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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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초생[初]
“무명아, 이 형에게 덫을 놓는 법 좀 알려주지 않을래?”
수에르가 겸손히 무명에게 부탁하자 무명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내심 인정받은 것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다. 특히나 자신이 본래 알고 있었던 지식으로 인정받는 것은 색다르면서 고양된 느낌을 가져왔다. 무명은 입가 가득히 미소를 띠며 답했다.
“수에르 형이 필요하시면 당연히 알려드릴 수 있죠, 한데…….”
“한데?”
무명이 살짝 뜸 들이며 말끝을 흐리자 수에르가 바로 되물었다.
“솔직히 뭐 가르쳐드릴 거라곤 없어요. 제가 설치할 줄 아는 덫 종류는 상당히 간단한 거니까요. 지금 바로 알려드릴 수 있어요.”
무명은 그리 말하며 엉덩이를 내리깔고 앉았다. 오후 일과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니 이 자리에서 바로 알려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에르도 무명이 자리를 잡고 앉자 자신이 잡은 멧돼지 위에 걸터앉고는 무명을 지켜보았다.
무명은 주변에서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를 손을 더듬거려 주웠다. 그리곤 집어 든 나뭇가지로 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장 기본적인 덫은 역시 땅을 파놓는 거죠. 얕게 파면 부상을 유도하는 덫이고 깊게 파면 그 자체로 생포를 위한 덫이 돼요.”
무명은 천천히 그리고 또렷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덫을 놓는 방법을 수에르에게 말해 주었다. 수에르는 무명의 가르침을 들으며 중간중간 고개를 주억거리거나 맞장구치며 덫 놓는 방법을 세세히 들었다.
“올가미가 가장 설치하기 쉬운 덫이면서 걸리면 빠져나가기도 매우 어렵죠. 우리에겐 손이나 도구를 사용해서 줄을 풀거나 자르면 되는데 동물들은 없으니까요. 근처에 덩굴들이 많다면 덩굴을 사용해도 좋구요. 갈대나 볏짚을 꼬아 간단히 줄을 만들어 사용해도 작은 산짐승은 쉽게 잡을 수 있어요. 올가미에서 매듭짓는 법은요.”
무명은 땅에 그림을 그리고 실제로 간단히 덫을 놓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수에르는 무명이 한 번 덫을 놓는 방법을 보여주면 그걸 그대로 따라 했고 반복해서 손을 움직여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게 전부예요. 뭐 더 가르쳐드릴 것도 없네요.”
이각 정도의 시간을 땅 위에 그림을 그리며 수에르에게 덫 제작을 알려준 무명은 더 이상 알려줄 게 없자 머쓱해하며 말했다.
“오, 훌륭하다. 덫이라는 건 내가 사냥을 시작하면서 처음 배워보는데 이러면 확실히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사냥감을 많이 잡을 수 있겠구나. 인간 사냥꾼들은 다 덫을 놓아 사냥하냐?”
수에르가 묻자 무명은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덫을 놓을 줄 알 거예요. 덫을 놓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 즐겨 쓰시는 거 같더라구요. 조금 더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설치하는 공격적인 덫도 많다고 아는데 저는 그런 덫에는 걸려본 적이 없어서요. 아마 곰 같은 걸 잡기 위한 덫에 걸렸으면 덫을 놓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이 세상에 없겠죠.”
무명은 실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오호, 그래? 더 큰 동물을 잡는 덫도 있다는 거지? 확실히 효율적이네.”
수에르는 감탄하며 말했다.
“형님, 허기도 지는데 꿩이나 구워 드시죠?”
무명이 씩 하고 웃으며 축 처진 꿩 두 마리를 들고 수에르에게 권했다. 수에르는 순간 두 눈망울이 흔들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수에르는 차분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약속을 지켰으니 네가 잡은 사냥감은 이제 네 거야. 나에게 줄 필요는 없다구.”
수에르가 말하자 무명이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
“다 가져가기도 힘든데 같이 먹죠! 먹어야 남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형 구워드리고 싶어서 그런 건데……. 안 드실 거예요?”
무명이 다시 수에르에게 권하자 수에르가 살짝 멈칫하며 대답에 뜸을 들였다. 분명 수에르도 먹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표정과 행동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제가 형님에게 악기 연주도 배우는데 지금껏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드렸잖아요. 사양하지 마세요.”
