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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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방어[守]
“크어어어엉! 뭣들 하는 거냐! 제깟 인간 놈들이 말을 탔다고 해서 우리 적모 지파의 예기(銳氣)를 앞지를 수는 없다! 남문을 열어라! 남문을 열면 우리 2군이 진입할 것이다! 모든 병력은 나의 뒤를 따르라!”
항마레의 큰 외침이 호인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은 빠르게 전열을 정비하고 남쪽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저항은 더욱 완고해졌다. 베고 베고 또 베어도 인간들이 진열을 무너트리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이곳을 버티기만 해도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서로의 몸을 벽으로 세워서 적들의 돌파를 안간힘을 써서 막아내었다.
그 뒤로 기마대가 바싹 따라와 호인 무리의 후미를 잡았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던 호인들의 움직임이 공격으로 조금씩 붕괴되었다. 모진오를 필두로 하는 기마대는 어둠 속에서도 호인들을 정확히 공격했다.
인간과 인간의 전장이라면 피아를 식별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호인들은 보통 인간보다 머리가 두셋은 더 큰 모양새이기에 창의 표적으로 삼기에 아주 좋았다.
평소와 같으면 창두를 쉽게 피해낼 호인들이었으나 남측의 인간들을 벽으로 두고 혼전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는 마땅히 피할 공간이 없었다.
축인 발을 둘 곳이 마땅치 않으니 최대한 몸을 꺾어 창을 피한다 해도 다음 밀려오는 기마의 연속적인 공격을 회피하기에는 너무나도 협소했다.
그들은 그야말로 고립된 상태였다.
하나, 둘 그렇게 남쪽 문을 경계로 적모 지파의 훌륭한 병사들이 쓰러져가자 항마레는 이 기세와 전황을 뒤엎지 않으면 남문을 결코 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아무리 일격에 다섯의 인간 병사를 베어도 그 뒤로 또 다섯이 죽음을 각오하고 남문을 지키고 있었다. 본래 이 정도의 위압감을 뿜으면 공포에 질려 벌써 진형이 와해되고도 남았어야 했다.
항마레는 뒤로 돌아 다가오는 기마들의 선두를 주시했다. 선두에 선 단 하나의 지휘, 그 무용으로 전장이 인간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읽었다.
항마레는 남문을 연다는 생각을 철회하고 저자를 노리기로 했다. 저자를 자신의 도로 단명시킨다면 이 싸움의 승패가 갈릴 것이 분명했다.
노란 눈을 번득이며 항마레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도약했다. 그는 뒤에 있는 호인들의 키를 넘어 도약 두 번 만에 단숨에 진의 중간까지 넘어왔다.
항마레는 선두에게 가할 일격을 준비하며 호인들 사이에서 그자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자는 다른 기마들과 같이 오는 것이 아닌 홀로 이 진을 파훼하며 진격하고 있기에 호인들 사이에서 기습을 노린다면 일격에 말과 함께 베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기회는 바로 찾아왔다.
적 장수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있다. 확실히 뛰어난 실력이기에 부하들이 그 창을 피해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으나 자신과 같은 범족을 이렇게 약과로 보는 것은 큰 오산이었다.
그가 다가오자 항마레는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단번에 도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그 공격은 말의 앞다리 근육부터 목과 함께 상대를 양단하는 절륜한 일격이었다.
일격은 깔끔했고 아주 단조롭게 흘러갔다. 이 단순한 공격에 어떠한 힘이 실려 있는지는 베인 당사자만이 알리라.
순간 항마레는 두 동공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로부터 이어져 손끝에 전달되는 힘에 대항하는 상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흡!”
상대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두 손에 쥔 창의 구(鉤) 부분으로 항마레의 혼신이 담긴 일격을 제어하고 있었다.
항마레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인간이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수십 년간 수련해 오며 단련한 근력, 아름드리나무를 일획에 양단할 수 있는 괴력이었다.
