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2
0062 / 0124 ———————————————-
8. 공방[工]
“늦었다.”
선고우는 헐레벌떡 들어온 무명에게 단답으로 말했다. 상당히 차가운 목소리로, 지각에 대해서 불만이 있는 투였다.
무명이 땀을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고르자, 선고우는 눈 한 쪽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늦은 거냐. 오전 수련이 길어졌느냐?”
오늘은 수에르와 수련하는 날임을 아는 선고우는 수련 시에는 무명이 늦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처럼 늦자 물었다.
“헤엑, 헤엑. 그게 말입니다.”
무명은 가파르게 차오르는 숨을 채 진정시키지 못하고 선고우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니 대답하기보다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응? 이 냄새는?”
공방의 안쪽은 화로를 제외하고선 그늘이 그윽했기 때문에, 선고우는 무명이 내민 것의 정체를 처음에는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그것이 풍기는 냄새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고기? 노루의 뒷다리?”
선고우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동그란 동공이 환히 보일 정도로 무명이 손에 든 것에 시선을 집중했다.
노루 고기로 선고우의 시선을 끈 덕에 한결 숨을 고르게 된 무명은 그제야 말을 편히 할 수 있었다.
“네, 노루 뒷다리입니다.”
“오! 오! 어디서 구한 거냐, 이 귀한 고기를.”
순식간에 근엄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선고우는 혀를 날름거리며 흥분했다.
“오늘 제가 늦게 온 이유입니다. 수에르 형과 사냥을 갔다 왔거든요.”
“사냥? 네가?”
선고우는 무명의 말에 의아해했다.
“수련의 일환으로요. 오늘은 사냥의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 그래서 수에르가 노루를 잡은 것이냐? 그 녀석이 나에게 주는 선물인 게냐?”
선고우가 헤벌쭉하며 고기로 손을 내밀자, 무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가 잡은 겁니다. 수에르 형이 잡은 게 아니에요. 운 좋게도, 노루를 잡을 수 있어서 제가 철공 어르신 드리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네가? 네가 어떻게 노루를 잡느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고개를 내저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지은 선고우에게 무명은 재차 말했다.
“제가 잡은 거라구요. 믿기 힘들면 나중에 수에르 형에게 물어보시든가요.”
“아무리 그래도, 네가 노루를 잡았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데. 사냥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말이다.”
“믿지 못하시면, 드시지 않겠다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무명은 손앞의 고기를 다시 뒤로 물렸다.
선고우는 그런 무명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알았다, 알았어. 네가 잡은 걸로 믿으마. 헌데 정말 거짓말하는 건 아니지? 혹 나중에 이게 거짓말로 밝혀지면 나를 놀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선고우가 엄포를 놓았지만, 무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루를 잡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꿀릴 필요가 없었다.
“제가 놓은 덫으로 잡은 겁니다. 의심하지 마셔요, 철공 어르신. 제가 예전에 산에서 덫 놓는 법을 배워서 그 걸로 우연히 잡게 된 것입니다. 어르신이 일전에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셔서, 어르신 생각에 이리 가져왔습니다.”
무명은 그리 말하고 선고우에게 고기를 건넸다. 선고우는 완전히 고기에 정신이 팔려서 덥석 받아 히죽 웃었다.
선고우는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였지만, 다리를 잃고서는 고기를 접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었다. 하다못해 명절에도 그만큼은 찬밥 신세였다. 뭐랄까, 뭔가 무리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나마 수에르가 그를 챙겨주지 않는다면 그는 더 소외받았을 터였다.
수에르는 이리저리 발이 상당히 넓었는데, 다른 이들이 선고우를 외면할 때, 그만큼은 선고우를 더 챙겨주고 자주 공방에 들렀다. 수에르는 지파 항렬이 높아지면서 무기 관리까지 도맡았으므로 선고우와 자주 어울려 주었다.
수에르가 술이나 고기를 가끔 가져다주었지만, 그건 일전 선고우가 멀쩡할 때 먹고 마시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이었다.
선고우는 고기가 먹고 싶다, 술이 마시고 싶다고 늘 불평했다. 술은 그나마 배급받은 양이 있으니 꾸준히 신청하면 수에르가 가져다주었지만, 고기는 자기가 사냥을 해서 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때문에 선고우는 계속 고기에 대해 부족함을 말했다.
그런 그에게 가장 군침 도는 것을 가져왔으니, 선고우가 크게 마음이 움직이며 기뻐할 만했다.
