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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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흰[白]
이상했다. 이상하게 몸 안이 들끓었다. 강렬한 힘이 세맥(細脈) 하나하나까지 힘이 넘쳐흘렀다. 제아무리 모진오라 할지라도 적의 무지막지한 힘을 완전히 받아내는 것은 몸에 엄청나게 무리가 가는 일일 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모진오에게는 그 어떠한 피곤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을 내밀 때마다 몸이 빨라졌다. 예상외로 모진오가 마진츠의 도격을 잘 버텨내면서 검에 속력을 붙이자 마진츠의 도 또한 본신의 실력이 완연히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에 인간이 이렇게 빠르고 강할 수 있었다니 스스로에게 놀라는 마진츠였다.
마진츠는 합을 나누는 내내 모진오를 압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애당초 자신의 적수가 못 되었기 때문이었다.
모진오도 그것을 겨루는 도중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다른 호인들에 비해 격이 다른 강함. 그것이 마진츠의 도격에서 느껴졌다. 아마 태령검이 아닌 다른 무기였으면 이를 버티지도 못했음이 분명했다.
그런 불리함을 인식하고 있는 와중에도 모진오는 결코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은 끊임없이 샘솟는 정체불명의 힘 때문이었다. 그 힘은 모진오에게 자신보다 강한 마진츠를 상대할 수 있는 쾌락을 선사했다.
사십여 합을 겨루었을까, 마진츠 또한 모진오의 알 수 없는 괴력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씩이긴 하나 마진츠의 도에 모진오의 작달막한 검이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었다.
치명적인 공격을 하기 위해 도격을 날리면 가까스로 피해내거나 쳐내 자신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다음 한 합 한 합이 더해갈수록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오싹할 정도의 속도였다. 처음에는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모진오가 이 전투로 인해 무섭게 강해지는 것이었다.
모진오 또한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에 이상하리만큼 의문을 가졌다. 오늘 전투 내내 사용한 힘이 자신의 힘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침내 이 요상한 기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신검(神劍) 태령검(颱靈劍).
검의 힘이 자신에게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검이 자신을 선택해 주었는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았으나 지금 검을 휘두르는 힘은 분명 모진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 끝이 없는 힘의 원천은 태령검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언가의 괴리감이 강하게 들었지만 모진오는 상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큰 힘을 갈망하고 원하였다. 그럴수록 검은 마치 자신을 이해하는 양 휘두를 때마다 강력한 검격을 뿌렸다.
마진츠는 침착하게 모진오의 공격을 받아내며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 적의 기술을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에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이제는 그 발전도가 자신의 발치까지 쫓아와 동등하게 격을 나누고 있었다. 마진츠가 본신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무언가 일이 단단히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마진츠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렇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자신을 향해 창 여럿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모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지만 모진오의 행동을 같이 저지하기도 했다.
마진츠는 날아오는 창 중 가장 첫 번째 것을 잡아 들고 휘둘렀다. 그 휘두름으로 날아오는 창을 쳐내는 것은 물론 모진오의 공격까지도 방어하며 상대와 간격을 벌릴 수 있었다.
“저하!”
창을 던진 자들이 모진오에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모진오와 마진츠의 싸움을 보고 달려든 인간의 기마대였다.
마진츠는 이때를 이용해 뒤로 슬쩍 물러나며 말했다. 일대일 전투가 상대로 인해 방해를 받았으니 전투를 중단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되었다.
“일대일 승부에서 창으로 인해 방해를 받다니 불쾌하기 이를 데가 없군.”
마진츠의 말에 모진오는 검을 내리며 답했다.
“…확실히 미안하군.”
모진오의 말에 마진츠는 도를 거둬들이며 답했다.
“흥이 깨졌군. 이 빚은 전투 중에 갚도록 하마.”
마진츠는 그리 말하면서 뒤로 발걸음 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모진오는 사라지는 마진츠를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했다. 일대일 전투가 방해를 받아 흥이 깨진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마진츠가 물러나는 것을 지금 와서 붙잡을 수도 없었다.
마진츠가 사라지자 모진오의 주변에 기마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장제.”
“저하! 무사하십니까!”
장제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말을 몰고 가장 빨리 모진오의 곁에 도착했다.
모진오는 마진츠와의 전투가 방해받은 것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으나 장제나 다른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장제의 걱정 어린 말을 받아들였다.
장제는 바로 말에 내려 모진오의 곁에 다가갔다.
“대완은 어디에…….”
모진오가 홀몸임을 본 장제가 주변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하다 말끝을 흐렸다. 앞쪽에 흐트러진 대완의 사체를 본 까닭이었다.
“보는 것 같이 안타깝지만 목숨을 잃었네…….”
“아, 대완…….”
장제는 대완의 사체를 보고 탄식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모진오만큼 대완을 아끼고 사랑했던 것이 장제였다.
싸늘한 사체가 되어있는 대완의 모습을 보고서 한숨을 안 쉬려야 안 쉴 수가 없었다.
모진오는 장제에게 대답하면서 아직도 손에 남은 힘의 잔향을 느끼고 있었다. 팔의 근육이 살짝 떨리면서 잔 경련을 했다.
방금 전의 전투를 자신의 몸은 분명히 기억하고 느끼고 있었다. 그 힘은 전율이었으며 충격이었다. 아직까지도 태령검을 통해서 힘이 몸 곳곳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저하?”
장제가 수차례 불렀지만 모진오는 힘에 취해 대답하지 못했다. 이내 장제가 다가가 몸을 붙들자 그제야 모진오는 장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 음… 왜 그러는가?”
