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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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백모봉[峰]
도약할 때의 들썩거림과 절벽에 착지할 때 충격은 지금까지 달려오면서 느껴온 흔들거림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급작스러운 반동에 하마터면 마진츠를 놓치고 튕겨 나갈 뻔했다.
무명은 턱밑까지 진동하는 강렬한 움직임에 정신을 가다듬고는 떨어지지 않고자 마진츠의 몸을 한껏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소호칸은 멀찍이 성큼성큼 백모봉을 올라갔다. 그 자취를 따라 고스란히 마진츠가 뛰어올라갔다. 인간이라면 절벽을 이렇게 올라가지는 못했을 터였다. 그들은 말 그대로 절벽 틈바구니에 발톱을 집어넣고 두 다리가 지탱이 될 때 폭발적인 근력의 힘으로 뛰어오른 것이었다.
아래로 내리누르는 거센 중력에 기어오르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직선으로 깎여 있는 경사면을 둘은 선천적인 힘과 육신을 이용해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등반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속도로도 백모봉의 거침없이 솟아오른 높이를 쉬이 정복할 수 없었다. 일견에도 백모봉은 구름과 맞닿아있을 정도로 높았고 가끔 낮은 구름들이 백모봉 정상 언저리에서 쉬고 갈 때도 있을 만큼 그 길이를 가히 가늠하기 힘들었다.
이소호칸과 마진츠는 한참을 등반하다 결국 정상 언저리에 있는 툭 튀어나온 그나마 평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쉬었다. 자신들은 어느 정도 체력 안배가 되었지만 무명은 마진츠의 등에 매달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무명이 아무리 체력이 붙었다고 해도, 그리고 자신이 직접 등반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단지 등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만으로도 몸이 지쳤다.
더군다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숨이 턱턱 막혀 피곤함이 가중되었다.
이소호칸과 마진츠가 뜀을 멈추자 무명도 긴장으로 후들거리는 팔과 다리를 마진츠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었다.
무명은 주변을 구경할 틈도 없이 등에서 떨어지는 순간 대자로 누우면서 팔과 다리를 쉬게 두었다.
“체력이 확실히 늘었구나. 땀범벅이 되어있을 줄 알았더니 이제 자신의 몸을 관리하여 최대한 체력을 안배할 수 있게 된 거 같구나. 네가 이 정도로 깊은 경지에 일찍 오르게 된 것을 아비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이소호칸이 품에서 대나무 물통을 꺼내 마진츠에게 건네며 말했다. 마진츠는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기뻐한다 하니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물을 받아 목을 축였다.
자신의 수련의 깊이가 다른 동갑의 기재들보다 뛰어남은 사실이었지만 아버지와 비교해서는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함이 엿보였다. 아버지 이소호칸은 범족으로서 노인의 나이에 다다랐지만, 현재까지도 젊었을 적 기량을 온전히 보전하고 자신보다 족히 두 배 이상 강했기 때문이었다.
마진츠는 공손히 고개 숙이며 아버지이자 대족장인 이소호칸의 칭찬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의 시선이 곧 벌러덩 누워있는 무명에게 옮겨갔다.
“네 목도 타는 듯한데 한 모금 축이겠나?”
마진츠는 대나무 물통을 찰랑이며 무명에게 권했고 무명은 얼른 상체를 일으켜 건네준 죽통을 잡아 입으로 가져가 벌컥 들이켰다.
“이제 곧 정상인데 어때, 견딜 만하냐?”
이소호칸이 물을 목 뒤로 넘긴 무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명은 마진츠가 한 번 도약할 때마다 튕겨지려는 반탄력 때문에 힘을 소진해 온몸이 기진맥진하였으나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약간의 기운이 샘솟는 듯했다. 무명은 힘차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그래, 조금만 더 견뎌보거라. 여기는 지금 안개가 조금 끼어있어 시야가 밝지 않으나 정상에 오르면 탁 트여 온누리가 보일 것이다.”
이소호칸의 말대로 쉬고 있는 곳에는 안개인지, 낮은 구름인지, 알아보기 힘든 허연 기체들이 자욱하게 퍼져있었다.
무명은 마진츠의 등에서 눈을 질끈 감고 무아지경으로 매달려 있었기에 여기가 백모봉의 어느 부근까지 올라온 것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단지 이소호칸이나 마진츠의 흰 털,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차게 휘날리는 것을 보고 으레 상당히 높은 곳에 다다랐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이 위부터는 마진츠 너도 잘 알겠지만 만년설과 얼음 무더기가 쌓여있다. 특히나 지금 겨울이기에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무명을 데리고 올라가는 것은 상당히 버거울지 모른다. 홀몸으로 올라가는 것과는 아마 비교도 안 될 것이다. 네가 지금까지는 무명을 꽤나 배려하면서도 네 체력과 기술에 안배를 두었겠지만 앞으로는 더욱 힘겨운 길이 될 것이다. 정 힘에 부치면 지금부터는 내가 무명을 데리고 가마.”
이소호칸이 슬쩍 마진츠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마진츠는 살짝 고민하다 이소호칸의 제의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하산할 땐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제가 등반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한다고 노력했는데 무명에겐 많이 벅찬 듯합니다. 등반보다는 하산에 더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아마 하산 시에는 무명의 체력이 다 고갈돼 제가 데리고 하산하기엔 무리일 거 같습니다. 하산할 때 무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진츠가 조심스럽게 이소호칸에게 부탁하자 이소호칸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렇구나. 저렇게 지쳐있으니 네가 데리고 하산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떨어질 수 있을 테니……. 알았다, 하산 시에는 내가 무명을 데리고 내려가마.”