“노루 고기라, 이게 얼마 만이냐. 돼지 완자 같은 걸 먹다가 무명 네 덕분에 진짜 고기를 뜯어 보겠구나.”
선고우는 코를 벌렁거리며 받아 든 고기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얼굴 전체엔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바로 드실 거예요?”
“암. 지금 바로 먹어야지. 불도 있겠다, 마침 술도 남아 있겠다. 지체할 이유가 없지.”
“그럼 오늘 오후 작업은요?”
무명이 물어보자 선고우는 이를 드러내어 웃으며 고개를 무명에게 가져갔다.
“내일 하지.”
일을 미루는 법 없는 선고우가 고기에 혹해서 일을 미룬다 말하자, 무명은 선고우가 고기를 그 정도로 애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고기, 고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지만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고 원하고 있을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 그럼 구워볼까? 왜, 너도 오후에 일 안 하니까 좋지 않냐?”
무명이 변화한 선고우의 행동에 적응하지 못해서 가만히 서있자, 선고우가 물었다.
“뭐 좋기는 한데, 내일로 일을 미루시면 내일 더 바빠지시는 거 아닌가요?”
혹여나 내일 선고우가 일이 바쁘다고 자신을 엄청나게 부려먹을 가능성이 있어, 무명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선고우는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근래엔 그렇게 바쁘지 않으니까 괜찮아. 요번 계절에 바쁜 작업은 다 지나갔어. 농기구는 다 만들어서 넘겼고, 건축 자재 정도만 만들어서 넘겨주면 되는데, 전번처럼 정신없이 바쁘지는 않을 거다.”
선고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술이 담긴 호리병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 노루 다리를 감싼 짚단을 풀어 노루 다리에 칼집을 내었다. 노루 고기가 속까지 골고루 익게 하려 함이었다.
그러고 나서 쪼그려 앉아 노에 노루 다리를 집어넣었다. 자글자글 하며 순식간에 노루의 다리가 뜨거운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지방을 태워 살코기 사이로 기름을 뿜어내었다.
노루 고기를 익히는 붉은 빛이 선고우의 얼굴을 고스란히 비추었다.
선고우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리를 돌렸다. 열이 많이 받는 부분을 조절하여 고루고루 익게 하기 위함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구수한 고기의 향기가 선고우의 공방을 가득히 채웠다. 노는 무섭도록 뜨거웠기 때문에, 고기가 익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해 있었다. 선고우는 지그시 눈을 작게 떠 고기가 타지 않게 손을 놀렸다.
일이 분이 지나자, 노루 다리는 완전히 익어 노를 빠져나왔다. 잘 익은 고기를 보는 선고우의 눈은 정말로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쇳물에 넣지는 마셔요.”
무명이 웃으며 말했다. 선고우가 노에서 쇠를 달구고 담금질을 위해서 언제나 물에 쇠를 넣었기 때문에 한 농이었다.
선고우는 평소에는 별 대꾸도 안 했을 터였지만, 눈앞의 고기에 기분이 좋은 듯 씨익 웃으며 농을 받았다.
“귀한 고기를 쓰게 만들 일 있나?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럴 일은 없다.”
무명은 그 물을 매일같이 마시는 것은 미친놈이 아니냐고 말이 목 언저리까지 차올랐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 말을 꺼내면 목숨이 수십 개라도 온전치 못할 것이 분명했다.
“너도 좀 들 테냐?”
선고우는 탁자에 다리를 올려놓고 호리병을 따서 잔에 가득 채우며 말했다.
“술은 괜찮고, 고기만 조금 나눠 주십시오.”
무명이 답하자 선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앞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무명은 감사해하며 동석했다.
“어린놈이 장하구나, 사냥도 다 하고 말이다. 인간에게 고기를 얻어먹을 줄은 내 상상도 못 했다.”
선고우는 손톱을 드러내어 잘 익은 허벅지 살을 한 줌 뜯어내더니 무명 앞에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아주 잘 익어 있었다. 상당히 뜨거울 텐데, 두터운 손톱은 뜨거운 열마저 쉽게 견디는 듯했다.
“뭐, 진짜 천운이었습니다. 노루 변을 보고 그 길목에 덫을 놓았는데 운 좋게도 걸려준 것이지요.”
무명은 지금 고기를 먹으면 입천장에 다 데일 것을 염려해 고기에는 손대지 않고 말했다.