“저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눈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혹 어디 부상을 당하시거나 몸이 피로하신 것이 아닙니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장제가 모진오의 몸을 면면히 훑어보자 모진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다. 나는 괜찮다. 내 몸에 티끌 하나 상처가 없으니 염려치 말게. 잠시 방금 전의 전투를 생각해 보니 그만 몰입한 듯하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모진오가 답하자 장제가 안심하며 활짝 웃었다.
“다행입니다. 멀리서 볼 때 저하께서 너무 밀리는 형세여서 외람되오나 전투에 끼어들었습니다. 저하의 움직임도 상상을 초월했지만 적의 공격은 날카롭기 그지없어 저희는 그만 저하를 잃는 줄 알고 노심초사했습니다. 전투에 결례가 되어 죄송합니다.”
장제는 모진오의 안전을 확실하게 확인하자 그제야 사과의 말을 전했다.
모진오는 장제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있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다른 기마들도 이제 모진오의 주위까지 도달하여 진을 이루고 그의 곁을 보호했다.
급변하는 전시 상황에서 주군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그들의 행동으로 엿보였다.
“저하, 대완을 잃으신 것에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저하께서 불편하시겠지만 제 백저(白苧)에 오르시지요. 대완만큼은 아니지만 저하의 말을 아주 잘 들어줄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드립니다. 너무 앞서 나가지 말아 주십시오. 저하의 뒤를 따르는 데 저희가 크게 벅찹니다.”
쏜살같이 쏟아지는 잔소리에 모진오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제의 걱정 어린 질책이 마음에 와 닿은 것이었다.
자신 혼자 앞으로 나선다면 방금 전처럼 대완을 잃게 되고 강력한 상대와 마주해 옴짝달싹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오르시지요, 저하.”
장제가 자신의 말인 백저를 끌고 오자 모진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에 타라는 것을 거절했다.
“나는 이제 도보로 적을 물리치겠네. 그렇게 하면 자네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겠지. 그리고 아무리 자네의 백저가 명마라 할지라도 대완만큼 나의 몸과 같이 움직여 주지는 않을 것이네. 그러다 난전 속에서 백저를 잃게 된다면 나는 자네에게 면목이 없게 될 것이네. 차라리 걸어서 적을 처리하고 기마대를 인솔하겠네.”
모진오의 말에 장제는 뭐라 입술을 움직여 더 말을 이으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서는 수긍했다.
난전 때엔 기마를 타지 않은 모진오를 분간하기 어렵겠지만 그의 말대로 걸어서 이동하면 기마대가 그를 놓치게 될 일은 적어질 터였다.
“알겠습니다. 저하께서 그리하시겠다면 뜻대로 하십시오.”
장제가 대권하며 모진오에게 예를 갖추고 다시 말 위에 올랐다.
모진오는 그런 장제의 모습을 보고 다시 등을 돌려 전장으로 나아갈 준비를 했다.
“자! 이 기세를 몰아 적을 멸절하자! 용맹스러운 조국의 병사들이여! 나의 신민이여! 이 나라를 위해 그대들의 용맹을 바쳐다오! 그대들의 용기를…….”
모진오가 서있는 상태로 기마대의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태령검을 치켜세우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카득, 카득.
뭔가 둔탁한 것이 조각나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들렸다.
먼저 모진오의 앞에 기마를 타고 있던 병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뒤를 이어 말이 갑자기 몸부림을 치며 목을 좌우로 흔들더니 높은 울음을 외치고는 넘어졌다.
모두가 갑자기 넘어진 한 기의 기마와 병사에게 눈을 돌렸다. 그냥 낙마라고 하기에는 부자연스러움이 컸기에 몇이 빠르게 횃불을 던져 그들을 살폈다.
말과 병사가 떨어져 내린 곳에 붉은 피가 고여있었다.
“저, 저하!”
그 순간 장제의 외마디가 울려 퍼졌다. 그제야 모두의 시선이 한 기의 넘어진 기마에서 모진오에게로 이동했다.
“…음.”
모진오는 고개를 살짝 아래로 내리고 자신의 배를 쳐다보았다. 검붉은 배갑을 기다란 자루 하나가 관통해 있었다.
불과 수초 전에도 없던 물건이었다.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일이라 그 누구도 상황에 대해서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대처하기도 어려웠다.
손을 들어 배에 박힌 자루를 쥔 모진오는 이것이 창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너무나도 빨리 들어와 박힌 것이어서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던 것이 이제야 스멀스멀 피가 솟아나오며 갑옷 안쪽을 적셨다.
갑옷이 깨져 안쪽 살에 박혀 출혈이 컸다. 모진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하!”
모진오가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자 장제가 백저에서 내려 다가가기 위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모진오에게 닿지 못했다.
사악.
부드러운 소리, 귓가를 간질이는 얇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바람 소리와 흡사해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소리가 지나간 후 장제의 몸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순간 모진오의 앞쪽에 포진해있던 기마병들도 모두 말과 함께 두 쪽으로 갈라졌다. 모진오에게 시선이 쏠려있는 터라 그들 모두 적절한 대응 한번 못 하고 죽음을 맞았다.
“허…….”
짧은 탄식이 모진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신뢰하던 장제가 두 쪽으로 갈라져 대지에 엎어지고 선두의 병사들이 죽었다.
자신은 초라하게 무릎을 꿇고 배에 박혀있는 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극도의 허탈감. 그것이 모진오가 느낄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창 확실히 돌려주었다.”
장제를 벤 쪽에서 괴이한 인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 자신과 격을 나누던 백모의 장수 마진츠의 목소리였다.
============================ 작품 후기 ============================
2014-08-09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