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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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활[弓道]
모진오는 회의 이후 바로 정찰대를 파견했다. 가장 발이 빠른 말과 체력이 남아있는 기수 여럿을 정찰대로 선발해 성 밖을 확인하게 시켰다.
만일 적들이 후퇴를 가장하거나 아직 후퇴를 하지 않았다면 정찰대는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
그들은 모두 목숨을 걸었다. 의미심장하게 술잔을 들이켠 그들은 성 밖으로 나가기 전에 머리카락을 잘라놓고 출행했다.
성문을 나선 자는 오십. 정오가 못 되게 출발한 그들이었다.
성문 앞에서 전별(餞別)한 모진오는 성벽 위에 올라가서까지 그들이 움직이는 궤적을 지켜봤다.
새하얀 눈밭 길을 헤쳐 나가야 해서 더딘 걸음이 되었지만 그들은 정찰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둘씩 짝을 이루어 전진했다.
한 시진가량 흘렀을까, 정찰 보낸 병력들이 하나둘씩 속속들이 귀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놀라운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하나같이 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적의 종적(蹤迹)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혹시 몰라 근방 전부를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적은 약 하루 정도 전의 막사를 거두어낸 흔적과 지냈던 족적을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모진오나 다른 부장들도 반신반의(半信半疑)했지만 정찰 병력들이 도착할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는 적의 후퇴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찰 도중 부상을 입어 귀환이 늦은 한 명을 제외하고 오십 인 전원이 무사히 정찰 임무를 달성하고 검단성으로 돌아왔다.
긴장의 끈을 풀어서는 안 되었지만 이미 성내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정찰병의 정찰 소식이 모두의 귀와 입을 통해 빠르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모진오는 마지막 오십 인의 보고를 듣고 적이 물러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했지만 적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이 탁 풀림을 느꼈다.
모진오는 지금까지 마음을 졸이며 말라붙었던 입술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적이 퇴각했다. 승전보(勝戰譜)를 올려라!”
모진오의 입에서 결국 결과가 떨어졌다.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고 추후 상황을 더 지켜보는 것이 좋을 거 같다는 마음 또한 있었지만 온 주변을 뒤져봐도 적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런 경각심은 놓아두는 편이 좋았다.
그편이 병사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큰 위안이 될 터였다.
모든 부장이 얼싸안았고 병사들은 기뻐 방방 뛰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던 전장에서 모진오와 지원 병력이 이 성을 지켜내는 데 성공할 때부터 간절히 원하던 전투의 종료였다.
“하지만 아직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다. 성내 경비는 그대로, 병력 또한 이전과 다름없이 배치한다. 우리 지원군이 성에 완전히 도착하기 전까지는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니다. 긴장을 풀지 말고 각자 맡은 소임을 계속해서 다해주길 바란다.”
모진오는 바로 전투태세를 종료하지는 못했다. 아직도 긴장해야 할 필요는 충분했다. 조심스러워서 나빠질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라도 승전의 기쁨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전군에게 따듯하게 데운 술을 돌렸다. 추위를 이길 겸 해서 모진오가 창고를 열어 베푼 것이었다.
병사들은 술을 백성들과 함께 돌려 마시며 즐거워했다. 그들에게 이 술은 승리를 보장하는 일종의 보답인 셈이었다.
* * *
“준비는 되었나?”
빛 한 점 들어오지 못하는 컴컴한 공간 안쪽에서 옥빛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날이 급격하게 추워져 둥글게 파인 벽들 가득히 서리가 맺혀 있었으나 누구도 추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휘하, 오백스물셋.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부장 하나가 고하자 그 어두운 곳에서 마진츠는 이빨을 드러내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가실까요, 고스보치 님?”
옥빛의 눈동자 옆에 노란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는 지금까지 눈을 감고 이 상황을 신중하게 기다리고 있던 고스보치였다.
“아 이제 우리 차례로군. 자네의 계책이 잘 들어맞았으면 좋겠네.”
