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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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랑[愛]
“첫째로는 범족의 강함을 배우고 싶고, 둘째로는 쇠를 두드려보고 싶습니다.”
이소호칸은 무명의 말에 짐짓 놀란 듯 눈썹을 움츠리곤 대답했다.
“네가 원하는 배움이 몸을 단련하는 것과 대장일이렷다?”
“그렇습니다, 어르신.”
무명이 몸을 낮추어 말했다. 혹여 이소호칸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스러운 모습이 다분히 보였다.
“네가 배우고자 하는 것에 이유를 물어보고 싶구나.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소호칸이 턱을 괴고 조용히 말했다. 자신이 아끼는 애제자의 선택이었다.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무명은 입술을 혀로 살짝 핥은 후 말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어르신, 제가 강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이치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은 강자에게 많은 것을 베풉니다. 강자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강한 자는 또 다른 타인에게 많은 것을 베풀 수 있습니다. 이소호칸 어르신, 어르신께서는 지고하게 강하신 분이기에 저를 거두시고,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르신의 강함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강함의 토대는 바로 몸을 단련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몸을 단련하여 강함을 얻고 싶습니다.”
무명이 차분히 말을 하자 이소호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무명의 말을 경청했다. 무명의 말이 끝난 후 이소호칸이 이를 드러내며 무명에게 물었다.
“네가 말한 이론은 참으로 간단명료하구나. 아주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넌 나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네가 강해져서 무엇을 할 것이냐? 베풀기 위한 강함이라 칭하는데 무엇을 베풀 것이냔 말이다. 나는 그것을 묻고 싶구나. 너에게 지금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라도 있는 것이냐?”
“어르신, 저는 범족의 삶에 대해 깊이 감응하고 있습니다. 범족의 삶의 이치는 강(强)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제가 강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범족의 이치에서 나오는 것일 겁니다. 비록 어르신이나 어르신이 다스리는 범인에 비하면 제가 추구하는 강함의 수준은 낮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반드시 배우고 싶었던 것은 범족의 강인한 삶의 열정입니다. 이것을 배우지 못한다면 저는 평생 가도 어르신이 만족하는 인재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소호칸은 담담히 말하는 어린 무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 번을 다시 보며 감탄하지만 이 나이 또래에 이런 기재(奇才)를 지닌 아이는 없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습득하고자 하는 열정에서는 자신의 아들인 마진츠보다 뛰어난 면이 있었다.
“네가 설득하는 말에는 내가 당해내질 못하겠구나. 그래, 네가 강해지고 싶다는 말은 잘 알겠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알려주지 못하겠구나. 나는 한 지파를 이끄는 수장. 내가 너의 단련을 돕는 것은 너무나도 큰 사안이다. 나의 교육을 받기 위해 수많은 범족들이 줄을 서지만 나는 그들에게 강함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인 너에게 단련을 지도한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할 자가 많을 것이야.”
이소호칸이 자신이 무명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자 무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빨리 말을 이었다.
“어르신, 어르신이 직접 가르쳐 주시지 못한다면 수에르 형에게라도 배움을 받고 싶습니다. 지도자 없이 저 혼자 단련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무명은 이렇게 넌지시 이 주제에 수에르를 끌어들였다. 이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소호칸이 허락한다면 부담 없이 수에르에게 배움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수에르가 너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있었지. 다른 이라면 몰라도 수에르라면 너를 맡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수에르가 허락한다면 네가 나와의 공부 시간을 대체하여 몸을 단련해도 좋다. 하지만 아직 나도 너에게 가르칠 것이 완전히 떨어진 것이 아니다. 격일로 단련과 공부를 병행하도록 하자. 그럼 첫 번째 에 대한 네 갈증은 풀어졌으리라 본다. 그럼 두 번째에 대한 이유를 말해다오.”
이소호칸이 쇠를 두드리고 싶다는 것에 대한 이유를 듣고 싶다고 넌지시 말을 하자 무명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마을 내에 공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간 기술자들이 건물을 건축하거나 삶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를 만드는 곳이라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다른 아이들처럼 논과 밭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제 삶을 채워줄 소중한 양식을 기르는 막중한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루 종일 땅을 파고 농작물을 기르는 것으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제가 다른 기술들을 배워 어르신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배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소호칸은 턱을 괴고 앉아 무명의 말을 들었다. 그는 약간 고심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무명의 어깨를 큰 손으로 두드렸다.
“네가 원한다면 그리하도록 하겠다. 때마침 저번에 인간 아이들을 데려온 까닭에 숙소가 부족하여 증축을 한다고 하는구나. 일손이 모자라다 하니 사람을 보낼 때 너도 같이 보내면 될 듯하구나.”
무명은 이소호칸이 어렵지 않게 자신의 부탁을 수락해 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이소호칸의 심기에 거슬리기라도 했다면 끔찍했을 터였다.
지금까지 무명이 이소호칸에게 상당한 호감을 쌓아왔기에 이소호칸은 무명이 제시한 부탁에 큰 반감을 가지지 않은 듯했다. 무명이 이 틈을 타서 또 다른 부탁을 하나 더 하려 입을 슬며시 열었다.
“어르신 원컨대 하나만 더 청해도 됩니까?”
“말해 보거라.”
“제가 공방으로 가게 될 때 제 숙소의 인원들과 같이 가도 되겠습니까?”
“음? 연유가 무엇이냐?”
“홀로 가는 것은 두렵습니다. 제가 지난 일 년간 같이 생활한 사람들과 행동을 함께하게 된다면 많은 의지가 될 듯합니다.”
이소호칸은 이번 무명의 부탁도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렴했다. 실상 이소호칸이 무명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말을 마치자 바깥에서 수에르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수업 시간이 끝나 수에르가 무명을 데리러 온 것이었다.
