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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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참(斬)
외전. 참斬
날은 어두웠다. 어두운 황갈색의 구름들이 머리 위로 이리저리 굴곡을 나타내며,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곧 거센 비라도 몰아 칠거 같은 어둑한 날씨였지만, 스산한 바람만 대지 깊숙이 불 뿐, 구름은 빗방울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그런 음습한 어두움이, 도리어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높은 벽 뒤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잿물이 채 마르지 않은 땅 위로, 여러 발걸음이 울려 퍼졌다. 둔탁하고, 무거운 소리. 타버린 그을음을 밟고 움직이고 있었다.
백의의 머리에는 도포를 두른 호인 하나가 선두에서서 걸어왔다. 그의 행색은 추레하고 또 볼품없었지만 걸음 거리는 당당했다. 두 손에 흑색의 두터운 철갑이 씌워져 있어, 팔이 축 늘어졌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를 양 옆에 두 호인이 매우 가깝게 붙어 감시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열 명 정도의 호인들이 허리에 칼을 차고 그를 따르고 있었다. 모두가 백색 갈기를 지닌, 백호들이었다.
그 행렬은 벽을 따라, 곧 입구에 다다랐다. 입구의 문은 이전에 드나들던 것과 같이 평화롭지 않았다. 살벌하고 냉혹한 공기만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제나 따듯한 불을 담고 있었던 화로는, 오늘만은 다르게 시리고, 시린 불꽃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왔는가.”
초병들 사이로, 한 덩치 큰 호인이 도병을 움켜쥔 채로 나와 그들을 맞았다. 손에 철을 두른 호인은 도포 속에서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리아순. 참으로 오랜만이군.”
리아순이라 불린 거체의 호인은 그 대답을 듣고,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뜨며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나국의 전투 이후로 처음 만나는 구만. 햇수로 따지면, 칠년 만인가?”
“아, 그렇게 오래 되었나? 그래, 그간 잘 지내고 있었나?”
안부를 묻는 말에, 리아순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말했다.
“내 전우이자, 친우. 수에르. 자네가 내 안부를 물을 처지인가?”
그 말에 고개를 완연히 들자, 도포 안 쪽에서 시퍼런 눈동자가 들어났다. 피리 부는 수에르의 얼굴이 어두운 도포의 그늘 자락 속에서도 또렷하게 형상이 맺쳤다.
“내 친우의 안부를 묻는 것이, 어찌 처지를 따지는 일인가? 나는 지금 내 두 다리로 서있다네. 내 처지가 그렇게나 안타깝게 보이는 건가?”
수에르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리아순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며 웃었다.
“아. 아. 그래. 친우여, 내 생각이 짧았네. 자네는, 그래. 원래 그랬지. 어느 때던지, 두 다리로 서 서 미소를 지었지……. 그래. 그래. 나는 칠년 동안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네.”
“좋은 소식이군.”
수에르는 눈을 감으며 응답했다.
“리아순 백부장. 이제 그만 길을 열어주시지요.”
수에르를 양 옆에서 따라왔던, 두 호인 중 오른쪽의 자가 리아순에게 권상하며 말했다.
“아, 아. 물론 열어 주어야지. 여부가 있겠나. 하지만 길을 열어주기 전에, 수에르의 왼쪽 자리를 열어주겠나. 그의 곁에서 같이 갈 수 있게 해주게나.”
리아순이 권상을 조용히 받으며 말했다. 수에르의 양 옆에 있던 호인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왼쪽의 자가 슬며시 뒤로 물러나며, 수에르의 왼쪽 곁을 비워 두었다. 리아순은 그 자리로 걸어 들어갔고, 곧 행렬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을 넘어갈 때 즈음에 수에르는 옆의 리아순에게 입을 열었다.
“아내는?”
아주 과묵한 목소리였다. 리아순은 수에르의 옆을 따라 걷는 도중, 그 물음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바로 대답하지 못 함에 수에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네. 대답해 주게.”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이미 감수하고 있다는 듯한 어투였지만, 그 속에는 깊고 깊은 신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리아순은 한 번, 침을 삼켜내고 대답했다.
