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Star Kingdoms RAW novel - Chapter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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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방[工]
“철공 어르신, 대족장 어르신과의 사이는 온전하신 것인지요?”
무명이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연유는 바로 둘이 서로를 의식할 때에 상당히 꺼림칙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조심스럽기도 하고 불편한 기류를 무명이 읽어내고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마냥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무명은 이 순간이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평소에 이런 질문을 한다면 선고우는 결코 답을 해주지 않을뿐더러 무명에게 괜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선고우의 기분이 술에 의해 풀어져 있다면 대답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무명이 선고우가 최고조로 흥분하고 즐거울 때를 기다렸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무명의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다행히도 선고우는 무명에게 화를 내거나 적개심을 갖지는 않았다. 단지 그는 웃으며 술 한 사발을 들이켜며 말했다.
“형님하고의 사이는 왜? 네가 왜 그걸 궁금해하는 게냐?”
선고우가 술에 취해 가볍게 생각하며 말하자, 무명은 혹여나 그가 의심을 품을까 봐서 그의 의문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대답했다.
“두 분께서 워낙에 우애가 좋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그냥 물어 보았습니다.”
무명은 괜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말을 아끼며 둘러대었다.
“허! 누가?”
선고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수에르 형이 일전에는 참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셨다고 말해 주셔서요.”
“킁, 녀석 괜한 말을 흘리고 다니는군.”
선고우는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우애가 좋다는 말을 부정했다.
“예전 같았으면 모르지, 그래 예전 같았으면……. 수에르 그 녀석도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쉽게 막 말하고 다니다니.”
선고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호리병의 술을 사발에 따랐다. 마지막 잔이었다. 그는 잔을 채우더니 자리에 일어나 다시 호리병 하나를 가져와 탁자 위에 놓았다. 이미 노루 다리는 뼈만 남은 채로 탁자 아래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지막 술병이구나.”
나직이 말한 그는 잔에 따른 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방금 전에 비해선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뭐, 나와 같이 계속 옆에 있어줄 녀석이니 궁금하다면 말해 줘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우리 지파 내부에서 이 이야기를 모르는 이도 없을 테고 말이다.”
그는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기분 좋게 취한 취기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수에르가 말해 줬다시피 과거에 형님과 나는 사이가 굉장히 돈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지금은 굉장히 까지는 아냐. 그래, 결코 아니지…….”
선고우는 말을 줄이고 잔을 들었다. 술이 없으면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인 것만 같았다. 그는 잔을 들어 목으로 넘기려다 이내 잔을 넘기진 못하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형님, 형님 하며 친근하게 부르지만 솔직히 지금 형님과 나의 관계는 남이라고 해도 이상치 않을 정도지. 아주 조심스러운 관계야. 형님도 그걸 알고 있고, 나도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지.”
이 말을 마치고 선고우는 잔을 들이켰다. 속이 타오를 정도로 쓴 저 액체를 안주 하나 없이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을 보고 무명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선고우 또한 술의 목 넘김에 가슴이 타오르는지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카아! 하고 탄식 비슷한 탄성을 내질렀다.
“내 다리 꼴이 이 꼴이 난 지난 6년. 그날부터 난 끊임없는 악몽 속을 거닐고 있다. 뭐, 형님과 나 사이를 말하고자 한다면 그때부터 말을 해주어야겠지.”
선고우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내쉬는 한숨에서 술의 향기가 듬뿍 묻어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웃으면서 말하기에는 어려웠는지 말투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얼굴을 뵌 지도 벌써 4년? 5년째인가? 시간이 섬전(閃電)과도 같구나. 너는 들어보지 못했겠지만, 내 다리가 이 꼬라지가 된 것은 6년 전 대족장을 선출할 때에 여섯 번째 결투에서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대족장을 선출할 때 지파의 남자 모두가 결투한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선고우가 묻자, 무명은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 크고 작은 결투는 자주 벌어지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결투는 대족장을 뽑는 결투와 강제를 뽑는 결투지. 강한 자가 무리를 이끈다는 법칙이기에 이 법칙은 매우 숭고하게 지켜져 왔다. 내가 여섯 번째 맞붙은 자는 꽤나 오래전에 우리 지파의 대족장이었으면서, 강제도 여럿 지내본 늙은이였지. 가웨. 그게 그 늙은이의 이름이었어. 그는 늙은 몸을 이끌면서도 호기 있게 싸웠어. 워낙에 경험이 많은 영감탱이라서 나와 격투 면에서는 거의 호각을 이뤘었어.”