선고우는 뜨거운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를 한 점 물어뜯었다. 두툼한 노루의 엉덩이 살이 단번에 선고우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선고우는 눈을 감고 우물거리면서 고기의 맛을 오랫동안 음미했다. 그리고서는 목으로 넘기고 따라놓은 술을 같이 들이켰다.
“크아아아아! 노루 냄새가 조금 나긴 하지만 진짜 좋구나. 원래는 생으로 먹을까 했는데 네가 그래도 나를 위해 가져왔다 하니 같이 먹기 위해 구웠다. 인간은 생고기를 먹기 힘들어한다는데 내가 아는 것이 맞느냐?”
선고우의 말에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고기는 인간에겐 너무 질기고 비려서 먹기 힘듭니다. 저를 위해 구워주셨다 하니 기쁩니다.”
무명이 살짝 고개를 숙여 말했다. 선고우는 다시 한 번 노루 다리를 한 움큼 베어 물고는 갑자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기를 목 뒤로 넘긴 뒤, 그는 의문을 풀기 위해 무명에게 물었다.
“근데 네가 노루를 잡았다고 했는데, 노루 몸은 어디에다 뒀느냐. 노루 갈비와 노루 머리는? 노루 다른 다리들은?”
“수에르 형에게 다 주고 왔습니다. 금번에 수에르 형 아내인 유기이 형수께서 임신을 하셔서 영양분 섭취가 크다고 하셨기에 제가 뒷다리를 제외하고선 다 수에르 형에게 줬습니다.”
무명이 말하자 선고우는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긍했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다 풀린 것이 아니었다.
“그럼 다른 편 다리는 어디에다 뒀느냐? 먹고 온 것이냐?”
선고우가 물음에 무명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부정했다.
“다른 편 다리는 대족장님께 드리고 왔습니다. 제게 은혜를 내려주신 분은 여기에 대족장님과 철공 님입니다. 첫 사냥에 성공하였으니 꼭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번 잡은 노루에서 제 몫은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무명이 이소호칸에게 다른 쪽 뒷다리를 주었다고 이야기하자 선고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금 고기를 뜯어먹었다.
무명 또한 이제 선고우가 뜯어준 살코기가 충분히 식었다고 생각해 고기를 들고 베어 물었다. 노루 고기 특유의 향이 남아있긴 했으나 고기 맛 하나는 일품이었다. 소금이나 후추 같은 향신료 하나 없이도 맛이 훌륭했다.
“어쨌든, 내게 은혜를 입었다 생각하고 네가 잡은 고기를 나누어 주니 고맙구나. 내가 네게 해준 게 딱히 있다고는 못 느끼겠는데 말이다.”
“공방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은혜로 생각합니다.”
무명이 웃으며 말하자, 선고우는 괜스레 쑥스러운 듯 멋쩍게 웃었다. 그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술을 들이켜며 고기를 뜯었다.
“이제 내가 너에게 뭔가를 가르치긴 해야겠구나.”
허벅지 살을 다 뜯어낸 선고우가 잠시 생각하더니 무명에게 말했다. 무명은 선고우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겠다고 한 말에 놀라워했다. 노루 뒷다리의 힘은 상상보다 강력했다.
“정말인가요?”
“그래. 지금 바로 뭘 가르칠지 딱히 생각이 나진 않지만 가르쳐주긴 하마. 뭐 종전의 생활과 달라지는 건 거의 없겠지만 일차적으로 네가 모르고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는 건 허락하마. 일단 그것만으로도 여기 일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해갈될 것이야.”
“감사합니다, 철공 어르신.”
무명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배움은 무명에게 이곳에서 그 어떠한 것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배울 수 있으면 그것보다 좋은 것이 없었다.
둘은 그렇게 자신의 앞에 놓인 노루 고기를 뜯으며 때 이른 식사를 마쳤다.
선고우는 점심을 먹었지만 노루 고기를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고 아껴 모아두었던 호리병에 담긴 술병 4개를 전부 꺼내 마셨다. 그는 정말로 기분 좋게 취했다. 무명은 약간 당황했지만 그의 취한 모습에 맞장구를 쳐주며 시간을 보냈다.
무명은 그의 기분이 매우 좋아졌음을 인식하고, 이 순간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을 거 같은 질문을 어렵게 던졌다.
“철공 어르신, 대족장 어르신과의 사이는 온전하신 것인지요?”
============================ 작품 후기 ============================
2014-08-06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