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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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모봉[峰]
이소호칸의 장원은 일주일 만이었지만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매일매일 거닌 이 길을 일주일이란 기간을 두고 오지 않게 되니 생소하게 다가오는 감각이었다.
무명은 수에르와 함께 장원 깊숙이 대로를 따라 들어갔다. 그 끝에 이소호칸이 거주하는 안채에 다다랐다.
“그럼, 말을 잘 맞춰야 한다. 뭐, 너라면 잘하겠지.”
수에르는 이소호칸의 귀가 닿지 않을 거리에서 마지막으로 당부하고는 손을 흔들며 무명을 떠나보냈다. 그는 이제 자기 자신의 수련을 하러 떠날 터였다.
무명은 수에르를 보내고 조심스럽게 걸어 자신이 늘 공부를 하던 방으로 다가갔다. 방 안쪽에 이소호칸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명은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방문 바깥에서 인사했다.
“어르신, 무명이 배움을 얻으려 찾아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무명의 공손한 말에 안쪽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나 방문으로 다가왔다. 그 그림자는 미닫이 형식으로 되어있는 문을 드르륵 밀며 무명을 맞았다.
“오랜만이구나, 무명아. 몸은 좀 괜찮으냐?”
하얀 털이 수북하게 온몸을 덮고 있는 거체를 지닌 백모의 대족장, 이소호칸이 반갑게 무명을 맞았다.
보통 무명이 문을 열고 들어갔지 이소호칸이 문을 열어준 일은 없었다. 방문이 열려 있었으면 몰라도 손수 이리 무명을 맞아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이소호칸도 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 담긴 행동이었다. 그런 반김을 보면서 무명은 이소호칸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고개를 더욱 내렸다.
“어르신께서 걱정해 주셔서 금세 완쾌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배려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무명이 이소호칸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담아 말하자 이소호칸은 껄껄 웃었다.
“내 아들놈이 아파도 이리 걱정하지는 않았다. 내 찾아가 볼까도 생각했지만 주변 시선 때문에 너에게 가질 못했구나. 너도 잘 알고 있듯 너희 인간은 병마에 너무 약하지 않느냐. 너에게 약을 짓거나 의관(醫官)을 보내줄까 했지만 그것도 주위 눈초리가 너무 많아 할 수 없었다. 그저 너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줄 수밖에 없었구나. 그래도 그렇게 열이 펄펄 나고 헛소리까지 내뱉는다는 병세를 금방 이겨내서 다행이구나.”
무명은 이소호칸의 말에 고개를 내린 채 미소 지었다. 수에르가 이소호칸에게 무명이 아프다는 것을 말할 때 너무 과장해서 말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건 수에르가 이전에 인간이 병에 걸린 모습을 보고 그대로 무명에게 옮겨 말한 것이었는데, 병세가 상당히 심각한 사람이었다.
수에르가 귀띔하길 자신이 지금까지 인간이 병에 걸린 걸 본 것은 그때밖에 없다고 말을 했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그 병으로 별세한 상태였다.
그런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으로 이소호칸에게 전하니 이소호칸의 걱정은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무명에게도 이야기했듯 약을 지어 보내거나, 의관을 보낼까도 고심했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순 없었다.
범족의 의관이라 해봤자 마을에 다 합해서 두세 명이 되지 않았다. 그것마저도 의료 지식이 깊다고 하기엔 상당히 부족한 자들뿐이었다.
