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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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편지[書]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오후 일을 하러 일터로 갔다.
이마진은 걸으면서 무명에게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인간이 관리하는 농장은 주변에 세 군데가 있는데, 그는 남자들만 사백오십 명 정도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들어온 애들을 합하면 오백이 좀 넘을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이 근처의 인간 거주지는 약 이백을 수용하면서 대족장의 관사 근처의 영지를 개간하고 수확하는 것을 담당하거나, 강철을 제련하고 건물 만드는 일을 하는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농지를 개간하는 작업은 팔십 명 정도가 하고 있었는데, 모두 열 개 조로 이루어져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마진과 같은 숙소의 아이들은 세 번째 조였다.
이마진이 신나게 쫑알거리면서 걷자 그들은 금세 일터에 도착했다.
이마진은 허리 숙여 일터 근방에 굴러다니는 쟁기를 들려고 했지만, 그때 무명이 다가와 호미를 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살짝 귀띔했다. 이마진은 무명의 말을 들은 후 쟁기를 놓고 호미를 쥐었다.
“왜 호미야?”
“보시면 알아요.”
무명은 호미를 쥐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호미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마진은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눈썰미 좋게도 무명이 호미로 뭔가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그림이 무엇인지 깨달은 이마진은 손등을 탁 치곤 감탄하며 말했다.
“호미로 땅을 파면서 글을 쓰는 거구나!”
“맞아요.”
무명이 이마진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이마진도 같이 무명 근처에 주저앉았다.
쟁기를 든다면 일어나 허리를 펴고 쟁기질을 해야 했기에 땅에 글을 새길 수 없었다. 하지만 호미라면 충분히 일을 하면서도 글자를 땅에 쓸 수 있었다.
“땅을 파헤치면서 글자를 쓸게요. 오늘 배운 것부터 알려 드릴게요. 사실 저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서 아는 게 많지 않네요. 배우는 대로 하루하루 쓰면서 공부해봐요.”
무명은 호미로 땅을 파면서 획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글자에 대한 뜻을 알려주었다.
이마진은 무명이 하는 그대로 획을 땅에 그으며 글자를 써 내려갔다. 그러곤 한 번 알려준 글자는 땅을 파면서 계속 혼자 복습했다.
땅속에서 돌덩이가 나올 때까지 둘은 신나게 글자를 쓰며 땅을 갈아엎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었지만, 호미의 끝은 땅을 연습장 삼아 수많은 글자를 땅 위에 새겼다. 그렇게 신나게 글을 쓰며 땅을 파헤치자 오후 일과는 금방 끝나게 되었다.
날은 금방 어둑해져 무명과 이마진들은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무명은 잠에 빠져드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에 배운 것들을 계속해서 복습했다. 무서운 집중력이었다. 심지어는 꿈에서까지 공부할 정도였다.
해가 기웃거리며 떠오르고 날이 밝아오자 무명은 수에르가 오기 전에 일어나 씻고 몸단장했다.
수에르는 정확히 어제와 같은 시간에 왔다.
무명은 그를 밝게 맞았다. 무명이 범어로 아침 인사를 하자 수에르는 신나서 떠들었다.
하지만 무명은 수에르가 신이 나서 말하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너무 빨랐던 탓이다.
무명은 별 대꾸도 못 하고 이소호칸의 장원에 내려졌지만 수에르는 마냥 기쁜 듯 웃었다.
이소호칸을 만난 무명은 수에르의 말을 이해 못한 것이 너무나도 죄스러웠는지 배움에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물었다.
“어르신, 혹시 ‘천천히 말해주시기 바랍니다.’가 범어로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이소호칸은 무명의 그런 물음을 듣고, 쾌활한 수에르가 무명이 아직 이해하지 못할 말을 범어로 쏟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 말을 알려준 후 이소호칸은 어제에 이어 글쓰기를 시켜보았다.
무명은 어제에 비해 한결 나은 실력으로 붓을 놀려 글을 써 내려갔다. 말하자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얼마나 연습했느냐? 가르쳐준 글을 꽤나 능숙하게 쓰는구나?”
“머릿속에 익을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했습니다, 어르신. 제게는 어휘와 글이 연관돼서 연상이 잘 안 되는 듯해 잠을 자기 전까지 머리로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이소호칸은 대견하다는 듯 무명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렇다면 바로 어휘 공부로 넘어가자. 쓰는 것은 네 복습과 과제로 두겠다. 앞으로는 어휘를 가르쳐주고 한 번씩 써보는 것으로 글공부를 끝내고, 역사 이야기를 좀 들려주마.”