“유기이는 어제 새벽, 자진自盡했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말은 순간적으로 수에르의 발을 묶었다. 행렬이 수에르의 걸음이 멈춤과 동시에, 정지했다.
“자진 말인가? 정말 자진인가? 그녀가 그렇게 죽었나?”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귀로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것이 자진이었다면, 실로 수에르에게 충격을 주는 일이기에, 리아순은 잠시 손을 들어 그를 계속 연행하려는 병력을 정지시켰다.
“그녀는 너의 명예와 아들의 삶을 위해서 스스로의 손톱爪으로 목을 갈랐네.”
“……. 고통스러웠겠군. 그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이 많았을 텐데.”
수에르의 목소리는 낮게 그르렁데며 울렸다. 그 목소리에는 어떠한 것도 담겨 있지 않아, 무미건조하게 들렸지만, 리아순은 그 속에 수에르의 고통이 깊숙이 자리 잡아 있음을 느꼈다.
“그래. 그렇군. 그렇게 갔군. 나에게는 분에 넘치는 여자였지. 그렇지 않나? 리아순?”
리아순은 수에르의 목소리에 온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입으로 미소를 그리며 답했다.
“아, 그래. 자네에겐 너무 과분한 여자였지.”
리아순의 말에 도포 자락 밑, 수에르의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시간을, 끌 수는 없겠지. 자. 움직이며 말 하세나.”
수에르가 서글픈 미소와 함께 말하며, 두 다리를 다시 앞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를 따라 행렬은 다시 움직였다.
“온주로는?”
“안전하게 있다네.”
“그런가. 혹, 후견後見이 누군지는 아는가?”
“친우여, 그건 알려줄 수가 없다네, 자네도 이해해주게나. 허나, 자네의 후견을 자처하는 이는 굉장히 많으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리아순의 말에 수에르는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걷는 내내 한참 입을 닫았다.
“이제, 다 와가는 군. 뭔가 더 궁금한 게 있는가?”
리아순이 말하자, 수에르는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고스보치님은?”
“아직, 흔적을 쫓고 있다네.”
“그렇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의 대화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걸음은 곧, 장원의 안쪽에 이르러서 끝났다.
장원은 수십의 백호의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고, 그 가운데 마진츠가 서서 행렬을 맞았다.
“왔는가. 텐두린의 아들 수에르.”
“도착했다. 이소호칸의 아들 마진츠여.”
고개를 살짝 숙여 수에르가 대답했다. 수에르를 수행하던 행렬은 마진츠에게 권상하며 예를 갖추었다.
“위대한 대족장이자, 내 아버지. 이소호칸의 생명과 명예를 앗아간 가증스러운 인간의 친우. 수에르여 자네는 어떠한 방법으로 죽을 텐가.”
마진츠의 말에 수에르의 입가는 웃음으로 일그러졌다.
“마진츠여, 내가 어떤 방법으로 죽길 원하나.”
“네, 아내처럼. 자진을 하는 것이 어떻겠나. 그 것이 마지막 네 명예를 존중하게 만드는 행위일 것이다.”
비아냥거리는 마진츠의 말에도 불구하고, 수에르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아니, 자진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명예는 이미 나의 아내. 유기이가 지켜주었기 때문이지. 내 명예에 대한 값은 치렀다. 그렇다면 대족장님의 분憤을 받겠다.”
“네가, 아버지의 노怒를 받겠다고?”
“그렇다. 마진츠. 네가 대족장님을 대신하여, 내게 발하라.”
“수에르!”
리아순이 순간 수에르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네가 대족장님의 죽음에 연루된 것은 단지, 그 인간놈과 친했다는 것 뿐 아닌가. 분을 받겠다니. 차라리 내가 자네의 덴쇼루를 서겠네.”
(※. 덴쇼루 – 호인에게 불명예스러운 일로 죽음이라는 형이 내려질 경우, 가장 솜씨가 좋거나 친한 지인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겨,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고 단 번에 생명을 끊게 하는 역할을 말한다.)
(분, 또는 노를 받다. – 이보다 불명예스러운 형벌이 더 없을 정도로, 무방비 상태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 죽는 형벌이다. 매우 드문 형벌로, 염의 법도에 어긋나게, 즉 정정당당한 대결이 아니고 암수나, 암살, 비겁하게 동족을 살해하면, 법도를 어긴 죄로 잡힌 후, 살해당한 친족이 그를 난자하여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게 한다.)