아무도 의관을 하기 싫어하니 범족 중에서도 그나마 무예가 뒤떨어지는 녀석들이 하는 것이 의관이었다. 의관에게 보여줄 만한 상처가 생기거나 있다는 것은 성인 범족에겐 치욕스러운 일이었기에, 범족 아이들이 가끔 이용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없는 의관들을 한낱 노예인 인간 소년을 위해 쓴다는 것은 이소호칸이 이 소년에게 큰 애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다른 지파에 비해 인간 노예들을 가축처럼 부리지 않고, 죽지 않으면 잡아먹지 않는다는 이소호칸의 명에 일부 호인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소호칸이 인간을 가르치겠다는 것도 인간 노예를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란 엄포를 놓아 간신히 이해시킨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런 소수의 범족들이 무명에게 해코지할까 수에르를 계속 붙여두고 있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이소호칸 자신이 무명을 차별하고 더욱 애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꽤나 큰 반발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이소호칸 자기 자신은 괜찮았다. 누구든 힘으로 눌러버리면 되지만 일부 인간을 가축같이 여기는 자들이 벌받을 것을 작정하고 무명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인간 아이 한 명 죽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또한 이소호칸이 노예인 인간 한 명을 죽였다고 해서 그들을 심하게 벌할 명분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어르신이 절 그렇게 어여쁘게 봐주시니 제가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명이 이소호칸의 기분을 띄워주며 좋은 말만 해주자 이소호칸은 흐뭇해하며 소탈하게 웃으면서 무명에게 다가갔다.
“수에르가 가끔 와서 네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전해주어 그때마다 마음이 놓이긴 했다. 한데 몸이 아팠다는 사람치고는…….”
이소호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명을 살펴보았다. 무명은 이소호칸이 말을 중간에 끊자 슬며시 고개를 들어 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이소호칸은 옥빛 눈동자를 굴리며 무명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쭉 훑어본 후 말을 이었다.
“상당히 건장해 보인단 말이다. 몸에 근력이 상당히 붙어 보이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무명은 마음속으로 뜨끔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았다. 이소호칸의 눈썰미는 보통이 아니었다. 펑퍼짐한 무명천 아래 숨겨진 조그마한 무명의 육체 변화를 눈치챈 것이다.
단 일주일이지만 수에르와의 근력 훈련은 벌써부터 무명의 신체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이전에는 팔을 굽히거나 근육에 힘을 줘야 스리슬쩍 보였던 근육의 선들이 무명이 굳이 힘을 보내지 않아도 몸 곳곳에 희미하지만 분명한 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수에르는 인간과 범족의 육체가 분명히 다름을 알고 있었고, 수련 방법을 평소에 범족들이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무명에게 적용시켰다.
태어나면서 좋은 근골을 지닌 범족과 다르게 인간의 몸은 꾸준한 운동을 통해 먼저 근력을 기르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했다. 그는 계속해서 근육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무명의 근육들은 단기간이지만 피곤함을 반복하면서 더 강하고 질겨졌다.
그것을 이소호칸이 한눈에 알아본 것이었다. 무명은 서둘러 변명거리를 찾았다. 찰나였지만 무명은 이소호칸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데에도 영특함이 번뜩이는 무명이었다.
“그게, 이튿날 째가 돼서 제가 어느 정도 몸을 거동할 수 있게 되자 수에르 형이 제게 나약한 녀석이라 하시면서 바로 그날 아침부터 제 몸을 다스릴 수 있도록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짧은 시간이지만 몸에 힘이 붙어 보이는 듯합니다.”
“아니, 병이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너를 데리고 훈련을 했단 말이냐? 고스보치라면 워낙 강직한 자라 그렇게 할 만도 한데 수에르 녀석이 너를 그렇게 훈련시켰다니 상당히 의외로구나. 그 녀석 힘을 쓰는 기술적인 능력은 발군이지만 수련을 다른 이처럼 열심히 하진 않기 때문이지. 피리를 불 시간에 칼을 휘둘렀으면 더 크게 될 놈인데 말이야.”
이소호칸이 수에르의 성격을 거들먹거리며 말하자 무명이 잽싸게 대답했다.