이소호칸이 말을 마치자마자 마진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엎어져있는 무명에게 가 등을 내밀었다.
“출발하자. 앞으로 조금이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마진츠가 무명에게 말하자 무명은 굳게 입을 다물고 몸을 힘겹게 일으켜 마진츠의 등에 업혔다. 무명은 다시 안간힘을 내서 정신을 집중하고 마진츠의 몸을 힘껏 움켜잡았다.
“그럼, 준비도 된 듯하니 다시 올라가볼까?”
이소호칸은 마치 소풍을 온 것처럼 흥겹게 둘을 바라보며 다시 올라갈 채비를 하였다.
이소호칸의 거체가 붕 하고 절벽으로 뛰어오르자 그 뒤를 마진츠가 힘차게 뛰어올랐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무명은 이전과 달리 상당히 지세가 불안정하게 변했다는 것을 마진츠의 움직임을 보고 알았다.
이전에는 필요에 따라 해당 근육만 사용하는 것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온몸의 근육이 전부 긴장하여 팽팽히 당겨진 상태였다. 온몸의 힘을 곤두세워 최대한 안정감 있게 등반하는 것이 느껴졌다.
날씨는 더욱 차가워져 따뜻한 마진츠의 등 위에 있어도 온몸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 실감 났다.
순간 무명의 이마 언저리에 차가운 물이 떨어졌다. 계속 눈을 감고 있었던 무명은 등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빼꼼히 빼어 슬며시 눈을 떠보았다.
‘눈?’
마진츠의 어깨 사이로 무명의 눈에 비춰지는 것은 하얗게 흩날리는 눈 다발이었다.
그 눈송이 중 일부가 무명의 이마에 닿아 녹은 것이 분명했다.
무명은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절벽이 전부 새하얗게 채색되어 있었다. 눈이 내리는 것인지 의아해 그대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하늘은 새파란 색을 뽐내고 있었다. 어디에도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무명은 순간 고개를 돌려 절벽 바깥을 쳐다보았다.
“우와!”
벌려진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아까 전 쉬었던 틈새에서는 허연 물 입자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주변이 너무나도 환히 보였다.
하마터면 그 광경에 너무나도 놀라 손을 놓을 뻔한 무명은 마진츠가 말을 건네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제야 봤나?”
마진츠가 씩 웃으며 무명의 놀란 표정을 구경했다.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그 아래의 구름 무리들, 햇살에 반사되어 무지개가 동그란 원형을 만들어내며 구름 사이에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땅.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이 개미 다리보다 작아진 모습에 무명은 계속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 우와!”
“그만 놀래라.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으니 조금만 더 붙들고 있어.”
마진츠는 놀라는 무명을 뒤로한 채 다시 도약했다. 하지만 한 번 눈을 뜬 무명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었다. 뱀이 지나간 길처럼 구불구불 휘어진 강, 얼어붙은 호수, 자신이 경작했던 땅과 자신이 살고 있는 공방, 이소호칸의 백모 지파의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저기, 저 끝의 파란 무늬들은 뭐지요?”
무명은 너무나도 궁금해서 등반에 열중하고 있는 마진츠에게 절로 물어보았다. 마진츠는 그런 무명을 한번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떤 무늬? 뭘 말하는 건데?”
마진츠가 묻자 무명은 왼손에 힘을 더욱 주고 목을 휘감았던 오른손을 빼내어 자신이 궁금해하던 곳을 향해 검지를 치켜들었다.
“바다를 말하는 거구나. 뭐, 처음 보는 것일 수도 있겠지. 단해(斷海)라 부르는 동쪽 끝의 바다지. 우리 백모 지파에서 산을 두세 개 넘으면 바다가 펼쳐져있지. 바다는 물들이 수없이 많이 흐르는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끝이 안 보이고 그 깊이도 잴 수 없지. 자세한 건 정상에 올라가서 말해 줄 테니 손 놓지 말고 꼭 붙들고 있어.”
마진츠는 바다에 대해 이야기를 짧게 마친 후 다시 고개를 돌려 절벽을 등반했다. 마진츠가 발로 절벽을 차고, 두 손으로 절벽을 붙들 때마다 절벽 사이사이에 붙어있는 눈과 얼음들이 떨어져 나갔고 그것들은 형용할 수 없는 빛의 무리를 만들며 무명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무명은 반짝이며 흩어지는 결정들 사이로 보이는 수평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에 어느새 마진츠의 움직임이 멈추어져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했구나.”
이소호칸은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펴고 앉아 마진츠에게 말을 걸었다.
“무명이 올라오는 내내 떨어지지 않으려 눈을 감고 제 몸을 꼭 붙잡고 있었는데, 방금 눈을 뜨고 절벽 밖을 바라보더니 바다를 보고 놀라 저에게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걸 답변해 주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마진츠가 등 뒤에서 어벙하게 주위를 보고 있는 무명을 슬쩍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소호칸은 그런 무명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무명아. 지금 네 표정이 가관이로구나. 완전 넋이 나간 듯해.”
과연 이소호칸이 말한 것처럼 무명은 살짝 넋이 나가있는 듯했다. 입은 헤벌쭉 벌어진 상태로 눈은 어디에 둘지 정하지 못해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자, 자. 그리 어수선하게 있지 말고 이리 와 앉거라.”
이소호칸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털어내며 둘을 불렀다. 마진츠는 터벅터벅 걸어가 이소호칸의 왼편에 앉았고, 무명은 아직도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구분이 잘 가진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마진츠를 따라 이소호칸의 오른편에 앉았다.
이소호칸은 자신의 오른편에 앉은 무명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포근한 쓰다듬에 안정감을 얻은 무명은 조금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 작품 후기 ============================
2014-08-06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