고스보치가 옷가지 위의 서리를 털어내는 듯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마진츠는 슬쩍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자신 있는 미소를 얼굴에 만연히 피웠다.
어둠 속에서 있지만 그들은 서로를 구분하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워낙에 밤눈이 밝은 그들이기에 빛이 거의 없는 어둠이라도 문제가 없었다.
“내 말을 빠짐없이 전달하라, 이제부터 우리는 각자의 굴에서 나와 적성을 공략할 것이다. 이는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전달해야 한다. 일각 후에 우리가 눈 속에서 길을 만들어 나갈 테니 그 길을 따라 속히 진군하도록 하라.”
“네.”
마진츠의 명령을 들은 범인 병사가 권상을 하고 재빠르게 굴 밖으로 몸을 빼었다.
마진츠는 정확히 일각이 지나자 몸을 일으키고 굴 안의 십여 명의 부장들과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백모 지파가 나설 차례이다. 적은 우리가 모두 퇴각했다 생각할 터! 우리는 그 의표를 찔러 적을 제압할 것이다!”
마진츠의 조용하면서도 진중한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굴 내부의 아군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그들은 조용히 굴 밖으로 나섰다.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세계. 달조차 하현(下弦)을 지나 가늘어지고 있었다.
달이 밝지 않음은 절호의 기회. 더군다나 구름들이 적절하게 흩어져 달빛을 근근이 막아주고 있었다. 이는 적의 눈을 속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때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했다.
땅 아래에서 한 명, 한 명 그림자들이 쑥쑥 튀어나왔다. 모두가 눈같이 흰 털을 가진 백모의 지파 병사들이었다.
“모두 옷을 벗어라. 색을 가지고 있거나 번쩍이는 물건을 벗어 던져버려라. 눈 아래 도 하나만을 숨겨두고 허리를 굽힌 채 나를 따라와라!”
마진츠가 먼저 옷을 던져버리며 말했다. 하얀 갈기가 눈 속에 그대로 드러나 파묻혔다. 이어 도를 도집에서 꺼내 눈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모두가 똑같이 마진츠의 행동을 따라 했다. 흰 눈에 백색 갈기가 잘 어우러지며 감쪽같이 그들의 모습을 숨겼다.
마진츠를 필두로 오백 기의 병력이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맞추며 눈길을 헤치며 달려갔다.
이는 모두 마진츠의 머릿속에서 나온 책략이었다. 아군을 뒤로 물려 적들을 방심하게 만든 후 그 틈을 타 적성을 공략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 책략을 위해 그는 눈[雪]을 간절히 기다렸다. 매복과 기습을 하기 위해서는 눈이라는 요소는 필수 불가결이었다.
백모 지파의 갈기 색은 하얀색. 일정량의 눈이 쌓여있다면 자연 속에서 그들의 위장은 예민한 동물들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큰 효과를 발휘했다.
첫눈이 내릴 것을 기다리며 우선 병력들이 숨어 지낼 수 있을 만한 굴을 팠다. 이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던히 각 지파의 지휘관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전략적이긴 하나 후퇴를 지시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마진츠는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다며 꾸준히 그들을 설득했다. 후퇴가 아닌 일시적으로 진을 물리는 것이라 획책했다.
결국 눈이 내리는 날이 돼서야 마진츠의 전략에 동의하고 백모 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들은 모두 진을 하루거리 정도 뒤로 물려두었다.
눈이 쌓이기 전에 마진츠와 백모 지파의 병사들은 지금까지 파놓은 굴에 십 인씩 들어가 대기했다. 얼어붙은 땅을 파내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나 그 속에서 추위를 견뎌내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두꺼운 가죽과 털이 수북하게 온몸을 덮고 있어도 굴속의 냉기에 한번 식어버린 몸을 데울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불을 피울 수도 없는 상황. 그들은 끈질긴 인내력으로 마진츠의 전략을 신뢰하며 견뎌내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정오가 지나자 굴 밖으로 정찰병이 그들 위를 돌아다니는 것을 느껴졌다. 백모 지파는 숨을 죽이며 그들이 주변을 충분히 정찰하고 가는 것을 기다렸다.
