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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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편지[書]
늦은 저녁, 모두가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음울함에 지쳐 잠이 든 때였다.
무명 또한 낮에 있던 선명한 장면들이 뇌리에 오랫동안 남아있어 잠을 쉽게 청할 순 없었으나 밤이 깊어오자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깊게 잠든 숙소에서 두 인영이 슬쩍 몸을 일으켰다. 두 인영은 일어나 자고 있는 아이들 사이로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었다.
그들은 무명이 자고 있는 침상까지 오더니 그중 한 명이 급작스럽게 무명의 입과 목을 잡아채었다. 다른 한 명은 몸뚱어리를 잡아 들었다.
무명은 급히 일어나 소리치려 했지만, 이미 입은 헝겊을 덧댄 두터운 손으로 꽉 막혀있었고 목마저 눌려 있었기에 소리 하나 낼 수 없었다.
무명은 급작스러운 고통에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둘의 손에 끌려 밖으로 나왔다.
일각 정도를 둘의 손에 끌려 나온 무명은 내동댕이쳐졌다. 등부터 떨어진 무명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숨도 제대로 못 쉰 데다가 워낙 경황없이 끌려 나와 제대로 된 낙법조차 할 수 없어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등에 받은 것이다.
찌릿찌릿한 격통이 온몸에 퍼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무명은 안면을 한껏 찡그리며 자신을 여기에 내동댕이친 자들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돌리자 두 명의 얼굴이 보였다. 무뚝뚝한 인상 사이로 사악함이 엿보였다.
그 둘은 주타와 고누였다. 주타는 넓적한 메주 코에 두터운 턱을 가진 아이였다.
맨 처음 숙소에 왔을 때, 식사 시간에 늦는다 말한 자였다. 고누는 얇실하게 생겨 두 눈 끝이 살짝 찢어진 채로 치켜 올라간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견으로 보아도 간교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둘은 쓰러져 고통에 겨워 아파하는 무명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옷째로 잡아 들어 올려 나무를 등지고 일으켜 세웠다.
“야, 이 새끼야. 어디서 눈을 부라려?”
주타는 침을 퉤 뱉으며 일어난 무명의 배에 발차기를 가했다.
무명은 허리를 굽히면서 배를 움켜잡았지만, 고누는 무명의 어깨를 움켜잡고 다시 등을 나무에 받히게 일으켜 세웠다.
무명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처음 왔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썩을 놈, 네놈 새끼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피해를 보고 있는 줄 알아?”
“그래, 오전에 그렇게 쪼르르 사라져 버리니 기분이 좋냐?”
둘은 부여잡고 있는 배에 다시 주먹을 가격했다.
찌푸린 인상이 뒤틀리다 못해 흉하게 일그러졌다. 무명은 위액이 올라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토해내었다.
아이들이 솥에 삶아질 때도 구역질이 나지 않았지만, 명치를 여러 번 가격당하자 몸은 절로 구역질을 해대었다.
“이마진 형님 곁에서 꼬리나 치고 말이다. 아니꼬운 녀석. 재수 없어. 새로 오는 녀석들은 왜 이렇게 개념이 없는 거야?”
“네놈같이 개념 없는 새끼들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녀석들이 도망쳐서 밥도 못 먹고 일감도 늘어나잖아! 개자식아!”
그들은 점심에 있었던 도망을 빌미로 무명을 계속해서 갈구고 괴롭혔다.
어투는 달랐지만 결국 말하는 주제는 똑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무명 때문에 일이 더 많아졌다. 도망쳤기 때문에 밥을 못 먹게 되었다. 새로 온 녀석들은 애초에 때려놔야 된다. 이마진의 곁에서 쫄랑쫄랑 붙어 다닌다와 같은 이유였다.
그들은 한 시간가량을 무명을 둘러싸고 때리며 욕설을 했다.
“개새끼, 그래도 너 잘났다고 눈 안 까냐!”
무명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그들을 험하게 바라보자 주타가 화가 난 상태로 무명의 안면을 가격하려 했다. 하지만 고누가 그 손을 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굴은 때리지 마. 티 난단 말이다. 티 안 나게 때리라고.”
고누가 말하자 주타는 화가 나는지 무명의 얼굴에 가래를 뱉어내었다. 그러곤 허벅지를 발로 강하게 찼다. 그 충격으로 무명은 중심을 잃고 풀썩 넘어졌다.
“건방진 새끼야, 네가 그렇게 해봤자 득 될 거 하나도 없다는 거 알아둬라. 이마진은 너를 아껴주고 잘 대해주라 말했지만 우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우리가 왜 너 따위에게 잘해줘야 하는데?”
“주타, 됐다. 이만하자. 앞으로 날은 많으니까.”
