라!”
자신들의 지휘관이 직접 성벽을 오르자 성벽을 타고 있던 부하들도 아직 벽을 오르지 않던 병력들도 힘을 얻었다.
“철저히 유린하라! 이 성을 점령하여 선봉의 업을 세우리라!”
항마레의 기나긴 울음소리가 어둠이 서리고 있는 성벽 가득히 울려 퍼졌다.
* * *
“적이 계속 올라옵니다.”
보고를 받은 곽권준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진정 저들은 포기를 모르는 건가? 이제 저곳을 집중적으로 방어하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할진대? 몇몇이 성 위로 올라온다 하더라도 아까와는 달리 병사들이 방어를 잘해낼 터. 오늘 내로 성벽을 공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 정도면 알아야 하지 않은가?”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곽권준은 손가락으로 미간을 긁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호인이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건 정말 흐름을 읽을 줄 모르는 지휘관이로군.”
곽권준은 망루에서 보고를 받으며 적들이 성벽을 공략하기 위해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곽권준이 직접 나서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기에 아까와는 다르게 병사들이 결연하게 호인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제는 접근전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성벽 끝에서 창으로 호인들을 찌르며 그들이 성벽 위로 올라오는 것을 결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성벽에 붙어있던 적의 병력 오십가량이 떨어져 나갔다. 적의 손실은 도합 백여 명. 사백의 군세에서 백 명의 손실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십 분의 일만 다치고 죽어도 사기가 꺾이고 전세가 뒤바뀌는 법. 전체 병력의 사 분의 일이나 성벽 아래로 나자빠졌는데 성벽을 포기하지 않는 적들이 미련하게만 보였다.
이때, 다른 호인들보다 조금 덩치가 더 큰 호인이 병사들의 화살을 날쌔게 피해내고 찔러오는 창을 쥐어 던져 버리면서 성벽 위로 올라섰다.
곽권준은 그자의 몸에서 풍기는 투기로 그가 지휘관 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성벽 위의 수백 병력과 화살을 견뎌내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오산이었다.
한 명의 호인이 병사들을 뚫고 돌진하자 혈풍이 불었다. 번개와도 같은 빠르기로 병사들의 대열을 파헤친 그는 피 안개를 자욱하게 뒤집어쓰고 병사들을 뚫었다.
그 엄청난 기세는 순간적으로 대열을 우왕좌왕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병사들의 벽을 뚫어버리고 지체 없이 반대편 성벽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뭐, 뭣!”
그 말도 안 되는 행동에 곽권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마디 외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성벽이 아니라 직접 성 내부를 공략할 생각을 하다니 인간의 상식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단병접전에 굉장히 강한 족속. 성벽 위에서 창과 화살의 집중 공격을 받느니 성으로 들어와 내부를 휘젓겠다는 전략이 확실했다.
머리가 번뜩 깬 곽권준은 이 상황을 계속 주시할 수는 없었다. 그가 잠시 적의 전략을 생각할 동안 벌써 십여 기가 넘는 적의 병력이 성벽 안쪽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곽권준은 다시 검을 챙기고 성 안쪽으로 들어가며 손을 모아 내부의 병력에게 외쳤다.
“성벽 내부에 종을 쳐서 적의 침입을 알려라! 적어도 이백가량은 성 안쪽으로 들어와서 성문을 열려 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목숨을 걸고 적을 막아라!”
곽권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훌쩍 성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완만하게 안쪽으로 비탈진 경사를 등 갑옷을 타고 내려선 곽권준은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돌리며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서둘러 방진(方陣)을 짜라! 대열을 정비하고 성문을 사수하라!”
곽권준의 외침에 상대적으로 성벽 위보다 여유를 가지고 있던 병사들이 허우적거리면서 자신의 무기를 잡고 전투를 준비했다.
“적들이 성 안쪽까지 내려왔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죽을 각오로 버텨내라!”
병력들이 서둘러 방진을 짜고 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갑자기 비명들이 무섭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곽권준은 서둘러 몸을 돌려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이미 수십의 병사들이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 붉게 하늘 위를 수놓았다.
호인 하나가 입에 병사의 몸통을 문 채 앞으로 나왔다. 하체가 뜯겨져 나가 분홍빛 내장이 화로에 비춰진 빛에 번들거렸다. 팔과 목은 이미 힘을 잃어 대롱대롱 허공에 흔들렸다.
목을 돌려 시체를 바닥에 내팽개친 호인은 허리춤의 거대한 곡도를 꺼내며 포효했다.
“크어어어엉!”
일전 성벽 위에서 언뜻 보았던 적의 대장임이 분명했다. 작게 보였던 형상을 가까이서 보니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가져다주었다. 더군다나 붉게 몸을 피 칠갑한 상태로 병사들 앞으로 성큼 나오니 그만큼 두려운 적이 더 없었다.
병사들은 주춤거렸다. 곽권준이 무언가 병사들을 위해 용기를 북돋을 말을 입으로 내뱉으려던 순간,
살육은 시작되었다.
“끄아아아악!”
“크억!”
단말마를 내지르면서 병사들이 지푸라기처럼 풀썩풀썩 쓰러졌다. 양단된 시체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붉은 핏물이 자욱하게 대기 중에 퍼지면서 땅에 흩어졌다.
그 뒤로 수십의 호인이 따라 달려들었다. 피해는 산발적으로 커졌다. 자그마한 불씨가 큰 업화를 가져오기 마련, 삽시간에 흔들리는 병사들의 의기는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것이었다.
호인 수십이 길을 뚫어나가자 그 뒤로 또 수십의 호인들이 성벽을 넘어 안쪽으로 내려와 바로 전장에 투입되었다.
“방진을 짜서 창으로! 창으로 저지하라!”
목이 찢어져라 외쳤지만 곽권준의 목소리는 병사들에게 닿지 않았다.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용기를 내서 창을 들이미는 일부 병사들도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방진을 짜놓지 못한 상태에선 불길에 돌진하는 나방보다 더 못한 반항이었다.
흩어져서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인간들은 단숨에 호인 무리의 공격을 받고 이승을 하직했다.
곽권준이 앞으로 나서서 대적하려 했으나 워낙 많은 수의 병사들이 자신의 앞을 막으며 우왕좌왕하고 있었기에 쉽게 앞으로 나서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저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오십여 기의 호인들이 성내로 들어와 병사 천여 명을 학살했다.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성벽 위의 궁수들은 내부에서 난전을 하고 있는 호인들에게 화살 한 대 제대로 날릴 수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아군이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피해는 더욱 커져만 갔다. 성 안쪽으로 내려간 호인들은 수가 이제 백이 넘었고 혼란스러움이 가중되어 성벽 위 또한 호인들이 올라서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