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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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방[工]
공방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무명이 원하던 대로 일이 잘 흘러갔기 때문이다. 예상 외로 운이 좋은 것도 있었다. 해봤자, 토끼나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들 몇 마리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급하게 설치한 덫에 노루가 덜컥 걸리니 사냥감을 잡은 기쁨보다는 당황한 마음이 역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에르가 그 일을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무명의 사냥 방법에 대해 높게 봐준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덕분에 공진희에게 고기를 넘겨주겠다는 계획이 아주 잘 마무리가 되었다.
무명이 공방으로 돌아가자, 이제 막 오전 일과가 끝난 듯했다. 사람들은 각자 오전 일과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무명은 일단 먼저 숙소로 가서 노루 뒷다리를 방 구석에 놓고 나왔다. 관엽은 방에 없었다. 무명은 숙소에서 나온 후에 이마진 일행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이마진과 아이들은 오전 내내 목재를 옮기느라 진이 빠진 상태였다. 다들 배가 완전히 꺼져 주린 소리를 내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린 몸을 식히고 식사가 오길 기다리기 위해 모두가 그늘에 누워 있었다.
무명은 그렇게 널어놓은 빨래처럼 늘어진 그들을 발견하고는 웃으며 다가왔다. 이마진이 무명이 다가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채고 그를 맞았다.
무명이 다가오자, 주타와 고누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머리나 손을 흔들며 무명을 맞아주었다.
“땀에 푹 절어 계시네요.”
무명이 이마진과 아이들의 축 처져있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 오늘 작업이 다른 날보다 고되었거든, 아마 여름이 다 가기 전까지는 이렇게 어려운 작업들이 매일같이 이어질 거라고 하는데, 걱정이다.”
이마진이 피곤한지 어깨를 좌우로 돌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무명은 이마진에게 허리를 굽혔다.
“응? 혹시 공진희에게 편지라도 온 거야?”
무명이 다가오자, 눈빛을 빛내며 설레는 마음으로 이마진이 물었다. 하지만 무명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쉽게도, 편지는 아니네요.”
무명은 겉옷을 거둬내며 그 속에 있는 것을 꺼내었다. 그것은 미리 추려둔 토끼 두 마리였다.
“이게 뭐야?”
무명이 꺼내 드는 것을 보는 사람마다 반응이 매한가지로 똑같았기 때문에 무명은 실소하며 답했다.
“토끼죠. 보면 모르셔요?”
“아니, 토끼인 것은 알겠는데… 어디서 난거야?”
이마진이 무명이 들고 있는 토끼를 보고 말을 하자, 주위에 누워 있던 아이들이 그 소리를 듣고 이마진 곁으로 몰려들었다.
“쉿. 쉿. 조용히 해주세요.”
무명이 익살스럽게 토끼를 들지 않은 손의 검지를 입술로 가져대며 말했다.
“형님하고, 우리 숙소 분들에게만 드리는 거예요. 큰 소리 내시면 안 돼요.”
무명은 허리를 더 낮추며 주변의 시야에서 토끼가 보이지 않도록 노력했다.
“수에르 형하고 사냥을 나가서 잡아온 거예요. 운 좋게 토끼를 잡아서, 나눠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무명이 말하자, 이마진과 주변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네가 잡은 거야?”
“네. 운이 좋았어요. 보는 눈이 많으니 어서 받으세요.”
무명은 토끼 두 마리를 이마진에게 흔들었다. 이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숙소 분들하고 같이 나눠 드세요.”
무명이 싱그럽게 웃으며 토끼를 넘긴 손으로 이마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 어. 그래. 잘 먹을게. 그러고 보니 네가 일전에 나에게 이야기해 줬지. 산에서 놀면서 사냥을 배웠다고 말이야. 그런데 진짜 이렇게 잡아오니 네가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이마진이 경탄하며 무명을 칭찬했다.
“뭘요. 어서 배 밑이나, 상의 안에 넣어두세요. 일과 끝나고 드세요.”
이마진은 무명의 말에 따라 토끼를 상의 아래 넣었다. 아이들은 무명이 토끼를 넘겨준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심지어 주타와 고누도 입가에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헌데, 이렇게 줘도 되겠어? 너는 먹었고?”
이마진이 무명을 걱정해 묻자, 무명은 안면에 미소를 가득히 지으며 말했다.
