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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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활[弓道]
“저하! 저하!”
밖이 소란스러웠다. 급작스럽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모진오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잠에서 깨어났다.
깊이 잠든 것이 아니었기에 모진오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추스를 수 있었다.
다 쓴 편지를 품에 넣은 모진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갔다.
막사 밖에 나오자 부장들과 병사들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모진오는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크게 호통을 쳤다.
“무슨 소란이냐!”
“적이,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모진오는 놀라는 한편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적은 후퇴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전투를 볼 때 그들은 쉽게 전투를 포기할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모진오는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승전보를 알리는 것은 아직 이른 일이었다.
모진오는 애써 쓴 편지가 무용지물이 된 것에 살짝 기분 나빠하며 적을 맞이하러 나섰다.
“그래서 적은 어디에 있느냐?”
“저, 저기. 그, 그것이…….”
모진오의 물음에 다들 대답을 확실히 못했다. 모진오는 그들의 난처한 기색을 읽고 무언가 일이 틀어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말하라!”
모진오가 호통을 치자 부장 한 명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저, 적은 지금 성벽 위에 올라와 궁사들을 도륙하고 있습니다.”
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적의 침투를 알리는 징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진 모진오가 급격하게 놀라며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뭐, 뭣이! 적이 다가올 때까지 무엇을 했단 말이냐! 상황 보고는! 경계는! 아니다, 보고는 가면서 듣겠다! 육선과 장제는 어디 있느냐!”
갑작스러운 보고에 정신이 산만해진 모진오는 부사령관인 육선과 장제를 찾았다. 지금 자신들을 맞이하러 온 자들 중 육선과 장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육선 장군님은 성벽 위에서 일선으로 적을 막다 사망하셨습니다. 창고를 관리하시는 장제 님께는 현재 전령을 보냈습니다. 곧 이곳에 도착하실 겁니다.”
눈썹을 찡그린 모진오는 이를 부딪치며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성벽이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파되었는지가 의문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진오는 서둘러 다시 막사에 들어가서 철궁을 둘러메고 무기를 챙겨 나왔다. 바로 전투에서 적을 막아야 했다.
“장제를 만나면 그 즉시 천부장들을 소집하여 성내의 방비를 강화하라 전하라! 나는 지금부터 성벽 위로 가서 전선에서 적을 맞이하겠다. 가면서 어찌하여 성벽이 그리 쉽게 돌파당했는지 나에게 설명하라!”
모진오가 걸음을 서두르며 외치자 다들 그를 따라 이동하며 성벽이 점거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이 성벽 바로 아래까지 접근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적은 지금까지 성을 공격해 온 여러 호인과 다르게 하얀색 갈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옷가지까지 벗어가며 눈 속에 몸을 숨겨 어둠을 틈타 성벽 바로 아래까지 도달했다. 병사들이 공성을 채 준비하기도 전에 성벽에 오른 것이었다.
그들의 속도는 가히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성벽 위를 고스란히 내줄 수밖에 없었다.
“유리한 고지를 이렇게 쉽게 내주다니! 허망하기 짝이 없구나! 적병의 수는 몇이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약 오백에 가까운 수입니다.”
병사의 대답에 모진오는 짜증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둘러 다른 이에게 기마대를 준비하라 명했다. 성내에서의 전투 시 기마를 타고 싸우지 않는다면 그들을 적대하기 어려움이 있었다.
성벽의 병력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몰라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이 전투 이 상황 이 전개는 성내에서의 전투를 짐작하게 했다.
모진오가 성벽에 도착했을 때 그는 붉게 물들어있는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성벽 위에 아군의 그림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수백의 호인의 그림자들이 입과 몸에서 하얀 김을 뿜어내며 성벽 위를 완전히 점령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아래에는 여지없이 수십, 수백의 아군의 시체가 깔려있었다.
성벽 아래는 더 가관이었다. 떨어지는 병사들과 이미 떨어진 병사들의 시체가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난잡하게 너부러져 있었다.
그 장면은 심줄 굵은 모진오라 할지라도 오한이 들 정도로 잔혹했다.
호인들은 성벽을 정리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아래를 고요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구름이 걷히며 달빛 무리가 그들 머리 위에 쏟아졌다. 하얀색 갈기를 가졌다는 그들의 온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싹함의 정도가 지나치게 커서 벌써 그 모습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도 몇 있는 듯했다. 성벽 아래 병사들이 지레 겁을 먹고 모두 뒷걸음을 치려는 찰나 모진오는 우렁차게 목소리를 높이며 아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물러서지 마라! 적을 똑바로 바라보아라! 저것이 우리의 적, 우리가 격퇴해야 할 적이다! 결코 눈을 돌리지 마라! 적에게서 눈을 떼지 마라! 우리는 적을 필살의 의지로 퇴치하여 다시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모진오는 외치며 활을 꺼내 시위를 재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정확하게 성벽 위의 적을 맞히었다.
적은 서둘러 도를 휘둘렀지만 도가 채 끝까지 휘둘러지기도 전에 적은 고개를 떨구고 성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의 용기 있는 한 대의 화살로 병사들은 다시 사기를 일으켜 발바닥을 땅에 붙였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공포에 정신이 잠식되어도 그들 곁에는 모진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진오의 한마디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것.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서 싸울 용기를 불러왔다.
그때 성벽 위에서 우레와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크어어어어엉!”
그 긴 외침은 메아리쳐 성벽 바깥과 안쪽 깊숙이 울렸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호인들이 하나둘씩 성벽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모진오는 지옥 같은 전투가 벌어질 것을 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군 병사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서둘러 화살을 재어 떨어져 내리는 적을 겨냥해 쏘았다. 적은 성벽을 손발톱으로 붙잡으며 요란하게 속도를 줄이며 이동했으므로 빗나가는 화살도 많았다.
“헛!”
막 첫 번째 호인이 성 내부에 처음으로 안착했을 때 모진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화살집에 화살이 단 한 대도 남아있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지난날 화살을 쏘아 보내고 채워두지 않았던 까닭이 컸다. 어차피 화살은 주변 궁사들에게 넘겨받으면 그만이었다.
화살이 모자라면 궁사들에게 화살을 그때마다 보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주변에는 단 하나의 궁사도 보이지 않았다. 화살 또한 보이지 않았다.
궁사들은 성벽 위에서 싸늘한 시체로 식어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