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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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움[學]
해가 밝아오자 이소호칸은 밖으로 나섰다. 그 뒤를 무명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따라나섰다.
이소호칸은 무명의 발걸음에 맞춰주기 위해 폭을 좁게 걸었다.
어린 무명의 걸음걸이는 달음질이라 할지라도 그가 걷는 속도보다 못했기에 이소호칸은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무명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이소호칸을 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일부러 느리게 걷는 그의 모습이 왠지 우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소호칸의 큰 몸집은 밖으로 나오자 태양 빛을 받아 부풀어 올랐는지 더욱 커 보였다.
방 안에서 앉아있을 때와 달리 허리를 쫙 편 이소호칸의 키는 무명의 세 배쯤 되는 듯했다. 고개를 들어야 어깨가 어렴풋 보이는 것이 다른 호인에 비해 1.5배가량 더 큰 거체였다.
“새벽 공기가 상쾌하구나. 그렇지 않느냐, 무명아.”
이소호칸은 무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의 옥색 눈동자는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이소호칸의 태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명에 대한 호의는 참으로 진실했다.
무명은 그런 따듯한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의지하고 믿어도 될 만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이토록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인지는 무명이 이 상황을 겪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었다.
갖은 고초를 겪고 여기까지 와서 이소호칸의 신임을 얻은 무명은 근간 가장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예, 어르신. 여름인데도 공기가 시원한 것이 기분이 좋습니다.”
이소호칸은 대답하는 무명을 들어 안았다.
무명은 순간 당황했으나 굳센 이소호칸의 손에 들려 순식간에 어깨 위에 얹히니 넓게 보이는 주변 경관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지금까지 무명은 경관을 볼 일이 없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소호칸의 어깨에서 보이는 경치는 사뭇 놀랄 만한 것이었다.
수백, 수천 개의 돌산들이 빽빽이 담장 너머에 솟아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를 비틀어진 소나무가 녹음을 자랑하며 이파리를 푸르게 펼치고 있었다.
해가 가장 길쭉하고 높이 솟아오른 돌산 언저리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가히 장관이었다.
무명은 산을 자주 탔기 때문에 돌산은 흔하게 접해 높은 산 위에서 보이는 경관들은 많이 보았지만, 이처럼 돌로만 이루어진 돌덩어리들이 예술 작품처럼 삐죽삐죽하게 서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침 햇살을 받은 백모봉의 모습이다. 장관이지 않느냐? 네 키가 작아 담장 너머가 안 보일 터라 어깨 위에 올렸다. 무섭지는 않느냐?”
무명은 고개를 세차게 도리질 치며 말했다.
무명의 얼굴엔 두려움이나 공포보다는 벅찬 감정이 가득했다.
“이런 장관은 처음 보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그래, 하얀 돌무더기가 우리네 털색과 같아서 백모봉이라 부르느니라. 아침 햇살을 받으면 그 각도가 경이롭게 비추어 더 희게 되지. 나는 저 봉우리들을 매우 아낀다.”
아침 햇살이 백모봉의 모퉁이를 타고 고개를 들어 올린 이소호칸의 얼굴과 무명에게 쏟아지자 이소호칸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만연했다.
“범족이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 종족이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저 장면을 매일같이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내 언제고 너를 데리고 저 봉우리들 사이를 누벼보겠다. 저 돌들 하나하나가 내 키보다 수십 배는 높고 크다는 것을 직접 가서 보게 된다면 더 놀랄 것이야.”
이소호칸은 무명에게 그렇게 말하곤 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탄 무명은 이소호칸의 빠른 걸음에 의해 생긴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와 햇살, 그리고 백모봉의 장엄함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잊게 해주는 듯했다.
이소호칸이 무명을 어깨에 얹고 걷자 확실히 아까와는 다르게 속력이 붙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인간으로 봤을 때 20분은 족히 걸을 만한 거리를 5분이 채 되지 않아 왔으니 호인의 속도는 인간의 속도보다 곱절은 빠른 듯했다.
이소호칸의 걸음이 멈춘 곳은 또 다른 장원이었다.
어깨 위에서 장원을 바라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수십의 호인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전부 상의를 벗고 있어 대흉근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흰 털의 갈기와 검은 털의 무늬가 적절히 아로새겨진 몸은 마치 조각과도 같았다.
“대족장님이시다!”
멀리서 한 호인이 이소호칸을 보고 외쳤다.
그들은 수련하고 있었는지 각자 나무로 된 병장기를 들고 있었고 털 갈기 사이는 땀에 젖어 축축해져 있었다.
그들은 대족장인 이소호칸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미리 병장기를 내려놓고 집합하였다.
“백모의 아버지이시여, 일조(日朝)에 문안드립니다.”
무리 중 가장 앞에 있던 자가 대표로 이소호칸에게 말하자 그들은 모두 권상의 예를 취하면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소호칸은 어깨 위에 무명을 올려놓은 채로는 권상의 예를 받지 못하기에 무명을 아래로 내려놓고 권상의 예를 받았다.
“모테의 아들 무라인이여, 이른 시간에 일조 수련을 하고 있구나. 일조 점호도 아직일 터인데?”
이소호칸이 의문을 가지며 묻자 무라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답했다.
“지난 전쟁에서 죽은 동료들을 보고, 약하여 허망하게 죽지 않기 위해 한동안 수련 시간을 더욱 늘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희 모두 잠을 줄여 점호 전에 모여 수련하고 있습니다.”
“젊음이란 좋은 것이지. 잠을 줄여가며 강함을 청할 수 있다니 말이야.”
이소호칸이 허허 웃으면서 무라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무라인의 시선은 이소호칸의 말보다는 발치에 내려진 소년을 보고 있었다.
“대족장 어르신, 외람되오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이 소년은 무엇입니까?”
무라인이 도저히 궁금해 참을 수 없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소호칸에게 물었다.
무라인뿐만 아니라 무라인의 등 뒤에 도열해 있는 호인들도 전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이소호칸에게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냈다.
“내 너희가 미리 나와 수련에 임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이 아이에 대해선 일조 점호 때 말해주겠다. 너희 중 한 명이 지금 당장 고스보치를 누각으로 불러오너라. 그와 긴밀히 할 말이 있다. 너희는 서둘러 복장을 단정히 하고 일조 점호를 준비하라. 오늘은 내가 직접 점호를 주관할 것이다.”
“복명!”
이소호칸이 명령을 내리자 도열한 호인들 모두가 정확히 고개를 숙이고 명을 받들었다.
무명은 그런 모습을 보고 언어는 달랐으나 대하는 행동으로 이소호칸의 권력이 이곳에서 참으로 강력하고 권위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소호칸은 무명을 데리고 근처 누각으로 갔다.
누각은 상대적으로 다른 곳보다 높게 지어져있어 누각에 오른 무명은 주변을 환히 잘 살필 수 있었다. 왼편에는 연못이 하나 있고, 오른편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누각은 담장보다 높게 지어져있어 시야가 확 트였다. 다섯 채의 건물과 반듯하게 포장된 길이 한눈에 보였다.
“내, 너를 나와 함께하는 이들에게 소개하려 한다. 그 전에 하나 확인해볼 게 있구나.”
이소호칸이 누각 위에 앉으며 말했다.
기분 좋은 아침 바람이 이소호칸의 털을 휘날렸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었다.
무명이 그 바람을 맞으며 대답했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어르신?”
“네가 범어를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나에게 알려다오.”
============================ 작품 후기 ============================
2014-07-31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