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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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노[侵]
이소호칸은 서둘러 노비츠를 따라잡았다.
노비츠는 워낙 제멋대로라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이소호칸은 재빨리 노비츠를 불러 세웠다.
노비츠는 약간 불쾌한 듯 쳐다보았지만, 지리를 잘 모르는 탓인지 이번에는 이소호칸의 부름대로 서서 그를 기다렸다.
“예물을 모아놓은 곳은 그쪽이 아닙니다, 노비츠 공.”
“마음이 바뀌었소. 예물을 모아놓은 곳으로 바로 병력과 수레를 가져가고 싶소이다. 어서 싣고 하루빨리 강제께 돌아가고 싶소.”
이소호칸 또한 하루빨리 노비츠가 되돌아가는 것을 너무나도 달갑게 생각하지만, 사신을 대접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지파의 위신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소호칸은 잠시 생각하다가 노비츠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길 안내를 해줄 시녀 한 명을 붙여주겠소. 병사와 수레를 가지고 예물이 있는 곳으로 시녀를 따라오시오. 나는 먼저 가서 예물을 수레에 실을 준비를 하고 있겠소이다.”
노비츠가 얼굴을 이죽이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따라온 카츠루기가 그를 매섭게 노려보자 입술을 한껏 아래로 내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내지었다.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이소호칸은 따라온 시녀에게 몇 마디 전언했다. 그러자 시녀는 곧 고개를 끄떡거리고 노비츠의 곁으로 다가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메라 합니다.”
노비츠는 예의상 이사메의 인사를 머리를 흔들어 받아주곤 이소호칸에게 말했다.
“그럼 이따 뵙겠소이다.”
노비츠가 시녀와 함께 걸어갔고, 카츠루기 또한 이소호칸을 한 번 쳐다보며 노비츠에게 언짢은 표정을 보냈지만 이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소호칸은 노비츠가 사라지자 자신의 창고로 발을 옮겼다.
노비츠의 면상만 바라보아도 노기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이 욕지거리가 목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잘 참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강제였을 때의 자신과 비교해 본다면 지금은 너무나도 온화해져 있었다.
과거에는 힘이 근육 곳곳에서 솟아올라 형편을 가리지 않고 불같이 달려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면 찢어발겼었다.
하지만 지파를 오랫동안 이끌어 오면서 나이를 먹어가자 과거 힘만이 전부였던 일생이 너무나 편협하게 느껴졌다. 감성적으로 행동했던 부분들이 보다 이성적으로 바뀌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이소호칸은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왠지 모를 쓴웃음을 지으며 창고 문을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는 초병들이 지키고 있었으나 이소호칸은 이 저택과 백모의 아버지였으므로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간단히 목례만을 한 후 내부 깊숙이 서늘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독 수십여 개가 줄 맞춰 놓여있었다.
이소호칸은 붉은색으로 봉인돼있는 거대한 독들 중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하나를 거대한 두 팔로 끌어안아 들었다.
독은 상당히 커서 그의 몸집만 했으나 이소호칸은 그대로 독을 어깨 위로 올려 한 팔로 둥글게 만 후에 창고에서 나와 예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동쪽의 곡식은 매우 알찼기 때문에 그 곡식으로 술을 담가 숙성시킨 것을 매우 귀하게 쳤다.
제아무리 노비츠 녀석이라 할지라도 백모의 명주 한 동이라면 과하게 대접받은 것이었다.
등편은 대나무 살 바깥의 풍경이 이전과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몸을 잽싸게 일으켜 세웠다.
사흘간 갇혀 지내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먹고 자고 용변 보기만을 반복하자 몸에 좀이 쑤셨다.
호인의 언어를 공부할 때엔 그나마 시간이라도 잘 갔지만 여기서는 그냥 무력하기만 했다.
잡혀온 아이들 또한 무기력함이 전염되어 우울함을 자랑이라도 하듯 내내 신세 한탄만 했다.
