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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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방어[守]
“궁사는 성 내부도 사격하라!”
천부장 권중이 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그의 입술에서는 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아군의 희생이 크더라도 지금 성 내부의 호인들의 발길을 세우지 않는다면 필시 성은 적의 손아귀에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
아군이 피해를 입더라도 저들의 돌진을 멈추고 방진을 짤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권중의 말을 필두로 권보 또한 궁사들에게 내부의 호인들을 쏘라는 지시를 했다. 그들의 지시는 곧 아군을 쏘라는 말과 같았다.
해가 저물어 피아가 식별되지 않는 이 시간에 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 화살을 쏘면 분명히 아군 사상자가 생겨난다.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적을 막아야 했다.
슈슛!
눈을 질끈 감은 궁사들이 성 내부의 호인들을 향해서 화살을 날렸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따로 없었다.
호인들은 궁사들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발을 놀리거나 병사들의 시체를 들어 화살을 막았다. 오히려 화살들은 호인보다 아군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잠깐이지만 그 화살들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군들이 쓰러져가는 와중 곽권준은 뒤쪽에 몰려드는 인파를 지탱하며 외쳤다.
“더 이상 뒷걸음질 치는 자는 군명으로 다스리겠다! 여기서 더 물러나지 마라! 훈련했던 것처럼 방진을 짜고 적을 맞아라! 물러서지 마라! 결코 물러서지 마!”
그의 목소리가 그제야 병사들에게 닿았다. 병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땀을 흘린 채로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무기를 쥐고 주변 병사들과 서로 방진을 짜기 시작했다.
세 줄로 이루어진 방진은 창을 세 각도로 뻗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앞의 열이 창을 수평으로 세우고 그 뒤의 열이 머리보다 약간 위쪽으로 창을 세웠다. 마지막 열이 직각에 가깝게 창을 치켜들었다.
세 개의 각도로 이루어진 창들의 진영이 각자 열을 이루어서 호인들을 빙 둘러쌌다.
호인들은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아까와는 달라진 인간의 저항을 신비롭게 지켜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달려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진형을 이룬 인간의 저항도 만만찮은 것이었다. 호인의 돌진에 둘, 셋의 창이 휘고 진영을 이루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지만 그래도 그들의 몸에 창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또한 방진을 지키며 취약해진 부분에 다시 채워진 병사들이 압박해 오니 호인의 입장에서는 공격하기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뭣들 하는 거냐?!”
적모 지파의 대장 항마레가 앞으로 나서며 지파 병력에게 으르렁거렸다. 다들 적이 온건히 태세를 추스르자 동작이 많이 굼떠진 상태였다.
“내가 선두에서 뚫겠다. 전부 도륙해 버려!”
섬전 같은 질주로 항마레가 창을 쳐내고 진영 한가운데로 돌입했다.
그의 돌진은 쉽게 막을 수가 없었다. 인간 병사들이 창으로 그를 찌르려고 손을 바삐 움직였지만 항마레는 자신이 처리한 시체들을 이용해서 창끝을 막아내고 진영 한가운데에다 던지면서 진을 와해시켰다.
그의 돌입에 호인들은 힘을 얻어 진을 파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패기에 밀린 인간의 병력은 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곽권준 통제사는 얼굴과 등 가득히 식은땀이 배어 나와 갑옷 사이의 옷이 적셔지는 것을 느꼈다. 저들의 강함에는 대항할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릇 병사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장수가 좌절에 빠지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후들거리는 무릎을 다시 두 손으로 지탱하며 그는 허리를 곧추세웠다. 이제는 일반 병사들의 무력에 기대할 수 없기에 자신과 장수들이 나서야 했다.
하다못해 적 장수의 수급이라도 취한다면 다시 반전을 꾀할 수 있을 터. 곽권준은 검을 쓰다듬으며 인파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아아아!”
그야말로 혈귀. 호인들의 몸에 인간의 피가 진득이 묻어 덩어리를 이루며 굳어가고 있었다. 적색 갈기는 더욱 붉게 물들어 괴기스럽게 꼬아졌다. 수백 수천의 창날이 그들의 길을 필사적으로 방해했으나 결국 시간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 그들은 거침없이 창을 부러트리고 인간 병사를 토막 냈다.
곽권준을 필두로 하는 장수들이 호인 몇을 베어내며 그들을 저지했다. 하지만 이대로 소모전을 하게 되면 필패하게 된다는 것을 조나라의 병사들은 직감했다.