“이미 수에르 형에게 강해지는 법에 대해 배움을 구할 때부터 형님께서 수련을 각오하라 이야기했기 때문에 혹독하게 저를 지도하실 것을 예상했었습니다. 더군다나 본격적인 수련에 앞서 제가 앓아눕자 많이 한심하게 보인 것 같습니다. 제 몸이 아픈 것은 제 육체가 약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훈련을 통해 병마가 침입하는 것을 막는 것이 좋다고 수에르 형님이 생각하신 듯합니다.”
방금 머릿속에서 짠 말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술술 대답이 나왔다. 준비한 말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무명은 이소호칸이 이전에 자신에게 달변가라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의미를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설사 지어낸 말일지라도 무명은 그럴듯하게 유창하게 말을 해낼 수 있던 것이었다.
“흠, 그렇군. 그렇지만 상당히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훈련을 해낸 모양이구나. 이 정도 시간에 네 근육 모양이 상당히 잘 자리 잡힌 것을 보니 인간으로 어지간히 힘든 훈련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소호칸은 보이지 않아도 무명의 모습을 보고 훈련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치고는 잘 다듬어진 폼이었다.
“수에르 형이 어찌나 힘들게 훈련을 시키는지 참으로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훈련을 할 때마다 제 몸이 강건해지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습니다.”
무명이 말을 마치자 이소호칸은 무명이 아팠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좋아진 이유에 대해 납득한 듯 고개를 위 아래로 천천히 흔들었다.
“어르신, 날씨가 쌀쌀하온데 덥혀놓은 방 안이 시려질까 걱정됩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무명이 이소호칸에게 정중하게 묻자 그제야 이소호칸은 자신이 아직도 방문을 연 채로 문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방에서 나와 방문을 닫았다.
그 행동에 무명은 살짝 의아해했다. 이소호칸이 무명을 교육할 때는 항상 방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무명이 멀뚱히 이소호칸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하는 표정을 짓자 이소호칸이 무명 쪽으로 발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방 안에서 공부를 하지 않을 것이다.”
“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명이 물음을 던지자 이소호칸은 무명의 머리카락을 수에르가 했던 것처럼 헤집어 놓으며 눈을 마주쳤다.
“오늘은 백모봉에 갈 것이다. 내 전에 너와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너와 함께 백모봉에 가보겠다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무명은 그제야 이소호칸이 방문을 닫은 연유를 눈치챘다.
이소호칸은 무명과 처음 만난 그날 아침 자신을 어깨 위에 올리고 절경 중의 절경인 하얀 백모봉을 보여주며 그 장엄한 봉우리들의 사이를 누비자고 약속했었다. 바로 그날이 오늘인 것이었다.
“내 너와 백모봉에 가는 것을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 가려 한다. 그리고 가는 길에 동행 한 명을 더 데려가고자 하는데 괜찮겠느냐?”
이소호칸이 자상하게 무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명은 이소호칸의 뜻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긍정하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어르신. 굳이 제게 양해를 구하지 않으셔도 어르신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 그리하셔도 됩니다. 어르신께서 동행을 허락하신 자라면 전 무조건적으로 반길 것입니다.”
무명이 그리 말하자 이소호칸은 씩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방이었다. 이소호칸은 방 앞으로 가서 조곤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이소호칸이 묻자 방 안에서 이소호칸을 닮은 목소리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예.”
“그럼 나오너라.”
이소호칸이 말하고 등을 돌려 무명 쪽으로 다시 다가왔다. 무명은 옆방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방 안에서 나오는 인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거동과 몸집, 그리고 생김새까지 이소호칸을 꼭 닮은 범인이 이소호칸의 뒤를 좇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소호칸과 다른 것이 있다면 살짝 체구가 작은 것과 털이 이소호칸만큼 수북하고 길게 자라지 않은 것뿐이었다. 이소호칸의 젊을 적 모습을 연상한다면 바로 그 생김새와 같았을 것이다.
이소호칸은 무명에게 슬며시 미소 지으며 입술을 들어 올렸다.
“소개하마, 나의 아들 마진츠이다.”
============================ 작품 후기 ============================
2014-08-04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