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4
0024 / 0124 ———————————————-
3. 배움[學]
“족장 어르신, 제가 맡겠습니다.”
한 호인이 손을 반쯤 들고 말했다. 하얀 털에 다른 이보다 상대적으로 얇은 검정 무늬가 얽혀있는 호인이었다.
이소호칸이나 고스보치처럼 거체는 아니었으나 다부진 육체가 감색 천 안에 가득 들어서있고, 호박석같이 노란 눈동자 아래 곧은 콧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호인들은 다부진 턱 선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이자는 턱 선이 조금 두루뭉술하여 유연한 생김새였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열에서 조금 나와주겠나?”
이소호칸이 그자가 있는 위치에 손을 들며 말했다.
그는 두 걸음 정도 열에서 떨어졌다.
“텐두린의 아들 수에르! 오, 자네가 이 아이를 이동 간에 맡아주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어르신.”
수에르라 불린 호인은 권상의 예를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소호칸은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좋다. 그렇다면 이로써 오늘 일조 점호를 마치겠다. 수에르와 고스보치를 제외하고 해산하여도 좋다.”
예상외로 아이를 소개하는 데 시간이 적게 소요되자 이소호칸은 빨리 일조 점호를 끝냈다.
호인들은 일제히 막사로 흩어졌다. 그 많던 자들이 순식간에 장원에서 사라지고 고스보치와 수에르, 이소호칸과 무명만이 남게 되었다.
“피리 부는 수에르, 네가 이 아이를 맡겠다 하니 내 든든하기 그지없구나.”
이소호칸이 활짝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에르에게 말했다.
수에르는 겸손하게 목례하여 긍정을 표했다.
수에르는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젊은 호인이었지만, 일찍부터 강함을 인정받아 이소호칸의 귀에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함보다는 다른 재주로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호인들 중에서도 음악에 재능이 있는 자였다. 특유의 쾌활함과 피리를 솜씨 좋게 부는 그는, 동쪽 지파에서 드물게 예술적인 감성이 넘치는 자였다.
“어르신의 기쁨이 곧 제 기쁨입니다. 하핫, 이 꼬마가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쾌활하게 말한 수에르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그 큰 손으로 헤집어놨다.
무명은 순간 깜짝 놀랐지만 그가 호의적으로 행한 행동임을 표정으로부터 알고 있었기에 그가 머리를 까치집처럼 헤쳐놓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이 아이에게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다네. 자네도 같이 지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호감이 가는 녀석이라네.”
“호감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하핫.”
“응?”
수에르가 이전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자 고스보치와 이소호칸이 동시에 수에르를 쳐다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무명은 그저 멀뚱멀뚱히 상황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수에르는 왼손을 들어 자기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 너무 궁금해하지는 마십시오. 하핫, 제가 이 녀석에게 호감을 가진 연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그는 오른쪽 손을 무명 입가에 건넸다.
무명은 처음에 수에르가 왜 손을 가져다 대는지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수에르가 내민 손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앗, 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하핫! 이제 알겠냐, 꼬마야?”
수에르가 함지박만 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굽히고 무명을 바라보았다.
무명은 수에르의 손을 보고 전날을 기억했다.
그의 손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수에르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았을 때 있는 힘껏 깨물었던 손인 것이다.
그때는 어둡고 워낙 경황이 없어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으나, 수에르가 손을 보여주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니 무명은 그제야 그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어르신, 아십니까? 이 녀석이 제 손을 깨물어서 제가 기절을 시켰는데도 문 것을 놓지 않고 계속 손에 매달려있던 것을?”
수에르가 고개를 돌려 이소호칸에게 말했다.
이소호칸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무명을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소호칸의 시선에 무명이 말했다.
“어, 어르신, 이분은 제가 이전에 결례를 끼쳤던 분 같습니다.”
“네가 수에르의 손을 문 것이 맞구나.”
껄껄, 이소호칸이 웃자 고스보치도 따라 웃었다. 그들의 모습에 무명은 연유를 몰라 계속해서 어리둥절해했다.
“이 녀석이 노비츠 공에게 호통쳤다는 녀석과 동일 인물이겠지요? 고놈, 내 손을 물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아주 뚝심 있는 녀석인 것 같습니다. 전 이런 녀석이 싫지 않습니다, 어르신.”
수에르가 다시 무명과 눈을 마주치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호박색 눈동자가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소호칸은 멀뚱히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무명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무명아, 이자는 텐두린의 아들 수에르라 한다. 네가 수에르의 손을 무는 용기 있는 행동이 그에게 호감을 가져다준 모양이다. 앞으로 이자가 내가 없을 때 너와 항상 같이 있어줄 것이다. 공손하게 인사하여라.”
무명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수에르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수에르가 그 인사를 받고 허리를 폈다.
“수에르, 이 아이를 인간 거주지의 아니안에게 데려가게. 그리고 내일부터는 아침 점호가 끝나면 이 아이를 내 관사로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네.”
“네. 그리하겠습니다, 어르신.”
수에르가 공손히 말하자 이소호칸은 고스보치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병사의 관리 책임은 이소호칸에게도 있지만 고스보치에게도 공동으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고스보치, 괜찮겠나?”
“수에르, 저 친구가 자원한 것이니 제게 불만은 없습니다. 저는 어르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고스보치까지 허락하자 무명의 보호자 역할은 수에르로 완연히 낙찰되었다.
이소호칸은 무명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일정은 내일 아침부터 세부적으로 계획하도록 하자. 오늘은 수에르를 따라가서 인간 거주지에 있는 아니안에게 인간 생활에 대해 배우도록 해라. 아니안은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호인이니 많은 것을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야. 내일 아침 이 시간쯤에 수에르가 너를 나에게 데려오기 위해 마중 나가 있을 것이니 그를 따라 내 관사에 오면 된다. 자, 수에르가 안내해줄 것이니 따라가도록 해라.”
이소호칸은 말하면서 무명의 머리를 정돈해 주었고, 말이 끝나자 수에르 쪽으로 등을 살짝 밀어주었다.
무명은 이소호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떡이며 수에르의 다리맡으로 걸어갔다.
“그럼 어르신, 다녀오겠습니다. 고스보치 님, 다녀와서 바로 일조 훈련에 동참하겠습니다.”
수에르가 인사하자 이소호칸은 웃으며 배웅했고, 고스보치는 ‘그러게.’라고 짧게 대답했다.
수에르는 무명을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무명은 그의 다리가 향하는 곳으로 열심히 쫓았다.
============================ 작품 후기 ============================
2014-07-31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