더 손찌검하려는 주타를 막아선 고누는 쭈그려 앉아 무명과 시선을 맞추었다. 그는 무명의 턱을 손으로 쥐고 볼을 탁탁 쳤다.
“이마진에게 말 안 하는 것이 좋을 거다. 어차피 네가 말해봤자 이마진은 우리에게 쉽게 손찌검할 수 없지. 하지만 우리는 달라. 우리는 일러바치는 녀석을 안 좋아하거든. 다음번에 더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살아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 주타와 함께 사라졌다.
무명은 한참 나무 밑에서 덩그러니 앉아있다가 이내 이를 악물고 나무를 잡고 일어섰다.
맞은 부분은 배와 명치, 엉덩이와 허벅지같이 살이 많은 곳이었다. 때문에 빨갛게 부어오르고 뜨끈하게 달아오른 상태였지만 멍이 나거나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내장을 울려놓은 탓에 속이 울렁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무명은 이를 갈면서 배를 움켜잡고는 천천히 쓰다듬었다. 통증은 서서히 가라앉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명은 머리를 나무에 기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은 가득 차서 만월을 뽐내었고, 별과 함께 환하게 빛나며 세상 모든 것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그 달은 무명이 언제고 보던 그 달과 똑같은 달이었다. 산속에서 생활할 때나 집에서 문밖으로 보이던 달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달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무명을 둘러싼 모든 것과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무명은 이를 갈면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이곳으로 오는 수레에서 자기 자신과 맹세했었다.
하지만 무명이 아무리 남들과 달리 성숙하고 또래에 비해 현명하다 할지라도 한낱 어리고 여린 나이의 소년일 뿐이었다.
내리쬐는 청명한 달빛을 맞으며 옛 기억을 떠올리니 절로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한 방울, 또 한 방울이 눈가에 모여 방울 지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 자국은 쉬이 마르지 않았다. 달빛에 말라붙을 때까지 그 자국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한참을 달빛을 벗 삼아 울던 무명은 고개를 세차게 휘젓고 나약함을 떨쳐내었다. 그러고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워낙 경황이 없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잘 둘러보니 일터에서 숙소로 오던 길이었다. 옆에는 개울이 있었고, 무명은 그곳에서 간단하게 세수하고 옷을 털어낸 후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모두들 자느라 정신이 없는지라 무명이 방에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깨어나지 않았다.
무명은 잠자리에 들면서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베개 맡으로 흘려보내고 다시 맹세했다.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시는 약함에 한탄하지 않고 지금의 상황에 굴복하여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무명은 자기 자신에게 강해질 것을 약속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업신여기지 못할 정도로 강해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강함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칠 것이라고 거듭해 되뇌었다.
그리고 꿈에서까지 그 다짐은 계속되었다.
시간은 섬전같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평년 772년이 저물고, 아이들의 뼈와 살을 에는 시린 바람마저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다.
4월.
무명이 염으로 온 지 월수로 칠 개월이 되었다.
그간 한 번의 보리 수확이 있었고, 또 다른 지역을 개간해 지금은 한창 그 지역의 모내기 철이었다.
무명은 이제 간단간단한 범어는 발음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말이 많은 수에르의 적절한 대화 상대가 되어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수에르의 말을 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제 일상적인 대화 수준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쾌활한 수에르는 무명과의 대화를 더욱 길게 이어가기 위해 이제는 무명을 안고 달리지 않고 오고 가는 길을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7개월간 무명은 호인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해졌다. 대족장에게 범어를 배운다는 소문이 도시 전체에 퍼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몇몇이 무명에게 몇 번이나 해코지하려 했지만 수에르가 그걸 잘 막아주었다. 또한 이소호칸이 그들에게 확실하게 엄명을 내림으로써 무명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그간 무명에게 확실하게 변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아이다운 점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남보다는 확실히 성숙함을 지닌 무명이었지만 근 7개월간 확실하게 아이 티를 벗어던졌다. 더욱이 강렬한 햇살에 타버린 구릿빛 피부는 그를 더욱 남성다워 보이도록 만들어 주었다.
남아있던 젖살은 확실하게 빠지고, 본래 산행으로 다져졌던 균형 있는 육체가 노동으로 한층 더 발달하고 각이 잡혔다.
그것은 열 살이 된 무명의 겉모습 변화였고, 속으로는 단단한 돌덩이처럼 확실하게 굳어져 자신의 심중을 쉽게 남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숙소 내에서 주타와 고누는 은연중에 무명을 고립시켰고, 주타와 고누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모두 무명을 상대하지 않았다. 주타와 고누가 그렇게 하라 아이들에게 미리 언질을 준 탓임이 틀림없었다.
이마진이 있을 때는 모두가 그럭저럭 친분을 유지하는 척했지만, 이마진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무명은 언제나 소외받았다.
