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16
0016 / 0124 ———————————————-
2. 말[言]
어린 마음에 그들을 죽여서라도 이 분노는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대답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자신의 생명이 달린 질문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모르겠습니다.”
어렵사리 입술을 뗀 등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모르겠다? 왜지?”
“당신들은 제 부모와 동족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었습니다. 처참히 훈제 처리하여 마차 가득 싣고 온 것을 보고 커다란 분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말을 듣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전 살기 위해 다양한 것들을 죽이고 먹으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전 호인을 증오하고 미워하면서도 호인이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어린 제 감정은 참으로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등편이 말하자 이소호칸은 끄떡끄떡거리며 등편의 마음에 담긴 자신들에 대한 생각을 수긍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것은 다시 이어지는 등편의 말이었다.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무엇이냐? 대답할 수 있다면 대답해주마.”
“왜 아이들과 저를 살려둔 겁니까?
이소호칸은 점점 이 소년과의 대화가 즐거워졌다. 어린 나이에 드물게 혜안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숙함과 특출함이 남달랐다. 야무짐이 가득 찬 태도와 모습도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왜 너와 아이들을 살려두었을 거라 생각하느냐?”
자신이 누군지 물어볼 때와 마찬가지로 이소호칸은 등편을 떠보았다. 이소호칸은 등편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어보길 원했다. 그런 마음이 계속 등편에게 역으로 되묻게 했다.
“혹 신선한 고기를 얻기 위해서…입니까?”
등편은 말 중간에 뜸을 들이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등편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신이 멀리 떨어진 산에서 동물을 잡았을 경우, 집에 가져가기 위해 곧바로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고기의 보관과 신선도의 문제였다.
등편은 어린 날에 동물을 잡아 바로 죽이고 집으로 가져갈 때를 생각했다. 죽은 동물은 무거워질 뿐만 아니라 악취가 진동하고 쉽게 썩었다.
그렇다면 차선으로 고기를 훈제하면 됐었는데, 등편은 재주가 좋아 고기를 훈제 처리하는 것도 솜씨 있게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훈제 고기와 생고기의 맛의 차이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육즙이 다 빠져 퍽퍽한 마른 고기와 육즙이 잘잘 흐르는 물컹한 고기는 맛의 차이가 극명했던 것이다.
훈제한다면 보관은 용이하나 맛의 변화가 농후하게 차이 나기에 살려둘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살려두어 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상황을 빗대어 자신과 아이들의 상황을 유추했다. 결국 호인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연유는 보다 신선한 고기 때문일 거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등편은 말을 더 신중히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이곳에서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음…….”
이소호칸은 소년이 거기까지 추론해낼 줄은 역시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답을 쉬이 해줄 수 없었다.
소년의 대답은 자신의 범주를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확실한 진실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말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다른 대족장이나 강제는 분명 가장 어린 몇 명의 아이들을 잡아먹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기는 어리면 어릴수록 그 육질이 좋아 여러 호인이 가장 애호하면서도 먹기 힘든 것이었다.
수천이 잡혀왔으니 개중 수백, 수십은 등편의 말대로 훈제 육이 아닌 신선도를 유지한 고깃덩이 신세가 될 것이다.
“일부는 그렇게 먹히기도 한다.”
이소호칸은 사실대로 말했다. 소년에게 일부러 진실을 숨겨 자신이 득 볼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소호칸의 대답을 듣고 소년의 얼굴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소년은 분명 자신 또한 죽게 되리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난 아니다.”
이소호칸이 갑자기 손을 쭉 빼어 등편의 얼굴 앞에 갖다 대었다. 흰 털이 수북하게 나있는 두툼한 손가락이 등편의 시야에 잡혔다.
“다른 대족장이나 강제께서는 어린 인육을 즐겨 먹기 때문에 개중 여럿은 진중에 도착하자마자 잡아먹힐 것이다. 네 말대로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죽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연유다. 하지만 나는 너희의 생명을 그렇게 쓰지는 않을 것이다.”
등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소호칸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네 눈앞에 있는 내 손이 어떻게 생겼느냐?”
등편은 이소호칸의 물음에 손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짧고 뭉툭했다. 그리고 두터웠다.
등편은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그대로 말했다.
“짧고, 뭉툭하며 두텁습니다.”
“그래, 그렇지. 범족의 손가락은 인간과 다르게 짧고, 뭉툭하고, 두텁다. 그리고…….”
뭉툭한 손끝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손톱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손톱은 촛불에 비쳐 노란 광택을 자랑했다.
“어떠한 것보다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지. 그래, 그래서 우리는 무기를 쥐거나 사냥감을 낚아채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전무하다. 이 집을 보아라. 그리고 이 탁자, 네가 누웠던 침상과 이불, 네가 입고 있는 옷, 내가 입고 있는 옷, 방을 환히 밝히는 초. 이 모든 것은 바로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인간, 인간이 말입니까? 어떻게?”
이소호칸이 지명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등편의 마음에서 의문이 거세게 일어났다. 호인이 아니라 인간이 이것들을 만들었다니,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보단 파괴하는 일이다. 파괴하고 노략하고 약한 자를 죽이는 것이 익숙한 손이지.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의 손은 만들어내고, 새로운 것을 꾸미고, 경작할 수 있는 손이지. 그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을 잡아오는 것이다.”
등편은 이소호칸의 말을 듣고 그들이 왜 어린아이들을 살려 잡아오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명실상부하게 호인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다른 지파에서는 인간을 먹기 위해 기르는 곳도 있다. 나는 너에게 굳이 이런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겠다. 이것은 우리 종족의 습성임을 너도 잘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젊었을 적엔 인간을 그리 홀대하고 박대했다. 하지만 근간에 이르러 그러한 생각이 범족 전체적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더 발달해 있다. 그래서 우리보다 약하지만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가 인간을 무분별하게 죽이던 옛날과는 다르게 인간을 단지 먹는 것이 아닌 다른 방안으로 활용한다.”
“다른 방안으로 활용…한단 말입니까?”
“인간에게 범족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맡기는 것이다. 논을 개간한다든지 옷과 도구를 만드는 것을 시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범족이 이 정도로 문화적 윤택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의 도움 덕분이지.”
이소호칸은 기다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등편의 맑은 두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침을 삼키고 입술을 떼었다.
“그것은 호인의 노예가 아닙니까?”
“맞다.”
이소호칸의 긍정의 단답은 너무나도 냉정하고 냉철하게 들렸다.
인간을 노예로 쓰는 사회. 그것이 바로 호인들의 삶이었다.
등편이 기분이 상해 살짝 얼굴을 찌푸리자 이소호칸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선택을 강요하겠다. 너는 네 삶을 우리의 노예로 바칠 것인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인가?”
============================ 작품 후기 ============================
2014-07-30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