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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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움[學]
이마진이 눈썹을 찡긋하며 호감을 표시했다. 그러고는 무명의 옆에 붙어 걸으며 일정을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대부분 아니안이 말해주었던 것이지만 이마진의 친절한 호의를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다시 한 번 듣는 것도 무명에게 나쁠 것은 없었다.
조금 걷자 쟁기와 호미가 굴러다니는 땅이 나왔다. 이마진은 그곳을 일터라 불렀다.
일터는 너른 자갈밭이었다. 자갈밭 저 수십 리 끝에는 돌산들이 매섭게 솟아 나와 있었지만, 그 앞까지는 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 황폐한 평야였다. 이리저리 개간한 흔적들이 보이긴 했으나 평야 전체의 십 분지 일도 안 돼 보였다.
이마진은 쟁기를 주워 들고 땅을 내리치는 순간까지 무명에게 이곳 사회를 설명해주기 위해 입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는 무명에게 오늘 하루는 일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라 말했고, 무명은 그의 말에 따랐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사람 한두 무리가 몰리더니 일터에 모여들어 각자 쟁기와 호미를 챙겨 들고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대다수가 아이들이라 일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자갈도 자갈이었지만 호미나 쟁기로 땅을 헤집으면 여지없이 그 아래에는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돌덩어리들이 박혀있었다.
아이들은 낑낑대며 돌을 흙 속에서 파내 옮겨 쌓았다. 빼내고 쌓고, 빼내고 쌓고의 작업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래도 흙 속의 돌들은 끊임없이 나왔다.
중천에 떠있던 해가 어느덧 뉘엿뉘엿 지고 그림자의 길이가 길어졌다.
구릿빛 피부에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다들 몸이 반들반들하게 윤이 났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무명은 일을 거들었다.
이마진은 오늘은 쉬고 어떻게 일과가 진행되는지 차분히 보라 일렀지만, 다들 힘들게 일하고 있는 와중에 자기 혼자만 멀뚱하게 빈둥거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무명의 고집에 꺾인 이마진은 자신이 파놓은 흙 안에 돌덩이를 같이 치우자 말했고, 무명은 웃으며 일에 동참했다.
해가 완연히 져 어둑해지자 아이들은 쟁기와 호미들을 개간지 옆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천으로 덮어둔 뒤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중간에 길옆의 시냇물에서 모두 몸을 담그고 몸을 씻었다. 무명 또한 이마진과 함께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고 열을 식혔다. 간만에 몸을 움직여 찌뿌듯한 무명은 기지개를 힘차게 켜고 옆의 이마진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일과가 끝난 건가요?”
“돌아가는 길에 밥 한 덩이씩을 받아 가면 그걸로 끝이지. 이렇게 하루에 네 끼를 줘. 사실 난 여기서 먹은 밥이 집에서 먹은 밥보다 많다. 먹을 거 하나는 잘 챙겨주지. 물론 기간 내 할당량을 못 채우면 밥의 양이 줄긴 하지만 말이다.”
물을 시원하게 몸 전체에 뿌린 이마진은 젖은 머리를 한쪽으로 밀며 말했다.
무명은 그런 이마진을 슬쩍 쳐다보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변 분위기가 씻는 데 어수선한 틈을 타 이마진에게 물었다.
“호인들은 감시를 안 합니까?”
조용한 울림이었지만 그 목소리는 이마진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이마진은 한쪽 눈썹을 살짝 내리며 말했다.
“감시? 감시 같은 건 안 해. 할 필요가 없으니까.”
“감시를 안 한다면 도망가도 되지 않나요?”
무명이 말을 끝내자 이마진의 표정이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굳어졌다.
이마진은 무명에게 다가와 어깨를 잡았다. 굉장한 악력이 어깨에 전해져 왔다.
“네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접어두는 것이 좋아! 아니안이 말해주지 않았나? 도망치게 되면 죽게 될 뿐이라고. 감시가 필요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땅 전체가 살아있는 감옥이기 때문이야. 도망치는 것은 개죽음을 자초하는 거야.”
“저도 호인에게 잡혀와서 잘 알고 있어요. 그들은 빠르고 강하죠. 하지만 이렇게 감시도 없이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무명이 말을 마치자 이마진은 괴로운 기억이 떠오르는 듯 눈을 감고 부르르 떨었다. 그 떨림은 어깨를 잡은 손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넌 모른다, 모르는 게 당연해. 넌 이제 막 왔을 뿐이니까. 그리고 사흘 전에 온 아이들도 아무것도 모르니 도망가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하나만 알아둬. 여기서 빠져나가려 했던 아이들 중에 단 한 명도 살아남은 녀석이 없어. 도망? 애초에 그런 단어를 마음속에 품지 않는 게 좋아. 넌 도망가서 잡혀온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지 못해서 모를 거야. 아니, 곧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다시는 도망칠 생각을 못할 거야.”
그 말을 듣고 무명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이마진의 표정이 전과 달리 너무나도 굳어있었기 때문이다.
무명은 아니안에게 도망치는 아이들이 잡아먹힌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다. 무명은 의문을 가지면 그것을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아이였다.
무겁게 떼어지는 입술이었지만 무명은 이마진에게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정말로 잡아먹히나요?”
“아, 그래. 아니안이 말해주긴 했나 보구나. 정말 잡아먹힌다. 진짜로! 모든 아이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큰 솥에 물을 끓이고, 거기에 산 채로 도망친 아이를 넣고 끓여 죽인다. 그리고 고기가 익으면 호인들이 그걸 먹지. 제기랄, 젠장! 나는 그걸 여덟 번이나 봤어. 그중 하나는 내 절친한 친우였단 말이다. 그걸 봐버리면 뇌리에 반년은 남고 밥도 제대로 못 넘기지. 호인들이 사람을 뜯어먹는 장면을 한 번이라도 보게 되면 그 누구도 도망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하지만 매번 신입들이 들어오면 도망치는 무리가 꼭 있지. 하지만 나는 네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으면 한다. 너는 대족장에게도 신임을 받고 있지 않냐. 도망은 생각하지도 말아라. 알았지? 부디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이마진은 말을 마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무명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무명은 이마진을 보고 고개를 상하로 흔들어 도망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흔듦을 보고서야 이마진은 무명의 어깨를 놔주었다.
대화를 마치자 다른 이들은 벌써 세면을 마치고 물가에 나와있었다. 이마진과 무명은 그 모습을 보고 서둘러 물기를 털어낸 후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가는 길에 밥을 받은 그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고 이부자리를 편 다음 죽은 듯이 잠에 빠졌다. 고된 노동에 매일매일 피곤함이 누적된 탓이었다.
이마진도 지쳤는지 밥을 먹고 아이들 몇몇을 챙겨준 후 잠들었고, 무명만이 낮잠을 조금 잔 탓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워 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어둠만이 보였다.
잠자리가 부족해 서로가 서로를 겹쳐놓을 정도로 불편한 자리였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고 잘도 자고 있었다. 무명의 다리에도 누군가의 손과 발이 올라가 있었지만 자리가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
한참 천장을 쳐다본 무명은 숨소리만 고요히 울리는 방 안에서 나직이 입을 떼었다. 그것은 자신이 내린 결론이었으며 자신의 마음가짐이었다.
“내 앞에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난 여기에서 나갈 것이다.”
그 말은 거의 웅얼거림과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귀에도 희미하게 들렸지만 자신이 한참을 생각하고 선택한 마음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그 말을 마친 후 무명은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방 안은 곧 아이들의 피곤한 숨소리만으로 가득 찼다. 깨어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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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