무명은 이소호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했다.
이소호칸은 자상한 표정을 지으며 성심성의를 다해 무명을 지도했다.
무명은 어휘에 대한 습득력이 뛰어나 역시 금세 터득하고 입으로 말하였지만, 글을 써보는 것은 영 익숙해지질 못하겠는지 삐뚤빼뚤하고 획이 엉망이었다.
그때마다 이소호칸은 획을 수정하고 올바르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힘겹게 한 번 쓰고 나자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 이소호칸은 밥을 가지고 와 무명과 함께 먹었다.
“음,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먹으면서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마.”
이소호칸이 밥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무명은 초롱거리는 눈동자를 보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역사를 말하자면 어디부터 이야기해야 될지 참 감을 잡기가 힘들구나. 참으로 다양한 국가들과 종족들의 역사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세계가 태어난 전설부터 이야기해 주마.”
말을 살짝 끊으며 이소호칸은 밥을 넘기기 위해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방도가 없다. 다만 아주 먼 옛날이라고밖에 표현을 못 하겠구나. 그 옛날에 한 여인이 깊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고민은 바로 그녀가 잉태하고 있는 생명들이었는데, 그 생명들이 살아갈 장소가 없었던 것이지. 그녀는 자신의 살과 뼈로 생명들이 살 자리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눈물이 바다가 되고, 그녀의 살과 뼈들이 대지가 돼서 이 세상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이소호칸은 자신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인 무명을 보고 슬며시 미소 지었다. 배우려는 태도가 아주 또렷했다. 이소호칸은 그런 무명을 보고 내심 기뻐하며 말을 계속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전부 세상을 만드는 데 사용해서 더 이상 생명을 품을 수 없게 되었지. 그래서 생명들을 하나의 동굴에 잉태시켰다. 그녀는 자신의 열여섯 형제와 자매들에게 그 생명을 맡기고 사라졌다. 그녀의 이름은 만물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서이피니라 부른다. 그녀의 형제들은 동굴에서 생겨나는 생명의 알을 품어 이 세상에 생명체들을 탄생시켰단다. 하지만 형제들 중 알을 제대로 품지 않은 자가 있어 이 세상에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들이 생겨나게 되었지.”
이소호칸의 말은 매우 신비스럽게 들려왔다. 어머니에게 옛날 민담이나 동화를 몇 가지 들어본 적은 있었으나 이소호칸이 말해주는 역사에 비해서는 얕은 지식이었다.
무명은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 단 한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귀를 기울였다.
“알을 제대로 품지 못한 자는 복수자의 이름을 가진 사아르가였다. 자신의 알에서 다른 형제들보다 도태되고 어리석은 생명체인 동물들이 나오자 사아르가는 분개해 다른 형제들과 반목하고 전쟁을 벌이게 되었단다. 그는 형제들을 이간시키고 서로를 배반하게 하여 싸움을 일삼게 했다. 하지만 끝내 싸움에서 패배하자 여신이 숨겨놓았던 생명을 관리하던 소나를 꾀어 그것들을 데리고 다른 세계로 도망가게 되었지.”
이소호칸은 혼자 계속 말을 이어서 목이 타는 듯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곤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계속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사아르가 때문에 모든 형제들은 낙담했지. 생명을 잘 보살펴 달라는 서이피니의 부탁이 사아르가 때문에 깨지게 된 것이야. 그래서 그들은 깨어진 맹약을 주워 담지 못한 채로 쓸쓸히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 생명들은 어떻게 된 거지요?”
무명이 남겨진 생명들이 궁금하여 서둘러 물었다.
그 질문에 이소호칸은 입가에 미소를 물고는 무명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형제들의 보살핌이 없어진 생명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지. 그 시초가 바로 용정(龍鄭)이다. 너는 아직 어려 이 대륙이 어떻게 생겼는지 감도 못 잡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머나먼 서쪽으로 가면 그곳에는 용정이 있다. 그리고 용정의 동굴에서는 생명을 잉태한 알이 지금도 생겨나고 있지. 인간도, 범족도, 도깨비들이나 용들도 다 그곳에서 태어났다.”
“그럼, 그 많은 존재가 본래는 서이피니의 생명에서 태어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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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