“아니, 아니요. 리아순. 수에르의 말대로 내가 그에게 아버지의 분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수에르를 설득하는 리아순을 제지하고, 마진츠가 말했다.
“허나, 마진츠…족장님. 분을 내리다니, 단지 친했기 때문에 연루된 것 치고는,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리아순. 친우여, 괜찮네.”
수에르가 수갑이 채워진 두 손으로 리아순을 슬쩍 밀어내며 말했다. 리아순이 수에르를 보며, 어안이 벙벙하여 황당해 하였지만, 수에르가 고개를 젓자, 리아순도 이내 걸음을 뒤로 물렸다.
“마지막, 할 말이 있는가?”
스릉, 마진츠의 도집에서 서슬퍼런 도가 예기를 뿜어내며 바깥으로 나왔다. 어두침침한 날씨에서도 그 도는 빛을 반사하며 날카로움을 뽐내었다.
“아들, 온주로의 진명을 지어주어도 되겠나.”
수에르의 진심어린 부탁이었지만, 마진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온주로는 이제 자네 아들이 아니니, 이름을 지을 권리는 없지.”
냉정하고, 냉혹한 한 마디가 떨어지고, 마진츠의 도가 좌우로 움직였다.
“나의 아버지의 분은 분명 더 크고,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수에르. 너의 담담한 용기의 그릇을 높이 사며, 일합으로 끊어주마.”
도가 정수리 위로 날아드는 것을 보며, 수에르는 눈을 감았다.
‘아들아, 아들아. 나의 아들 온주로야. 못난 아비를 용서 해다오. 네 진명조차 지어주지 못하는 이 아비를 비난 해다오. 네 어미는 너의 이름을 주엄이라 지었지만, 사실 이 아비는 네 이름을 다르게 지었단다. 네 이름을 짓고, 네 이름을 말해주는 날만을 기다렸단다. 분명 네가 크면 이 이름을 네 어머니도 좋아했을 거란다. 아, 아. 수도 없이 네 이름을 꿈속에서 불렀단다. 네 이름은 아나이오. 그 것은, 친숙한, 친하다 라는 뜻. 못난 아비는 이 것을 전하지 못하고 죽는구나.’
‘유기이. 나의 과분한 아내여, 내 사랑이여. 죽어 가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그대를 만나고 싶어…….’
생각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도는 머리를 가르고, 가슴 사이를 내려가, 사타구니를 양분하고, 두 팔을 조이던 쇠를 끊었다.
일격에, 수에르는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고, 무릎이 꿇렸으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평년 778년 12월 말. 해가 지나가기를 몇 일 앞두고, 백모의 가장 쾌활한 소리가 지다.
============================ 작품 후기 ============================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칠성국이 돌아왔습니다! 라고 하기엔 외전으로 돌아와서 뭔가 죄송합니다.
본래, 2부 분량을 바로 쓰려고 했으나, 음. 수에르의 이야기를 마쳐놓지 않고 이대로 그냥 끝내버리면 조금 안타까운 면이 있어서… 외전으로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전자 출판 된 1,2,3,4권에는 없는 오직, 조아라 노블레스에서만 보실 수 있는 외전이니, 여러분을 위한 트…특전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우…오랫만에, 글을 쓰려니까. 정말… 잘 안써집니다. 힘이 정말 많이 드는 군요. 기력이 쇠하는 듯 합니다. 원하는 퀄러티도 나오지 않는 거 같구요. 이 글은 탄생한지 30분도 안되는 따끈 따끈한 글입니다. 으으…
현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주말까지 일을 하는 처지라서, 글을 집필하는 시간이 정말 나지를 않고 있습니다만,
어떻게든 느리지만 연재는 할려고 합니다. 이건…의지입니다. 의지. 정기적으로 못할 수도 있지만, 2부는 반드시 연재될겁니다. 이러다가 업무가 좀 느슨해 지고 체계가 잡히면 정기적으로 연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기다려주신 독자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2부는 금방 찾아뵈리라 약조드립니다.
-비루한 비인기 작가 서이피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