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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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모봉[峰]
“아, 안녕하십니까.”
무명은 서둘러 허리를 숙이며 마진츠에게 인사의 예를 올렸다.
무명이 자기 아버지보다 자신에게 더 깊이 예를 올리자 마진츠는 무안해하며 어찌할 줄 몰라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소호칸은 무명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나보다 내 아들에게 더 예를 갖추니 마진츠가 난처해하는구나. 그렇게 공손히 예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
이소호칸이 나직하게 말하자 그제야 무명은 빼꼼히 고개를 들어 올려 마진츠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과연 이소호칸의 아들답게 풍채부터가 굉장히 닮았다. 무명은 자신이 가진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입 밖으로 내었다.
“실로 어르신을 꼭 닮으셨습니다.”
무명이 감탄하며 놀라워하자 이소호칸은 살짝 머쓱해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내 아들이지만 나도 가끔 볼 때마다 깜짝 놀라고 있지. 마치 젊었을 때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거 같단 말이다.”
이소호칸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소호칸의 곁으로 마진츠가 다가와 손을 내밀며 무명에게 말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이가 좋으시군요. 저는 아들인 마진츠입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진 않았지만 일찍이 아버지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마진츠라 불러 주십시오.”
마진츠 또한 공손히 인사를 하자 무명은 쭈뼛쭈뼛하며 이소호칸을 바라보았다. 이소호칸은 어쩔 줄 몰라 하는 무명의 손을 잡아 마진츠의 흰 털이 복실복실한 손과 맞잡게 했다.
“서로 간에 예를 과하게 차려 너무 서먹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무명은 10살, 이번 해가 지나면 11살이 될 터이고, 마진츠는 올해로 19살. 내년이 밝아오면 성인인 20살이 되지. 난 무명이 마진츠를 형으로 삼고 우애 깊게 지내는 것을 원한다.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소개시키는 자리가 아니니 말이다.”
이소호칸이 넌지시 운을 떼자 무명이 머뭇거리면서도 마진츠에게 말했다.
“그럼, 마진츠… 형이라 불러도 될까요?”
마진츠는 상대적으로 이소호칸에 비해 표정에서 감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무명의 말에 아주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그것이 편하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다.”
둘의 관계가 정리되는 듯하자 이소호칸이 둘의 등을 떠밀면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무명아, 너도 이전에 내가 말해 주어 알겠지만 마진츠가 이번에 휴가차로 짧게나마 시간이 있어 백모 지파로 오게 되었다. 이 기회에 너에게 마진츠를 꼭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
무명은 이전에 이소호칸이 자신에게 아들을 자랑하며 말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마진츠는 15세가 되면서부터 당(黨)에 가있었다. 당은 현재 강제인 미탄마호가 다스리는 남쪽 흑모 지파에 있었다.
당은 일종의 고등 교육 기관이라 칭할 수 있는데 범족의 위계 있는 지식 기관들은 강제를 따라 매번 그 위치가 옮겨졌다. 당 또한 마찬가지로 강제가 바뀌는 3년마다 계속 해당 강제가 있는 지파로 움직였다.
그렇기에 마진츠는 남쪽의 흑모 지파에 가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각 지파에서도 뛰어난 15세 전후의 후기지수들만 뽑아 교육을 하기 때문에 당에 가는 것은 범족 중에서도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3년의 교육 기간이라고 하지만 3년 내에 모든 교육을 훌륭하게 마치고 제때 졸업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당은 딱 5년, 즉 20세 성인이 되기까지의 졸업 과제를 유예해 주었고, 그 과제를 끝내지 못하고 성인이 되면 졸업을 시키지 않았다. 당 내에서도 졸업하지 못하고 나온 범인들이 부지기수로 많으니 이소호칸은 3년 만에 졸업 과제를 훌륭하게 마치고 휴가를 받아 돌아온 마진츠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다.
지금 바로 옆에 있어 크게 내색하지는 않지만 무명에게 말을 전할 때만 해도 아들에 대한 자긍심이 말투에서 넘쳐흘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무명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이소호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소호칸은 무명의 허리를 잡아 어깨 위에 올렸다.
“네 걸음으로는 오늘 밤이 되어야 도착할 거 같구나. 내 어깨 위에서 가도록 하자.”
이소호칸이 씩 웃으며 무명을 어깨에 올린 후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순식간에 주변 사물들이 휙휙 지나갔다.
이소호칸이 마을을 가로질러 가자 많은 호인들이 이소호칸을 보고 예를 올렸다. 이소호칸은 그들에게 간단히 목례를 해주며 빠르게 마을 밖으로 나섰다.
이소호칸이 상당히 빠르게 달림에도 마진츠는 전혀 처지지 않고 함께 달렸다. 둘의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너른 벌판으로 나서자 빠른 속도에 칼바람이 몰아쳐 무명의 얼굴과 귀가 새빨갛게 물들자 이소호칸은 무명을 등으로 옮겨 업었다. 무명은 이소호칸의 등에서 바람을 피하며 주변 경관이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을에서 자신이 경작했던 넓은 들판으로, 들판에서 숲으로, 숲에서 돌무더기로 경관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시시각각 변했다. 무명은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을 벌리며 경탄했다. 세계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바뀐 상황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상당히 추운 날씨였지만 이소호칸의 등은 무명을 따스하게 덥혀주었기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왔던 시간만큼 다시 달려가자 그제야 이소호칸과 마진츠의 걸음이 멈추었다. 걸음을 멈춘 이소호칸은 자상한 표정을 지은 채 마진츠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따라오는 데 숨도 안 차는구나.”