그들이 사라진 후에는 밤이 찾아오길 조용히 감내했다.
이제 전투는 자신의 손 위로 올려졌다. 이 손으로 승리를 거머쥐리라.
* * *
성벽 위의 병사들은 데운 술로 목을 축이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약간 알딸딸한 기운이 목 위로 올라오고 있었으나 성벽 위 경비를 서는 일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등 뒤에 동그란 기름통을 메고 성벽 화로마다 기름을 부으러 다니는 병사 하나가 성벽 사이를 지나가며 성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
병사는 성벽 너머에 하얗게 눈보라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기… 눈이 흩날리는데?”
“어디?”
병사들이 그 손가락 끝을 보고 멀찍이 흩날리는 눈보라를 쳐다보았다. 얕은 달빛에 눈 결정이 흐트러지며 반짝이고 있었다.
“에이 뭐야, 저거 바람 불어서 그런 거야. 오 씨.”
“고럼, 고럼. 저기 저쪽에도 눈이 흩날리잖아. 저런 평야에 바람이 조금 불면 눈이 저렇게 흩날린다고.”
병사들은 눈보라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바람이 매섭게 불 때면 그보다 더하게 눈이 흩날리곤 했으니 그들은 그것이 바람이 한 일로 치부했다.
“그런가? 뭐 자네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오 씨는 등에 메고 있던 기름통을 기울여 화로에 부어 넣고선 퉁명스럽게 말하고 다음 화로로 이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저 눈보라가 어떠한 참극을 몰고 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모진오는 아버지에게 전하는 승전을 장식한 편지를 마무리하고 붓을 들어 한참을 고민하다가 새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고민하고 고심하며 쓰던 글은 바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성을 지키는 장수의 굳건함은 온데간데없이 가슴 한쪽이 애틋해 지며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몸이 달아올랐다.
아내는 아마 출산을 잘 마치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모진오는 갑옷 품에서 반들거리는 녹색 목걸이를 꺼내 매만졌다. 그 줄을 코에 가져다 냄새를 맡기도 했다. 아내의 머리카락을 꼬아 만든 줄에서 아내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잠시 멈추었던 붓을 다시 놀렸다. 이 승전의 기쁨을 아내와 자신의 자식에게 전해주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일 터였다.
이 소식이야말로 자신이 곧 아내에게 귀환할 수 있다는 가장 큰 희망을 담은 선물이 될 터였다.
그녀가 떠올랐다. 전장에 출정하기 전에 산만 한 배를 쓰다듬으며 자신의 목에 가녀린 손으로 목걸이를 걸쳐주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흑단의 두 눈동자. 자신과 함께 열정과도 같은 밤을 보내며 사랑을 나누던 그 눈동자가 기억 속에서 끄집어져 모진오의 눈에 맺혔다.
그녀는 분명 두렵고 어려웠을 것이다. 만삭의 아내를 두고 매정하게 전장으로 떠나는 자신을 보고 냉정하다 생각했을 터였다.
그녀는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수면 위로 띄우지 않고 모진오를 웃는 얼굴로 보내주었다. 속은 무수히 많은 공포심으로 떨리고 있을 텐데도 그녀는 꿋꿋이 자신을 전별했다.
모진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당찬 아내였다. 왕이 될 자신이 보기에도 현명하고 훌륭한 아내였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사랑하는 임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자신은 용기를 얻고 그녀의 삶에 자신 또한 활력을 얻었다.
그런 마음을 가득히 담아 모진오는 편지를 써내려갔다. 이제 그런 아내의 곁으로 돌아가 자식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편지의 끝 부분을 스스로가 보기에도 볼이 붉어질 정도로 애정을 담아 마무리한 모진오는 붓을 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지쳐있었다. 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는 진력(盡力)을 크게 소모하고 있었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는 앉은 채로 선잠에 들었다.
============================ 작품 후기 ============================
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