그 괴력과 더불어 도에 실린 속력은 감히 인간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수장 모진오는 훌륭하게도 그것을 해내었다. 모진오의 창이 통짜 쇠로 되어있지 않았다면 창이 부러져서 벌써 이승을 하직하고도 남았으리라.
철창으로 막았는데도 창대가 휘고 구 부분의 날이 완전히 부서져, 창두에 금이 가서 더 이상 못 쓰게 되었다.
단 한 번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무기를 못 쓰게 될 뿐만이 아니라 손이 후들거릴 정도의 힘을 소진한 모진오는 식은땀이 등줄기에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상대에게는 오히려 말 위에서의 전투가 불리할 수 있다 생각한 모진오는 튕겨지듯 대완의 등 위에서 떨어져 나왔다.
상대의 커다란 몸에서 나오는 도의 간격은 말 위의 사람에게도 능히 닿았다. 아무리 자신의 몸과 같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저자를 상대로 무지막한 도격을 견뎌내며 싸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매우 훌륭한 일격이었다.”
창을 던져버린 모진오가 자신을 공격해 온 호인에게 말했다.
호인은 상당히 놀란 듯했으나 곧 자세를 고쳐 잡았다.
거체에서 풍겨오는 기운으로 모진오는 자신에게 도를 날린 호인이 범상치 않은 자임을 직감했다. 필히 이 군을 통솔하거나 그에 필적하는 재량을 가진 자임이 분명했다.
“이름을 물어보고 싶지만 대화가 통하지는 않겠군. 검의 합으로 물을 수밖에.”
모진오는 허리에서 애검을 꺼내 들려다 순간 마음을 고쳐먹고 등 뒤 쪽에 매어놓았던 태령검을 집어 들었다.
아무리 자신의 보검이라 할지라도 저 괴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모진오는 조국의 신물인 이 강력한 검을 믿어보기로 했다.
태령검은 일반 검에 비해 검신이 반절 정도로 짧았고 검병은 일반 검신에 필적할 정도로 길었다. 이 괴상한 생김새에 손맛을 길들이기 위해 오는 도중 시간을 내어 검을 사용해 보고 몇 가지를 베어보았다.
그 결과 모진오는 검의 날카로움과 단단함이 예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철을 벨 수 있는 무기. 과연 조국의 신물이라 칭할 수 있는 검이었다.
항마레는 상대가 검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된 이상 확실히 힘을 보여줘야 했다. 부하들의 눈이 모두 자신에게 쏠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뿐 아니라 자기 자신 또한 묘한 흥분과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도격을 막을 수 있는 자와의 대결이라. 그것도 동족이 아닌 인간과의 대결.
항마레는 아무리 전장이지만 그런 상대와 격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천성적으로 싸움꾼의 기질을 가진 범족의 특성이었다.
“나는 서쪽의 적모 지파 곤간의 아들, 항마레. 그대의 이름을 물어도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무예를 나누는 입장에서 나를 소개한다. 용감무쌍한 적모의 아들들을 이끌고 있다.”
범족과 언어가 달라 인간에게는 그저 그르렁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으나 모진오는 그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조국의 왕 모태토의 아들, 모진오. 간다!”
둘의 뜻이 통했을까, 통명성이 통할 리가 없지만 서로를 소개하는 말이 오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모진오가 항마레에게 달려들었다.
순간에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을 둘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대결은 호인들도 날리던 도를 멈추고 바라볼 정도로 강렬했다. 인간들도 대결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모두 모진오에게 곽권준의 원수를 갚아달라는 희망을 새기며 열렬히 그를 응원했다.
그는 사실 선천적으로 화살을 잘 쏘는 궁수였다. 그 누구보다 파괴력이 있는 화살을 정확하게 쏘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장기였다.
하지만 모진오는 활만이 능사가 아님을 일찍부터 깨닫고 단병과 장병을 엄청나게 수련하기 시작했다. 모진오의 재능은 상당히 특출했기에 금세 다양한 병기를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모진오는 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각 나라에 외교 사절을 보내야 한다면 세자로서 스스로가 사절로 나섰다.