이백여 기도 안 되는 호인 군사들이 일만의 병사들을 도륙하여 이제 절반만이 남아있었다. 이것은 전의를 상실해도 골백번 상실할 수준이었다.
남아있는 병력들은 용케도 창을 꼬아 쥐고 대항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진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만일 낮이었다면 죽어있는 병사들의 처참함을 고스란히 볼 수밖에 없기에 훨씬 전에 다들 전의를 상실했을 터였다.
“크헛!”
곽권준이 다섯 번째 호인을 베고 무릎을 꿇어앉았다. 혼전 중에 아군을 방패 삼아 적의 빈틈을 노려 베기를 수차례, 도의 날을 비스듬히 맞아 깊은 상처를 입지는 않았으나 옆구리 아래에 갑옷이 갈라져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호인은 워낙 전투적이라 숨이 멎는 순간까지도 적을 베었다. 마침내 그에 피해를 입은 곽권준이었다.
곽권준은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병사들이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수밖에 남지 않고 혼란을 가다듬기는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이 검단성에서 자신 하나만 바라보면서 창을 쥐고 대항하는 병사들이 있기에 그는 주저앉을 수 없었다.
곽권준이 일어나자마자 소름끼치는 살기가 그를 덮쳐왔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꺾고 발을 뒤로 놀린 그는 자신이 있었던 자리에 꽂힌 도신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법이로구나. 네가 대장인가 보군.”
호인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해석할 방도는 없었으나 곽권준은 그 뜻을 이내 알아차렸다.
도를 집은 호인은 바로 호인들을 이끄는 대장이었다. 그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곽권준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에게도 우리를 벨 만한 인재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다!”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내뿜는 기세로 그가 공격할 것을 알아차린 곽권준은 몸을 구르며 그의 도를 피했다.
방금 입은 부상이 곽권준에게 자유로운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크흣!”
곽권준은 볼품없이 땅에 등을 구르며 도를 간신히 피해내었다. 그러던 중간에도 그는 반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왼손에 뽑아진 단도는 이차로 공격해 오는 적의 수령의 미간을 향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차앙!
금속이 맞부딪치면서 울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순간 인간들도, 호인들도 모두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곽권준이 날려 보낸 단검을 도로 훌륭히 쳐낸 항마레는 다시 지체 없이 곽권준의 숨통을 끊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나머지… 하나!’
곽권준은 품에 비어버린 단검 집을 왼손으로 짚으며 남아있는 단검의 개수를 세었다. 마지막 단검뿐이었다.
곽권준은 항마레가 도를 들어 올리기 전에 일신의 빠르기로 왼손에 단도를 꺼내 들었다.
‘이것만큼은 너에게 닿으리라!’
그는 오른손의 검으로는 도를 막기 위해 머리 위로 치켜들었고 왼손을 크게 뒤로 돌려 단검을 쏘아 보낼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도신이 떨어져 내려와 자신의 검에 맞부딪치는 순간 곽권준은 항마레의 목에 단검을 쏘았다.
“통제사 어르신!”
“장군!”
순간적으로 전투를 하던 천부장과 백부장들 그리고 말단의 병사들까지도 지금 호인 대장과 싸우는 자가 곽권준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부르짖으며 달려왔다.
하지만 곽권준은 머리에서 상체가 완전히 양단되어 두 쪽이 나있었다. 적 호인의 괴력이 실린 도의 휘두름은 곽권준의 검을 그대로 깨어 부러뜨리고 그를 순식간에 베어 무너트린 것이었다.
“확실히 칭찬해 줄 만하군.”
항마레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너무나도 빠른 곽권준의 필살의 일격이었지만 항마레는 가까스로 피해낼 수 있었다.
목을 노린 단검은 항마레의 승모근 언저리에 박혀있었다. 동물적인 감각이 아니라면 감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수련을 거친 항마레는 그 공격을 간신히 예측하고 몸을 살짝 틀어 살아날 수 있었다.
“적의 대장을 처치했다! 이제 성문을 열고 아군을 맞자!”
항마레의 포효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자 호인들은 더욱 의기양양하게 두 팔을 휘두르며 환호했다.
이제 인간들은 모두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총대장이 죽음에 이르렀다. 전의를 잃고 무기를 놓는 병사들도 있었다.
권중과 권보를 비롯한 천부장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순간 병력을 지휘하는 일에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호인들이 공포에 질린 인간의 잔당을 처리하려 하는 순간, 갑자기 천공을 꿰뚫는 둔중한 나각(螺角)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북문을 열어라! 북문을 열어라!”
============================ 작품 후기 ============================
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