이소호칸이 옛날 일을 추억했다. 옛날 백모봉에 올 때 마진츠가 이소호칸을 따라잡기 어려워 숨을 헐떡이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때는 땀에 젖어 여기까지 도착하기만 해도 녹초가 된 마진츠였다. 하지만 3년간 당에서 교육받으며 더욱 단련된 모습을 보여주니 듬직하기만 했다. 젊었을 적 자신의 기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3년 전이니까요, 그간 정말 엄청나게 훈련했습니다.”
마진츠는 아버지의 칭찬에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소호칸은 등에서 살며시 무명을 내려놓았다. 거대한 이소호칸의 등에 가려 옆 풍경만 보았던 무명은 등에서 내려 정면을 바라보고 동그란 눈을 더욱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주 멀리서 잔영만 보았을 때도 놀라운 백모봉의 광경이 무명의 눈앞에 거대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가장 높게 솟아오른 직사각형의 백색의 봉우리가 바로 백모봉, 그 주위를 거대한 돌산들이 절벽을 이루며 감싸고 있었다.
백모봉은 지층들이 수백, 수천 겹이 뭉쳐 솟아올라 있었는데 빛을 받아 그 알갱이들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반짝반짝하고 빛을 내는 거대한 비석의 모양새였다.
간간히 겨울이지만 녹색으로 흰 암석들을 치장한 소나무들이 몸을 틀어 가지를 하늘로 치켜든 모습이 가히 절경이었다.
“어떠냐, 무명아. 이것이 백모봉이다. 우리 백모 지파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우리의 산이지. 그렇기 때문에 백모 지파는 모두 이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지. 매일같이 백모봉을 보면서 이 오롯한 기상을 닮고자 하는 것이야.”
이소호칸은 무명의 머리카락을 슬며시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명은 이소호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이 광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자연 광경 하나가 자신을 이렇게나 감격시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명은 고개를 들어도 보이지 않는 백모봉의 정상을 보며 놀라워했다. 자신의 존재는 이 산에 비하면, 이 자연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고 작은 것이었다.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감각을 잘 알지 못하는 호인들도 이 백모봉의 장관에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이니 무명이 받는 이 충격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도 안 변했군요.”
마진츠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 3년 전 그때와 달라진 모습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백모봉은 변함없이 자신을 맞아주었다.
“그렇다, 이 모습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와 비교해도 변함이 없지. 변함없이 오롯한 점. 그 모습에 나는 항상 이 자리에 설 때마다 감명을 받곤 한다.”
이소호칸이 마진츠의 말에 대답했다.
“이제 우리는 저 봉우리에 올라갈 것이다. 준비는 되었느냐, 무명아?”
이소호칸이 자상하게 묻자 무명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준비가 되었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무명은 지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 자신이 보고 있는 이 거대한 세계를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던 탓이었다.
“그럼 마진츠, 무명을 업고 등반할 수 있겠느냐?”
이소호칸이 마진츠에게 묻자 마진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의 저의를 눈치챈 듯 미소 지었다. 무명과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이소호칸의 내심을 읽어낸 것이었다.
“네, 어렵지 않습니다.”
“그럼 네가 무명을 업고 나를 따라 등반하거라. 여기까지 내가 업고 왔으니 이젠 네가 정상까지 올려다오.”
이소호칸이 말하자 마진츠는 무명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자, 업히거라.”
무명은 처음 보게 된 마진츠의 등에 업히는 것을 살짝 주저했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쉽게 보여주는 수에르와 이소호칸과 달리 마진츠의 표정은 읽어내기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대부분 자신을 보면 범어를 할 줄 알기에 신기하고 요사스럽다는 감정을 내비치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마진츠는 무명에게 매우 공손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명은 이내 그런 걱정을 접어두고 이소호칸의 말대로 마진츠의 등에 업혔다. 그의 등에 안착한 무명은 등에 업힌 느낌마저도 이소호칸과 흡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체취와 분위기 모든 것이 이소호칸의 판박이였다.
“잘 따라오너라. 뭐,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만 무명을 등에 업고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겨울이기에 암석의 표면이 얼어있어 미끄러울 수 있으니 발톱을 단단히 세우고 긴장하고 따라오너라.”
이소호칸은 등 뒤의 마진츠를 보고 말했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크게 도약해 백모봉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암석 사이로 파고 들어가면서 그의 거대한 육체를 붙들었다.
이소호칸이 한 번 더 다리에 힘을 주어 위로 도약하자 마진츠가 살며시 고개를 돌리며 무명에게 말했다.
“내 옷깃을 꽉 쥐는 것이 좋을 거다. 팔에 힘이 빠지면 바로 말해라.”
무명은 등 뒤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마진츠는 지체 없이 두 다리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겼다.
무명은 폭신한 털이 감싸진 등 위에 업혀 있었지만 마진츠의 다리 근육이 단단해지면서 허리와 등의 근육들이 같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마진츠가 높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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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6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