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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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말[言]
커다란 장원에 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바늘을 떨어트린다면 바늘 소리가 그대로 장원에 있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깊은 고요함이었다.
하지만 장원에 서있는 호인들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그것은 자신들의 언어였다.
그 한마디 외침은 분명히 자신들에게 내친 일갈이었다. 그 말은 ‘그만! 그만하라!’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은 한 호인의 일갈에 의해 끝이 났다.
“어떤 녀석이냐! 어떤 녀석이 감히 나에게 그만두라 말한 것이냐!”
노비츠는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콧바람을 세차게 내뱉으며 말했다. 그의 손은 아이들의 피로 범벅이 되어 핏방울이 괴기스럽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의 자랑인 노란색 의복의 소맷단도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노비츠는 분노하며 자신에게 그만두라 한 녀석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그의 그런 바람은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다. 아이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쓰는 언어로 말이다.
“그만! 어찌하여 우리 죽는다.”
그것은 정말 조잡하기 짝이 없는 울음이었다.
인간의 성대로 호인의 성대의 울음을 따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도 했고, 어휘 또한 맞지 않았다.
하지만 호인들은 인간이 자신들의 언어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기에 소년의 말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보통 인간 노예를 다룰 때엔 호인 하나가 인간의 글쓰기와 말을 익혀 통역했다.
인간이 호인의 언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했기에 귀찮긴 하여도 호인이 인간의 말을 배워 그들을 조율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던 것이다.
호인이 인간의 언어를 배운다면 인간의 말이 능숙하지는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발음할 순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호인의 언어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호인의 언어를 인간의 성대로는 도저히 익숙하게 외치지 못해 따라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호인의 말을 단지 짖는 것으로만 생각한 것도 호인의 언어를 익힐 수 없는 데 단단히 한몫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 소년이 호인의 말로 외치니 노비츠도 적잖게 당황했는지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노비츠는 입가 한쪽을 말아 올리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에게는 인간 소년 하나는 발길에 흔히 차이는 돌멩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나약하고 유약한 것이 감히 자신에게 소리쳤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나 놀라운 마음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노비츠는 얼굴을 씰룩이며 소년에게 다가갔다. 저 소년의 목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분질러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년은 무섭고 억압된 분위기가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결코 기죽지 않고 당당히 서서 노비츠를 노려보았다.
노비츠는 소년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바로 두 손을 올려 소년의 목을 꺾어버릴 채비를 하고는 긴 횡선을 그리며 소년의 목을 잡았다.
덥석.
노비츠의 핏방울이 맺힌 손과 손톱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짧은 간격을 두고 오른쪽 손은 소년의 목 언저리에서, 왼쪽 손은 소년의 눈동자 앞에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만두시는 게 좋지 않겠소, 노비츠 공.”
백모의 아버지 이소호칸이 노비츠의 두 하박을 강하게 잡아챈 것이었다.
노비츠의 손은 소년의 얼굴에 몇 방울의 피를 튀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노비츠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비츠는 자신의 손을 쥐어 잡고 있는 이소호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비틀었으나 쉬이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이소호칸!”
노비츠가 노하여 이소호칸에게 존칭을 하지도 않고 이름을 불렀다.
장원에 있는 모든 백모 지파의 호인들이 흠칫하며 어깨를 떨었다. 대족장의 불명예는 곧 백모 지파 모두의 불명예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두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소.”
이소호칸은 자신이 능멸당했음을 알고서도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며 말했다.
이소호칸의 힘이 직접적으로 노비츠에게 가해졌다. 노인이지만 터질 듯한 근육에서 나오는 괴력은 젊은 노비츠라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노비츠의 얼굴에 난감한 안색이 떠올랐다.
“저 녀석은 나를 능멸했소. 인간 따위가 나를 모욕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오?”
노비츠는 이를 부딪치며 이소호칸에게 말했다.
이소호칸은 노비츠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시오, 노비츠 공. 저 아이들은 강제께 보낼 예물이오. 그 예물을 사신의 손으로 죽이게 두는 것을 내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그제야 노비츠도 이소호칸의 말에 수긍했다.
이소호칸은 노비츠의 괘씸하고 예의 없음을 잘 알고 있지만, 강제에 대한 충성심만은 그 누구보다 높다는 사실도 알았다.
어찌 보면 강제를 언급하며 대화한다면 그 누구보다 다루기 쉬운 호인 중 하나였다.
“좋소! 내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이지 않겠소. 강제를 위함이니 예물에 손대는 일은 하지 않겠소.”
노비츠가 흉하게 눈빛을 부라리며 말했다. 자신의 화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소호칸은 노비츠의 말을 듣고 그의 손을 풀어주었다. 노비츠는 이소호칸에게 강력하게 봉쇄된 자신의 팔이 풀리자 어깨를 돌리며 잡힌 부분을 매만졌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무분별하게 도망치게 놔둔 것은 분명 백모 쪽의 잘못이 크오! 그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으리라 보오. 나는 그것에 죄를 물을 것이오.”
“옳은 말이오, 노비츠 공.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우리의 잘못이니 내 크게 보상하리다. 솔직히 이런 사태가 공 앞에서 벌어진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이오.”
이소호칸이 정중히 말했다. 그리고 손짓하여 백모 지파의 한 호인에게 서있는 소년을 창고로 데려가라 명했다.
“저 소년은 내가 처리하도록 하겠소. 그리고 아이들의 곱절을 새로 뽑아 드리도록 하겠소. 그만 노여움을 푸시오, 노비츠 공. 내 공을 위해 따로 빼놓은 질 좋은 명주가 있소이다. 강제께 드릴 예물이 아닌 공을 위해 마련한 것이니 노곤한 여행길에 목을 축이시길 바라오.”
그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카츠루기도 나와 노비츠를 향해 말했다.
“노비츠 공, 이소호칸 어른께서도 저리 말씀하시는데 노비츠 공께서 강제 사신의 깊은 아량으로 화 푸시길 바랍니다.”
노비츠의 얼굴에는 불만기가 가득했지만 주변을 보아하니 흉흉한 분위기가 일어나는 것을 그도 알 수 있었다.
백모 호인들은 아직도 노비츠가 대족장에게 행한 괘씸한 언사를 기억하고 있었고, 강제께 보낼 예물을 함부로 해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나 그에게 불리한 것이었다.
노비츠는 입술을 한껏 내려트리면서 짜증을 표명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떡이며 이소호칸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소호칸은 서둘러 아이들을 열 명 정도 더 추려내 노비츠에게 주었고, 노비츠는 그것을 받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백모 지파를 나섰다.
백모 지파의 호인들은 노비츠가 나가자 침을 뱉으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오직 카츠루기만이 이렇게 된 상황에 안타까워하며 이소호칸의 마중에 임하였고, 이내 강제의 사신단은 올 때와 같이 순식간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백모 지파의 장원에 어린아이들의 붉은 피를 흩뿌리고 불쾌함만을 남겼다.
============================ 작품 후기 ============================
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