순간 선고우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그때를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어렵지 않았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서 어렵지 않았어. 기술은 좋았으나 역시 늙으니 신체가 약해지는 거야. 다른 이들은 그 기술로 쉽게 이길 수 있었으나 나를 넘어설 수는 없었지. 결국 그는 이기기 위해 얄팍한 수를 썼지. 지고 싶지 않았던 거야. 자신이 아직까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내가 그를 계속 몰아치자 그는 마지막 일격으로 나의 발치를 공격했지. 그 공격은 허용될 수 없는 공격이었다.”
허용될 수 없다는 공격에 무명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그 공격이 철공 님을 이렇게 만든 건가요?”
“아, 그래. 본래 우리네끼리 결투를 한다면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첫째로는 진검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둘째로는 이빨과 손톱과 발톱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지. 이 규칙을 정하지 않는다면 결투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상자를 내기 때문이지. 대부분이 이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결투에 임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결투를 참관하는 자들이 규칙을 어긴 자를 죽일 테니 말이다.”
선고우는 양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다시 생각하기 싫은 기억인 듯했다.
“물론 진검이나 이빨, 손, 발톱을 사용하지 않는 결투에서도 우연찮게 죽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 규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내 왼 정강이를 공격할 때, 그 공격을 내주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안일한 생각이었지. 왼 정강이를 타격하려 낮게 공격해 오는 그의 등을 공격해 무력화시키면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웨, 그 망할 영감탱이는 목도로 내 정강이를 후려치지 않았지. 그는 손톱을 꺼내 들어서 내 정강이와 무릎 뒤를 처참하게 갈퀴었지.”
선고우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방금 전 노루 고기를 먹으면서 기분 좋게 웃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악귀마냥 주름진 얼굴에 그늘이 그득하게 어렸다.
“결투에서 손톱이 나오는 일은 간간이 있었다. 흥분하면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 나도 그땐 그냥 웃어넘겼다. 그저 이 영감탱이가 이기지 못하니 별수를 다 쓰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를 제압했지. 솔직히 상처도 그리 깊은 거 같지 않았다.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경기의 승자는 나로 결정되었고 나는 가웨 영감이 손톱을 꺼내어 든 것을 용서했다, 흥분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말이지. 가웨 영감도 진심으로 미안해했지. 승리에 눈이 멀어 규칙을 지키지 못했으니 당장 죽어도 그에겐 변명할 거리가 없었어. 나는 경기에서 승리하고 형님과 친지에게 승리를 축복받았다. 그때까지는 참 좋았지. 그리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그 다리를 의관에게 보여주었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이 작살이 났지.”
선고우는 버틸 수 없었는지 손가락을 뻗어 호리병 목을 잡아 잔에 채우지도 않고 그대로 입가에 가져가 벌컥벌컥 마셨다. 어지간히 괴롭고 힘든 이야기였음을 무명은 그의 술로써 풀어내려고 안간힘을 내려 하는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망할 가웨 영감탱이. 의관이 나에게 무릎 연골이 아작이 나버렸다고 하더라고. 신경은 다 끊어졌고, 그 다친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게 놀라울 정도라고 말하더라. 킥킥.”
그때의 자신이 너무나 처량하고 음울했는지 선고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명백히 말라비틀어진 것이었다.
“고칠 수 있는 것이냐고 수차례나 되물었지. 치료 될 수 있는 것이냐고 수백 차례나 의문했어. 의관은 그때마다 고개를 내저었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말을 해줘도 모를 것이야. 그때 나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격하게 흘렸다.”
흐느끼는 듯 말을 하는 선고우의 모습에 무명의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부러지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말과 슬픔이 담긴 어투가 강하게 공감이 되었다.