결국 무명의 마음은 더욱 굳게 닫히고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무명이 마음을 열고 즐겁게 대화하는 자들은 이마진, 수에르, 이소호칸, 이 셋밖에 없었다.
이마진은 므한주나 가주레가 눈치 없다고 말했지만 이마진 자신도 눈치가 없었다. 이마진은 무명이 소외받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아이들을 매우 잘 조율하고 관리한다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눈앞의 주먹이 더 무서운 것이다. 이마진 앞에서는 철저히 그런 면모들이 보이지 않게 숨겨졌다.
무명은 결국 그런 상황을 인정했고 상황에 타협했다.
주타와 고누는 자신이 현재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소외되고 비난받아도 최대한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비굴한 삶이지만 도리가 없었다. 비합리적이고 놀림거리가 될지라도 현재 상황에서는 최대한 분쟁을 안 일으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나날 중에도 무명은 이소호칸에게 배운 글을 이마진과 같이 공부했다.
이마진은 작년 말부터 간단하게 글쓰기를 터득하여 공진희와 이미 수차례 간략한 쪽지를 주고받은 상황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간단하게 일상생활을 물어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간략한 수준의 글이었다.
이마진에게 온 쪽지는 숙소 내 아이들에게 굉장한 호평을 얻었다. 이마진은 공진희와 소통할 수 있는 쪽지로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명은 둘의 관계가 쪽지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거의 단답만이 오고 갔기에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명은 조금 더 긴 장문의 편지를 위해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소호칸에게 인간 숙소에서도 연습할 수 있도록 다량의 종이와 붓, 그리고 먹물을 부탁했다. 이소호칸은 흡족해하며 그것들을 구해주었다.
그것을 숙소에 가져온 무명은 이마진과 함께 지속적으로 글을 연습하며 편지를 쓸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들을 충족시켰다.
어느 정도 무명의 글쓰기가 조금씩 성취를 보이자 그때부터 둘은 공진희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마진은 편지를 쓰는 내내 볼을 붉히며 쑥스러워했다. 이마진의 알콩달콩한 편지 내용은 무명의 도움이 없다면 완성되지 않기에 무명은 전부 곁에서 그 내용을 탐독할 수 있었다.
무명은 이마진의 순수하고 순박한 인성을 편지로부터 깊게 감응할 수 있었다.
이마진은 편지를 완성한 후 공진희가 식사 배급을 하러 오는 날을 더욱 손꼽아 기다렸다.
항시 써놓은 편지를 품에 가지고 있다가 공진희가 배급을 하러 오면 감시하는 시선을 피해 공진희에게 넘겨주었다.
편지를 처음 받았을 때 공진희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입을 벌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표정은 모두가 이야깃거리로 삼을 정도였다.
하지만 편지를 주고받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이 남아있었다. 바로 답장이었다.
첫 번째 편지를 공진희에게 주고 나서 일주일가량이 흐른 뒤 공진희가 다시 왔을 때, 그녀는 답장 대신 쪽지를 전해주었다.
이마진은 쪽지 내용에 한없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쪽지에는 편지는 잘 받았지만 답장을 쓸 수단이 없다고 간략하게 적혀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 수에르와 무명의 대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명은 수에르에게 넌지시 이 이야기를 전했다. 워낙 이야깃거리를 좋아하는 수에르는 이마진과 공진희의 애틋한 사랑에 호기심을 가졌고, 무명이 궁금증을 유발하며 이야기를 미루자 결국 수에르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내가 둘의 관계를 이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게. 하지만 나한테도 그 이야기를 꼭 들려주어야 해.”
수에르의 말에 무명은 수에르에게 공진희와 이마진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도움을 달라고 말했다.
첫째로 무명은 수에르에게 필기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수에르는 필기구를 구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고 말하며 바로 구해주었고, 그것으로 공진희가 답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실상 가장 큰 난관은 바로 두 번째였다. 바로 전달 문제였다.
남자들은 마을 외곽에 살았지만 여자들은 마을 장원 안쪽, 이소호칸 관사 옆에서 지냈다.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기에 무명과 이마진은 기약 없이 그녀가 식사를 가지러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명은 공진희의 편지가 보다 원활하게 전해지길 원한다고 수에르에게 말했다. 수에르는 장원을 드나드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둘의 편지를 전달해주는 전령으로 매우 적합한 자였기 때문이다.
수에르는 그런 무명의 말을 듣고 편지를 자신이 전달해 주겠다고 흔쾌히 약조했다. 그제야 둘의 편지는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는 물꼬를 트게 되었다.
이마진은 자신을 위해 여러모로 도움을 주는 무명에게 깊이 고마워하며 무명을 더욱 아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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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