무명은 너스레를 떨며 수에르를 기분 좋게 하고선 서둘러 꿩의 털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무명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수에르는 코를 벌렁대며 말했다.
“그래? 그럼 기분 좋게 먹도록 할게.”
무명은 요리 준비를 간단하게 마치고 불을 피웠다. 꿩은 곧 깃을 헐벗고 맨살을 허공에 내민 채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기다란 나무 꼬챙이로 꿰여 불 위에 구워졌다.
“이야, 실력 좋은데?”
구운 꿩 요리하는 것을 곁에서 바라보던 수에르가 자글자글 익어가는 꿩을 보며 말했다. 땅을 파고 그 위에 마른 나무 둘을 마찰시켜 낙엽 부스러기로 불을 일으키는 것은 반 각도 안 걸렸다. 홀로 불을 피워본 지는 2년이나 지났지만 이미 산에서 생활하면서 몸에 배어버린 동작들은 오차 없이 불을 단번에 피워냈고 단숨에 고기를 구워냈다.
꿩 두 마리가 불 끝에서 살 속의 지방을 태우고 기름을 뚝뚝 흘렸다. 혹 탈까 수에르가 걱정했지만 고기가 적당히 익으면 재빨리 나뭇가지를 돌려 꿩의 다른 곳을 익혔기에 전체적으로 노릇하게 잘 구워졌다.
구운 꿩고기는 아주 잘 익으면서 구수한 입맛을 돋우는 향기를 퍼트렸다. 수에르는 그 향기가 짙어지고 짙어져 수염을 타고 코끝으로 흘러들어 올 때마다 입에서 군침이 고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여기요.”
정신없이 향기를 음미하며 고인 침을 목구멍 아래로 몇 번 흘려보내니 어느새 무명이 잘 구워진 꿩이 꿰어있는 나뭇가지를 건넸다.
“오오!”
수에르는 감탄하며 꿩을 받았다. 워낙 작고 날쌘 꿩이었기에 사냥 시에 도망쳐 돌 사이의 구멍이나 나뭇가지를 전전하면 다른 사냥감에 비해 배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 보여도 잘 잡지 않았다. 그러나 꿩고기 맛이 기가 막힌다는 것을 수에르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많이 뜨거워요, 천천히 식혀 드세요.”
꿩을 능수능란하게 구워낸 무명은 자신의 꿩고기를 바닥에 꽂아놓고는 불을 끄고 있었다. 장작을 하나하나 빼내어 불의 세기를 줄이고 고기를 구우면서 모아놓은 마른 흙을 장작 위에 뿌렸다.
작은 불씨가 숲 전체를 태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무명은 불씨 하나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꺼트렸다. 또래답지 않은 생활력과 철저함이 행동에서 묻어 나오자 수에르는 내심 계속 놀랄 뿐이었다.
“잘 먹으마.”
수에르가 감사를 전하며 무명이 불을 정리할 동안 충분히 식혀진 꿩의 배 부분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육즙이 흘러나오면서 구수한 꿩고기의 향이 입안 가득히 퍼졌다.
이 맛은 아내 유기이가 해준 고기구이보다 훨씬 뛰어났다. 직화의 맛이랄까? 불 끝에서 절묘하게 구워진 무명의 꿩고기 구이는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어, 엄청 맛있다!”
“그렇죠? 제가 맛있게 고기를 굽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기를 태웠는지 알면 놀랄 거예요.”
무명이 헤프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명이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고기를 굽는 솜씨는 경지에 오른 듯했다. 소금이나 후추가 없는데도 맛이 아주 뛰어났다.
“너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을 줄이야.”
본래 범족은 요리를 하지 않고 생으로 먹는 경우가 많았다. 요리를 한다 해도 삶고 간단히 굽는 정도였다. 그다지 요리에 대해 전문적이지 않다 보니 맛에 상당히 무감각한 경우가 많았다.
수에르는 자신도 고기를 많이 구워 먹어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맛있게 된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형, 부탁이 있는데요.”
꿩 요리에 감탄하고 있는 수에르에게 입안의 고기를 오물거리며 무명이 말했다.
“앞으로 이렇게 개인적인 사냥을 나가실 때 저 데리고 와주실 수 있나요? 형님은 큰 사냥감을 잡고 제가 작은 사냥감을 잡을게요. 같이 이렇게 구워 먹으면서 피리도 불어요.”