무명은 범족들이 얼마나 자신의 강함을 자랑스러워하고 숭배하는지 그들의 생활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강렬한 인생을 살아가는지 깊게 통감하고 있었다. 그런 강함의 정점에 있던 자가 강함을 한 순간에 빼앗긴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매한가지 일이었을 터였다.
선고우가 격하게 눈물을 흘렸다는 말에 무명은 그만 자신의 눈에서 눈물을 떨구었다.
“나도 울지 않는데, 네가 왜 우는 거냐.”
선고우는 우울하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무명에게 말했다.
“그때의 철공 님의 감정이 전해져와서 그렇습니다. 철공 님의 강인한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게 한 것 같습니다.”
선고우는 천천히 손을 들어 무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고우가 무명을 쓰다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범족이 애정을 가지고 자신보다 낮은 자에게 애정을 표하는 것이 바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수에르도, 이소호칸도 시도 때도 없이 무명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선고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명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지 않았지만 둘의 감정이 순간 공유되면서 처음으로 무명에게 애정을 표시했다.
“이미 내 왼 다리 무릎 아래는 근육들이 괴사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살려면 절단해야 한다고 말했지. 그렇지 않으면 고통이 지속해서 찾아올 거라고 말이야. 이 소식은 상당히 빨리 퍼졌다. 차기 대족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워낙 소문이 나있던 상태였으니까. 내가 불구가 되었다는 소문 또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졌어.”
선고우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순간순간의 기억들이 아직도 그를 강하게 옭아매는 듯했다.
“그럼 가웨 영감은 어떻게 되었나요?”
무명이 옛일을 추억하고 있는 선고우에게 갑작스레 묻자, 선고우는 웃음을 지우지 않고 답했다.
“죽었어.”
무명이 갸우뚱하게 고개를 저으며 의문을 표했다. 선고우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불구가 되었다는 소문은 그 영감탱이의 귀에도 당연히 흘러 들어갔지.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의 손톱으로 자결했다. 내가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야. 내가 그를 용서했음에도 그는 나에게 미안함을 사죄하고자 죽음으로써 의지를 보여주었지. 사실 그를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내가 불구가 된 순간 그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경멸했지. 내가 이렇게 된 이상 불구의 대가를 받겠다고도 생각을 했어. 그러나 그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어. 그는 아주 짧은 서신 하나를 남기고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 죽었지.”
“서신이요?”
“그래, 그의 시체 옆에는 짤막한 서신이 있었어. ‘선고우가 나를 용서하여 내 죄가 없어졌다 할지라도 그가 불구가 된 죄는 내 알량하고 얄팍한 악한 마음에 있다. 나는 그것에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여러분도 나를 용서하지 말아다오. 내가 비록 그대들의 대족장이었고, 그대들의 강제였으나 이렇게 초라하게 욕심을 부려 우리 지파의 별을 지게 한 나를 용서치 말아다오. 나는 나를 용서치 못해 내 손으로 이 생을 마감하겠다.’라는 서신이었지. 그래, 나는 그를 용서했어.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지. 가웨는 충분히 자신의 손으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선고우의 말에 무명은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웨라는 자의 마음이나 선고우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몰랐을 터였지만, 범족의 습관이나 예의범절을 공부하고 터득하면서부터 그렇게 행동하게 된 연유를 상식으로 수렴할 수 있었다.
“그가 자진(自盡)했으니 이제 나의 차례였다. 나는 솔직히 이 다리를 가지고 살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형님에게 우리 범족의 예법이나 전통을 배웠으니 아마 알 리라 생각한다. 예장, 알고 있나?”
선고우는 다신의 나무로 된 의족을 들어 무명에게 보여주더니 예장(禮葬)이라는 단어를 꺼내었다. 무명이 이소호칸에게도 들었고, 수에르에게도 일전 들었던 것이었다. 불구가 된 범인에게 스스로가 명예롭게 죽을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죽었어야 했다, 그때 죽었어야 했어. 비참하게 삶과 생을 이끌지 말고 가웨 영감처럼 자신이 쓸모없어졌다는 것을 인정한 그 순간 죽음을 맞았어야 했다. 내 손으로. 그때에 죽는 것이 나의 명예였다.”
============================ 작품 후기 ============================
2014-08-06 출판 본으로 본문을 수정합니다.