등편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기 싫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건초를 말아 귓구멍에 박아 넣었으나, 밖의 상황이 심상치 않자 귀에서 뭉친 건초를 빼내고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는 호인 한 무리가 왔다 갔다 거리고 있었는데 등편은 그 무리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보아하니 각각 손에 물건들을 잔뜩 가져와서는 마당에 쌓고 있었고, 몇 무리는 염소나 소, 돼지, 닭을 끌고 왔다.
몇몇 아이들은 시끄러운 낌새를 눈치채고 등편과 같이 대나무 창살에 달라붙어 그들을 관찰했다.
호인들은 꾸준히 물건들을 날랐는데 어린아이들이 일견하기에도 참으로 값비싼 물건들만 있었다.
“음?”
등편이 창살을 쥐어 잡고 먼 곳을 살펴보니 그쪽에 새로운 호인 무리들이 나타났다.
물건을 옮기고 있는 흰색 털의 호인들과 달리 그들은 검정색 털을 가지고 있었고, 복식도 화려했다. 몇몇은 창과 무기를 꿰어 차고 있었으므로 등편은 그들이 호인 병사라 예상했다.
그들은 거만하게 마당으로 다가오더니 쌓여있는 물건들을 자기들이 가져온 수레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이 끌고 있는 수레 일곱 대를 가지고 왔는데 금세 수레는 물품으로 가득 찼다. 수레를 가득 채우자 검은 털 무리는 등편과 아이들이 갇혀있는 감옥으로 다가왔다.
노비츠는 백모 지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백모 지파를 다스리고 있는 대족장인 이소호칸을 언짢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늙는다 해도 호인은 호족 전통에 따라야 한다. 강제의 결투에 나오지 않은 것은 이소호칸의 약함을 대변하는 것이었고, 약한 그가 대족장이라면 백모 지파 또한 약한 것이었다.
물론 자신은 이소호칸에 비해 강하지 않음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이소호칸의 행동이 자신이 따르고, 염이 따르는 힘의 논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이후로는 그를 신랄하게 비방했다.
오늘만 해도 그의 면전 앞에서 상당히 핀잔을 주지 않았는가? 마음 같아서는 더 철저히 깔아뭉개고 싶었으나 카츠루기 녀석이 따라붙어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물론 노비츠는 카츠루기가 없었다면 이소호칸에게 죽임을 당해도 한참 전에 당했을 테지만, 그런 것은 생각도 못한 채 노비츠는 카츠루기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었다.
병사들을 데리고 마당에 와서 예물들을 본 노비츠는 흠잡을 데가 없자 그놈의 영감탱이가 미리 와서 예물들을 다 바꿔치기 해놨다고 비아냥거렸다.
마당에 놓인 예물들을 거의 다 수레에 올리자 주변을 둘러보던 노비츠의 눈에 갇혀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옆의 백모 호인에게 물었다.
“저 인간들도 예물인가?”
“예, 그렇습니다. 동물들과 함께 묶어서 드리겠습니다.”
백모 호인이 공손히 말하자 노비츠는 손을 흔들며 짜증 난다는 투로 말했다.
“내 두 눈으로 예물의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다.”
노비츠는 성큼 걸어 인간들이 갇혀있는 대나무 우리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자신들을 살펴보던 아이들이 창살 안쪽 깊숙이 들어가 겁에 질린 듯 몸을 움츠렸다.
노비츠는 그런 그들을 보며 나약해 빠진 것들이라 비웃었다.
“열어라. 녀석들을 좀 보자.”
따라온 백모 호인에게 노비츠가 말했다.
백모 호인은 귀한 강제의 사신이 말하자 어쩔 수 없이 대나무 창살에 단단히 묶여있던 덩굴을 칼로 잘라내었다.
대나무 창살이 을씨년스럽게 떨어져 나가고 노비츠가 그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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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