아버지인 모태토는 식견을 넓힐 뿐 아니라 세자를 외교 사절로 보내는 것 자체가 상대 국가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일이기에 늘 모진오를 사절로 삼았다.
그 기회를 이용해 모진오는 각국의 각양각색(各樣各色)의 병기를 수련하고 각국의 명인들에게 대련을 요청할 수 있었다.
대련 초반은 미숙함으로 패배를 거듭했지만, 그가 성장하면서 그의 무예 또한 일취월장하여 기존 패배의 기록들을 전부 승리로 물들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모진오 그는 현재 일곱 개의 나라에서 첫째가는 무예가로 손꼽히고 있었다. 이제는 그의 궁술은 잊혀지고, 그의 검술이 더욱 칭송을 받았다.
힘에서는 호인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나 다양한 나라들의 명인과의 대련을 통해 도와 검의 길을 깨우친 모진오는 항마레의 힘을 효율적으로 흘려내며 훌륭하게 겨룰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진오가 검의 명인이라 할지라도 호족의 족장 급의 자를 상대함에 있어서 대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그의 검에 있었다.
모진오의 온몸으로 폭풍처럼 무시무시한 도격이 쏟아졌지만 그의 두 손에 들려있는 태령검은 그 일격들을 훌륭하게 받아내었다.
모진오의 힘을 넘어선 타격들을, 태령검 자체가 흡수하는 듯했다. 인간의 몸통을 단번에 분리해 내는 공격들을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던 연유는 5할 이상이 이 신묘한 검에 담겨있는 힘 때문임을 모진오는 직감했다.
또한 태령검의 단단함은 검날에만 있지 않았다. 모진오는 혈투 중 쇄도해 오는 도격을 급하게 검병으로 막아내었다.
모진오는 검병이 부러지는 줄 알고 식겁했지만 검병은 상대의 도를 견뎌내었다. 검날과 검몸이 하나로 이루어진 일체형 검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태령검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지만 태령검과 맞부딪치는 도는 항마레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날과 도신에 손상을 가하고 있었다.
검을 사용하는 모진오조차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놀랄 따름이었다.
항마레는 점점 급박해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이토록 잘 막아낼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순간 조급해지면서 자신의 도신에 무리가 가는 점을 숙지하지 못했다. 그저 힘이 닿는 대로 날카로운 공격을 계속해서 퍼부었다.
‘이길 수 있다.’
모진오가 승리를 직감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상대가 무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는 결정적으로 승기를 잡기 위해 집요하게 기다렸다.
차앙!
수십 장의 유리가 동시에 깨지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검과 도의 부딪침에 따라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쇠가 깨어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의 끝에 하나의 긴 혈선이 육체를 가로질렀다.
거대한 도신이 부러지고 날이 하늘로 치솟았다. 모진오의 검은 지체 없이 그 간격을 파고들어 항마레의 왼쪽 배에서 오른쪽 갈빗대를 베어 넘겼다.
먼저 옷이 팔랑거리며 베였다. 붉은 털 아래로 피부와 근육들, 단단하기 그지없는 갈비뼈가 갈라지면서 폐가 베어졌다.
무섭도록 예리한 검이었다.
“크어, 어…….”
항마레는 도를 내던지고 손톱을 세워 방금 자신의 배를 베고 지나간 자리에 크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모진오의 잔영(殘影)조차 없었다.
“좋은 합이었소.”
모진오는 그새 항마레의 뒤로 돌아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누고 말했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두터운 승모근과 함께 항마레의 목이 양단되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우아아아아!”
“세자께서 적장의 목을 베었다!”
우레와 같은 인간 측의 함성이 성 내부에 울려 퍼졌다. 전심(專心)이 담긴 기쁜 외침이었다.
성 내부의 호인들은 항마레의 죽음에 어안이 벙벙한 듯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기마대의 창에 맞고 스러져 갔다.
끝까지 저항하는 호인들도 있었으나 태령검을 들고 전장에 복귀한 모진오의 활약으로 마지막 하나까지 완벽하게 토벌할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