“저는 수에르 형과 먹었어요. 형님들끼리 같이 드세요.”
“뭐, 우리야 진짜로 고맙고 감사하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진짜 여기에선 감지덕지할 일이니까. 헌데 이렇게 막상 받아놓고 보니,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이걸 구워 먹다간 연기나 냄새 때문에 다 알아차릴 텐데 말이야.”
이마진이 토끼를 받아도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할지 난처해하자, 무명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대답했다.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나뭇가지 꺾어서 그걸로 구워 드셔요. 반드시 살아있는 생목(生木)으로 구우셔야해요. 아마 마른 나뭇가지에 비해서 불을 붙이시기는 어렵겠지만, 마른 건 연기가 나니까요. 생목으로 구우시면 연기가 거의 안 나게 구우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 구워 드시고 나선 솔잎을 태우시면 아마 냄새도 솔잎 향에 덮어질 거여요. 아마 감쪽같을 걸요?”
무명이 말하자, 이마진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는 어찌 그런 지식을 알고 있는 거야?”
“산에서 살다 보면 알게 돼요.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보고, 생목에 불을 붙여보고, 수많은 나뭇잎을 태우면서 알게 된 거죠.”
씨익 웃음을 지은 무명은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목례를 하고, 헤어질 차비를 했다.
“그럼 형, 편지가 오면 또 올게요.”
이마진을 향해 무명이 밝게 인사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몇 걸음을 걸어가니, 이마진이 무명의 등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고마워, 무명아.”
“뭘요.”
무명은 고개만 돌려 이마진과 눈을 마주치고선 눈웃음을 짓고 숙소로 걸음 했다.
숙소로 도착하자, 여전히 숙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명은 오전 사냥에서 꿩고기를 푸짐하게 먹었기 때문에 점심은 거르고 낮잠이나 자려 이부자리를 폈다. 그다지 많이 움직이거나 머리를 쓴 것이 아닌데, 이상하게 피곤했다. 참으로 오랜만의 사냥이었기 때문에 몸과 정신이 상당히 피곤함을 느끼는 듯했다.
무명은 베개를 베고선 누워서 잠깐 잠을 청했다.
“일어나, 일어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몽롱한 감각들이 무명의 몸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감각들을 더욱 확실히 깨워 의식으로 이끌기 위해 두터운 손이 무명을 세차게 흔들었다.
“헛.”
무명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차게 상체를 들어내었다.
“뭐야. 팔자 좋구나. 점심도 거른 거 같아서, 이렇게 싸오니까. 낮잠을 아주 팔자 좋게 자고 있구나.”
“아앗. 관엽 아저씨.”
무명이 수련이나 이소호칸과 같이 있다 보면 점심시간에 늦게 오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관엽은 그런 무명을 위해서 식사 시간에 무명이 보이지 않으면, 간간히 배급자에게 물어봐 식사를 받아왔다.
오늘도 무명이 식사를 안 했다고 배급자가 말해, 관엽이 주먹밥 두 개를 대나무 잎에 싸서 숙소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숙소에 발을 들이니, 무명 녀석이 대자로 늘어져서 자고 있는 걸 보고 관엽은 괜스레 심술이 나서 무명을 흔들어 깨운 후, 일어난 무명에게 꿀밤을 때렸다.
“아코코코코. 아파요!”
무명이 정수리에 꽂힌 꿀밤 때문에 아파하며 머리를 쓰다듬자, 관엽이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먹밥을 무명의 배 위에 던졌다.
“밥은 먹고 자는 거야?”
빈정대는 면모도 있었지만, 관엽은 그래도 무명을 깊이 걱정해 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린 녀석이 이곳의 가장 높은 녀석의 신임을 얻고,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당장에 이 녀석이 여기 와주었기에 자기의 일이 편해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넵. 아쿠. 정말 아프네요.”
무명은 정말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번개 같은 꿀밤 때문에 잠이 확 달아났다.
“어디서 먹고 왔냐? 점심밥은 꼬박 챙겨 먹는 녀석이. 밥 먹고 왔으면, 주먹밥 나 줘. 내가 먹어야겠다.”
무명이 밥을 먹었다고 말하자, 관엽이 빠르게 말하며 배에 올려놓은 주먹밥 덩이를 낚아채 가져갔다.