무명의 기분 좋은 제안에 수에르는 꿩을 한입 베어 물며 답했다.
“네가 따라온다면 좋지. 사냥도 같이하고 이렇게 맛있는 요리도 해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수에르는 흔쾌히 수락했다. 무명은 수에르의 수락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고마워요, 수에르 형. 오늘 제가 잡은 노루는 형 드릴게요.”
무명이 감사해하며 노루를 양보하자 수에르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왜? 네가 잡은 건 네가 갖기로 했잖아.”
“저 큰 걸 제가 가져서 뭐하나요. 저는 이 토끼면 충분해요.”
무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귀가 꿰어져 있는 토끼 중 한 마리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수에르는 응낙하지 않았다.
“약속은 지켜야지. 네가 잡은 것은 네가 갖도록 해.”
“아니, 그게 말이죠.”
수에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무명이 난처해했다. 수에르가 그런 무명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왜 그러는데?”
“운 좋게 노루를 잡긴 했는데 말이죠. 저걸 제가 가져간다 해서 어디에서 해체해 먹을 방도도 없고 더군다나 제가 잡아왔다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 같아서 말이에요. 제가 저걸 가져가면 괜히 눈에 띄기만 할 거 같아 형에게 드리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아요. 토끼 정도야 간단하게 불을 피워 구워 먹을 수 있지만 노루는 그게 어렵잖아요.”
무명이 속내를 털어내자 수에르는 잠잠히 듣고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확실히 네 말이 맞다. 그래도 네가 잡은 건데 내가 다 가질 순 없지 않냐. 나야 고맙긴 하지만 말이지. 음… 이따 우리 집에서 저걸 해체해 다리는 모두 네게 주마.”
수에르가 결국 노루를 맡긴 하겠으나 그래도 무명이 잡은 사냥감이기에 가장 좋은 부위인 다리 고기를 나누어 주겠다고 말했다.
“음, 그럼 다리 전부를 주실 필요는 없고 뒷다리 두 개만 주실 수 있나요?”
“왜? 다리를 다 갖지 않고?”
“제게 고기는 그렇게 많이 필요 없을 거 같아서요. 유기이 형수님이 임신하셨는데 같이 드셔요. 이따 뒷다리 두 개를 주시면 그중 하나는 대족장님을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선고우 님을 드리려 하는데……. 괜찮겠죠?”
무명이 자신에게 준 다리를 대족장님과 선고우에게 주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수에르는 입가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 괜찮고말고. 두 분 다 아주 좋아하실 거다.”
“수에르 형처럼 저에게 매번 가르침을 주시는데 이번 사냥에 노루를 잡았고 하니 받은 은혜에 비해 작지만 꼭 보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수에르는 기특한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무명의 머리카락을 두어 번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구워서 드리면 아마 더 좋아하실 거야.”
수에르는 잊지 않고 무명이 고기를 구워 대접하라고 넌지시 말했다. 분명 무명은 더 귀여움을 받을 터였다.
말을 마친 수에르는 남은 꿩고기를 뼈도 발라내지 않고 다 입안으로 털어 넣어 통째로 씹었다. 단단한 이빨이 꿩을 남김없이 분쇄했다. 좋은 맛이 입안 가득히 맴돌았다.
“자, 이제 배도 채웠고 하니 가볼까?”
“네, 형.”
무명이 빙그레 웃으면서 답했다. 수에르가 등을 가져가자 무명은 허리춤에 토끼를 둘러맸고, 올 때와 같이 수에르의 등에 업혔다.
수에르는 무명을 업고, 묶여있는 노루에게 가서 뒷머리를 쳐 기절시킨 후에 다리가 묶여있는 노루를 덩굴과 함께 목걸이처럼 목에 걸쳤다.
그러고는 거대한 멧돼지를 가슴 쪽으로 들어 올렸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근력이었다. 노루 한 마리 끌고 오는 것만 해도 힘이 들었던 무명은 그 큰 사냥감을 몸에 걸치듯 두르는 수에르를 보고 경탄했다.
“달리기 시작할 건데 사냥감들 때문에 업혀있는 게 불편할 수도 있을 거야. 이동하다 불편하면 말해.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볼 테니까.”
수에르가 무명을 생각해 주며 말했다. 무명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수에르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본래 둘이 왔던 남쪽, 동쪽의 백모 진영으로 되돌아갈 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2014-08-06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