이소호칸은 무명을 데리고 문밖으로 나섰다.
“수에르, 왔는가.”
“네, 대족장 어르신. 교육 시간이 끝난 듯하여 지금 왔습니다.”
수에르가 권상으로 예를 올리며 공손히 말했다. 이소호칸은 인사를 받고서 수에르가 다시 허리를 펴자 말을 이었다.
“수에르. 무명이 자신의 몸을 단련시키고자 나에게 청을 했다네, 자네가 무명을 지도해 줄 수 있겠나? 물론 무예를 가르치는 것은 어렵겠지만, 몸을 단련시키고 심신이 강해지는 수련을 꾸준히 하고 싶다 하니 내 자네에게 청해 봄세.”
수에르는 무명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소호칸 님에게 허락을 받아 내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었다. 무명은 수에르의 표정을 읽고 빙그레 미소로 답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수에르? 그대가 해줄 수 있겠나?”
이소호칸이 재차 묻자 수에르는 눈을 껌뻑이며 정신을 추스르고 고개를 깊이 숙여 다시 권상으로 답했다.
“소인, 대족장 어르신께서 부탁하신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달갑게 할 것입니다. 청을 받드옵니다.”
이소호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둘이서 이후 일정을 알아서 잡도록 하게나. 아, 수련은 격일로 진행하도록 하게, 나도 무명에게 가르칠 것이 아직은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가면서 공방에 자리를 좀 비워달라 하게나. 앞으로 무명이 오후에 그곳에서 생활하게 될 테니까.”
이소호칸은 무명을 수에르의 손에 인계하며 말을 하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수에르는 무명이 자신의 곁에 왔음에도 아직 어안이 벙벙해서 멍해져 있었다.
“뭐하셔요, 가야죠.”
“뭐야, 너. 이소호칸 어르신께 어떻게 말했기에 수련을 허락받은 거야? 나는 어떻게 남는 시간에 너를 지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뜸 수련을 허락받다니…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그리고 숙소를 옮긴다니… 공방에서 일을 하려고?”
수에르는 질문이 정리가 되지 않아 한꺼번에 많은 말을 쏟아내었다. 무명은 수에르가 가진 질문에 대해 이소호칸과 대화했던 내용을 차근차근 풀어 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야 수에르는 자신의 질문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너, 진짜 달변가다. 내가 나이 삼십이 다 되어가지만 어린 너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어째 네가 입을 열면 항상 놀라게 되는 거 같다.”
수에르가 무명을 칭찬하자 무명은 멋쩍은 듯 얼굴을 붉혔다.
“그만 칭찬하셔요. 부끄러워요. 제가 무슨 달변가인가요. 그냥 형이 지도해 주는데 제가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말해 본 것뿐예요.”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수에르는 본래 가던 길을 가지 않고 길을 꺾어 걸었다. 그리고 도달한 곳은 굴뚝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공방이었다.
식사 때가 아닌데도 화로에선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유독 이곳만은 발을 들이자마자 후끈한 열기에 몸이 달아올랐다.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골목을 따라 메아리쳤다.
무명이 있는 숙소는 아이들밖에 없어 조금은 우울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곳은 활기에 가득 찬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수에르는 무명을 데리고 안쪽으로 쭉 들어갔다. 무명은 상체 근육이 잘 단련된 사람들이 갖은 재료와 철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 또한 호인의 손에 끌려가듯 걸어가는 무명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서로가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수에르가 도착한 곳은 공방 깊숙한 곳의 널찍한 화로였다. 그곳에는 거대한 몸집에 쇠를 두드리고 있는 자가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쳐 온 거리에서 본 인간들과는 달리 그는 호인이었다. 백색의 흰 털은 그 끝만 검게 그을려 있었고 화로에서 나오는 붉은빛 때문에 온몸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등 뒤로 수에르가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계속해서 쇠를 두드렸다.
“영감님, 제가 온 걸 알면서도 왜 대꾸 하나 안 해주시는 겁니까?”
수에르가 밝게 말을 걸어도 그는 여전히 무뚝뚝하게 쇠를 쳤다. 수에르는 한숨을 쉬고서는 결국 그가 쇠를 치고 있는 옆으로 무명을 데리고 이동했다.
“영감님, 선고우 영감님!”
수에르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치자 그제야 그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는 이소호칸만큼의 거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머리에는 옥색의 두건을 쓰고 있었다. 앞에서 보니 털 안쪽으로 무수히 많은 상처가 보였다. 그는 한눈에 봐도 우람한 근육을 가진 숙련된 전사였다.
그는 짜증 난다는 듯 수에르를 보고 으르렁대며 말했다.
“뭐야, 애송이.”
“선고우 영감님, 제 나이가 몇인데 애송이입니까. 아니 그보다 왜 대답을 안 하십니까?”
“너 지금 내가 작업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선고우는 상당히 늙은 호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상하리만큼 이소호칸과 비슷한 느낌이 났다. 약간은 거친 모습이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로는 이소호칸과 흡사해 보였다.
선고우는 화를 내면서도 손에 쥐고 있는 망치를 놓지 않고, 쉬지 않고 쇠를 두드렸다. 무명의 눈앞에서 쇠가 불을 튀기며 뻘건 형태가 형상을 잡아가고 있었다.
“나 작업할 때 건드리지 말란 말이다!”
“저도 그러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하지만 대족장님께서 부탁하신 게 있어 왔습니다. 제가 놀러 온 줄 아십니까?”
“너야 심심하면 칼 갈아달라고 오니까 그렇지. 뭐? 이소호칸 형님께서 부탁한 게 있다고?”
선고우는 수에르의 말에 놀라며 말했고, 그 말에 무명도 같이 놀랐다.
============================ 작품 후기 ============================
2014-08-04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