“아휴. 관엽 아저씨, 그거 다 드시면 저녁에 맛있는 거 먹을 때 배불러서 못 드셔요.”
관엽이 빠른 동작으로 대나무 잎을 벗겨내는 와중에 무명이 그걸 보고 말했다.
“뭘 못 먹어?”
무명이 혀를 날름하며, 배 맡에서 토끼 한 마리를 꺼내 들었다.
“헉.”
요 토끼로 정말 다양한 반응을 하루 동안 보는 무명이었다. 관엽은 무명이 꺼내 든 토끼를 보고 입을 벌리고 동작을 멈추었다. 까다 만 주먹밥이 손 아래로 굴러 떨어질 때까지 관엽은 토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 고기. 토끼 고기!”
입안에 고인 침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관엽은 무명의 손에 들린 축 처진 토끼를 보고 달려들었다. 무명은 관엽이 다가오자 토끼를 휙 뒤로 내뺐다.
“야!”
무명은 화를 내는 관엽을 보고 키득거렸다.
“아저씨, 지금 드실려구요? 이따 저녁에 먹어요. 점심 드셨을 거 아니에요.”
무명이 말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관엽이 규칙 없이 자란 자신의 턱 수염을 긁적이며 수긍했다.
“그, 그래.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고기라서 말이지. 근데, 어디서 구한 거야?”
관엽 또한 똑같은 질문을 하자, 무명은 똑같은 설명이 매우 귀찮았지만 이 토끼를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오오, 그럼 나중에라도 네가 사냥에 성공하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겠네!”
관엽은 흥분한 채로 말했다. 무명이 사냥을 성공하기만 하면 자신도 고기를 먹을 기회가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필요한 거 없냐? 덫이라고 했지? 간단한 거라면 남는 철을 이용해서 덫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관엽은 토끼를 보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늘 쌀만 먹던 자신의 눈앞에 고기가 떡하니 들이밀어지는데 흥분 안 할 수가 없었다.
“오, 아저씨. 철을 빼돌리겠다니, 상당히 위험하신 발언 아니에요?”
“시, 시끄러워. 어차피 철을 관리하는 건 실질적으로 나라고. 불순물이 많긴 하고, 좀 무르기야 하겠지만 네가 사냥에 성공해서 나에게 고기를 준다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관엽이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무명은 물끄러미 관엽을 바라보다가, 그가 해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본래는 그냥 아무것도 받지 않고,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본인이 고기를 보고 흥분해서 해준다니,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다.
“뭐, 아저씨가 만들어 주시면 감사히 사용할게요. 어쨌든 오늘 저녁은 우리 둘이서 토끼 구어서 먹자구요. 저녁에 공방에서 숯 좀 가져오셔요. 요 앞에서 숯으로 구워 먹죠.”
공방에서 관엽이 불에 관련해서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굳이 나무를 태우지 않아도 숯으로 충분히 구워 먹을 수 있었다. 관엽은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끄덕이며 만연한 미소를 지었다.
“고기라니, 진짜 말만 들어도 좋구나. 내가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고기라면 내 살을 줘서라도 먹고 싶어 할 정도란 말이다.”
관엽이 이렇게 고기를 좋아할 줄은 상상도 못한 무명은 미소를 지었다. 관엽에게 뭔가를 부탁하기 위해서면, 고기를 사용하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기 때문이다.
“아참, 아저씨. 오후 일과 아직 안 시작했죠?”
무명이 서둘러 관엽에게 물었다. 오늘은 선고우에게도 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응? 이제 막 점심 끝났으니, 선고우 님이 기다리시겠지. 빨리 일어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깨운 거야.”
“힉.”
선고우는 지각을 몹시 싫어했다. 그는 원칙적이고 투박했다. 무명은 서둘러 이불을 미뤄내고, 구석의 노루 다리를 집었다.
“엇, 그건?”
관엽은 무명이 집어 든 노루 다리를 보고 토끼보다 더 눈을 크게 치켜뜨며 말했다.
“이건 철공 님 드릴 거예요. 나중에 잡으면 그때 먹어요. 아저씨, 그럼 전 갈게요.”
늦으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가기 위해 무명은 바로 바깥으로 달음질했다. 관엽은 멍하니 앉아, 아른거리는 노루 뒷다리의 잔영을 보고 무명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2014-08-06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